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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창읍성(사적 제145호, 모양성) 성곽 부분.
 고창읍성(사적 제145호, 모양성) 성곽 부분.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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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창읍성 진서루 일대.
 고창읍성 진서루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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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은 조선 단종 원년(1453년)에 외침을 막기 위하여 전라도민들이 유비무환의 슬기로 축성한 자연석 성곽이다. 일명 모양성이라고도 하는 이성은 나주진관의 입암산성과 연계되어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 만들어진 읍성이다.

1965년 4월 1일 사적 제145호로 지정된 이 성의 둘레는 1684m, 높이 4~6m, 면적은 165858m로 동·서·북문과 3개소의 옹성, 6개소의 치성을 비롯하여 성밖의 해자 등 전략적 요충시설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성내에는 동헌, 객사 등 22동의 조선시대 관아 건물이 있었으나 병화 등으로 소진된 것을 1976년부터 복원해 오고 있다.

윤달에는 돌을 머리에 이고 성곽을 3회 돌면 무병장수하고 극락 승천한다는 전설이 있어 지금도 부녀자들의 답성풍속이 남아있다.
-고창읍성(사적 제145호) 안내문 전문.

고창읍성(사적 제145호) 안내문 전문이다. 덧붙이면, 성을 쌓기 시작한 것은 세종 32년인 1450년이다. 완성까지 3년 걸렸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축조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며 숙종 때 이항(李恒)이 주민의 힘을 빌려 8년 만에 완성시켰다'는 설과, 1453년(단종 1)에 축조되었다는 설이 있다.

성벽에 '제주시(濟州始)', '화순시(和順始)', '나주시(羅州始)', '계유소축송지정(癸酉所築宋芝政)'이라고 새겨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계유년에 전라도의 여러 마을 사람들이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계유년이 어느 해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성벽축성법으로 보아 1573년으로 짐작된다(미디어 다음 백과사전 인용)'와 같은 글도 보인다.

고창읍성뿐일까. 관심을 두고 보다 보면 고창읍성처럼 설명이 제각각인 경우를 종종 보곤 한다. 또한 다른 시대에 비해 조선시대 관련 자료들은 많은 것으로 안다. 고창읍성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료가 있는 사적지다. 확실하고 일치되는 설명으로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하지 않을까. 잠깐 생각해 본다.

고등학생 때 찜 했던 그곳... 후배 덕분에 가게 돼

 성곽에서 본 고창읍성(사적 제145호, 모양성) 소나무 숲 부분.
 성곽에서 본 고창읍성(사적 제145호, 모양성) 소나무 숲 부분.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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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창읍성(사적 제145호,모양성)의 소나무 숲 일부.
 고창읍성(사적 제145호,모양성)의 소나무 숲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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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창읍성(사적 제145호,모양성)의 맹종죽 숲.
 고창읍성(사적 제145호,모양성)의 맹종죽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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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읍성(모양성)에는 지난달 31일에 다녀왔다.

내 고장의 문화재만큼은 알아야겠다고 마음먹으며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찜한 것이 고등학생 때였다. 그러나 혼자서 기차 한 번 타 보지 못하며 자란,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시골아이였던지라 용기를 내지 못했었다. 그러면서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최근에 아주 아팠었다는 후배가 전주에 있어서 병문안을 목적으로 간 길에 들르게 됐다.

몹시 더운 날이었다. 어찌나 더운지, 오전 10시쯤인데도 매표소 가기 전에 있는 신재효 생가를 잠깐 둘러보는 동안 눈을 뜨기 불편할 정도로 땀이 흘렀다. 조금 후 머리카락이 땀에 젖기 시작했다. 이렇게 지독한 더위를 온몸으로 느끼며 급하게 성안으로 들어갔다. 고창읍성에는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상을 탄 소나무 숲이 있다. 왠지, 숲에 들어가면 시원할 것이란 믿음이 생겼다.

믿음은 틀리지 않았다. 고창읍성의 소나무 숲길을 걷는 동안, 그리고 또 다른 나무들 아래에 있는 의자에 앉아 쉬는 동안 졸음이 쏟아질 정도로 시원한 바람이 온몸에 스며들었다. 때문일까. 눈에 띄게 북적일 정도는 아니지만, 인적이 끊길만하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간식거리를 싸 가지고 와 먹는 사람들도, 아예 의자에 길게 누워 낮잠을 즐기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고창읍성을 탐방하는 길은 여러 갈래다. 난 출입구인 북문을 지나면 바로 만나게 되는 왼쪽의 '옥(사)' 건물 옆에 난 산책길을 따라 걸었다. 관광안내소에서 물었을 때 그 길로 가야만 소나무 숲길을 가장 빨리 만날 수 있다고 알려줬기 때문이다.

읍성에는 소나무 외에 다른 나무들도 많아 전체적으로 울창한 숲을 이룬다. 그중 소나무가 가장 많은 곳은 내가 그날 걸었던 구간 중 '북문~옥(사)~진서루~성황사'까지다. 이 중에서 아름다운 숲 상을 탄 곳은 관청과 작청이란 조선시대 관청 건물 뒤에 있는 소나무 숲이다. 이 두 곳의 아름드리 소나무들은 두루미와 함께 연하장에 그려지는 소나무를 떠올릴 정도로 운치있었다.

고창읍성을 다녀왔다는 사람 중에 맹종죽 숲에 대해 말하는 이가 많았다. 그만큼 인기가 많은가 보다. 현재, 맹종죽 숲은 출입금지 구역이다. 그러나 아쉬워할 것 없다. 대나무 숲 둘레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도 대나무 특유의 서늘함을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좀 아쉽다면 출입금지 안내문 외에 이 맹종죽 숲 관련 안내문이 없다는 것. 이 나무들은 언제, 왜 심었을까? 고창읍성의 맹종죽은 어떻게 활용될까? 등이 궁금해 관리사무소에 문의했으나 사무소도 확실하게 알지 못했다. 이 궁금함을 풀지 못하고 와 아쉽게 남았다.

맹종죽 숲 관리자,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서 상 탄 사실도 몰라

참고로 이 맹종죽 숲은 객사 건물 인근에 있다. 참, 빠뜨릴 뻔했는데 관리사무소나 관광안내소에서는 고창읍성의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상을 탔다(제9회(2008년), 천 년의 숲 장려상)는 것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관련 안내판(문)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야 할 필요의 좋은 취지와, 숲의 가치가 덜 알려지는 것 같아 이 또한 아쉽기만 하다.

고창읍성은 성 밟기 놀이가 전래되어 오고 있다. 작은 돌 하나를 머리에 이고 성을 도는 것인데, 한 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바퀴를 돌면 극락승천한다는 전설이 있다. 지금도 음력 9월 9일인 중양절에 성밟기놀이(답성 놀이)를 재현하고 있다. 성 자체가 산비탈에 축성되어 성벽을 타고 산책 삼아 성밟기놀이를 즐기기에도 좋다. 성곽을 따라 거닐며 내려다보는 탁 트인  들판과 고창읍내 풍경이 일품이다.
-고창군 관광 안내책자에서

고창에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답성 놀이에 대한 이 전설은 고창 사람들 사이에 일종의 믿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고창읍성에 갔던 첫째 목적이 소나무 숲이었던지라 난 처음부터 소나무 숲을 향하는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그런데 걷다 보니 내가 걷는 길보다 바깥쪽이라 상대적으로 햇볕이 많은 성곽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이 더운 여름날 시원한 소나무 숲길을 놔두고 왜 땡볕 쏟아지는 길을 걷는 걸까? 전망이 시원해서인가?' 그들이 의아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고창읍성 관광안내소에서 얻은 안내책자를 보니 이런 부분이 보였다.

이 글을 읽으며 그 몹시 더운 날 상대적으로 훨씬 시원한 그늘진 길을 놔두고 성곽을 걷는 사람들이 떠올랐고, 동시에 아마도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이와 같은 믿음 때문에 그들이 땡볕 속을 걸었던 것 아닐까? 짐작해봤다.

 소나무 숲길에서 본 성곽길.
 소나무 숲길에서 본 성곽길.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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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7월 31일 현재 공사 중인 고창읍성(사적 제145호, 모양성)
 2014년 7월 31일 현재 공사 중인 고창읍성(사적 제145호, 모양성)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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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읍성에서 또한 눈여겨볼 것은 조선시대의 다양한 관청 건물들이다. 이중 내가 가장 관심과 기대를 가졌던 것은 객사였다. 그런데 공사 중이라 자세히 볼 수 없어서 마당에 서서 건물 전체 모습을 대강 살핀 후 와야만 했다.

참고로 객사는 공무로 고을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숙소를 제공하던 건물이다. 때문에 지방마다 뒀다. 이 객사에선 임금이 있는 한양을 향해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궐패)을 모셔 두고 초하룻날과 보름, 그리고 나라에 경사나 궂은 일이 있을 때에 임금을 향해 예를 올리곤 했다.

고창읍성의 객사에는 '모양지관'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고창을 예전에 모양고을이라 불렀고 고창읍성을 모양성이라 부른 데서 온 당호라고 한다. 객사 외에 관청과 작청, 향청, 동헌, 내아 등 조선시대 공무를 보던 다양한 건물들을 만날 수 있다. 비슷해 보이는 건물들은 그러나 용도에 맞게 저마다 다른 구조다. 건물 앞에 있는 안내문을 읽은 후 건물들을 관찰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고창읍성 매표소 가기 전에 있는 신재효 고택과 판소리박물관에도 다녀오기를 권한다. 이 판소리박물관에는 신재효의 유품들과 판소리 관련 1000여 점이 전시중이다.

고창읍성은 읍내에 있기 때문에 대중교통으로 쉽게 갈 수 있다. 정읍역까지 간 후 고창터미널로 가 고창군청 쪽으로 십분 남짓 걸으면 나온다. 서울에서 고창터미널까지 가는 버스도 있다.

개방시간도 새벽 5시부터 10시까지(겨울엔 5~8시까지)로 밤 나들이도 가능한 곳. 요즘처럼 몹시 더울 때는 밤에 찾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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