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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때면 언론에서는 '차례상 차리는 법'을 소개합니다. 제각각 차이가 있겠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넓은 상 위에 20여 가지가 넘는 음식이 올라 있는 푸짐한 상차림이라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전통 의례 전문가들은 '상다리 휘어지게 차리는' 이런 차례상이 우리 전통에 맞지 않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명절 차례상의 비밀을 캐봅니다.

이 기사는 지난해 추석에 <오마이뉴스>에 실렸습니다. 과거 기사를 다시 올리는 이유는 아직도 오해에서 비롯한 허례허식이 차례상에 많이 스며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차례상을 '전통에 맞게 차리'는 그날까지 <오마이뉴스>는 꾸준히 관심 두겠습니다. <편집자 말>

  파평윤씨 노종파 문중인 명재 윤증고택에서 치르는 차례상. 상 크기가 작고 차림이 검소하다.
 파평윤씨 노종파 문중인 명재 윤증고택에서 치르는 차례상. 상 크기가 작고 차림이 검소하다.
ⓒ 논산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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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상은 제사상과 달라요. 그런데 언론들이 하도 부추기는 바람에 요즘은 차례상이 기제(고인의 기일에 지내는 제사)상처럼 되어가고 있지." - 파평윤씨 노종파 윤완식(58)씨

제철 과일 셋과 나물. 밥과 맑은 국, 어포와 육포. 조선시대 가장 많은 왕비를 배출한 파평윤씨 노종파의 차례상이다. 가로 99cm, 세로는 68cm다. 사실 뭘 더 놓기도 어려울 정도로 상이 작다. 

손꼽히는 유학 명문가의 종손이 차리는 차례상이 이런 모양을 갖추게 된 데는 조상의 당부가 크게 작용했다. 조선 중기 문인인 명재 윤증은 후손들에게 '제상에 손이 많이 가는 화려한 유과나 기름이 들어가는 전을 올리지 마라', '훗날 못사는 후손이 나오면 제사도 경제적으로 부담이 될테니 간단히 하라'는 당부를 남겼다.

추석을 앞두고 각종 매체에 차례상 차림에 대한 여러가지 '훈수'들이 쏟아지고 있다. 넓은 상 위에 20여 개의 음식이 올라 있는 푸짐한 그림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전통 의례 전문가들은 이런 상차림이 '과하다'고 입을 모은다. 각자 형편에 맞게 계절음식을 올리면 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차례는 가벼운 예절... 과일은 바나나 올려도 상관없어"

 <사례편람>에 수록된 시제진찬도와 <사례집요>에 수록된 우제이후진설도. 둘 모두 제사상의 구성과 배열을 기록한 것이다. 앞줄 과일(果)들은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이 없다. 우제이후진설도에서는 계절과일(時果)을 놓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자료는 삶과 먹을거리 협동조합 '끼니' 조합원 고영씨에게 도움을 받았다.
 <사례편람>에 수록된 시제진찬도와 <사례집요>에 수록된 우제이후진설도. 둘 모두 제사상의 구성과 배열을 기록한 것이다. 앞줄 과일(果)들은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이 없다. 우제이후진설도에서는 계절과일(時果)을 놓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자료는 삶과 먹을거리 협동조합 '끼니' 조합원 고영씨에게 도움을 받았다.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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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차례를 조상에게 달과 계절, 해가 바뀌고 찾아왔음을 알리고 계절 음식을 바치는 의례로 설명하고 있다. 제사가 죽은 조상을 추모하는 의식이라면 차례는 명절을 맞이했음을 조상에게 알리는 간략한 의식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제사는 의례 중 술을 세차례 올리는 반면 차례는 술을 한 차례만 올린다. 황위욱 성균관 전례연구위원회 상임위원은 "차례는 말 그대로 조상님에게 차를 올리는 가벼운 예절을 말하는 것"이라면서 "우리는 차 문화가 늦은 만큼 중국의 <주자가례>를 기본으로 실정에 맞게 음식으로 변용해 올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2세기 남송에서 편찬된 <주자가례>는 조선 유교 예법의 뼈대가 된 책이다. 이를 바탕으로 17세기 학자 이재가 조선 예법을 담은 <사례편람>을 편찬했다. 이 두 책을 보면 한국 차례상의 본래 모습이 어땠는지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주자가례>를 보면 차례상 앞줄에는 6개의 과일(果)이 놓인다. 감, 사과, 밤 등 어떤 과일을 놓아야 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적시되지 않았다. <사례편람> 역시 마찬가지. 이 책에서는 과일 개수가 4개로 더 줄어든다. 꼭 올라야 하는 과일이나 진열 순서 등은 나와있지 않다. 조선의 대학자인 율곡 이이는 저서 <격몽요결>에서 차례에는 계절 음식을 올리지만 별다른 게 없으면 떡과 과실 두어 가지면 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율곡이이가 지은 유학자 초급 교과서인 <격몽요결>에 나오는 제사상 차림. 과일은 3색과일 정도 갖추면 좋다는 구절이 보인다.
 율곡이이가 지은 유학자 초급 교과서인 <격몽요결>에 나오는 제사상 차림. 과일은 3색과일 정도 갖추면 좋다는 구절이 보인다.
ⓒ 고려대학교 해외한국학자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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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융통성은 예법이 가장 엄격한 편인 왕실 차례상에서도 확인된다. 이욱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은 "왕실 차례상에 올라가는 과일은 경우에 따라 5~6종 정도이고 '홍동백서(붉은 것은 동쪽, 흰색은 서쪽에 놓는다)' 같은 원칙은 없다"고 설명했다.

계절에 맞는 과일을 올리는 게 왕실 차례상의 원칙이지만 대체해서 올릴 수 있는 과일 종류가 많기 때문에 상에 올라가는 과일은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라는 것이다. 이 연구원은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말하자면 바나나를 차례상에 올려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덧붙였다.

바나나는 아니었지만 귤은 실제로 조선시대 제사상에 오르기도 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서유구가 지은 <임원경제지>에는 귤이 '남방의 귀한 과일로 맛이 먹을 만하고 껍질과 씨는 병을 치료한다. 근래에는 손님상과 제사상에도 오른다'고 소개되어 있다.

연암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을 보면 허생이 잔치와 제사에 쓰이는 과일 8종을 독점해서 큰 이문을 남기는 장면이 나온다. 그가 독점한 과일은 대추·밤·감·배·밀감·석류·귤·유자 등이다. 이 역시 오늘날의 상차림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구성이다.

1980년대 이후 언론에서 상차림 '훈수'... "과소비만 부추긴다"

 언론들의 추석 차례상 사진 변천사. 첫번째는 1970년 <매일경제>, 두번째는 1979년 <매일경제>, 세번째는 <경향신문>이 제공한 일러스트이다.
 언론들의 추석 차례상 사진 변천사. 첫번째는 1970년 <매일경제>, 두번째는 1979년 <매일경제>, 세번째는 <경향신문>이 제공한 일러스트이다.
ⓒ 매일경제,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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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배가 꼭 올라가는 최근의 획일적인 상차림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파평윤씨 노종파인 명재 윤증의 13대 종손인 윤완식씨는 "30년 정도 전부터 언론에서 추석 상차림 안내를 거하게 설정해 보도하면서 이런 세태가 생긴 것 같다"고 지적했다. 매체들이 추석 차례상 예시를 신문에 실으면서 원래는 반드시 상에 오르지 않아도 되는 과일이나 음식들이 당연히 올라가는 것처럼 인식됐다는 것이다.

1970년 추석을 앞두고 <매일경제>가 보도한 '낭비없는 추석맞이' 기사에는 "올해의 추석상은 많은 돈을 들여 가지 수만 채우는 것보다는 2, 3가지라도 맛있는 것을 골라 올리도록 안목을 전환하는 것이 좋겠다"는 내용과 함께 '영양많고 간편한 추석상'이라는 사진이 첨부돼 있다.

상 구성은 단출하다. 쟁반 몇 개에 송편, 오색전, 닭찜, 싸리버섯볶음, 무·도라지나물과 약간의 과일 등이 들어있다. 1979년 추석 즈음 나온 '추석 상차림' 기사에는 그보다 조금 더 풍성한 제사상 사진이 올라있다. "추석 상차림은 낭비하지 않고 전통음식에 몇 가지 별식을 마련하면 좋다"는 설명과 함께다.

1980년대 이후에는 분위기가 조금씩 바뀐다. <경향신문>이 1990년 보도한 '추석상 차리기' 기사에는 "햇과일, 햇곡식으로 풍성하게"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차례를 모시는 가정은 적, 전, 햇김치, 햇과일, 포, 약과, 유과를 준비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림을 이용한 언론의 본격적인 '차례상 훈수'가 시작된 것은 1990년대 이후다. <경향신문>의 1999년 기사인 '정성담긴 차례상 '조상님도 흐뭇''을 보면 상에 올려야 할 과일로는 밤·배·곶감·약과·강정·사과·대추 등이 지목되어 있다. 또한 '홍동백서', '좌포우혜(왼쪽에 포, 오른쪽에 식혜를 놓는다는 뜻)' 등 기본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설명한다.

삶과 먹을거리 협동조합 '끼니' 조합원인 고영씨는 언론들이 전통과는 거리가 먼 과소비만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1980년대 이후 신문·잡지 등에서 홍동백서, 조율이시(대추·밤·배·감 순으로 과일을 놓는 것) 등 차례상의 표준형을 만들고 있지만 그건 특정 집안의 풍습일 뿐 전국민이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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