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방송 3사가 일요 예능 방송 시간을 총 185분으로 전격 합의했다.

지상파 방송 3사가 일요 예능 방송 시간을 총 185분으로 전격 합의했다. ⓒ MBC, KBS


지상파 방송 3사 KBS-MBC-SBS가 최근 문제가 된 일요 예능 프로그램 시작 시간을 4시 50분으로, 종료 시간은 7시 55분으로 합의하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지상파 일요 예능 프로그램은 당분간 이 '185분 룰' 속에서 운영될 예정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합의를 도출한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얼마나 오래 지켜 내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일요 예능 출혈경쟁, 방송사-시청자 모두 지쳤다

방송 3사가 일요 예능 시청률을 두고 자존심 싸움을 한 지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일요 예능의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일요 예능이 각 방송사 예능국의 얼굴 마담 노릇을 하는데다가 광고 수익 등 여러 가지 자금줄과 밀접한 연관을 맺다보니 시청률 소수점 한 자릿수에도 집착하기 시작했고, 단 1분이라도 더 빨리 시작하고 늦게 끝내는 출혈 경쟁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오후 4시 50분에서 5시 사이 정도였던 프로그램 시작 시간대가 4시까지 앞당겨 지는 촌극이 벌어졌고, 시청자는 일요 예능만 무려 4시간을 봐야 하는 곤욕 아닌 곤욕을 치러야 했다. 방송사 간의 무리한 시청률 경쟁이 시청자의 몰입도를 떨어뜨리고, 피로도를 높이는 등의 부작용을 초래한 것이다. 방송사로선 '누구를 위한 싸움이냐'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입장에서도 곤란하긴 마찬가지였다. 70분짜리 프로그램을 100분으로 늘리려다 보니 편집해도 되는 부분까지 억지로 집어넣어야 하는 경우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촬영과 편집 시간이 길어지면서 더해지는 스트레스 또한 경험하지 않고서는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프로그램의 질적 하락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상식 이하의 시간대 연장은 오히려 일요 예능의 전체적인 평균 시청률 하락이라는 최악의 결과까지 가지고 왔다. 일요 예능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감이 커지게 됨으로써 시청률 20%대의 '빅히트' 예능 프로그램은 사라지고, 10% 초중반대 혹은 한 자릿수 시청률이 당연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소수점 한 자릿수로 승패를 따지는 방송사 입장에선 더욱 부담이 커지게 된 셈이다.

결국 부담을 이기지 못한 방송 3사는 18일 일요 예능의 '185분 룰'을 확정하고, 이를 지키기로 합의했다. 종전처럼 4시 50분을 시작 시간대로 잡고, 방송 시간 또한 185분으로 맞춘다는 것이 합의의 주요 골자다. 이는 과도한 출혈 경쟁으로 인한 프로그램의 질적 하락을 막고, 시청자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여 잘못된 점을 바로 잡겠다는 방송사 나름의 의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중요한 것은 합의가 아니라 '실천'

그러나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방송 3사가 185분 룰에 합의한 것은 분명 주목할 만한 일이나 중요한 것은 이를 얼마나 잘, 그리고 오래 실천하느냐다. 185분 룰은 말 그대로 방송사 간의 신사협정일 뿐이지 법적 효력이 있는 규칙이 아니다. 방송 3사 중 한 곳이라도 185분 룰을 어기기 시작한다면 지금과 같은 무한 경쟁은 다시 시작될 공산이 크다.

예전부터 방송 3사는 프로그램 시간대를 두고 매번 다툼을 벌여왔다. 2008년 방송 3사 드라마 국장들은 무분별하게 늘어난 드라마 방송 시간대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72분 룰'을 합의하고, 이를 실행키로 했다. 그러나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각 방송사들은 슬그머니 1~2분씩 방송 시간을 연장했고 그 때마다 드라마국 간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이는 것이 다반사였다.

변칙 편성과 눈치작전이 심각해지자 2012년 방송 3사는 다시금 '72분 룰'의 중요성을 상기하는 합의를 가졌으나 2013년 <아이리스2>-<그 겨울, 바람이 분다>-<7급 공무원>이 맞붙은 '수목 대전'이 발발하면서 '72분 룰'은 또 다시 유명무실해졌다. 같은 해 <장옥정> 등이 74분까지 방송 시간을 연장하자 경쟁사가 강하게 반발하는 등 볼썽사나운 모습도 꾸준히 연출됐다.

그 결과 각 방송사는 2013년 10월, 드라마 방영 시간을 최대 67분으로 하는 '67분 룰'을 만드는 등 새로운 자구책을 마련했고 예능 프로그램 또한 기존의 80분에서 75분으로 줄이는데 합의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채 1년도 되지 않아 일요 예능의 출혈 경쟁이 발생한 것이다. 이렇듯 방송 3사가 무의미한 합의와 번복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그들 스스로 시청률 지상주의의 노예임을 고백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같은 전례를 거울삼아 볼 때 어렵사리 마련한 이번 '185분 룰' 또한 방송사 스스로 지킬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185분이 당연한 것으로 정착되어야만 제작비 절감, 방송사 수익성 개선, 프로그램의 질적 향상, 시청자의 피로도 하락 등의 여러 가지 선순환 구조가 마련될 수 있다. 무리한 출혈 경쟁은 비극만을 낳을 뿐이다.

최근 지상파 방송 3사는 케이블 방송의 대중화, 종합편성채널의 출현 등으로 길게는 50년간 누려왔던 독과점 체제에서 벗어나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럴수록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시청률 소수점 한 자릿수가 아니라 지상파 방송으로서의 품위와 시청자에 대한 예의다. 185분 룰의 합의와 실천은 이를 증명할 하나의 잣대가 될 것이다.

이제 제 살 깎아먹는 무리한 출혈 경쟁 대신 포맷과 기획으로 승부를 보는 시대가 열릴 때가 됐다. 지상파 방송 3사가 더 이상 볼썽사나운 눈치 싸움과 변칙 편성을 하지 않기를,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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