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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라디오를 통해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재확인하고 우리나라가 독립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군중들은 또 한 번 환호성을 올렸다. 너무 감격하여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었다... 크나큰 민족적인 잔치가 베풀어져서 축하의 술병과 술잔이 오고가고 야단들이었다. 모두 흥분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 박진목 선생님의 자서전 <내 朝國 내 山河>일부

광복의 환희 넘치던 바로 그날 순국한 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박진목 선생의 자서전에 남겨진 1945년 8월 15일의 광경이다. 애써 담담한 듯한 짧은 글 속에서 벅차오르는 광복의 기쁨을 엿볼 수 있다. 조국이 해방되던 날, 감격에 겨워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까지 있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대축제 분위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날, 누구보다 조국 독립을 바라고 힘썼던 '그'가 북경 감옥에서 순국한 사실은 어느누구도 알지 못했다. 평생 그의 향을 피워 올릴 박진목 선생마저도.

'그'는 박진목 선생의 맏형이다. 평생을 독립운동과 통일운동에 몸 바친 박진목 선생의 삶의 바탕에는 '그'의 가르침이 있었다. 24살이나 위였던 맏형의 가르침을 박진목 선생은 곧잘 따랐다.

만날 때마다 옳은 사람이 되라는 교훈을 주시는 형님의 노력은 내가 바로 서는 데 크게 힘이 되었다. (...) 우리나라의 처지와 나라 잃은 민족의 비참한 사정을 설명하시면서 일제가 우리나라를 침략한 데 대한 말씀을 하시고 나에게 항일 사상을 불어넣어 주시려고 노력하셨다.
- 박진목 선생님의 자서전 <내 朝國 내 山河>일부

박진목 선생의 자서전에 실린 박시목 선생의 생전 모습
 박진목 선생의 자서전에 실린 박시목 선생의 생전 모습
ⓒ 박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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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목 선생의 큰형님이자 인생의 교사인 '그'는 독립운동가 박시목이다. 박시목 선생은 1894년 경북 의성에서 출생했다. 그가 독립운동의 필요성에 눈을 뜨게 된 것은 25살에 참가한 3·1운동 때문이다. 그는 곧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위해 상해로 떠났다.

1920년 임시정부에 참여한 박시목 선생은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했다. 박시목 선생에게 주어진 임무는 감찰원. 젊고 활동적인 그에게 국내 경북지역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임무가 맡겨진 것이다. 그가 이후에 국내외를 연결하는 중책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때의 경험이 바탕이 됐을 것이다.

이후 1927년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신간회 동경지회의 조직결성에 참여하고 활동한다. 신간회 동경지회는 당시 일본 내 조선인 민족운동의 구심적 역할을 했던 핵심 단체 중 하나였다. 그는 지회장을 지낼 만큼 왕성히 활동했다.

신간회 동경지회에서 발표한 성명서
 신간회 동경지회에서 발표한 성명서
ⓒ 한국독립운동사 정보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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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신간회 동경지회가 와해되고, 박시목 선생은 국내로 돌아왔다. 그는 이듬해  대구 팔공산에서 광산을 경영한다. 돈을 벌 목적이 아닌 '위장 광산'이었다. 그는 국내 애국청년들을 선발, 독립군으로 교육받을 수 있도록 그들을 중국 옌안으로 보냈다.

독립군 키우려 위장광산 경영까지

국내에서 활동하던 그는 1942년 중국으로 떠났다. 꽤 조직을 갖춘 해외 독립군과 합류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국내와 계속 연락을 취하면서 자금을 모았다. '거사'를 치르기 위해서다. 일본이 서서히 패망해 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생 박진목 선생은 자서전에서 박시목 선생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지금 일본이 가장 강하다고 자랑하는 관동군이 서서히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무적이라 자랑하던 일본 연합 함대는 전멸상태에 놓여 있으며, 지금 그들이 날뛰고 있는 것은 하나의 허세에 불과하고 인적 물적 자원이 도저히 이 전쟁을 감당해 낼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있다는 것을 풀어 설명해주셨다.
- 박진목 선생님의 자서전 <내 朝國 내 山河>일부

박시목 선생은 당시 판세를 정확히 읽고 있었다. 1943년 일본은 만주지역에서 소련군에 밀리고 태평양 전선에서 연일 패하는 등 패전의 가능성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이러한 시기에 우리나라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지금 우리 민족은 국내외 모든 독립 운동세력이 협력해야 되고 국권은 봉기해야 됨을 교육적으로 알려주었다. (...) 운동이 연합국의 인정을 받아야 됨도 말씀하셨다. 3.1운동 몇 갑절되는 군중 운동이 있어야 되고, 노인은 일본 놈 신사에 불을 지르고 학생은 왜놈이 우리 강토에서 견디지 못하도록 하여야 되고, 해외에서 독립 운동하는 여러 계열은 합세하여 연합전선적인 정부 형태를 형성하고 대일선전포고를 해야 됨을 말씀하였다.
- 박진목 선생님의 자서전 <내 朝國 내 山河> 일부

박시목 선생은 이를 실천하기 위해 종교계와 협의하여 거액의 군자금을 모집했다. 또 그는 김시현 선생 등과 함께 만주와 중국에 산재해 있는 독립군을 연합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조선의용군, 임시정부, 미주독립단체를 연결, 단일 독립운동 전선을 만들고자 했다. 그렇게 그는 '대일 선전포고'와 '국내 진격작전'을 실시하는 거사를 준비한다.

그러나 일본 경찰에게 계획이 발각되고 만다. 그는 100여 명의 동지와 함께 체포됐다. 동지 중엔 그의 아들 희규도 포함돼 있었다. 일제가 패망하기 불과 2년 전인 1943년이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이 잡힌 것보다 진공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사실이 더 분했을 것이다. 이 진공작전의 실패가 얼마나 큰 화를 불러올지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합국의 승전은 틀림없다는데 만일 우리 민족 운동이 일본을 우리 강토에서 몰아내는 데에 힘이 되지 못하고 연합국의 힘만으로 일본을 몰아낼 경우 우리 민족은 왜놈이 우리 강토에서 물러간 뒤에도 승전한 연합국의 전후 뒤처리 하는데 끼어 독자적 발언권이 없을 수도 있고 그렇게 되었을 때 왜놈은 봇짐을 지고 제나라로 쫓겨 가지만 우리나라는 옳은 해방을 맞이하지 못하고 연합국 처사에 끌려 다니는 불행한 결과가 올지도 모르니...
- 박진목 선생님의 자서전 <내 朝國 내 山河>일부

박시목 선생의 공훈록
1990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시목 선생의 공훈록 1990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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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거사 도모한 아들과 함께 순국한 박시목 선생

베이징 감옥에 수감되었을 당시 그의 나이 49세였다. 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쳐왔던 삶이었지만 아직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젊은 나이였다. 수감 2년 후, 그는 혹독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51세의 나이로 옥중 순국한다. 지옥 같은 고문은 아들의 목숨도 앗아갔다. 누구보다 조국 독립을 바랐던 박시목 선생의 삶은 이국땅에서 그렇게 마침표를 찍었다. 그날이 1945년 8월 15일 조국이 독립되던 날이었다.

69돌 광복절이다. 기자는 광복절을 맞아 '순국선열의 희생을 잊지 말자'는 뻔하디 뻔한 말을 다시금 새기고 싶다. 이 당연한 이야기가 당연하지 않은 세상인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친일 발언' 논란의 인물이 총리 후보로 지명되는 참극이 일어나는가 하면 애국지사, 애국청년 등 애국(愛國)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가져다 쓰는 변스러운 세상이 아니던가. 순국선열의 희생을 제대로 새기고 있다면 가당키나 한 말인가.

끝으로 박시목 선생의 69번째 기일을 기리고, 동시에 광복절을 기념하며 짧은 시 한편을 소개하고 싶다.

2008년 건립된 순국열사 박시목 기념비
 2008년 건립된 순국열사 박시목 기념비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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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기 위해서는
                                           김소엽

꽃이 그냥 스스로
피어난 것은 아닙니다.

꽃이 피기 위해서는
햇빛과 물과 공기가
있어야 하듯이
꽃이 저 홀로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꽃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벌과 나무가 있어야 하듯이
꽃의 향기가 저절로 멀리까지
퍼진 것은 아닙니다.

꽃의 향기를 전하기
위해서는
바람이 있어야 하듯이
나 혼자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닙니다.

기도로 길을 내어 주고
눈물로 길을 닦아 준
귀한 분들 은덕입니다.

내가 잘나서 내가 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벼랑 끝에서 나를 붙잡아 주고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신
보이지 않는 그 분의 은혜와
섭리가 있은 까닭입니다.

덧붙이는 글 | 박진목 선생님의 자서전 <내 朝國 내 山河>를 참고했습니다.



태그:#박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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