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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맑다. 가자 검단산!
▲ 새벽에 바라본 하늘 날씨가 맑다. 가자 검단산!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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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5시. 오늘도 나는 눈을 떠 창밖부터 바라본다. 저 멀리 있는 검단산이 얼마나 선명하게 보이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다행히 전날 내린 비로 청명하기 그지없는 하늘이다.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산에 올라 바라볼 수 있는 풍광이 어느새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새벽 검단산을 오른 지도 어느새 2개월째지만, 이렇게 맑은 날은 손에 꼽힐 정도다.

사실, 처음 검단산을 오른 건 우연이었다. 비록 내 나이 스무 살 때부터 부지런히 국내의 유명한 산들을 돌아다녔지만, 결혼 후 아이를 셋이나 낳다 보니 산에 갈 기회가 극히 드물어졌다. 굳이 산에 가려 한다면 조건은 단 하나, 집에서 무조건 가까운 곳이어야만 했다. 새벽에 일어나 혼자 산을 오르고 내려와도 여전히 아내와 아이들이 자고 있을 만큼의 거리가 아니고서는 산을 오르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차를 몰아 집에서 10분 거리에 바로 검단산이 있었던 것이다.

날씨가 좋다... 가자! 검단산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지고 있다
▲ 검단산 정상에서 바라본 두물머리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지고 있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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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렇다고 검단산이 결코 만만한 동네 뒷산은 아니다. 높이도 해발 657m나 되거니와 오래 전 한강 유역에 자리했던 백제의 진산이라는 추측도 있을 만큼 영험한 산이다. 검단산에는 구한말 최고 엘리트였던 <서유견문>의 저자 유길준과 현대그룹의 창업자 정주영, <한국일보>의 창업주 장기영 등이 묻혀 있다. 이는 그만큼 검단산이 아주 오래전부터 민중들의 마음속에 특별하게 각인돼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어디 그뿐인가. 검단산이 많은 이들에게 각광을 받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곳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 때문이다.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얼마 오르지 않아도 서울 도심과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까지 볼 수 있다. 그러니 어찌 날씨가 맑은 날 산에 오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무리 숙취가 심해도, 심신이 피로해도 길을 나설 수밖에.

아이 셋 유부남에게 새벽 등산이란?

검단산 정상에는 아이스크림과 막걸리를 파는 분들이 계시다
▲ 일찍 나는 새 검단산 정상에는 아이스크림과 막걸리를 파는 분들이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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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채 개장하지 않은 주차장에 차를 세운 채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몰랐던 초행 때는 무거운 등산 배낭 안에 이것저것 넣어서 그 무게만으로 땀을 빼야 했다.

하지만, 두 달이 넘게 산을 다닌 지금 내 손에 있는 건 마실 물 한 병과 땀 닦을 수건 한 장뿐. 검단산은 그렇게 가벼이 다녀오기 딱 알맞은 산이었다. 거창한 아웃도어 장비 없이도 친근하게 오르내릴 수 있는 곳.

물론 처음부터 발걸음이 이리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모든 산 초행이 그렇겠지만, 처음 검단산을 오를 때는 꽤나 힘들었고, 시간도 등산지도에 나와 있는 만큼 제법 걸렸었다.

결혼 이후 계속 불기만 했던 몸무게 때문일까? 무릎에도 무리가 오는 것 같았고, 비 오듯 쏟아지는 땀에 숨도 매우 거칠어졌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새벽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내게 주어진 나만의 시간을 포기할 수 없었다.

예전 직장에서는 영업사원이기에, 또한 집과 회사까지의 거리가 한 시간 이상이기에 나만의 시간을 오롯이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직장을 옮긴 뒤 회사와 5분 거리로 이사를 오고 나서는 그것이 불가능해졌다. 물론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시간을 낼 수도 있겠지만, 혼자 아이를 셋이나 키우고 있는 아내에게 나만의 시간을 달라고 징징대는 것은 누가 봐도 과한 부탁임에 분명했다.

그런데 새벽 검단산은 내게 그와 같은 시간을 제공해 줬다. 아내와 자식들은 물론이요, 타인의 방해 없이 나를 올곧이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준 것이다. 새벽 일찍 산에 다녀오면 아이들이 먼저 일어나 아내를 깨우려고 찡찡대는 것도 막을 수 있을 것이요, 아내 역시 내가 다른 방법으로 시간을 내는 것보다 산행을 좋아하니 최적의 방법이었다.

나는 산을 오르면서 한동안 듣지 못했던 팟캐스트를 듣기 시작했고, 그동안 머릿속에 맴돌았던 생각들을 정리해 나갔다. 또한 산에 올라 다시금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내려다보며 여러 가지 가능성과 꿈을 그렸다.

특히 산행의 대부분은 아무 생각 없이 흘리는 땀방울로 점철됐는데, 그것만으로도 '힐링'이 됐다. 아무리 생각이 많아도 계속 산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무아의 경지에 빠지게 되고, 생각을 비운 채 몸을 움직이다 보면 그것만으로도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서는 또 무언가를 비워야 된다는 당연한 명제. 산은 내게 그것을 다시금 가르쳐주고 있었다.

저 멀리 삼각산과 도봉산이 보인다
▲ 검단산에서 바라본 풍경 저 멀리 삼각산과 도봉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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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의 표지판
 정상의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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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정상. 맑은 하늘의 검단산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동쪽으로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 두물머리를 이뤄 굽이치고 있었고, 반대쪽으로는 관악산부터 시작해서 안산·인왕산·북악산·북한산·도봉산·수락산·불암산까지 서울 근교의 모든 산이 한눈에 보였다. 그리고 그 사이를 빼곡하게 메우고 있는 삶의 흔적들, 잠실 한가운데서 계속 올라가는 제2롯데월드 빌딩이 영화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사우론의 탑'처럼 조금 거슬리기는 해도 도심의 풍경은 볼 만했다.

새벽 산행의 선물

검단산 정상
 검단산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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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단산을 다닌 지 한 달쯤 됐을까? 변화는 몸에서부터 시작됐다. 결혼 이후 절대 빠지지 않던 살이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무려 5kg씩이나 감량. 이는 산행 시간에도 꽤 영향을 끼쳤는데 몸이 가벼워진 만큼 산에 오르는 시간도 단축됐다. 처음에는 올라갈 때 2시간 가까이 걸리더니 이제는 1시간, 내려올 때는 40분 거리가 됐다. 덕분에 단축한 시간만큼 잠도 더 잘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체중감량의 효과는 옷태에서 빛을 발했다. 무엇보다 옷을 입어도 배가 예전만큼 튀어나오지 않았다. 그전에는 와이셔츠를 입으면 단추 사이가 벌어지고 바지를 입으면 항상 배가 불편했었는데, 이제는 바지의 허리 사이즈도 주는가 싶더니, 심지어는 결혼 이후 몇 번 입어보지도 못했던 예복을 다시 입을 정도가 됐다. 덕분에 덩달아 다이어트의 의지를 다지는 아내.

이런 변화가 보이자 아내가 활동하고 있는 마을극단 아줌마들이 난리였다. 부디 산에 오를 때 혼자 가지 말고, 자기 남편도 같이 데려가라고 아우성이었다. 덕분에 난 남편들의 공공의 적이 됐고, 그들의 볼멘소리를 들어야 했다.

"비교적 자유로운 조직에서 일하고, 회사와 집이 5분 거리니 새벽 산을 다녀온 뒤 오전 9시까지 출근하지. 대한민국 어느 일반 직장인이 새벽에 산을 다녀와서 회사에 출근할 수 있겠는가."

우리 나라는 산밖에 없다
▲ 산 그리고 산 우리 나라는 산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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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당대교와 한강
 팔당대교와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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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산을 다니고 난 뒤 달라진 점은 둘째 아들의 시선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산들이는 아빠 어디 갔냐는 말에 늘 창밖으로 보이는 산을 가리켰다. 평소에 아빠 회사에도 자주 놀러 오는 녀석이건만, 내가 산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 녀석에게 아빠란 '늘 산에 있는 존재'가 됐다. 눈을 떠서 아빠가 보이지 않으면 창밖의 산을 보며 "아빠는 어느 산에 갔을까? 잘 가고 있을까?"를 읊조리는 아이.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지만 녀석의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니 그도 나쁠 것 같지 않았다. 아빠는 왜 맨날 회사 가냐는 소리에 돈 벌러 간다는 대답 밖에 하지 못했건만, 이제는 왜 산에 가냐는 질문에 여러 가지를 덧붙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자연이 아름다워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어서, 산의 정기를 받고 싶어서 등등. 이런 식으로 산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된다면 나중에 언젠가는 아들과 친구가 돼 함께 산을 오를 날이 오겠지. 나의 아버지가 내게 산에서 처음으로 친구하자고 하셨던 것처럼.

새벽 산행이 매력적인 이유

산란된 햇살
▲ 정상 직전 산란된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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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의 비상
 까마귀의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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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매번 같은 산, 같은 코스를 다니다 보니 산행은 자가 건강체크의 역할까지 했다. 조금이라도 피곤하거나 몸이 좋지 않으면 산행 시간이 늘어났고, 평소보다 자주 물을 찾게 됐다. 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더니, 등산 자체가 나에게는 일상의 건강을 체크하는 하나의 지표가 됐다. 심지어 다음 날 새벽 산을 가기 위해 마시는 술의 양을 조절하기까지에 이르렀다.

물론 새벽마다 산을 오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 역시 전날 술을 마셔 피곤하거나 비가 오면 좋은 핑계라며 아직까지도 한 숨 더 자고 싶어 하는 게 사실이다. 아직 나의 목표도 기껏해야 일 주일에 최소 두 번 산행 아니던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에게, 특히 유부남들에게 새벽 산행을 권한다. 그곳은 유부남이 한 번쯤 처자식을 버리고 가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공간이다.


태그:#검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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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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