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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중국 칭다오 이공대학에서 중국 학생들을 가르쳤다. 칭다오라는 지역성, 건축이라는 전문성, 교수와 대학생이라는 계층성, 한국인과 중국인이라는 민족성… 언뜻 보면 좀 특이한 소재이지 싶다. 하지만 이 소재들이 엮어내는 이야기는 중국에서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이며 작고 밀도 있는 이야기들이다. 중국의 대국굴기를 대표할 만한 잘난 사람이 아닌, 고만고만한 약력을 가진 한국인 선생과 함께 지지고 볶던 고만고만한 중국 대학생들과 이웃의 울퉁불퉁한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를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 - 기자말

공산당 입당이 뭐길래...

국제학원 건축학과는 한 학년이 세 반으로 구성되고, 반마다 한 명의 반주런(班主任, 담임교사)과 두 명의 반장이 있었다. Y는 07학번의 반장이었다. 산만한 덩치에 쩌렁쩌렁한 목소리, 짧은 스포츠 머리, 부리부리한 눈매. 그 외모에서 풍기는 포스와 달리, Y는 사람들을 웃기고 띄우는 재주가 있었다.

과제가 너무 많거나 기말이 다가오면 학생들은 스트레스를 잔뜩 받곤 했다. 그 때 Y가 유머 한 방을 날리면 축 늘어진 분위기가 살아났다. 연예인 뺨치게 생긴 여자 친구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 마냥 납작 엎드려 야들야들해졌다. 한마디로 Y는 얼렁뚱땅 걸걸하게 사람을 잘 다루었다. 여러모로 깐깐하고 진지한 스타일의 다른 반장들과는 많이 달랐다. 아무래도 Y는 예민하고 외골수기 쉬운 건축가보다는 건설회사 CEO가 더 잘 어울릴 듯 싶었다.

어느 날 Y가 평소와 달리 수업시간 내내 딴 짓을 하고 있었다. 내 눈치를 살피면서 책상 서랍에 뭔가를 숨겨두고 슬쩍슬쩍 훔쳐보고 있었다. 쉬는 시간에 여자 친구가 쫑알거려도 코대답도 하지 않았다. 초조하고 심각한 표정이었다.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나는 Y가 방심한 틈에 그의 등 뒤로 가서 내려다보았다. 누런 갱지 가득, 손으로 쓴 한자가 빽빽했다. 옆에 앉은 여자 친구가 Y의 허리를 쿡 찌르자, 그제야 놀라 나를 쳐다보았다.

Y는 얼마 전에 공산당 입당 지원서를 냈고, 그동안 공산당 사상 교육을 받고 시험을 쳤단다. 갱지는 Y가 곧 상부에 제출할 보고서 초안이었다. Y는 정식 당원으로 뽑히려면 아직도 멀었다며 한숨을 지었다. 도대체 입당이 뭐길래, 웬만한 일에 눈 하나 꿈쩍 안 하던 녀석을 그렇게 쪼그라들게 했을까?

언제부턴가 '그 때가 있었던가' 싶게 살았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여름방학이면 단 하나의 대형 상영관만 있던 영화관은 만화영화 '똘이 장군'을 보러 오는 아이들로 미어터졌다. 공산주의자나 간첩은 죄다 흉측하게 생긴 늑대나 불여우였고, 간첩 잡는 똘이 장군은 똘망똘망하게 생긴 대한의 용사였다.

영화가 끝나면 아이들은 훈련된 애국심에 들떠 "똘이 장군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를 불러댔다. 중학생 때에는 학교에서 툭하면 미술, 글짓기, 웅변, 표어 대회가 열렸다. 장르는 달라도 주제는 한결같이 '반공'이었다.

그렇게 청소년기를 보냈던 우리는 대학생이 되자마자 '껍데기를 벗고서'를 읽고, 떨리는 마음으로 소위 '빨간책'에 손을 댔다. 그 '빨간책'들은 이제 인터넷 서점에서도 살 수 있는 사회과학 도서가 되었다.

소련이 붕괴된 후에는 프랑스 좌파 문화이론을 기웃거리며 또 다른 통로를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우리들 대부분은 헛헛한 마음을 간직한 채 밥벌이 전선으로 나갔다. 아주 가끔 옛 친구들이 모여 술잔이라도 기울이는 날이면, 어깨를 묵직하게 누르던 현실의 무게를 거부하지 못한 채 흘러가버린 시절을 씁쓸하게 돌이켜보곤 했다. 그 무언가에, 그 누군가에게 많이 미안해하면서.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그 때가 있었던가, 싶게 살았다.

중국인에게 공산당원은 어떤 의미일까

이미 당원인 학생은 입당 맹세와 당원의 사명을 되새기고, 새 당원은 훌륭한 당원이 될 것을 선서한다.
 이미 당원인 학생은 입당 맹세와 당원의 사명을 되새기고, 새 당원은 훌륭한 당원이 될 것을 선서한다.
ⓒ 칭다오 이공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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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당원인 학생은 입당 맹세와 당원의 사명을 되새기고, 새 당원은 훌륭한 당원이 될 것을 선서한다.
 이미 당원인 학생은 입당 맹세와 당원의 사명을 되새기고, 새 당원은 훌륭한 당원이 될 것을 선서한다.
ⓒ 칭다오 이공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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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를 Y의 누런 갱지가 떠올렸다. 이제 나는 중공이 아닌 중국에 있고, 나의 중국 학생은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된 중국에서 공산당원이 되려고 안달이었다. 왠지 한 발에는 하이힐을, 다른 한 발에는 고무신을 신고 절뚝거리는 느낌이었다.

내 눈 앞에서 갓 스무 살을 넘긴 싱싱한 중국 청춘들은 환한 대낮에 교실에서 밝고 가볍게 공산당을 이야기했다. 쾌쾌한 냄새가 나는 동아리방, 자욱한 담배 연기, 결의에 찬 목소리, 고뇌하는 청춘,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다른 반장들도 입당 절차를 밟거나 이미 당원이었다.

그동안 장난을 치며 허물없이 지냈던 교직원들도, 한국의 어느 서민과 다를 바 없이 자식 교육문제와 재테크에 열을 올리던 교수들도 당원이었다. 내 머릿속의 공산당원은 그렇게 소박하고 일상적인 이미지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공산당원은 어떤 의미일까?

알다시피 중국은 공산당이 독재하는 국가다. 정부기관이든 행정부서든 기업이든 학교든 공산당 조직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그 힘은 어느 조직에서나 막강하다. 대학교에서는 총장보다 대학교 당서기의 서열이 더 높다. 시(市)정부에서는 시장보다 시의 당서기가, 성(省)에서는 성장(省长)보다 성의 당서기가 더 높다. 관시(关系, 연줄, 인맥)사회인 중국에서 당과 인맥이 없으면 성공하기가 힘들다. 심지어 과거 타도의 대상이었던 자본가들도 입당을 한다. 노동자와 농민의 당인 중국 공산당에서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민중의 당이 엘리트주의 당으로 변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중반 문화대혁명이 저물 때까지 중국 공산당은 지주와 자산가, 우파 지식인을 반동분자, 반혁명분자로 몰아서 탄압과 숙청을 했다. 자본가에 대한 인식과 대우가 달라진 것은 덩샤오핑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때문이었다.

"부자 됩시다"를 외치던 덩샤오핑 시대에 자본가는 더 이상 반동이 아니라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부를 창출하는 능력을 가진 고학력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개혁개방이 낳은 새로운 계급이었고 장차 중국을 선도할 주력군이었다. 공산당은 적극적으로 그들을 끌어안아야할 필요성이 생겼다.

2001년, 덩샤오핑의 후계자 장쩌민은 '3개 대표'를 제안하고 3개 계급의 대표들이 공산당을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개 계급이란 전통적인 계급인 노동자와 농민, 선진문화를 대표하는 지식인, 선진 생산력을 대표하는 자본가를 말한다. 그렇게 공산당은 새롭게 뜨는 계급을 포섭할 수 있고, 자본가는 사업에 유리한 공산당 인맥이 생겼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가 된 셈이다.

그 결과 공산당원 수가 급증했고 계급 구성비는 역전되었다. 장쩌민의 '3개 대표' 이전에 6천 5백만 명도 안 되던 당원이 2010년 8천만 명으로 늘어났다. 1949년에 입당한 대졸자는 0.3 퍼센트에 불과했지만 2010년엔 전체 당원의 3분의 1이 넘었다. 민간 기업 대표의 3분의 1도 당원이었다.

반대로 당원 중 노동자와 농민의 비율은 40%로 떨어졌다. 이를 두고 프랑스 언론인 카롤린 퓌엘은 이렇게 꼬집는다. "민중을 위한 민중의 당"이 "엘리트주의 당"으로 변했다고(카롤린 퓌엘 지음, 이세진 옮김, <중국을 읽다 1980-2010>, 푸른숲, 2012, 326~327쪽).

당원 선발 과정 험난...'공산당원은 아무나 하나'

당원 활동실에 모여 <중국과 大國의 관계-중일편>을 보고 있는 학생들. 당원들 벽면에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의 사진이 걸려 있다.
 당원 활동실에 모여 <중국과 大國의 관계-중일편>을 보고 있는 학생들. 당원들 벽면에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의 사진이 걸려 있다.
ⓒ 칭다오 이공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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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대학이 없는 중국에서 대학교원은 공무원이나 다름없다. 변함없이 중국사회를 통치하는 집권당 입당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 명예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이익도 무시할 수 없다. 어쩌면 그것이 더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대학생들도 마찬가지다. 대학생이 당원이 되면 공무원이 되거나 국유기업에 취직할 때 유리하다고 한다. 설령 민간기업에 취직하더라도 회사 입장에서는 공산당과 인맥이 닿는 당원을 선호한다. 입당의 현실적인 의미는 취직과 출세에 유리한 기득권을 가리킨다.

그래서 아무나 당원이 될 수 없다. 대학생이라고 해서 누구나 입당 신청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원으로 선발되는 과정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대개 간부 학생들이 당지부에 입당신청서를 낸다. 그 다음엔 당소조의 추천과 당지부 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입당후보자로 뽑혀야 한다.

입당후보자가 되어 기본 교육을 받고 다시 평가에 통과하면 중국공산당 이론과 정치생활 규칙 등 심화된 내용을 집중적으로 배운다. 이 때 학생은 '입당소개인'이라고 해서 두 명의 정식당원으로부터 지속적인 당원 교육과 지도를 받는다. 그 후 예비당원으로 승인을 받아야 비로소 상부조직의 동의를 얻어 입당지원서를 제출할 수 있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예비당원으로 뽑혀도 1년 이상의 교육과 평가 기간을 마치고 최종적으로 합격해야 정식당원이 될 수가 있다.

이렇게 복잡한 절차와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당원으로 뽑혔다는 것은 그만큼 최고의 엘리트임을 공인받는 것이다. 개인의 영광이요, 집안의 자랑거리가 된다. 그러니 때로는 당사자인 학생보다 부모가 더 입당에 열을 올린다. 세상물정을 잘 아는 부모는 관시(关系) 사회에서 "권력이 돈을 만들고 돈이 권력을 만든다(权生钱, 钱生权)"의 실상을 세세하게 알고 있다. 사회가 규정한 성공 코스에 집착하는 학생이라면 권력, 돈, 관시(关系)의 교집합인 입당을 욕심낼 만하다.

공산당원이 된다는 것은 신념보다 실리의 문제

하지만 모든 대학생들이 입당의 해바라기는 아니었다. 개방적이고 개성적인 신세대답게 자신만의 삶을 추구하는 학생도 있었다. 설계실에서 조용히 작업하는 것을 즐기는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당원이 되면 단체 활동이 많아서 피곤해요."

해외 유명 건축가 작품집을 끼고 다니는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나중에 미국이나 유럽으로 가고 싶어요. 그러니까 입당은 의미가 없어요."

외국회사에 취직하려는 학생의 대답도 마찬가지였다. 입당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학생도 있었다.

"당원은 혜택보다 책임이 더 커야 해요. 그래야 부패와 비리가 없어지죠. 앞으로 정부는 부도덕한 간부와 당원을 강도 높게 처벌할 거예요."

어쨌든 21세기 중국에서 공산당원이 된다는 것은 신념보다 실리의 문제인 것 같았다. 국가가 인증한 엄청난 스펙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초창기 중국 공산주의자들이 오늘을 본다면 뭐라고 할까? 개혁개방 전 시퍼렇게 날이 선 이데올로기 앞에서, 낙엽보다 가볍게 목숨을 잃었던 사람들은 또 뭐라고 할까?


태그:#중국 칭다오 이공대, #학생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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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이 좋다. 길이 없지만, 내가 걸어가면 길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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