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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국 인사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4박 5일 방한일정을 마친 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직전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4박 5일 방한일정을 마친 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직전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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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호, 열광, 화제의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바티칸으로 돌아가셨다. 위로와 희망, 정의와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행동으로 보여주고 가셨다. 14일부터 4박 5일 동안 보여주신 행보는 과거 어떤 지도자에게서도 보지 못한 파격이었다. 가난한 이들을 편들며 정의와 평화와 사랑의 삶을 살다간 예수님의 말과 행동을 생생하게 보여주셨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시골 성당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하늘까지 안고 갈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했다. 전북 진안의 산골 공소(전주교구 진안성당 부귀공소) 신부로 농사를 짓고 사는 나에게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특별한 은총을 선물했다.

"지금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중립은 없다."

'(노란리본을 다는 등의)세월호 추모 행동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교황님은 그렇게 대답하셨다. 농부는 자신의 고통을 뿌려 생명을 가꾸는 사람들이다. 땀과 노동, 자신의 생명을 바쳐 농사를 짓지만 돌아오는 것은 가난한 삶뿐이다. 벼랑 끝에 몰린 사람만큼 고통받는 사람들은 없다.

지금 농민은 벼랑 끝에 몰려 있다. 한중FTA와 쌀 전면개방이 그렇다. 그런 농민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두 볼로 뜨거운 이슬이 흘러내린다.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이 눈물이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닮은, 예수님의 연민과 가난한 이들을 향한 연대의 눈물이길 간절히 희망할 뿐이다.

농민의 80% 이상이 최저임금 만큼도 벌지 못한다. 그런 농민이 대부분인 공소 신자들. 그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교황님의 방한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노동자의 노동을 소외시키는 경제질서에 맞서서 바꿔야 한다고 역설하셨다. 한국사회에서 농민의 노동은 가장 소외받는 노동이다. 1년 농사를 트랙터로 갈아엎는 것이 해마다 반복되지 않는가.

시골마을 신도들과 만든 '교황 사칭' 동영상, 교황님도 보셨다니

 시골 성당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춤추는 교황님(?) (동영상 갈무리)
 시골 성당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춤추는 교황님(?) (동영상 갈무리)
ⓒ 최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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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들에 대한 연대를 넘어 그들을 편드는,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 자체이신 교황님 방한의 기쁨을 어떻게든 공소 어르신들과 나누고 싶었다. 노래가사를 준비했고 가수 '인디언수니'가 곡을 붙였다. '소울'이 느껴지고 어깨가 들썩거리는 노래다. 하지만 공소신자들에게 조금은 어려운 노래였다. 그러나 교황님을 향한 희망과 사랑은 그 어떤 합창단의 열창보다 훌륭했다. 3일 연습하고 찍은 동영상 치고는 정말 괜찮았다(관련기사 : '교황 사칭' 동영상, 교황이 보시고는...).

하늘은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았다. 우리 공소 신자들과 함께 만든 동영상을 교황님이 보신 것이다. 우리가 교황님의 말과 행동에 감동한 만큼 교황 사칭(?) 동영상을 보신 교황님도 우리만큼 감동하셨다. 4박 5일 동안 통역을 한 정제천 수사님이 "교황님께서 방금 보시고 'Muy simpatico!'(깊이 동감한다!) 하시며 좋아하시네요"라는 문자를 보낼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교황 사칭' 동영상은 나에게 기적과 같은 은총을 선물했다. 교황님 알현의 은총을. 20년 전 전북 종교인 협의회에서 활동한 지원스님이 오래 전부터 교황님 손 한 번만 잡게 해달라고 간청을 했었다. <오마이뉴스> 기사로 '교황 사칭' 동영상을 본 지원스님이 교황님을 뵐 수 있게 해달라고 생떼를 부렸다.

"4박 5일 통역하시는 정제천 신부님 잘 알잖아. 간청해봐. 최 신부가 먼저 문자를 보내, 나도 문자를 보낼 테니까."

그러고 나서 다시 스님한테서 연락이 왔다. 정 신부님이 18일 교황청 대사관으로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스님은 좋겠다. 스님보다 교황님 뵙고 싶은 마음, 내가 더 간절한데."
"나야 최 신부랑 함께 가면 좋지, 정 신부님께 간청해봐."

'교황님 꼭 뵙고 싶다'는 스님 덕에 나도 교황님을 뵈러...

가면  교황님을 감동 시킨 교황 사칭 동영상 가면
▲ 가면 교황님을 감동 시킨 교황 사칭 동영상 가면
ⓒ 최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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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일요일 오후 4시 공소미사 시간. 할머니 할아버지 눈빛이 무언가를 알고 싶은 아이들의 눈빛처럼 초롱초롱하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우리 동영상을 보셨을까요, 아직 안 보셨을까요? …보셨습니다."
"와! 그렇지! 그렇지! 역시 교황님이셔!"

유치원 아이들처럼 탄성을 질렀다. 공소 어르신들 얼굴이 달덩이처럼 피어났다. 마치 60송이 해바라기가 탄성을 지르며 일제히 피어난 것처럼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상상해 보라, 일제히 피어난 해바라기꽃을 보고 있는 사람의 기쁨과 행복을.

미사를 마치고 성당을 나서는 할머니 할아버지 손을 잡아 드리자, "신부님도 멋쟁이 교황님도 멋쟁이", "신부님 감사해요. 영원한 추억을 선물해서요", "우리 진짜 천국에 가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자랑할 거예요"라고 말씀들 하셨다. 기쁨은 술자리까지 이어졌다. 공소 신자들과 농촌 슈퍼에서 막걸리 잔을 주고받았다.

"교황님을 위하여!"
"오래오래! 징하게! 어울리자 교황님처럼! 오징어!"
"교황님의 희망! 통일을 위하여!"

잔을 부딪힐 때마다 교황님의 위로와 희망, 정의와 평화의 메시지가 넘쳐났다. 산골짜기 생태마을로 돌아오니 저녁 8시다. 스님과 함께 교황님 알현하러 가는 것은 어려운가 보다 포기하는 순간, 지원스님한테서 내일 오전 8시까지 교황청 대사관으로 오라는 연락이 왔다. 마음씨 고운 정제천 신부가 내 간청을 들어주었다. 정 신부를 여러 번 귀찮게 했는데도 교황님의 마음으로 내 간청을 헤아려준 덕이다.

전주까지 택시를 타고 가서 심야 우등고속버스에 올랐다. 산골 신부가 교황님을 만나러 간다니, 꿈인가 생시인가, 쉬 잠이 오지 않았다.

"신부님은 책과 시디를 선물하고 나는 내 얼굴을 선물했습니다"

아하! 그 동영상 교황님이 가면을 보시고 그 동영상의 주인공이냐며 활짝 웃으신다.
▲ 아하! 그 동영상 교황님이 가면을 보시고 그 동영상의 주인공이냐며 활짝 웃으신다.
ⓒ 최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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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동 파출소 앞에서 지원스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극적으로 접견에 초대받은 김근수 신학자까지 교황청 대사관 접견홀로 들어갔다. 먼저 교황님을 영적인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는 지원스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배낭에서 교황님 사진으로 만든 가면을 챙겼다. '교황 사칭' 동영상의 그 가면이다.

교황님 얼굴 가면을 얼굴에 대고 인사를 하자, 교황님 얼굴이 해바라기꽃처럼 피어났다. "아아 그 동영상!" 하고 교황님의 웃음이 폭발했다. 웃음꽃 활짝 핀 교황님 얼굴에서 전염된 향기가 내 얼굴에서도 피어났다. 그렇게 한바탕 웃고 나서 교황님의 손을 잡고 또 한 번 웃었다. 누가 이렇게 첫 대면에서 박장대소하며 웃을 수 있을까. 축복이고 영광이다. 어른들 표현으로, 죽어도 여한이 없다. 통역하는 수사님까지 함박웃음꽃을 피웠다.

교황님께 최근 출판한 내 책(<당신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과 음반(<어느 신부의 사랑 고백>)을 선물했다. 그러자 교황님의 재치가 번득였다.

"신부님은 책과 시디를 선물하고 나는 내 얼굴을 선물했습니다."

교황님, 통역수사, 농부사제, 내 손에 들린 교황 가면까지 동시에 웃음꽃이 폭죽처럼 터졌다. 교황님은 재치의 달인이었다.

"저는 농촌에서 신자들과 농사를 배운 지 6년이 되었습니다. 농사를 배우는 일, 만나생태마을에서 공동체 식구들과 사는 일, 생태적으로 사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도망가고 싶을 때가 많았습니다. 도망가고 싶은 유혹을 이기게 해주는 분들이 공소신자들과 프란치스코 교황님이셨습니다. 교황님 생각만 해도 힘과 용기가 솟아납니다.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씨 뿌리고 가꾸는 노동으로, 땀과 삶으로 교황님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교황님께서도 제가 농민들과 함께 잘 살다가 하늘나라에 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난한 농민들을 돕고 생태마을 공동체를 이루는 일이 우리 시대의 소명일지라도 하느님께서 다른 소명의 길을 가라 할 때는 그 길을 기쁘게 갔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은 '막무가내' 스님을 통해서 교황님을 뵙게 했다. 가난한 농민을 사랑하려는 사제에게 교황님을 통해 하늘의 사랑을 전해주셨다. 극적인 연출, 기적 같은 만남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내 가슴과 영혼에 위로와 희망, 정의와 평화와 사랑을 심어주셨다. 이제 내 차례다. 교황님처럼 가난한 이들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현장에서 교황님처럼 위로와 희망, 정의와 평화와 사랑을 살아야 한다. 교황님이 나에게 주신 영원한 숙제다.

교황과 스님 영적인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는 스님
▲ 교황과 스님 영적인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는 스님
ⓒ 최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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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e진안신문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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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기자는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일꾼으로,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으로 2000년 6월 20일 폭격중인 매향리 농섬에 태극기를 휘날린 투사 신부, 현재 전주 팔복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첫눈 같은 당신'(빛두레) 시사 수필집을 출간했고, 최근 첫 시집 '지독한 갈증'(문학과경계사)을 출간했습니다. 홈피 http://www.sarang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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