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경의 2014 신작 <괜찮아 사랑이야>

노희경의 2014 신작 <괜찮아 사랑이야> ⓒ SBS


드라마작가 노희경의 신작 SBS 수목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시청률은 완만하게 상승세를 타고 있고 여성 시청층을 중심으로 입소문도 퍼지고 있다.

한 때 '마니아 드라마' 작가라고 불렸던 노희경의 로맨틱 코미디가 나름대로 매력적으로 먹혀드는 모양새다. 마니아 드라마를 탈피해 "대중 곁으로!"를 표방한 노희경의 대중화 전략은 과연 얼만큼 성공할 수 있을까.

"재미있는 드라마는 사양한다"던 노희경의 등장

처녀작 <세라와 수지>로 강렬한 첫 인상을 남기며 한국 대중문화계에 등장한 노희경은 지난 20여년간 독특한 자기 세계를 구축하며 숱한 명작을 남긴 드라마작가다. <엄마의 치자꽃><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화려한 시절> <꽃보다 아름다워> 등의 가족극은 물론이거니와 <거짓말> <바보같은 사랑> <슬픈 유혹> <고독> 등의 멜로물까지 노희경의 작품은 세간에서 흔히 말하는 '드라마'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선악이 뚜렷하며, 고부갈등과 불륜 등 각종 양념은 기본으로 들어가야 시청률이 보장되는 현실에서 노희경의 드라마는 줄곧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따뜻한 시선,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는 과정에 집중했다. 불륜극을 쓰더라도 권선징악을 논하지 않았고 가족극을 쓰더라고 결혼과 고부갈등을 소재로 차용치 않았다. 그의 작품이 언제나 실험적이란 이유를 들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노희경의 드라마는 종종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마니아 드라마'라는 오명 아닌 오명 속에 그의 작품 대부분은 한 자릿수 시청률을 벗어나지 못했고 대중에게는 어려운 드라마, 재미없는 드라마로 낙인찍히기 일쑤였다. 이재룡-배종옥 주연의 <바보같은 사랑>의 첫 회 시청률이 1.8%였다는 사실은 노희경 드라마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예다.

이 시기 노희경은 이러한 시선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쏟아냈다. 그의 불만을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사람들은 드라마작가로서 내게 불만이 많다. 노희경의 드라마는 머리가 아프다, 재미가 없다, 대중성이 없다, 흥행성이 없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왜 난 그들의 말을 따라줄 수 없는 걸까. 사람들은 흔히 드라마란 대중을 위한 오락프로이며, 재미가 있어야 하며, 보고 나선 잊어도 좋은 것쯤으로 생각한다.

나는 시청자뿐만 아니라 작가들조차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묻고 싶다. 왜 드라마는 반드시 가벼워야 하는가? 그것이 드라마의 존재 이유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는가? 그건 편견이다. 드라마는 재미의 시간이 아닌 고민의 시간일 수도 있으며, 일회성이 아닌 영원성을 지닐 수도 있다.

어제도 오늘도 나는 강요받았었다. 남들처럼 재미있게. 죄송하지만 사양한다. 나는 드라마의 다양함을 추구하는 작가이고 싶다. 그래서 획일화되는 드라마의 구조를 조금만 흔들 수 있다면 내 도리는 한 것이다." (<노희경의 작가노트1-드라마는 왜 꼭 재밌어야 하나> 중)

이처럼 10년 전만 해도 노희경은 '인기 있는 드라마'에 대한 미련을 내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드라마는 소수가 즐기는 장르일 수도 있으며, 소수라 하더라도 몇 백만명이 보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덕분에 노희경은 시청률이란 평가에서 아주 자유로운 독특한 작가란 세간의 평을 얻었고, 방송사 또한 시청률 지상주의란 비판에 부딪힐 때면 전가의 보도처럼 노희경 드라마를 편성표 가운데에 끼워 넣었다. 적어도 노희경에게 대중이란 평생 가까이 할 수도, 가까이 해서도 안 되는 존재인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됐던 셈이다.

"드라마는 재밌어야 한다"는 노희경의 변신

 노희경의 변신이 돋보였던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노희경의 변신이 돋보였던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 ⓒ SBS


이랬던 노희경이 확실히 변했다. 데뷔 20년을 넘어선 지금 "대중 속으로!"를 외치며 대중 안으로 파고들고 있다. 각종 인터뷰에서는 시청률에 대한 목마름을 토로하고, 인기 있는 드라마를 쓰고 싶다는 말조차 서슴지 않는다. 과거 '마니아 드라마 작가' 노희경을 신봉했던 팬들에게 이 같은 그의 발언은 변신을 넘어서 배신으로까지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변신은 계속되고 있다.

전통적 콤비인 표민수와 호흡을 맞춘 마지막 작품인 <그들이 사는 세상>을 끝내 놓고 노희경은 이렇게 단언했다. "드라마는 재미있어야 한다". 10여 년 전 자신의 홈페이지에 써 내려간 작가노트 속 말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 셈이다. 이에 대해 노희경은 과거의 발언은 '어리석은 말'이었다고 정리했다. 젊은 시절 너무 위험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까지 이야기한다. 그가 쓴 책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유죄>에서 털어놓은 변은 이렇다.

"나는 요즘 드라마는 반드시 가벼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가벼운 게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앞의 글을 쓸 당시, 가벼움을 깊이 없다고 착각하고 있었다.…드라마는 왜 꼭 재미있어야 하느냐는 질문에도 나는 요즘 이전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드라마는 꼭 재미있어야 한다. 굳이 재미없는 걸 이 재미없는 세상에 쓸 필요가 있나 싶다. (중략)

사람들은 요즘도 내게 말한다. 남들처럼 재미있게. 그러나 나는 이전처럼 사양한다고 소리치지 않는다. 다만 '배우겠습니다'라고 말한다. 내가 가진 장점이 있다면 그걸 가진 채 다름 사람의 장점을 배우는 자세가, 내 것만을 고집하는 것보다 더욱 소중함을 알아차린 때문이다. 누굴 위해서? 나를 위해서."

이렇듯 재미있는 드라마를 쓰겠다고 다짐한 이 후, 그의 도전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들이 사는 세상>으로 트렌디 물에 처음 도전한 그는 2013년 송혜교-조인성을 투톱으로 내세운 <그 겨울, 바람이 분다>로 동시간대 시청률 1위 등극이란 기염을 토했고, 올해는 놀랍게도 그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꺼내들며 대중을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동시간대 시청률 3위로 시작한 <괜찮아, 사랑이야>는 탄탄한 고정 시청층을 중심으로 외연을 확장하며 방송 2주 만에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톱스타 조인성과 공효진의 출연에 여성 시청자들이 반응하고 있는데다가 예사 트렌디 물과는 다른 독특한 느낌이 작품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는 양상이다.

재밌는 것은 노희경이 단순히 트렌디 드라마의 범주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역시나 인간과 인간 사이의 치유와 극복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 속으로!"를 외쳤지만 그의 작가의식은 여전히 건드리기 힘들 정도로 견고해 보인다. 다만 포장은 좀 더 세련돼 지고, 이야기는 좀 더 쉬워졌으며, 고민하는 드라마가 아닌 재미있는 드라마로 변해간다는 점에서 그의 변신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괜찮아, 사랑이야>까지 끊임없는 시도를 통해 대중 곁에 파고드는 노희경의 도전은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까. 확신하기 힘들지만 그의 오랜 팬으로서 바라는 것이 있다면, 어느새 중견작가가 된 그가 품위를 잃지 않는 작품을 많이 써내려 가기를, 더해서 오랜 시간 시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훌륭한 작가로 남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드라마작가 노희경의 건투를 빈다.

노희경 괜찮아 사랑이야 그 겨울,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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