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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사단 윤 일병은 군 입대 후 112일 만에 부모 한 번 못 만나보고 선임병들의 구타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사망을 계기로 육군이 단 18일간 조사한 결과 3919건의 군내 가혹행위가 적발됐습니다.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은 가혹행위가 자행되고 있다고 추정됩니다. 군이 병영문화를 개선하겠다고 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여전히 심각합니다. 이제 군에만 맡기지 말고 외부에서 본격적으로 감시하고 개입할 때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병영에 햇빛을' 기획 연재기사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15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칼럼
 15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칼럼
ⓒ 중앙일보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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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둘을 군대에 보내놓고 선임병사에게 매는 맞지 않는지 전전긍긍했다. 병장이 된 지금은 오히려 가해자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지 여전히 좌불안석이다. 며칠 전 휴가 나온 둘째에게 넌지시 물어보니 걱정 붙들어 매시란다.'

남경필 경기지사의 15일자 <중앙일보> 기고문의 일부다. 장남의 후임병 폭행·성추행 사건을 인식하고 있던 그가 무슨 생각으로 이 글을 썼는지는 아직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확실한 것 하나는 이 글에서 나타난 것처럼 군내 가혹행위란 '피해자가 고참되면 가해자로 바뀌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윤 일병 사망 사건'의 핵심 가해자인 이아무개 병장도 일병 때는 가혹행위를 당했던 피해자였다.

또 하나, 군내 가혹행위가 구조적일 뿐 아니라 대단히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문제라는 점도 분명하게 확인됐다. 부대에서 주시의 대상이 됐을 현직 경기지사의 아들까지 가혹행위 사건에 등장한 것이다. 

육군이 '윤 일병 사망사건' 직후인 4월 11일부터 단 18일간 벌인 조사에서도 3919건의 가혹행위가 적발됐다. '자체조사'라는 점에서, 실제 상황은 이보다 훨씬 심할 것임은 불문가지다.

이는 군이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전체 육군 50만 명 중 23.1%(8만811명)를 관심병사로 분류해놓고 있는 것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사고 유발 위험이 높은 A급 관심병사가 8634명, 잠재적 위험군인 B급이 1만9530명, C급이 5만2647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판정기준의 정밀도라는 문제점은 있으나, 군내 분위기와 흐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수치다.

아들 죽어도 부모는 전체 상황 알기 어려워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사진 오른쪽0와 이완구 원내대표가 지난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사진 오른쪽0와 이완구 원내대표가 지난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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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외부로 알려지는 사건은 극소수다. 사망 사건이 벌어져도 군은 유족들을 현장검증에서 배제하고 수사 자료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가족들도 사건 초기에 전체상황을 알 수 없고, 장례를 치른 다음에야 어렴풋하게 그림을 그릴 뿐이다. 28사단 윤 일병의 부모들도 그랬다.

결국 우리 군의 현재 모습은 안에서 밖을 들여다 보기 어려운 '정글'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윤 일병 사건'이 아니었다면 남 지사 아들 사건도 그냥 묻히고 말았을 것이라는 세간의 인식은 상당히 설득력이 높다.

이번 윤 일병 사건 와중에 주목받은 정치인을 뽑는다면 단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일 것이다. 사건이 알려진 직후 한민구 국방장관을 국회 당 대표실로 불러 연거푸 책상을 쾅쾅 치면서 "천인공노할 살인사건을, 왜 쉬쉬 덮으려고 하느냐"고 질책했다. 집권당 대표가 무슨 자격으로 장관을 질책하느냐는 지적도 나왔지만, 워낙 사안이 심각했기 때문에 '속 시원하다'는 평이 많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권오성 육군참모총장이 자진사퇴하자 "육군참모총장이 책임졌으면 책임은 다 진 것이다"고 말한 것이 끝이었다.

군내 가혹행위 문제는 군 자체적으로만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데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그래서 국회내에 부대방문권, 정보접근권, 시정권고권을 가진 옴부즈만을 설치해 군내 인권 문제를 감시하자는 법안이 이미 18대부터 제출됐지만, 국방부는 반대하고 새누리당은 외면하고 있다.

군 사법제도 개혁 문제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지휘관은 검찰관과 판사를 결정하고, 수사관련 업무의 최종 결제권을 갖고 있는 것도 모자라 30년형도 1개월형으로 낮출 수 있는 권한까지 갖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한 사례다. 김무성 대표가 한민구 장관에게 "왜 사건을 덮으려 하느냐"고 호통친 것처럼, 군내 사건을 왜곡·은폐 할 수 있는 기본 틀이 바로 이 같은 잘못된 구조에 있다.

군사옴부즈만-군 사법개혁, 계속 외면

그럼에도 새누리당과 그 전신 정당들은 '군의 특수성'을 이유로, 10년 넘게 군사법제도 변화를 거부해왔다. 현재는 <조선일보>도 '사단장·군단장이 수사·재판 좌우하는 군 사법 제도 고쳐야'(8일자)라는 사설을 낼 정도로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누리당도 새로운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무신불립'(백성의 믿음이 없이는 나라가 서지 못한다)은 정치인들이 애용하는 고사성어다. 지금 우리는 국민들이 군을 믿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전히 국가주의가 팽배해있고 병영문화가 강고한 우리나라에서 종교적 이유가 아닌 명분으로 공공연하게 징병거부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새누리당이 대표가 호통치는 수준을 넘어 적극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대응해야 할 이유다.

당장 새누리당은 차기 대선후보 한 명이 발을 내딛기도 전에 추락할 수도 있는 상황에 빠진 것 아닌가.


태그:#28사단 가혹행위 사망사건, #남경필 아들, #김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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