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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새벽에 바라본 하늘과 금강송
▲ 금강송 새벽에 바라본 하늘과 금강송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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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하늘이 서서히 밝아올 무렵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 오늘의 날씨를 가늠하게 합니다.

그저 하늘과 구름만 있었으면 밋밋할지도 모를터인데 산등성이와 금강송 무리가 실루엣으로나마 밋밋한 풍경을 멋드러지게 합니다.

얼마전 작품사진을 찍겠다고 금강송을 베어내고 가지치기를 하여 물의를 일으킨 사진작가(?)를 떠올렸습니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고, 사는 방식도 다양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진정한 사진작가라면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지요.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 행동, 그것을 도 넘는 행동이라고 합니다.

허긴, 이 세상에 그런 일들이 하나 둘이 아니니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그런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을 만들기도 한 것이겠지요.

장모의 사위사랑이 흠뻑 담긴 이야기를 담고 있는 꽃
▲ 사위질빵 장모의 사위사랑이 흠뻑 담긴 이야기를 담고 있는 꽃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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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질빵이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여름에 만나는 하얀 꽃, '8월의 크리스마스'의 현현입니다. 사위질빵이 무리지어 피어있으면 하얀 눈이 소담하게 쌓인듯 하거든요.

사위질빵은 장모의 사위사랑이 듬뿍 담긴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질빵은 지게를 질 수 있도록 짚이나 질긴 줄기(칡넝쿨 같은 것)로 엮어 만든 일종의 끈입니다. 지게에 무거운 짐을 져도 끊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위질빵은 마디마디가 쉽게 끊어집니다. 그래서 사위질빵으로 질빵을 만들면 쉽게 끊어질 수밖에 없으니 사실 누구도 사위질빵으로 질빵을 만들지 않지만, 유일하게 그걸 만드는 이가 있으니 바로 사위를 사랑하는 장모입니다.

오랜만에 백년손님이 오셨는데, 논밭에서 힘들게 지게를 지고 일을 하는 모습이 안스럽지요. 그래서 사위지게에는 사위질빵으로 만든 질빵을 동여맵니다. 조그만 무거운 짐을 져도 질빵이 끊어져 버리니 사위는 그만큼 무거운 짐을 덜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 짐 무거우나 꼿꼿하게 걸아가는 것이 인생
▲ 인생의 짐 그 짐 무거우나 꼿꼿하게 걸아가는 것이 인생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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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장모님일 수 있는 할머니 한 분이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등에는 배낭을 매고, 머리에는 보따리를 이었습니다. 수건을 질끈 동여맨 머리 윗부분에는 짓누르는 보따리로 인해 머리아픈 것도 줄이고, 더위도 줄일 요량으로 칡덩쿨로 똬리를 만들었습니다.

제법 무거운 짐일터인데 걸음걸이가 힘찹니다.

꼬부랑 할머니에 주름 지고 힘겹게 짐을 지고갔었더라면 마음이 아파 차마 사진을 담을 용기도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근육도 단단하게 보였고, 걸음걸이가 꼿꼿해서 '나도 저 나이 즈음에 저런 단단한 몸일 수 있을까'하는 일종의 부러운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사실 마음은 조금더 편안했습니다.

척박한 삶이지만 결코 포기하는 법이 없는 것이 인생
▲ 바위틈의 생명 척박한 삶이지만 결코 포기하는 법이 없는 것이 인생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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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저마다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 있습니다.

누구의 인생이나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씨앗이 싹을 틔울 때, 어디에서 틔우고 자라는가에 따라 같은 종이라도 그 모양새가 다른 것처럼, 저마다 감당해야할 삶의 무게나 삶의 짐은 다릅니다.

자연에서 척박한 환경인 경우 더디게 자라지만 모양새는 더 멋드러집니다.
아마 사람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도가 넘으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인내할 수 있는 한계점을 넘으면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는 것입니다.

멋지지만, 멋지니까 그런 척박한 환경에 감사하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경외해야 할 점은 그것을 당연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아줘서 고마워'하는 것입니다.

어제는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합의안을 도출한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합의안이 나오자 유족들은 강력하게 반발했습니다. 최소한의 '도'가 그 합의안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 최소한의 '도'라는 것은 '수사권과 기소권'입니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이렇게 야합하는 것을 보니 단식 26일째를 맞이하고 있는 유가족을 아예 죽도록 내버려둘 심산인가 봅니다.

우리 모두가 사위를 사랑하는 장모의 심정이 될 수는 없지만,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배려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울진 불영사 경내
▲ 배롱나무 울진 불영사 경내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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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일상의 한 부분입니다.
평온해 보입니다. 그 안에 어떤 복잡한 삶의 정황들이 개인에게 있는지 모르겠으나 평온해 보입니다.

어제(8월 7일) 세월호 유가족들이 단식농성하는 광화문 광장에 들렀습니다.

그들의 절규와 그들을 지지하는 이들과 어떻게 해서든지 유아무야 세월호 침몰사건을 덮으려는 총체적인 국가권력이 맞서는 현장은 평온하면서도 아팠습니다. 일상이 아닌 것이지요.

누군들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말로만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겁박하지 말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도저히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들을 재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참으로 무능한 대한민국입니다. 그리고 무심한 대한민국입니다.

정치권뿐 아니라 이런 참사 앞에서도 덤덤하게 자기의 일상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이들, 심지어는 유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을 하는 이들 모두 무심합니다.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 행동, 그것을 도 넘는 행동이라고 합니다. 지금 정치권이 도넘는 행동을 하고 있지요. 그런데 이런 행동들이 만연하는데도 분노하지 않습니다. 남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저는 유가족의 증언을 들으면서 그들의 인내심을 존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행여라도 자신들을 지지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의 오해라도 없도록, 진실을 덮으려는 이들에게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 한 걸음 한 걸음 인내하며 나아가고 있습 니다. 진실규명이 당장이라도 되면 좋겠지만, 일년, 오년, 십년, 아니 혹시 우리가 죽은 다음에 진실규명이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이 걸음을 멈출 수 없습니다. 국민 여러분 4천만, 아니 3천만 명이 우리를 지지한다면 달라지지 않을까요?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기에 우리는 인내하며 천천히 가고 있는 중입니다. 도와주십시오(개신교연합기도회에 참석한 유족의 발언 중에서).

유족들이 짊어지고 갈 수 있는 삶의 무게(짐), 그것을 시험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구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만이 그들의 삶의 짐을 나눠지는 일입니다.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눠지는 것, 그것이 '도'라 할 수 있겠지요.



태그:#세월호 참사, #사위질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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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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