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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재원(22, 한국예술종합학교 3학년)씨는 지난 달 강남 클럽 '옥타곤'에 다녀온 얘기를 한 인터넷미디어에 기고했다.  "'반지 원정대'가 아닌 '장애인 클럽 원정대'를 결성했다"는 그의 재치와 진솔함이 담긴 글에 약 1만 9천명의 사람들은 환호하며 '좋아요'를 눌렀다.
 변재원(22, 한국예술종합학교 3학년)씨는 지난 달 강남 클럽 '옥타곤'에 다녀온 얘기를 한 인터넷미디어에 기고했다. "'반지 원정대'가 아닌 '장애인 클럽 원정대'를 결성했다"는 그의 재치와 진솔함이 담긴 글에 약 1만 9천명의 사람들은 환호하며 '좋아요'를 눌렀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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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이 뭔 소용일까 싶지만, 일단 나는 지체 3급 장애인이다. 키는 약140cm고 척추는 약45도 휘어있다(수술 전까진 110도 휘어있었다). 왼쪽 다리는 마비돼 앙상하다. 목발을 짚고 걸으며 왼 다리를 끌고 다닌다. 결과적으로 다리가 4개고 척추가 휘어 상체가 돌출, 꼬마들로부터 '켄타우로스' 혹은 키가 작은 '난쟁이'로 불린다….'

어렸을 때는 남들과 다른 외형인지 몰랐다. 무슨 일을 하건 '뭘 했느냐'는 내용보다는 그저 '했다'는 사실만으로 항상 칭찬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세상은 나만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했고,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었다. 3급 지체장애인이자, "글쓰기와 음악듣기를 즐겨하는" 변재원(22, 한국예술종합학교 3학년)씨의 이야기다.

"심장을 치며 울리는 스피커 진동 잊을 수 없어"

그런 변씨가 본격적으로 인터넷 상에 회자된 것은 7월 말, 그가 다른 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강남 대형 클럽 '옥타곤'에 다녀온 얘기를 인터넷 대안미디어 'ㅍㅍㅅㅅ(프프스스)'에 기고하면서부터다. "'반지 원정대'가 아닌 '장애인 클럽 원정대'를 결성했다"는 그의 재치와 진솔함이 담긴 글에 약 1만 9천명의 사람들은 환호하며 '좋아요'를 눌렀다.

지체, 시각·청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클럽에서 춤을 춘다? 사실 익숙하게 떠오르는 그림은 아니다. 변씨와 친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19일 오후 서울 광진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난 그는 클럽에 가기 전 제일 걱정됐던 점이 '시선과의 투쟁'이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춤을 출 수 있을지, 클럽에 접근이 가능할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실 신체적 한계나 물리적 접근보다도 제일 많이 고민했던 건 그거였어요. '가서 사람들의 시선을 견딜 수 있을 것인가'. 보안요원이, 다른 사람들이 우릴 이상하게 쳐다보면 어쩌지? 근데 친구들이랑 같이 있으니까 왠지 연대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다들 무모할 정도로 '가자, 가면 어때'라는 거예요." 
  
마침 그날은 가수 싸이와 양현석도 클럽에 온 날이었다. 음악에 맞춰 전동휠체어에 달린 비상등을 깜빡이고, 목발을 짚고 지그재그로 뛰어다니며 '둠칫둠칫' 신나게 춤추는 변씨와 친구들을 보며 싸이도 함께 몸을 흔들었다. 같이 갔던 형은 클럽을 나오며 이렇게 말했다.

"심장을 치며 울리는 스피커 진동을 잊을 수가 없어, 처음 경험해 본 흥분과 감동이야."

이들은 꼬박 9시간을 내리 춤추며 즐겼다고. 음악에 맞춰 전동휠체어에 달린 비상등을 깜빡이고, 목발을 짚고 지그재그로 뛰어다니며 '둠칫둠칫' 신나게 춤추는 변씨와 친구들을 보며 마침 이 클럽에 온 싸이도 함께 몸을 흔들었다고 한다.
 이들은 꼬박 9시간을 내리 춤추며 즐겼다고. 음악에 맞춰 전동휠체어에 달린 비상등을 깜빡이고, 목발을 짚고 지그재그로 뛰어다니며 '둠칫둠칫' 신나게 춤추는 변씨와 친구들을 보며 마침 이 클럽에 온 싸이도 함께 몸을 흔들었다고 한다.
ⓒ 변재원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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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들은 오후 10시 입장해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장장 9시간을 내리 춤추고 놀며 밤을 하얗게 불태웠다고. 변씨는 "그 때 이후 SNS로 많은 쪽지를 받았는데, 저와 나이가 비슷한 한 친구가 '글을 보면서 정말 짜릿하고 힘이 났다, 뭐라도 해봐야겠더라'고 쪽지를 보냈다"며 "이제껏 제 존재에 대해 고맙다고 해주는 사람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4년,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일이 이렇게 호락호락한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변씨는 세 달 전쯤인 5월에도 일명 '진에어 사건'을 겪으면서, "예전에는 잘 몰랐지만 비로소 내가 사회에서 보통의 존재로 인식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저가항공 '진에어'를 이용하려던 변씨가 탑승 전 직원에게서 '장애인 건강상태는 본인 책임'이라는 서약서에 사인할 것을 요구받았고, 이런 사실이 알려지며 진에어 측이 '장애인 차별' 논란에 휩싸인 사건이다. 변씨에 따르면 '클럽 원정대'를 포함해, 5월 이후 그가 한 말과 웹상에 쓴 글은 모두 "장애인을 위한, 장애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섹시한 방식의 투쟁"이었다.

함께 춤을 추러 강남 클럽을 찾았던 '클럽 원정대' 친구들. 여기에는 변씨와 같은 지체장애인을 비롯해 시각, 청각 장애인들이 함께 있었다. 같이 갔던 친구 중 한 명은 "처음 경험해 본 흥분과 감동"이라고 말했다고.
 함께 춤을 추러 강남 클럽을 찾았던 '클럽 원정대' 친구들. 여기에는 변씨와 같은 지체장애인을 비롯해 시각, 청각 장애인들이 함께 있었다. 같이 갔던 친구 중 한 명은 "처음 경험해 본 흥분과 감동"이라고 말했다고.
ⓒ 변재원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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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 비장애인을 좋아해도 될까요?"

특히나 변씨와 같은 20대는 물론 장애인 대부분에게 있어 '연애'와 '사랑'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변씨도 마찬가지였다. 2년 전 대학교 새내기 때 사귄 친구와 서로 많이 좋아했지만, 변씨는 어렸을 때부터 늘 받아왔기에 익숙해져 있던 타인들의 시선을 '비장애인'인 여자친구는 낯설어했다.

"대학로 쪽을 걷는데 여자친구가 나지막이 '재원아 너 괜찮아?' 하는 거예요. 알고 보니까 사람들이 저희가 같이 걷는 걸 계속 흘끔거렸다고. 불편하지 않도록 절 도우려는 모습, 횡설수설하는 그 친구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히고 미안해서 제가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헤어지자고 말했어요. 예쁜 친구였는데…."    

그날 이후 변씨는 '내가 누굴 좋아해도 될까, 장애인이 비장애인을 좋아해도 될까'란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애와 관계에 있어서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게 됐다며, "누군가에게 호감이 가게 되면 '국기에 대한 맹세'처럼, 저 아이와 사귀면 겪게 될 일련의 과정을 머릿속에 다 생각해보고서야 좋아할지 말지를 결정한다"는 것.

"부끄럽지만 솔직히 말해서 20대는 아주 원초적인 욕구들이 있잖아요. 여자친구와 사귀면 관계를 나눠야할 때가 있을 텐데. 제 몸에 있는 수술자국(흉터)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온전히 관계를 할 수 있을지, 서로 만족할 수 있을지에 대해 자신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바로 (속으로) '여기까지만 해' 그런 생각이 들어요."

변씨는 자신과 같은 장애인들이 일종의 '무성적 존재'로 취급받는 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던졌다. "장애인도 똑같이 연애를 하고 싶고, 여가 생활을 즐기고 또 성적인 욕망을 해소하길 바라요"라며 "장애인도 야한 생각을 할 수 있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게 성욕인데 이런 것들을 사회가 온전히 허락해왔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몸치' 변씨는 춤추기를 좋아해 지난 6월 '울트라뮤직페스티벌'에도 참가했다. 클럽은 7월 방문이 처음이었다고. 그는 "모든 장애인들이 클럽 입구에서 그들의 장애를 커밍아웃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투쟁의 일환으로 더욱 열심히 클럽을 다니겠다"며 웃었다.
 '몸치' 변씨는 춤추기를 좋아해 지난 6월 '울트라뮤직페스티벌'에도 참가했다. 클럽은 7월 방문이 처음이었다고. 그는 "모든 장애인들이 클럽 입구에서 그들의 장애를 커밍아웃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투쟁의 일환으로 더욱 열심히 클럽을 다니겠다"며 웃었다.
ⓒ 변재원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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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변씨는 최근에 접한 '에로 배리어프리(Barrier-free)' 영화에도 관심이 많다. 이는 시청각장애인들도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영화에 음성해설과 자막을 넣은 '배리어프리' 영화 중 '19금 영화'를 말한다. 예술경영을 전공한 그는 "배리어프리도 기존에는 다 착한 영화만 틀어줬는데, 장애인을 위한 에로영화도 있어야지 않나"라며 "꼭 야한 영화가 아니라, 실험적인 영화도 볼 수 있도록 선택의 폭이 넓어졌으면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고 싶은 것도, 즐기고 싶은 것도 많은 변씨는 장애청년 해외연수 프로그램 '장애청년드림팀'의 일원으로 오는 23일 미얀마로 떠날 예정이다. 그는 다녀와서도 친구들과 함께 클럽 곳곳을 찾아다니겠다며, "서울 시내에서 휠체어로 입장할 수 있는, 물리적으로 접근이 가능한 클럽을 찾아 '클럽 지도'를 만들고 싶다"고 웃었다.

"모든 장애인들이 클럽 입구에서 그들의 장애를 커밍아웃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투쟁의 일환으로 더욱 열심히 클럽을 다니겠다"는 이 사람. 그런데 잠깐, 춤은 잘 출까?  

"저요? 친구들이 저 춤 못 춘다고 난리예요(웃음). 다들 '몸치'라고 하는데 음악 듣는 거랑 춤추는 걸 좋아는 했어요. 여러분, 다음에 만나면 저와 함께 춤 춰요!"


태그:#장애인 옥타곤, #장애인 클럽 원정대, #옥타곤, #변재원, #에로배리어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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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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