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무>에서 선장 철주 역의 배우 김윤석이 3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해무>에서 선장 철주 역의 배우 김윤석이 3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배 한 가득 물고기를 싣고 선원들과 풍족함을 나눌 꿈을 안고 출항한 전진호는 짙은 해무 속에서 절망과 아비규환의 장소가 됐다. 그 배의 모든 걸 책임져야 했던 선장 철주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무너져 가는 가장의 모습이잖아요" 철주 역을 맡은 김윤석이 담담하게 말했다. 6명의 선원의 생계와 반평생을 함께한 배를 지키기 위한 투쟁은 영화 <해무>에서 아이러니하게 담겼다. IMF라는 시대적 아픔 속에서 삶을 연명하기 위한 분투로 바뀌었다. 물고기가 아닌 조선족 밀항자를 싣게 된 전진호는 영화 속에서 비극의 상징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배 위의 리더 철주의 선택은 정당했다?

김윤석은 철주의 가정을 배로, 가족을 선원들로 규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육지의 아내는 더 이상 경제적 활동이 정지된 남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가정을 함께 일구어 가려는 의지는 버린 지 오래다. 그저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아 자신이 운영하는 횟집에서 버젓이 잠자리를 하기 일쑤고, 그런 아내에게 철주는 무심하게 돈다발을 던져주며 지나친다.

"무너져 가는 가장의 모습을 표현하려 애썼죠. 마지막까지 배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죠. 돌아갈 곳이 없으니까요. (조선족 밀항 거래를 받아들인) 철주의 선택이 옳았는지 그의 리더십이 맞았는지 묻는다면 전 윤리와 도덕을 제치고 본다면 철주야 말고 가장 이성적인 인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철주 입장에서 전진호 안으로 뛰어든 수 십 명의 조선족 무리들은 그저 빨리 육지로 보내야 할 물고기들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사건은 젊은 여인 홍매(한예리 분)와 막내 선원 동식(박유천 분)의 감정에 불이 붙으며 얘기치 못하게 벌어진다. 젊은 남녀의 순수한 사랑이 선장의 눈에는 그저 불장난이며 배와 선원들의 운명을 망칠 요물로 여겨질 게 당연했다.

"동식은 그냥 하룻밤 쑥 빠져든 거예요. 그래서 철주가 홍매에게 소리치잖아요. '너 사람이여, 요물이여!'라고. 다른 선원들 각자 욕망이 다르게 표현되지만 선장은 배가 곧 욕망입니다. 조선족 밀항 일을 하게 된 것도 다 배를 살리려 한 거잖아요. <해무>를 통해 시대가 곧 죄인인지, 인간이 죄인인지 그런 화두를 던진다고 봤어요."

현장에서의 리더? "난 한 게 아무 것도 없다"

 영화 <해무>에서 선장 철주 역의 배우 김윤석이 3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선족 밀항 거래를 받아들인) 철주의 선택이 옳았는지 그의 리더십이 맞았는지 묻는다면 전 윤리와 도덕을 제치고 본다면 철주야 말고 가장 이성적인 인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이정민


김윤석은 특히 갈등의 발화점이 된 동식을 연기한 박유천과 상대 역 한예리에 대해 높게 평가했다. 극 중 철주처럼 현장에서 정신적 중심이 될 법했지만 오히려 김윤석은 "난 한 게 아무 것도 없다"며 "모든 배우들이 그 위에서 하나가 된 덕분"이라고 전했다. 

"박유천 군이 굉장히 잘했어요. 서른도 안 된 남자 배우가 그것도 데뷔작에서 그만큼 연기를 한 건 굉장한 거죠. 사실 전엔 그가 누군지 몰랐어요. 아이돌도 잘 모르고 특히 남자엔 관심이 별로...(웃음). 많은 악조건이 있었을 텐데 잘 해냈죠. 전혀 가르쳐준 게 없어요. 그냥 내가 이 작품에 몰입해가는 모습을 보이는 자체가 공부가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 에너지를 흡수해서 유천 군이 잘 파고들면 성공인 거죠.

최고의 앙상블이었어요. 누구하나 빠지지 않고 자기 배역을 잘 해줬죠. 한예리씨에게도 연기 얘기는 전혀 안했어요. 충분히 배우의 자세를 갖고 있는 친구더군요. 가장 연장자였던 문성근 선배야 당신 말씀처럼 진짜 시루떡처럼 조용히 계셨는데 그 자체 든든했고요. 함께 영화에 대해 상의도 했죠."

출렁이는 배 위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배우들의 연기적 호흡은 그의 말대로 손에 꼽을 만큼 좋았단다. 다분히 영화 촬영이었지만 공간적 특성상 연극 무대의 느낌도 났을 법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연우극단에서 공연한 동명의 연극을 각색한 작품이지 않았나.

"연극의 느낌이 날 수밖에 없는 게 갑판이 나무로 돼 있잖아요. 촬영을 하고 있으면 걸을 때마다 삐꺽 소리가 나는 게 마치 무대 위에 있는 거 같았죠. 실제 원작에 참여했던 배우 분들과 얘기는 못 해봤지만 보다 연극에선 사회적 메시지가 강했다면 영화 <해무>에는 좀 더 함축적으로 표현하려고 했어요."

"19금 영화 오히려 적극적으로 많이 찍어야 한다"


평범했던 선원들이 배 위에서의 살육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며 미쳐가는 이야기 때문인지 <해무>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개봉을 하게 됐다. 배우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도 있는 대목이나 김윤석은 "오히려 요즘 투자자나 배우들이 적극적으로 19금 영화를 찍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그러고 보니 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와 <황해>에 출연한 김윤석의 캐릭터는 <해무>의 철주와 일말의 유사성이 있어 보였다.

"시간이 많이 지나 스스로 제 출연작을 돌이켜 본다면 <황해> <화이> <해무>는 가장 자랑스러운 작품이 될 겁니다. 앞으로 제가 할 작품이 또 얼마나 많겠어요. 심지어 <황해>는 외국에 나갈 때마다 관계자들이 언급해요. 어떤 작품을 찍고 싶은지 누가 묻는다면 주저 없이 이런 작품을 꼽을 겁니다.

올 여름 개봉하는 블록버스터 중에 <해무>가 유일한 19금인데 흥행만을 위해 연령대를 낮추는 건 한국 영화의 우물을 말라버리게 하는 선택이라고 봐요. 다양성이 없어지는 거죠. 돈 만 생각한다면 중고생들도 보는 영화만 만들 수밖에 없잖아요. 앞날을 위해서라도 <해무> 같은 작품이 많이 나와야죠."

그런 의미에서 김윤석에게 좋은 작품이란 감독의 이름과 함께 출연하는 상대 배우 이름이 아니었다. "이야기와 캐릭터가 올곧아서 오래 기억되는 작품을 택하고 싶다"며 그는 "그런 작품을 보는 촉을 잃지 않고 싶다"고 말했다. 본래 한 해에 한 두 작품씩 집중해서 택하는 그였지만 올해는 좀 바빠졌다. 촬영을 끝낸 <타짜2>를 비롯해 영화 <쎄시봉> <극비수사>에도 출연하기 때문이다. "매번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새 옷을 입고 시작한다는 느낌을 가지려고 노력한다"고 김윤석은 나름의 비결을 언급했다. 새 캐릭터로 동력을 얻어 매번 자신을 리셋(Reset)하는 모습이 그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비법이었다.

인터뷰 말미 그에게 물었다. <해무>를 통해 누군가는 리더십을 읽어낼 텐데 김윤석 개인이 생각하는 올바른 리더십은 무엇인지 말이다. "영화는 영화로 생각해 달라"며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그는 짤막하게 덧붙였다. "더불어 사는 세상이 중요하죠. 그런 삶을 위해 이끌어 가는 게 올바른 리더십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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