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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말 위증을 한 것일까. 2일 광주지방법원 형사합의 11부(부장판사)가 심리한 세월호 선원들의 13차 공판(광주지방법원 형사합의 11부·부장판사 임정엽)에선 '청테이프 의혹'의 당사자 이아무개(25) 3등 기관사가 입을 열었다.

이 기관사는 최근 증거보전절차가 끝난 세월호 CCTV 화면에 등장했던 인물이다. 세월호 기계실 쪽 CCTV에는 이 기관사가 4월 16일 오전 8시경 파이프처럼 보이는 기기에 청테이프를 붙이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그런데 이 기관사는 검찰 조사에서 "페인트칠을 하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이 때문에 그가 거짓 증언을 하지 않았냐는 의혹이 불거진 상황이었다(관련 기사 : "세월호 CCTV가 증명한 '위증'... 검경 신뢰할 수 없다").

의문의 청테이프 작업... "페인트칠하려고 준비"

'청테이프 의혹'은 세월호 유족들의 불신을 키우고 있다. 그래서인지 검찰은 '승객들을 버리고 먼저 배에서 빠져나왔다'는 이 기관사의 혐의와는 다소 거리가 있음에도 이 대목에만 약 15분을 써가며 그의 상세한 진술을 이끌어내려 했다. 재판부도 특별히 제지하지 않았다.

- 46번 CCTV를 보면, 4월 16일 8시 7분경에 메인엔진 옆 검은색과 연두색으로 이뤄진 파이프 같은 것에 청테이프를 사각형 모양으로 붙이고 있는데 이유가 무엇인가.
"전날 박아무개(53) 기관장이 지시했다. 저 가운데 검은 부분이 작업할 때 발로 지지하는 부분이라 더러워지니까 검은색으로 칠해놓는다. 그 부분을 칠하되 검은색과 연두색 부분 경계를 깔끔히 하자면 저렇게 테이프를 붙이라고 해서 그 작업을 했다. 운항 중에 할 생각은 없었는데 함께 당직을 선 박아무개(59) 조기수가 '어제 기관장이 시킨 것 하자'고 해서 저걸 하고 있었다."

이 기관사는 '파이프 쪽에서 공기가 새기 때문에 청테이프로 메운 것 아니냐는 보도가 있었다'는 검사의 물음에 "공기가 새지 않았다, 이음새 부분도 아니었다"고 답했다. "메인 엔진이나 파이프가 비정상적으로 진동해서 청테이프로 고정시키려 했다면, 제가 청테이프를 아끼기 위해 반으로 쪼개 쓰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청테이프를 붙인 일은 페인트칠을 위한 밑작업이었다고 거듭 설명했다.

세월호에서 가장 낮은 위치인 기관실에서 선원들이 어떻게 3층까지 올라왔는지도 드러났다. 이 기관사는 "배가 기울어지고 3분 뒤쯤 기관장에게 전화가 왔고 그걸 받은 박 조기수가 '빨리 나가자'고 했다"며 "한 번 더 전화가 와서 받긴 했지만, 곧바로 수화기를 던져놓고 나왔다"고 증언했다. 배가 기울어지면서 계단이 90도 정도로 기우는 바람에 그와 동료들은 팔 힘으로 버티며 올라가야했다. 이 기관사는 "중간에 힘이 딸려서 포기하겠다고 하니까 박 조기수가 '포기하면 다 죽는다'고 밑에서 받쳐준 덕분에 올라왔다"고 덧붙였다.

"공포감이 컸다" - "당황해서 기억도 안 난다"

"그냥 무서웠다."

이 기관사는 사고 당시를 회상하며 "상황이 급박했다, 공포감이 무척 컸다"는 말도 여러 번 했다. 그는 공포감과 당혹스러움 때문에 ▲ 당직 기관사로서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거나 ▲ 승객들을 대피시키고 ▲ 휴대전화로 도움을 요청할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3층에 올라왔을 때 객실 쪽으로 가볼 생각을 못했다"는 답변이 이어지자 방청석에선 한숨과 탄식 소리가 흘러나왔다.

손아무개(57) 1등 기관사 역시 "배가 많이 기울어서 당황했다"고 말했다. 그는 3층 기관부 선원 숙소 쪽에서 대기하다가 이 기관사 등 다른 기관부 선원들과 함께 좌현 갑판으로 빠져나와 해경 고무보트에 올라탔다. 손 기관사는 법정에서 "그때는 당황해서 기억이 안 나는 부분도 있고, 복도에 있는 것 자체가 상당히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번 일로 15년 전부터 앓아온 심장병이 더 나빠져 교도소에서 약을 먹고 있다고도 했다.

그런데 그는 당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캔맥주 하나를 기관장과 한 모금씩 나눠 마셨다. 검찰은 이 대목에서 손 기관사를 매우 몰아붙였다. "경황이 없어서가 아니라 가장 탈출하기 좋은 위치라 언제든지 밖으로 나갈 수 있고, 당시 여유가 생겨서" 술이나 마신 것 아니냐는 얘기였다. 또 그가 동료들과 복도에서 대기했던 이유는 "선원들이 갑판으로 나가 있으면 승객들이 도움을 청할까봐 걱정했기 때문 아니냐"고 따졌다. 손 기관사는 "전혀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른 피고인 신문... 공판일정 달라질 듯 "많은 얘기 듣겠다"

한편 2일 피고인 신문은 여느 공판과 다르게 이뤄졌다. 형사재판에선 보통 증거조사를 다 마친 다음 피고인 신문을 진행한다. 그런데 세월호 선원들의 경우 구속 만료기간이 11월 중순경인데, 전문가 감정보고서 완성 등이 늦어지면서 증거조사가 더뎌졌다. 이 때문에 재판부는 기관장을 제외한 나머지 기관부 선원 6명의 피고인 신문을 우선 2일과 3일에 걸쳐 진행하기로 했다.

공판일정은 다소 달라질 예정이다. 선원들이 처음으로 공개석상에서 사고 당시 상황을 설명한 날인만큼, 예상보다 진행이 더뎌졌다. 재판부는 결국 이 기관사의 검찰 신문 중간에 공판을 끝내야 했다. 임정엽 부장판사는 "일정을 좀 늘리더라도 많은 얘기를 듣도록 하겠다"며 공판 진행 계획을 조정할 뜻을 밝혔다.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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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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