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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침몰사고 단원고 희생자 고 김유민양의 동생이 22일 오후 특별법제정 촉구 단식 40일째 건강 악화로 병원에 후송 된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의 병실을 찾아 누워 있는 김씨의 손을 잡아 주고 있다.
▲ 쓰러진 아빠 걱정에 달려 온 유민이 동생 유나 세월호침몰사고 단원고 희생자 고 김유민양의 동생이 22일 오후 특별법제정 촉구 단식 40일째 건강 악화로 병원에 후송 된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의 병실을 찾아 누워 있는 김씨의 손을 잡아 주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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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4월 28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특사가 당시 59일째 단식을 벌이고 있던 한 인물을 만났다. 교황의 특사는 그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설명하며 한 시간에 걸쳐서 단식 중단을 설득했다. 면담이 진행된 교도소 밖에서는 그의 삶을 간절히 기원하는 수천 명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러나 교황의 특사는 단식 중단을 설득하지 못했다. 드라마틱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66일간 단식, 끝내 숨을 거둔 바비 샌즈

그로부터 일 주일이 지난 5월 5일 바비 샌즈(Bobby Sands, 1954~1981)는 결국 단식으로 숨을 거둔다. 그는 18세에 아일랜드공화국군(IRA)에 가입했다. 이듬해 권총소지 혐의로 3년을 복역했고, 출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테러 혐의로 14년형을 선고 받고 메이즈 교도소에 수감됐다.

옥중에서 샌즈는 자작시를 발표하며 저항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가 쓴 한 줄의 시는 영국에 대한 아일랜드인의 저항정신을 고취 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메이즈 교도소에는 IRA 수감자들이 많았다. 샌즈는 교도소 내 아일랜드인에 대한 인권유린에 항의하며 자신들을 테러범이 아닌 '정치범'으로 대우해 달라는 요구조건을 내걸고 3월 1일부터 단식에 돌입한다.

바비 샌즈의 생애를 다룬 스티브 맥퀸 감독의 영화 <헝거>
 바비 샌즈의 생애를 다룬 스티브 맥퀸 감독의 영화 <헝거>

하지만 당시 대처 정부는 샌즈의 단식에 일관된 입장을 고수했다. 애킨스 북아일랜드 장관은 "샌즈의 요구사항을 수용할 수 없다"며 "만일 샌즈가 자살하겠다는 의지를 계속 고수하는 한, 그것은 그의 선택일 뿐"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대처 정부는 만일 이들을 정치범으로 인정한다면 그것은 IRA 역시 테러단체가 아닌 정치단체로 인정하게 되는 상황을 두려워했다.

단식이 진행되자 샌즈에 대한, 아일랜드에 대한 국내외 관심이 고조됐다. 교황이 특사를 보내 단식 중단을 설득했고, 유엔인권위원회에서도 면회를 했다. 샌즈가 단식투쟁을 벌이던 중 치러진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더욱 그의 투쟁은 주목받았다.

치열하게 전개된 샌즈의 투쟁이 66일을 맞이하던 5월 5일 새벽 그는 사랑하는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둔다. 샌즈가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그의 가족들은 의사의 도움을 거절했다. 샌즈뿐만 아니라 가족 역시 그의 죽음을 '정치적 순교'로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샌즈는 자신이 어린 나이에 IRA에 가입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너무나 많은 집들이 부서지고, 아버지와 아들이 체포되고, 이웃들이 상처입고, 친구들이 살해됐다. 너무나 많은 최루탄, 총소리 그리고 피."

"한 마리의 종달새를 가둘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종달새의 노래까지 가둘 수는 없다."

샌즈가 옥중에서 발표한 한 줄의 자작시이다. 대처는 그의 몸을 가뒀지만 영혼과 목소리는 끝내 가두지 못했다.

41일째 단식, '유민 아빠' 김영오씨를 사지로 몰아넣는 사람은 누구

23년 전, 바비 샌즈의 극한 단식투쟁을 되돌아본 까닭은 '유민 아빠' 김영오씨의 단식이 23일로 41일째를 맞았기 때문이다. 그는 40일째인 지난 22일 몸에 이상증세가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병원에서도 단식을 계속하고 있다.

김영오씨의 큰 딸 유민양이 세월호 참사 열흘째인 4월 25일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딸을 가슴에 묻은 그는 5월 7일 직장인 충남 아산의 자동차 부품 제조공장으로 복귀해 20일 남짓 일하다 "딸이 죽은 이유를 알아야겠다"며 휴직계를 내고 서울로 올라왔다.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다가 지난 해 7월 정규직 전환통보를 받은 그에게 선택은 쉽지 않았다.

단식은 지난 7월 14일부터 시작됐다. 처음에는 다른 희생자 가족 14명과 함께 시작했지만 여러 이유로 다른 유가족들이 단식을 접었다. 8월 5일부터는 그 혼자 외로운 단식을 이어나갔다. 그는 회사의 여름 작업복을 입고 단식에 나섰다. 그 역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염원이 가슴 속에 있었던 것이다.

김영오씨가 단식투쟁을 하는 이유는 '유민이가 왜 죽었는지' 알게 해 달라는 것이다. 유민이의 대학 등록금 때문에 열심히 일했다던 그는 딸의 죽음은 쉽게 믿을 수 없었고, 살아서 구조요청을 했던 아이들이 대부분 죽어 돌아오게 된 상황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실체적 진실을 파악할 수 있는 '특별법'을 요구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약속한 "유족이 원하는 특검과 진상조사"

지난 5월 16일 세월호 유가족들과 면담에서 박 대통령이 '유족들 원하는 특검, 국조해야'한다고 약속했다. <조선일보> 5월 17일자 1면
▲ 모든 것은 유족 뜻 대로... 지난 5월 16일 세월호 유가족들과 면담에서 박 대통령이 '유족들 원하는 특검, 국조해야'한다고 약속했다. <조선일보> 5월 17일자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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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적 진실을 먼저 약속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 5월 16일 유가족들과 만난 자리에서 "진상규명에 있어 유가족들의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 "유가족들을 언제든 다시 만나겠다"고 말했다. 이날 만남을 보도한 언론에서는 "유족들 원하는 특검,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을 주요 내용으로 보도했다.

이어서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관련 및 새로운 국가운영 방안에 대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한다. 눈물을 흘리며 몇몇 희생자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한 박 대통령은 "여야와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포함한 특별법을 만들 것도 제안합니다"라고 말했다. 유족 앞에서뿐 아니라 국민들 앞에서 실체적 진실을 약속한 것이다.

지난 5월 박 대통령은 16일과 19일 각각 '진상규명'과 '특검'을 약속했다. 그것도 '유족들이 원하는'이라는 조건도 스스로 달아서 약속했다. 6월 지방선거 전까지만 해도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여당 역시 세월호 진상규명을 원하는 듯보였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고 이들의 관심도 사라졌다.

<조선> '유족이 상원인가?' 공격...믿을 수 없게 된 유족들 상황

국회에서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을 협의했다. 그러나 유족들이 요구한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 부여'는 사법체계와 맞지 않는다면서 거부했다. 그러나 대한변협은 특별법에 조사위원회에 수사권 명시가 필요하다고 여야에 호소했고, 사법체계 때문에 수용이 어렵다면 대안으로 특검 추천권이라도 유족들 의사를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세월호 특별법 여야 합의안을 유족들은 수용하지 않았다. 재협의안 역시 유족들은 거부했다. 이때부터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은 세월호 유족들을 일반 국민의 한 부류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조선일보>도 '유족이 상원인가?'라며 힐난하기에 이르렀다.

언론에서 유족들은 '요구하는 집단'으로 묘사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상황이 급변하자 유족들은 22일 다시 청와대로 향했다. 박 대통령을 만나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유족들의 요청을 거부했고 지난 5월에 이어서 다시 유족들은 청와대 인근에서 '노숙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7·30 재보선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거둔 박근혜의 복심 이정현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으로 바빠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을 자주 뵙지 못할 뿐 이 문제에 대해 소홀함이 없다"라고 호위무사를 자처했다. 새누리당 김재원 원내부대표는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는 주장은 3권 분립에 어긋나는 초헌법적 주장"이라고 엄호사격에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2일 오후 부산 중구 자갈치시장을 찾아 한 상회에서 건어물을 살펴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2일 오후 부산 중구 자갈치시장을 찾아 한 상회에서 건어물을 살펴보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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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이 '만나달라'며 청와대로 향한 어제(22일) 박 대통령은 부산으로 향했다. 자갈치 시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을 시식했다. 박 대통령은 어묵회와 다시마전병 등을 시식했는데 이 자리에서 "어묵회는 비린내가 없고 다시마전병은 맛이 좋다"고 말했다.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단식 40일을 맞아 병원으로 실려갔고, 유족들이 다시 노숙투쟁에 나선 날 대통령의 말은 그러했다.


태그:#보비 샌즈, #김영오, #박근혜 ,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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