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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아현고가도로 제거 후 신설되는 중앙버스전용차로를 통해 교통체증의 해소를 기대하고 있다.
▲ 충정로역 부근에서 신설중인 중앙버스전용차로 서울시는 아현고가도로 제거 후 신설되는 중앙버스전용차로를 통해 교통체증의 해소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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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서울시에서 승차대(정류장 지붕) 설치, 버스도착안내단말기(Bus Information Terminal, BIT), 교통약자를 위한 점자블록, 점자 안내판, 발광형 개량 노선도 설치 등을 개선하는 등 약자의 교통 편의를 고려하는 버스정류장을 조성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교통약자를 위한 시설 개선,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하기 쉽다. 시각장애학교인 인천혜광학교의 일상을 다룬 영화인 임태형 감독의 <안녕, 하세요!>(2012)를 보면, 시각장애인 호승군이 주변 사람에게 버스 안내를 부탁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후 필름포럼에서 열린 GV에서 '대중교통에서 개선되었으면 하는 것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은 호승군은 "버스가 와도 해당 버스를 찾기 어려워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버스를 탈 때 눈치를 봐야한다"며 버스 이용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친구들도 "버스를 타면 가까운데도 지하철을 타고 돌아서 간다"라고 덧붙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2004년 서울시에서는 교통체증을 해결하기 위해 중앙버스전용차로를 도입했지만 오히려 이로 인해 시각장애인의 버스 이용은 크게 어려워졌다. 버스에 대한 시설 개선이 이루어지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사람'의 협조가 없으면 이용은 여전히 어렵다.

왜일까? 이와 관련해 시각장애인이 겪는 불편은 어떠한지, 지난 7월 교통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하는지 한국시각장애인여성연합회(이하 한시여연) 사무실에서 전인옥 여성장애인어울림센터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한시여연은 지난 2010년 6월에 점자유도블록, 버스노선도의 작은 글씨, 버스도착안내단말기의 미비 등을 지적하며 시각장애인이 버스 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내용으로 인권위에 진정을 낸 적이 있다.

아래는 전인옥 여성장애인어울림센터장과의 1문1답이다.

"종종 버스 타면 '이래서 무섭구나' 실감"

지하철에 설치된 스크린도어에 승차위치에 대한 점자표시가 되어 있다.
▲ 애오개역 스크린도어 지하철에 설치된 스크린도어에 승차위치에 대한 점자표시가 되어 있다.
ⓒ 차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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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나?
"현재는 버스 정류장이 중앙전용차로로 변경되었는데 시각장애인인 지인도 도저히 못 타겠다고 하더라."

- 횡단보도를 건너서 가야 하는 불편함 때문인가?
"그런 점도 있다. 나도 원래 버스를 상당히 좋아했다. 지하철 무임이 시행되고 있을 때에도 버스를 탔다. 버스를 선호했던 이유는 버스를 타면 라디오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듣지 않는 방송도 버스 기사님에 따라 다양하게 들을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여러 정보를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지금도 어쩌다 타보면, 버스가 훨씬 인간적이다. 버스를 탈 때는 지팡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하철은 지팡이를 안 집고는 도저히 탈 수가 없었다. 한 번 타봤는데 거의 죽음이었다. 지팡이를 가방 안에 가지고 있어도 안 꺼낸 적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꺼내는 게 힘들었다. 그 뒤로부터는 익숙했다. 남의 시선이 의식돼서 힘든 것이었다. 이제는 지팡이를 드니까 오히려 사람들이 더 잘 도와준다. 무엇보다 지팡이가 없으면, 사람들이 (내가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가 없다."

- 2011년 한 논문에서 시각장애인의 지하철 이용률이 26%인데, 버스 이용률이 30% 중반 정도 나왔다. 이중에서 버스에 대해 불편을 느끼는 분들이 70%에 달했다.
"종종 버스를 타면 '이래서 무섭구나'라는 것이 실감이 된다. 사실 우리나라 버스뿐만 아니라 모든 정책이 우선 비장애인 위주로 만들고 뒤늦게 수정하다보니 항상 비효율적인 것 같다. 예를 들어 버스전용차로를 만들게 된 동기는 교통체증을 줄이기 위함이었겠지만, (도로를 가로질러 가야하는 시각 장애인) 이용자 입장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정책을 만드는 단계에서부터 모든 유형의 이용자들을 고려해서 함께 만들어야 한다. 현재는 '유니버셜 디자인(universal design,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의 개념이 없는 것 같다. 정책을 만들 때는 일반인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을 고려한 정책이었으면 좋겠다. 비장애인들 역시 인식 자체가 변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종종 '그렇게 불편하신데 왜 나오세요?'라는 등의 발언을 하기도 한다."

- 장애인들의 중앙버스차로 이용에 있어서 추진되어 온 것이 점자블록, BIT, 말하는 버스 등인데 더 필요한 것이 있나?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도 이용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저시력인들을 위한 버스노선도나 버스자체 번호를 크게 해야 한다. 버스는 기본적으로 몇 번 버스가 왔는지를 모르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버스를 탈 때 찍고 내릴 때 또 찍는 것(두 번 찍는)도 시각장애인들 입장에서는 어렵다. 환승혜택의 경우 어차피 지하철은 무임이기 때문에 환승이 되지 않는다는 한계도 있다.

버스의 경우 안내를 부탁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버스가 오면 안내해 달라고 시민들에게 도움을 요청을 하는 것은 해당 버스가 왔을 때 버스 문앞까지 안내해 달라는 것인데 해당 버스가 왔는지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사실 두세 개 버스가 겹쳐있는 경우 해당 버스의 앞문을 찾기가 어렵다. 두 번째 버스라고 하신 분도 계셨는데, 어떤 버스가 두 번째 버스인지 몰라서 놓치기도 한다. 타보니 좌석버스인 경우도 있었다.

안내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우리로서는 간절한 바람인데, 그 앞까지 안내해 달라는 것을 거절하는 분도 있다. 때로는 안내해 준다고 해놓고 말없이 가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기가 어렵다. 기다리다가 이상하다 손으로 살짝 옆쪽을 확인하다가 없으면 '아 갔구나' 그래서 금방 탈 수 있는 것도 한 시간 기다린 적이 있었다.

그래서 버스가 인간적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친절도에 따라 달라진다. 버스 안내 방송도 기사에 따라 다르다. 결국에는 이것도 인간의 심성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 개선이 되더라도 100% 기계화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사람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지하철은 조금 더 기계 쪽에 의존하는 시스템이다. 때문에 버스는 인간적으로 잘 해주어야 시각장애인들이 편하게 탈 수 있다. 버스가 중심차로로 변경되면 버스가 여러 대가 설 수 밖에 없는데 버스가 사람을 기다려 주어야 하고, 지체 장애인들이 가더라도 기다려 주어야 한다. 시각장애인들이 버스를 찾을 수 있도록 버스에서도 소리를 내주어야 한다."

"거리에 지팡이 든 시각장애인들이 많은 사회가 올바른 사회"

- 현재 151번 버스회사에서 자체노력으로 버스 도착시 버스 외부에 달린 음성 안내기에서 '어디로 가는 151번 버스입니다'라는 음성멘트를 나오게 하고 있다. 이 같은 소위 '말하는 버스'가 다른 버스들에도 도입이 된다면, 상황이 많이 개선되리라 보는가?
"밖으로 말하는 음성안내 버스가 있어도 여러 대가 동시에 오면 불편할 수 있다. 그래도 소리를 내주면 적어도 타려는 시도는 할 수 있다. 종종 시민으로부터 끝까지 안내를 못 받아서 뒷문으로 타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때 기사에게 위험하다고 호되게 혼난 적이 있다. 버스에서 소리를 내주면 정말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도움 없이 혼자서도 움직일 수 있도록 모두 다 대비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 시각장애인 이동권 향상을 위해 진행 중인 활동이나 계획 중인 활동이 있다면?
"현재 구체적인 것은 없지만, 할 수만 있다면 지하철 쪽을 해보고 싶다. 지하철이 최근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하고 승차위치에 대한 점자표시가 많아져서 타고 싶은 승차위치에서 탈 수 있게 개선되었다. 스크린도어가 없으면 기본적으로 설치가 되어야 하고, 추가적으로 점자에 대한 오류 개선도 필요하다.

어떤 역은 점자에 오류가 생긴 곳도 있었다. 충무로역의 경우 3호선에서 4호선으로 갈아탈 때 원래는 방향에 따라 명동 방면, 다른 쪽은 동대문 방면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이것이 방면 차이 없이 4호선 방향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대청역에서는 방면에 대한 점자에 오류가 있어서 착각하고 반대로 간 적도 있었다. 이와 같은 점자의 오류를 찾아서 개선하는 활동을 해보고 싶다."

- 밖에서 장애인들을 많이 보기 어려운데.
"거리에서 지팡이를 들고라도 시각장애인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사회가 올바른 사회라고 본다. 작년에 한 번은 지하철에서 늘 다니는 곳이기 때문에 안내방송이 나오지 않았는데도 문앞에 미리 가 있으려고 했다. 출입문 앞에 사람들이 있는 경우 나가기 어려운 경우가 있기 때문에 급하게 서두르게 된다.

그때 사람들이 "어떻게 장님이 아직 안내방송도 안 나왔는데 먼저 나올 수 있지? 뭔가 이상하다"라고 얘기를 했다. 그러자 옆에서 한 아주머니께서 "장애인들은 느낌으로 아는 것 같더라"고 얘기를 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죄송한데, 저는 느낌으로 아는 것도 아니고 여기는 늘 다니던 곳이기 때문에 나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 그래서 그랬구나"라면서 "죄송하다"라고 답했다. 정확한 인식이 필요한 것 같다.

또, 내가 지하철에서 점자책을 보는 편인데 지금도 신기해 하는 사람이 많다. 한 번은 내 앞에 서 있던 학생들이 "어? 정류장 두 개 놓쳤다"라고 했다. 왜 놓쳤겠나. 나를 보고 신기해 했던 거다. 어떤 사람은 내가 무슨 문자를 보내는 줄 알았던 것 같다. "메시지 답 받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물어서 "저 책 읽었는데요"라고 하니, "아니 좀 더 계셔야 하는데"라고 말하더라. 이래서 우리들은 사회로 좀 더 나가야 한다. 함께 있어야 한다. 점자가 신기한 것이 아니라 대체문자로, 다른 사람들도 배우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한다면.
"신체의 어느 부분이라도 장애가 있으면 불편할 수밖에 없고, 개인이 감수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최근 들어 장애인도 많이 증가하고 있다. 이제는 장애를 한 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국민으로 보고 사회적인 문제로 같이 인식을 한다면, 조금 더 나은 정책을 펼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요구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취재 도움: 임승희



태그:#장애인, #대중교통, #유니버설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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