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각종 화제를 낳고 있는 TvN <꽃보다 청춘>

tvN <꽃보다 청춘> 페루편의 주인공인 윤상과 유희열, 이적(왼쪽부터) ⓒ CJ E&M


청춘. 수필가 민태원 선생은 <청춘 예찬>을 통해 말한다.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라고. 청춘의 피는 끓고, 그 피는 거선의 기관과 같은 힘을 가지고, 인류는 그것을 동력으로 삼아 역사를 꾸려왔다고. 하지만 막상 그 세대들이 청춘이란 말을 만끽한 적이 있을까? 오히려 뜨거운 피에 짓눌려 허덕이지 않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청춘이란 말은 그 시절을 지나쳐 회고하는 자에게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단어이기 십상이다.

이제는 청춘을 회고하는 게 더 어울릴 흰 수염이 희끗희끗하게 나는 나이의 윤상, 유희열, 이적이 tvN <꽃보다 청춘>의 주인공이라고 했을 때, 고개가 갸웃해졌다. 그들이 한때 '청춘의 상징'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마흔을 훌쩍 넘긴 그들이 '꽃보다 청춘'이라고?

하지만 <꽃보다 청춘>을 보고 난 지금은 기꺼이 그들에게 '청춘'이란 이름을 부여하고 싶다. 그들은 여전히 청춘이다. 여전히 꿈을 꾸고, 젊어 꾸었던 꿈을 되찾고, 다시 꿈꾸기를 마다치 않으니까.

 지난 29일 방영한 tvN <꽃보다 청춘-페루편> 한 장면

지난 29일 방영한 tvN <꽃보다 청춘-페루편> 한 장면 ⓒ CJ E&M


처음 마추픽추로 여행을 떠난다 할 때, 유희열은 말한다. 한때 자신의 꿈이 세계 7대 불가사의를 다 보는 것이었다고. 그리고 말을 잇는다. 그게 자신의 꿈이었다는 것조차 잊고 살아왔다고. 그리고 김치찌개를 먹다 얼떨결에 페루에 가면서 꿈을 상기하게 되었다고.

마추픽추를 꿈꿨던 젊은 시절을 상기한 것만이 아니다. 유희열은 여행을 떠나기 전, 이제는 예전만 못하다는 걸 슬금슬금 실감하면서 자신감이 조금씩 떨어져 갔는데 오랜 벗과 힘들게 마친 여정을 지렛대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했다.

그 경험은 무엇이었을까? 안개에 휩싸였던 마추픽추가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자 유희열은 눈물을 흘렸다. 그를 울게 한 건 바로 시간이었다. 처음 윤상과 이적을 만나던 시간으로부터 이제는 음악보다는 중년의 가장인 자신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더 익숙해진 지금까지의 시간이 안타까워서 흘리는 눈물이었다.

하지만 유희열의 눈물은 그저 가는 시간이 아쉬워서 흘리는 회한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 시간이 아까웠다는 것은 곧 그 시간이 그만큼 소중했다는 의미다. 나이 들어가는 자는 누구라도 가는 세월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그 실체를 가늠하지 못하는 반면, 마추픽추 정상에 오른 유희열은 벗들과 함께 살아왔던 시간의 소중함을 만끽하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렇기에 유희열은 여전히 '청춘'이다. 그와 벗들의 청춘은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이 느껴지는 청춘과는 온도 차가 있지만, 여전히 삶의 긍정성을 믿고 벗들과 다시 한 번 살아보리라는 의지를 가진 한 크게 다르지 않다. 술을 끊고, 이제는 약도 끊어보겠다 말하는 윤상의 다짐도 다르지 않다.

 지난 29일 방영한 tvN <꽃보다 청춘-페루편> 한 장면

지난 29일 방영한 tvN <꽃보다 청춘-페루편> 한 장면 ⓒ CJ E&M


그러고 보면 <꽃보다 청춘> 제작진은 100세 시대에 딱 반에 못 미치는 중년을 '청년'이라 규정하며 우리 시대의 새로운 '청춘'을 정의했다. 할배들의 여행은 애틋했고, 누나들의 여행이 숨겨진 비경 같았다면, <꽃보다 청춘> 속 20년 지기의 우정은 정겨웠다.

1990년대의 대명사였던 이들, 윤종신이 표현하듯 여전히 우리 문화의 '섬'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한 그들은 <꽃보다 청춘>을 통해 마치 나이 들어가는 자신을 보듯 친근하게 다가왔다. '감성 변태'라던 유희열의 진심 어린 카리스마가 돋보였으며, 학력과 아름다운 노래를 넘어선 이적의 넉넉함도 빛이 났다.

그렇다면 여행 내내 '민폐'였던 윤상은 어땠을까? 윤상이 함께 하지 않았다면 이적과 유희열이 그만큼 빛났을까? 한때 하늘 같은 선배였던 그가 후배들과 나이 들어 가며, 나이를 들먹이는 '꼰대'가 되지 않고, 그들 앞에 어려움을 토로할 줄 알고, 기꺼이 도움을 받을 줄 알고, 여행을 통해 새롭게 시작할 힘을 얻는 모습이 <꽃보다 청춘>의 백미가 아닐까 싶다.

우리 사회에서 윤상 또래의 남자들은 삶이 뜻대로 되지 않아 저녁마다 술잔을 기울이고, 자신의 약함을 큰소리로 숨긴다. 하지만 <꽃보다 청춘> 속 윤상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나약함을 동생들에게 그대로 드러냈고, 도움을 받았다. 그는 동생들과의 여행을 통해 낼모레 오십인 나이에도 다시 시작할 힘을 얻었다.

 지난 29일 방영한 tvN <꽃보다 청춘-페루편> 한 장면

지난 29일 방영한 tvN <꽃보다 청춘-페루편> 한 장면 ⓒ CJ E&M


<꽃보다 청춘>이 남긴 치유는 리더 유희열이나 능력 있는 참모 이적이 아니라 민폐였던 윤상을 통해 얻어진다. 무기력했던 그가 동생들과 여행을 하고자 어렵게 용기를 내고,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술을 끊고, 술 대신 의존했던 약조차 끊으려는 모습은 자신의 나약함을 남자라는 이름에 숨긴 채 고통받는 우리 사회 남자들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를 줬다. 아직 '청춘'이니 어렵더라도 다시 시작해 보자고.

이제는 좋은 아빠로 다시 시작해 보겠다는 윤상도, 함께 해왔던 시간이 아름다워서 마냥 아쉬운 유희열도, 덤덤한 듯하면서도 끝내 눈물을 숨길 수 없었던 이적도 '청춘'이다. 인류의 역사를 바꿀 청춘의 이상은 사실 그리 거창하지 않다. 어디서든 꿈꾸기는 자, 모두 청춘이다. 그리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은 그들을 보며 따뜻한 용기를 얻는다면, 그 역시 '청춘'의 전염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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