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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 표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 표지
ⓒ 도서출판 까치수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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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은 '흘러가는 시간의 그렇고 그런 날들 중 하루'를 뜻하지만 노들에서 말하는 일상은 그 의미가 전혀 달랐다. 중증장애인에게 일상이란 가져본 적 없는 어떤 하루들, 그들의 빼앗긴 인생이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외출을 하고 학교를 다니고 친구를 사귀는 일이 그저 평범한 일상이지만 어떤 이들에게 그것은 제 몸을 던져 싸워야 겨우 얻을까 말까 한 결코 일상적이지 않은 일들이었다. 노들의 가장 중요한 투쟁은 바로 이 일상을 지키는 일이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 중

2013년, 노들장애인야학(아래 노들)은 스무 해를 맞았다. 노들에선 주로 집에만 있거나 시설에 있으면서 의무교육을 받아야 할 학령기에 교육을 받지 못했던 장애인들이 교육을 받는다. 노들에서 이들은 1+1 같은 기본적인 지식에서부터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배운다. 그렇지만 노들은 공부에만 주안점을 두는 곳이 아니다. 장애인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투쟁에 나서기도 한다. 그래서 '노들야학이 어떤 곳이냐' 물으면 노들에서 교사로 함께한 홍은전씨는 '모호함'이 담긴 곳이라 답한다.

지난 5월 노들의 스무 해 기록을 담은 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가 홍은전 교사에 의해 세상에 나왔다. 홍 교사는 23살 대학 4학년 때 노들을 처음 만나 13년 이상 함께 해왔다. 이 책에서 장애인은 상황에 순응하거나 머물러있지 않는다. 차별과 굴종을 몸소 겪었지만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은 처음부터 이뤄진 것이 아닌 자립과 권리를 강조하는 20년 노들 교육의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현재도 풀리지 않은 숙제와 맞닿아 있다.

장애인 이동권의 핵심으로 떠오른 '저상버스'

"1999년 4호선 혜화역. 학생 이규식은 대학로에서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리프트 위의 공간이 좁아서 조심스럽게 스쿠터를 조작하고자 노력했다. '아차' 하는 순간 앞바퀴가 더 나가버렸다. 그는 스쿠터와 함께 계단으로 곤두박질쳤다. 바퀴의 진행을 막아줄 안전판이 제 구실을 전혀 못한 것이다." (57쪽)

당시 이규식씨는 다행히도 전치 3주의 부상을 입고 목숨을 건졌지만, 리프트 추락 사고는 이후 2002년 발산역, 2003년 송내역에서 연이어 발생하면서 장애인이 목숨을 잃는 결과를 낳았다. 이 무렵 마음 편히 이동할 권리, 이동권 투쟁의 서막이 열리던 때 노들이 있었다. 노들은 지하철공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재판에서 사고의 책임을 물었다. 이후 지하철의 엘리베이터 설치가 보편화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남아있다. 노들이 여태 풀지 못한 '버스' 문제가 그것이다. 2004년 도입되기 시작한 저상버스는 현재 그 비율이 전체 시내버스 중 16.4%에 불과하다. 한국장애포럼(KDF)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제1차 계획(2007~2011)에서 2011년까지 전체 시내버스 중 저상버스의 비율을 31.5%로 높이겠다고 했으나 결국엔 이행하지 못했다. 이에 노들은 저상버스 비율 100%를 목표로 두고 있다.

노들을 이끌고 있는 박경석 교장은 "장애인이 자신의 권리에 대해 보장을 받을 수 있도록 알려주는 것도 교육적 목표"라며 "이런 점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노들을 이끌고 있는 박경석 교장은 "장애인이 자신의 권리에 대해 보장을 받을 수 있도록 알려주는 것도 교육적 목표"라며 "이런 점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 고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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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오전 노들야학 사무실에서 만난 노들 박경석 교장은 이동권 문제의 핵심에 '저상버스'가 있다고 했다. 잠시 박 교장은 누굴까. 노들 교사로 일하면서 성남장애인복지관에서 총무과장으로 재직하던 박 교장은 1997년 직장을 그만두고 노들과 장애인운동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야학 상근자에겐 최저 임금 정도를 주는 형편이지만, 당시엔 마땅히 받을 돈도 없을 때였다. 돈과 운동 중 후자를 택한 것이다. 이후 그는 공석이었던 교장을 맡게 된다.

박 교장은 "시내버스 사용연수는 최대 12년으로, 폐차되는 일반버스를 저상버스로 도입하자는 것"이라며 "예산 문제가 가장 걸림돌인데, 일반버스가 8천만 원이라면 저상버스는 그에 1억 원을 더해야 한다, 또 자치단체가 예산 부담을 지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시내버스는 '양반'에 속한다. 고속버스나 시외버스, 마을버스의 경우 저상버스를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 따기'이기 때문이다. 노들이 버스터미널 시위도 마다하지 않는 것은 장애인이 고속버스를 탈 수 없는 현실을 대변하기 위함이다.

"의학적 기준뿐 아니라 사회적 환경도 고려해야"

"장애인 등급은 허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밥을 눈으로 쳐다보기만 해야 하는 사람이요. 그러면 1급이에요. 그리고 다~ 흘리지만 자기 손으로 떠먹을 수 있는 사람은 2급. 그것보다 쪼~끔 덜 흘리면서 먹는 사람은 3급, 이런 식이에요. (중략) 그런데!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밥도 안 흘리면서 먹고, 볼일 보고 나면 뒤처리도 깨끗하게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3급도 1급처럼 활동보조인이 똑같이 필요한 거예요. 그런데 3급 받으면 서비스를 받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1급이 되어야 해요! 우린 모두 1급이 되어야 해요!" (179쪽)

장애 판정 단계에서 2, 3등급으로 떨어지면 바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으니 어떤 방식으로든 장애가 심하다고 보일 수밖에 없는 현실과 답답한 심정을 드러낸 말이다.

'장애인 등급제'는 노들의 또 다른 과제다. 현재 장애인 등급제는 의학적 판단에 따라 급수를 나누고, 그에 따라 서비스 제공이 나뉜다. 예컨대 1급과 2급 장애인에게만 활동 보조 서비스(활동 보조인이 장애인 옆에서 자립 생활을 돕는 것)가 제공된다. 문제는 등급제가 장애인 입장보다는 행정 편의주의 성격이 강하다는 데 있다. 시각장애인 1급과 지체장애인 1급의 욕구가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같은 1급 울타리에 묶여버린다는 것이다.

박경석 교장은 "지체, 시각장애인 1급은 같은 의학적 평등성을 가지지 않는다"라며 "느끼는 불편함이 다른데 서비스는 급수에 맞춰 동일하게 제공된다"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6급 장애인이더라도 시설에만 있다가 1+1을 모르는 경우도 있고, 1급 장애인이지만 대학을 나와 지적 수준이 오히려 높은 경우도 있다"며 "등급 평가는 의학적 기준뿐"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장애등급 3급을 받아 보조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한 장애인이 혼자 잠자다 불을 피하지 못하고 변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다. 노들의 등급제 철폐 주장에는 의학적 기준의 판단 비중을 줄이고, 장애인이 혼자 사는지 여부 등 사회적 환경도 고려해서 개인별 맞는 서비스를 제공해주어야 한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시설은 '감옥'... "장애인을 지역사회로 이끌어야"

노들 교실 벽면에 붙은 사진과 글귀다. "못 배운 게 한 이라고", "내가 가장 간절히 원했던 것은 바로 배우는 것이었습니다"라는 글귀는 배움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노들 교실 벽면에 붙은 사진과 글귀다. "못 배운 게 한 이라고", "내가 가장 간절히 원했던 것은 바로 배우는 것이었습니다"라는 글귀는 배움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 고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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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때 석암(김포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 갔어요. 아동 병원에선 나이가 많으면 나가야 하는데 어느 날 석암 원장이 찾아와, '너 이리와! 너 이리와!' 그러면서 데려갈 애들을 찍었어요. 저도 그렇게 석암에 왔어요. 아침에 눈 떠서 밥 먹고 똥싸고 텔레비전 보고 그러다 자고. 조금만 잘못을 해도 심한 구박을 받았어요. 미안하다고 빌어도 소용이 없었어요. 나는 고아니까. 내 뒤에는 아무도 없으니까." (150쪽)

석암요양원을 운영한 석암재단 관계자는 이후 사법처리가 됐지만, 장애인이 요양원에 머무르면서 받았을 상처와 고통은 컸다. 노들에선 이들 시설을 '감옥'이라 부른다. 성심껏 돌봐준 시설도 포함된다. 한 번 시설에 들어가면 먹고, 싸고, 자는 일만 죽는 순간까지 반복된다는 이유다. 장애인이란 이유만으로 사람을 수용해서 살게 하는 것이 과연 합당하냐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박경석 교장은 "한 방에 4~5명씩 평생 살 수 있냐"고 반문했다. 그런 설계로 만들어진 시설은 반인권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노들은 최근 교황의 '꽃동네' 방문을 반대했다. '꽃동네'는 지적, 중증장애인이 거주하는 국내에서 최대 시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반대 이외에 노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은 무엇일까. 장애인이 시설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거듭나도록 하는 것이다. 박경석 교장은 "민간이 시설을 자산화해서 장애인을 돈벌이 대상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라며 "지역사회에서 당당히 살아나갈 수 있도록 탈시설화하는데 정부가 힘을 보태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을 부양하는 가족이 부담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의미였다.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는 연대순으로 1교시, 2교시, 3교시, 4교시로 나뉘어 이야기가 진행된다. 1교시, 2교시가 지나면서 장애인의 권익이 점차 진보하는 모습을 보이고, 변두리에 있던 노들은 대학로 중심가에 자리 잡는다.

책을 통해 본 20년의 흐름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아직 넘어야 할 봉우리가 있으나 농부처럼 땀 흘려 일하고,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함께 나누자는 노란들판. '노들'의 흐름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현재 노들에선 60명의 장애인 학생들과 보조교사 30명이 활동 중이다.


태그:#노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 #장애인, #박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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