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던 여름이 지나고 어느덧 가을의 문턱으로 들어섰다. '가을야구' 티켓을 따내기 위해 엎치락뒤치락 치열한 순위경쟁을 펼치는 프로야구처럼 사회인야구도 가을야구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마지막 힘을 짜내는 시기이다.

그리고 이 시기가 지나면 사회인야구팀들은 고민에 빠진다. 가을은 다음 시즌 리그 가입비와 회비 등 지출이 많은 시기이도 하다. 고작해야 1년에 열서너 경기를 치르지만 리그 가입비는 200만 원이 훌쩍 넘는다. 리그 가입비와 회비 등은 모두 회원들의 부담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두세 개 리그를 동시에 뛰는 야구동호인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한 시즌 열서너 경기로는 야구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별도의 리그 가입비 없이 연 회비 10만 원으로 한 해 50경기 이상을 뛸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어떨까? 야구동호인들의 눈은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회인야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감독선출제와 드래프트제도, 여기에 트레이드와 보호선수제도까지, 프로야구를 연상케 할 만큼 탄탄하게 체계가 잡혀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봤다.

'누구나 자유롭고 저렴하게 야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부천시민야구협동조합이 바로 그곳이다. 우리나라에 야구협동조합은 부산과 부천, 단 두 곳밖에 없다. 이미 경기개발연구원을 비롯해 다수의 사회인야구 리그에서 벤치마킹을 해갔을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부천시민야구협동조합. '부천아침야구'를 만들어 부천시민야구협동조합을 시작한 이득규 고문을 8월 25일 부천 담쟁이문화원에서 만났다.

부천 시민야구협동조합 이득규 고문 2006년 5월 부천에 아침야구 모임을 처음 만들었던 이득규 고문은 많은 야구동호인들이 경제적 부담과 시간의 제약을 최소화 하면서 야구를 즐길 수 있어야 하고 사회인야구 리그비도 현실화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부천 시민야구협동조합 이득규 고문 2006년 5월 부천에 아침야구 모임을 처음 만들었던 이득규 고문은 많은 야구동호인들이 경제적 부담과 시간의 제약을 최소화 하면서 야구를 즐길 수 있어야 하고 사회인야구 리그비도 현실화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노봉훈


야구에 대한 목마름 때문에... '아침야구'로 시작

- '야구협동조합' 참 생소하다. 간단히 소개 좀 부탁한다.
"'누구나 자유롭고 저렴하게 야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시간과 비용의 제약으로 자유롭게 야구를 못하는 시민들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2006년 부천아침야구로 시작했다. 2012년에 협동조합을 준비해서 경기도에 조합설립 신청을 했고 2013년 2월에 승인되었다. 3월에 리그가 시작됐다."

- 아침에 야구를 한다는 것이 조금은 생소하다. 계기가 있었나?
"리그에 가입해봐야 1년에 고작 15~20경기 정도 하는데 사회인야구팀에 처음 가입하면 경기에 나가보지도 못하고 덕아웃에 있다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야구가 하고 싶어 가입했는데 야구는 해보지도 못하고 그냥 돌아오니 야구에 목마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서울에서 새벽에 야구하는 것을 알게 되어 나가기 시작했다."

- 그래도 부천에서 서울까지 가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쉽지 않았다. 그래서 부천에 아침야구 모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춘의야구장 사용을 위해 문의를 했는데 다행히 아침에는 사용하는 팀이 없다고 해서 2006년 5월 처음으로 야구 카페에 모집글을 올렸다. 8명으로 시작했는데 그해 10월이 되니까 18명까지 늘어나 연습경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됐고, 한국 대표팀이 금메달을 딴 200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회원들이 급격히 늘어나 100명을 넘겼다."

- 야구를 귀족스포츠라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장비는 제외하고라도 팀 회비와 리그비만 해도 한 사람당 통상적으로 1년에 50만 원 정도 들어간다.
"처음부터 모든 비용은 공평하게 분담했다. 한창 경기가 많을 때는 정규시즌 50경기, 토너먼트 3개 대회까지 최대 80경기 이상 할 수 있었지만 회비는 한 사람당 10만 원을 넘지 않았다. 1년 회비 10만 원으로 80경기의 심판비, 기록비, 공 값, 팀 장비, 시상식 등이 모두 가능했다."

- 산술적으로 가능한가? 통상적으로 사회인야구팀 연 회비만 20만 원 정도 들어간다.
"가능하다. 춘의야구장은 대관료가 5만 원이 되지 않는다. 10명이 10만 원을 내면 야구장을 20번 이상 대관할 수 있다. 우리 회원이 100명이 넘는다. 한창 잘나갈 때는 200명 가까이 됐고, 최대 6개 팀까지 운영했던 적도 있다."

- 많은 경기를 하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지출로 재정에 문제가 생길 것 같은데.
"지금껏 재정이 부족했던 적은 없었고 1년 회비도 10만 원을 넘겨보지 않았다. 최근에는 경기 수가 줄다보니 회비도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그리고 나름 협찬사도 있다. 조합원 중 자영업자들이 월간 MVP를 후원하거나 가을리그에 협찬으로 나서 작게나마 재정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누구나 자유롭고 저렴하게 야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 상식적으로 아침야구에 직장인들의 참여는 어려울 것 같다. 주로 자영업자들로 구성되어 있는가?
"4개 팀으로 나누어 리그를 하는데 팀 이름이 '조조', '유비', '관우', '장비'이다.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을 위한 팀이 바로 조조다. 나머지 세 팀은 출근에 부담이 적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고 조조팀을 첫 경기에 우선 배정한다. 보통 조조팀은 오전 7시 30분 정도면 경기를 마치고 출근한다. 직장인 위주의 조조팀을 최우선으로 배려하고 있다. 야구는 하고 싶은데 아침에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들을 위해 만들었고, 조조팀이야말로 우리 협동조합의 근간이라고 생각한다."

- 아무래도 특정 시간대를 선점하고 있으니 리그 운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사실 조조팀이 없다면 리그 운영이 지금보다 훨씬 수월하게 돌아갈 수 있다. 일찍 출근해야 하는 조합원들은 조조팀에 배정해야 하니 조조팀 인원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사회인야구팀과는 전혀 다른 구조다. 우리는 팀 단위로 선수를 모집하지 않는다. 조합에 가입하면 조합에서 드래프트 방식이나 순번제로 팀을 배정해주는 방식이며, 감독도 선수들이 직접 선출한다.

초기에는 운영진이 감독을 임명했다. 그러다 보니 선수기용에 문제가 생기더라. 예를 들면 감독 본인이 야구를 잘한다 생각하고 항상 4번 타자 또는 선발투수를 하거나, 잘하는 선수만 기용하다보니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운영진 회의를 통해 끊임없이 조합의 철학과 방향을 이야기하고 공유한다."

아침에 모여 반갑게 인사하고 경기시작! 부천 시민야구협동조합은 2006년 5월 18일 부천아침야구 첫 모임을 시작으로 현재 시민야구협동조합으로 발전했고 드래프트와 트레이드 제도 등 사회인야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 아침에 모여 반갑게 인사하고 경기시작! 부천 시민야구협동조합은 2006년 5월 18일 부천아침야구 첫 모임을 시작으로 현재 시민야구협동조합으로 발전했고 드래프트와 트레이드 제도 등 사회인야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 부천시민야구협동조합


- 선수가 팀에 가입하는 방식이 아니면 팀별로 선수 구성은 어떻게 하는가?
"조합원들이 직접 뽑은 감독 세 명이 드래프트를 실시해서 자기 팀 선수를 직접 지명한다. 대부분 투수를 먼저 지명하고 그 다음 야수를 지명한다. 변수도 많다. 지명한 선수가 꾸준히 나온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직장 때문에 못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눈치 빠른 감독은 탐나는 선수에게 미리 연락을 해서 경기에 얼마나 나올 수 있는지 확인하고, 만약 자주 못 나온다고 하면 실수로 지명 못한 것처럼 다른 선수를 지명하기도 한다.

그리고 팀당 두세 게임 시범경기를 통해 팀 간 전력 균형이 잘 안 맞으면, 보호선수 7인을 제외하고 감독 간 합의를 통해 트레이드를 하거나 2차 드래프트를 실시한다. 팀을 옮기는 선수의 기록은 그대로 유지된다. 이렇게 하다 보니 실력 차이도 줄어들고 더 재미있다."

- 회원들 간의 성격 차이, 승부욕 등으로 인한 문제는 없었는가?
"야구도 경기이다 보니 승부욕이 넘치는 사람들 때문에 고민이 생겼다. 특히 새벽인데도 한 팀당 15명 정도 나오는데 경기를 해보지도 못하고 출근한다는 것은 큰 문제였다. 그래서 우리들만의 규칙을 만들었다. 수비는 9명이서 하지만 타순은 13번까지 하고, 투수는 이닝제한(4이닝)을 두었다. 아무래도 야구는 투수놀음이다 보니 잘하는 투수가 끝까지 던지면 경기의 흥미가 떨어진다."

선수 드래프트와 트레이드까지... 협동조합다운 독특한 규칙

- 조합원 수가 많으면 그만큼 재정도 탄탄해질 것 같다. 돈 문제는 민감한 부분이라 잘못 관리되면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은데.
"재정이 부족했던 적은 없었다. 회비를 내놓고 사정상 못 나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매년 작게는 50만 원에서 많게는 100만 원 정도 남을 때가 있다. 우리는 회비를 다음해로 이월시키지 않고 한 달 정도 운영비(대관료 및 공·장비 구입비)를 제외하고 다른 곳에 사용한다."

- 사용처가 불분명하면 문제가 될 것 같다.
"우리는 회비로 회식을 하지 않고 운영자 회의 식대 등으로는 더더욱 쓰지 않는다. 예전에는 회비 중 남는 금액을 리틀 야구단이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야구 꿈나무 지원비로 썼다. 수 년 전에 '원미리틀야구단'이 처음 생겼을 때 팀장비와 유니폼을 지원했던 적이 있다. 최근에는 자선야구대회 성금으로 기탁한다."

- 어떤 목적의 자선야구대회인가?
"올해로 4회째 진행 중이다. 부천성모병원, 시청, 마나스(만화작가모임), 부천소방서, 우리 협동조합, 이렇게 5팀이 모여 야구로 좋은 일 해보자는 취지로 2011년 첫 자선야구대회를 시작했다. 모인 기금은 부천성모병원에 입원해 있는 형편이 어려운 소아 환우를 위해 사용된다. 자선경매와 대회 경기 성적에 따른 기부(안타 1천 원, 2루타 2천 원 등), 캐리커처 그려주기 등 재능기부를 통해 성금을 모으고 있다. 올해도 11월에 할 예정이다. 한 해에 평균 200만~300만 원의 성금을 전달했다."

- 자선야구대회에 연예인 야구단이 왔다는 것이 놀랍다.
"연예인 야구단을 초청하는데, 한 번 온 팀들은 꼭 다시 오고 싶다고 한다. <개그콘서트> 개그맨으로 구성된 '라바야구단'과 국제대회 금메달리스트로 구성된 '챔피언스' 팀은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올해도 함께할 것이다. 연예인 야구단은 별도의 개런티 없이 참석하고, 대신 우리가 식사는 준비한다. 아무래도 개런티를 줄 수 없으니 식사라도 대접해야 마음이 편하다."

- 자선야구대회를 하다 보면 기억에 남는 일도 많이 있을 것 같다.
"2011년 첫 대회 때 연예인 야구단 '천하무적' 팀이 왔던 것과 2012년 대회의 성금을 후원받았던 환우가 2013년 대회 시구자로 나섰던 것이다. 휠체어를 타고 왔는데, 평생 야구장을 가보는 것이 꿈이었다고 하더라. 매일 TV로만 보다가 야구장에 처음 와서 너무 좋았고 시구하는 것도 좋다고 하더라. 그리고 <개그콘서트>에서 봤던 개그맨들을 실제로 만나서 행복하다고 해서 우리도 좋았다."

야구로 만드는 아름다운 세상 2011년 처음 시작한 자선야구대회는 부천시 성모병원에 입원해 있는 형편이 어려운 소아환우를 위해 기금이 쓰인다. 사진은 2012년 자선야구대회 기금을 받았던 환우가 2013년 대회에서 시구하는 모습이다.

▲ 야구로 만드는 아름다운 세상 2011년 처음 시작한 자선야구대회는 부천시 성모병원에 입원해 있는 형편이 어려운 소아환우를 위해 기금이 쓰인다. 사진은 2012년 자선야구대회 기금을 받았던 환우가 2013년 대회에서 시구하는 모습이다. ⓒ 부천시민야구협동조합


"사회인야구 리그비 현실화 꿈... 우리만의 구장 운영하고파"

- 부천시민야구협동조합을 벤치마킹도 많이 해갔다고 들었다.
"경기개발연구원을 비롯해서 몇 개 기관과 여러 팀들이 다녀갔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팀은 분조야(분당조기야구회)다. 설립자 분이 우리 협동조합에서 2년 동안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설립 취지와 경기 운영방식, 조합 운영방식을 배워가 성남에 우리와 비슷한 모임을 만들어 지금 잘 운영하고 있다."

- 협동조합을 이끌면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사회인야구의 리그비 현실화다. 사회인야구 리그비는 팀별로 경기당 10만~15만 원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팀별로 경기당 20만 원 정도 부담한다고 보면 된다. 만약 주말리그를 야구협동조합이 운영한다면 리그 중간에 이벤트처럼 자선야구대회를 통해 기부도 하고 즐겁고 보람 있게 해보고 싶다."

- 사회인야구의 이상을 실현하고 있는 것 같아 좋다. 협동조합의 꿈을 알고 싶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지금은 민간위탁 된 춘의야구장을 부천시민의 품으로 찾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야구협동조합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야구장을 갖는 것이다. 실제로 야구장 부지 임대도 추진했지만 토지 용도변경의 어려움 등으로 아쉽게 성사되지 못했다. 만약 야구장이 생긴다면 많은 야구동호인들이 경제적 부담과 시간의 제약을 최소화 하면서 야구를 통해 함께 새로운 일을 만들 수 있는 야구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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