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취재/이미나 기자| 손으로 박자를 맞춰 가며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은 평온했지만, 밴드 연주를 뚫고 나오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여전했다. 밴드 들국화의 보컬로 한국 대중음악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전인권이 '전인권 밴드'를 결성, 2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서 새 앨범 <2막 1장> 쇼케이스를 열고 자신의 음악 인생의 또 다른 장을 열었다.

"기자회견은 한 번 해 봤는데, 기자간담회는 처음이다. 잘 부탁한다"며 인사를 건넨 전인권은 새 앨범 이름을 두고 "원래 2막이 재밌잖나"라는 말로 설명을 대신했다. 그에게 있어 '1막'은 "굴곡이 많은 인생"이었다. "<명랑운동회>를 안 나간 비주류 음악인"이라고 당시를 회상한 전인권은 "우리(들국화)만의 안간힘을 다해 음악을 만들었고 공연을 했는데, 그게 대중에게 순수하게 잘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고 자평했다.

"제가 이탈 정도가 아니라 '오탈'을 했죠. 이렇게 과감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바다를 건너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힘든 시기를 보냈고, '바다'를 건너왔기 때문에…과감히 1막을 접을 수 있는 거죠."



전인권 밴드의 <2막 1장>에는 전인권이 작사작곡한 곡 8곡을 비롯, 총 11곡이 실렸다. "전인권이 음악인을 넘어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소외, 허무, 갈망, 자유, 위로의 메시지가 충만하다"는 보도자료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 그간 전인권이 살아오면서 느낀 삶의 깊이를 담은 곡들이 빼곡하다. 이 중 '내가 왜 서울을'과 '눈물', '사람답게'는 앨범 출시에 앞서 온라인에 미리 공개했다. 전인권은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또 "내가 난시라 눈이 나쁘다. 그래서 그림만 많이 그렸고, 그러면서 관찰을 많이 하게 됐다"는 전인권은 "또 재판을 받는 등 난처한 상황 속에서 살아오면서 나름대로 철학이 생겨 이런 가사를 쓸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전 2시쯤 일어나 아내가 6시 반쯤 일어나 밥을 지을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음악만 만들었다"고 전한 그는 "(이번엔) 리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소리를) 지를 때에도 나름 감정이 있었지만, 리듬이 있으니 (감정이) 애틋해지면서 연주하기도 쉬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밴드의 면면도 화려하다. 피아니스트이자 '정원영 밴드'의 수장인 정원영이 함께 했고, '한국 록의 대부'로 불리는 신중현의 아들 신석철은 드럼을 맡았다. 특히 신석철은 <2막 1장> 앨범 녹음에는 기타리스트로도 참여해 눈길을 끈다. 전인권은 신석철을 두고 "신중현을 만났는데 '사이키델릭' 그 자체였다. 그런 대단한 분의 아들"이라며 "신석철의 기타 연주에는 어떤 강렬함이 있다. 그것을 곡에 담고 싶어서 앨범 녹음을 진행했다. 역시 피는 속이지 못하는 것 같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전인권 밴드는 일시적인 활동이 아니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계속 해나갈 겁니다. 에릭 클랩튼이 기타를 쳐준다고 해도 (멤버를) 바꾸지 않을 거예요. 다만 내년에 (밴드) 이름은 바꿀 수도 있습니다. 지금 박민규 작가도 왔는데…'마더'라는 이름이 어떠냐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저는 '더블 펌'이라는 이름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밴드에게 '이 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어요. 진정한 밴드의 모습을 보일 겁니다."



그렇다면 들국화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전인권은 "가끔 무대에서 함께 하면 좋을 것 같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과거 최성원과 나는 완전한 비주류였다"는 그는 "가장 힘들 때 최성원과 함께 해 좋았다. 지금도 힘들 때마다 가장 힘들었던 그 때가 생각나고, 서로 돕고 싶고 어울리고 싶은 마음은 있다"면서도 "하지만 음악적 방향과 성질이 너무 다를 때가 많아서 자주 싸웠다. 이젠 정말 싸우기 싫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최근 '각이 조금 틀어진다고 해서 진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라는 글귀를 봤다"는 전인권은 "우리는 각을 최대한 틀어서 여러분께 새로운 것을 많이 들려 드리겠다"는 말로 '2막'을 여는 각오를 전했다. 자연스럽게 현장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고, 전인권은 자신의 히트곡 '제발'을 앙코르로 선사하며 마지막까지 분위기를 달궜다. 전인권 밴드는 오는 9월 <2막 1장>을 발매한 후 일산과 대구, 서울 등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 예정이다.

한편 이날 쇼케이스에는 밴드 장기하의 얼굴들의 장기하, 그리고 원더걸스의 멤버이자 '핫펠트'라는 이름으로 솔로 활동에 나선 예은이 함께 자리해 눈길을 끌었다. 전인권으로부터 "사람이 너무 진실해지면 어두운 면이 보이는데 그런 모습을 많이 봤다. (그래서인지) 예은의 무대를 보면 비욘세보다 훨씬 감동을 준다"는 칭찬을 받은 예은은 자신의 앨범 수록곡을 열창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