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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태양이 가장 뜨겁게 타오르던 날 아침, 엠마누엘 갈리엔느를 만났다. 카페 안마당에 앉아 있던 검은 머리의 동양인 여자를 금방 알아본 그녀가 장미처럼 눈부신 미소를 띠며 내게 다가왔다.

 엠마누엘 갈리엔느. 난민 청년들에게 무료로 프랑스어를 가르쳐주는 시민단체 콜론을 운영한다.
 엠마누엘 갈리엔느. 난민 청년들에게 무료로 프랑스어를 가르쳐주는 시민단체 콜론을 운영한다.
ⓒ 목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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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피해, 난민 신청을 하러 프랑스에 와서 외롭게 분투하던 예다[2014년 6월 6일자 '유병언 망명 거부한 프랑스, 이 남자는 왜 받아들였나']에게 무료로 프랑스어를 가르쳐주었다는 그분. 예다에게 들은 그녀의 이미지는 두 팔을 벌려 망망대해를 떠돌다 낯선 땅에 표류한 청년들을 품어주는 강인한 성녀의 그것이었건만, 내 눈 앞에 나타난 그녀는 등굣길에 마주치는 여느 학부모와 다르지 않은 인상이었다.

오히려 자신감이 배와 가슴 사이 어딘가에서 위태위태하게 튀어나올 것 평범한(!) 파리지엔느들과 달리 어딘지 수줍어하고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랄까. 가진 것이라고는 달랑 몸뚱이 하나뿐인 난민 청년들을 강한 팔로 안고서 그들의 새로운 삶의 길잡이가 되어주어야 하는 엄중하고도 고단한 임무를 자청한 이 사람. 어린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고, 따라서 영위해야 할 자잘한 개인의 일상이 있는 이 여린 외모의 여인은 어떤 방식으로 이 만만찮은 미션을 일상과 조화시켜 나가는 걸까. 그것을 가능케 해주는 에너지는 어디서 기인하는지 알고 싶었다.

오이디푸스가 난민이 되기 위해 머물렀던 그곳

그녀가 난민 청년들에게 무료로 프랑스어를 가르쳐주는 시민단체 콜론(Association Kolone)을 설립한 것은 불과 3년 전이다. 신생 시민단체들을 지원하는 기관을 통해 일주일에 다섯 번 공간을 지원받아 난민 혹은 불법체류 중인 청년들에게 무상으로 프랑스어를 가르쳐준다. 16~30세 사이의 외국인으로 자격 조건이 제한되어 있으나 주로 아시아나 아프리카 지역에서 온 18~25세의 청년들이 그녀의 수업을 듣는다. 수업은 간단한 테스트를 거쳐서 3단계로 수준을 나누어 진행한다. 꾸준히 수업에 들어오는 것 외에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없다. 주소도 신분증도 등록비도 그 아무것도.

40대 중반의 그녀가 이 길에 접어든 시간은 의외로 짧은 편이었다. 그전에는 오래 대학에 머물며 철학과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소포클레스의 고대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 왕>을 주제로 박사준비과정(DEA) 논문을 썼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삼은 오이디푸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비극적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고 천륜을 거스른 죄를 통탄하며 스스로 눈을 찌르고 장님이 되어 떠돈다.

안티고네의 도움으로 아테네에 다다른 그는 난민이 되기 전, 아테네 외곽의 작은 마을에서 아테네의 신들에 의해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의식을 치른다. 그에게 평화와 정갈하게 갈아입을 영혼의 새 옷을 건네는 그곳, 바로 콜론이다. 그녀가 만든 시민단체 콜론은 오이디푸스처럼 고향을 떠나 떠돌던 이들을 맞이하여 그들이 새로운 땅에 정착하기 위한 의식을 치르는 곳이다. 지친 영혼이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새로운 몸과 마음을 준비하는 평화로운 장소를 의미한다.

논문을 쓰기 훨씬 전부터 엠마누엘은 줄곧 '난민'이란 존재에 강하게 이끌렸다. 뿌리째 뽑혀 자기 땅을 떠나온 삶,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삶에서 그녀가 느끼던 강렬함은 합리적 설명을 거부하고 야릇한 태생을 지녔다. 전생에 오이디푸스의 어깨를 부축하던 안티고네이기라도 했던 것은 아닐런지. 이 미스터리한 끌림은 그녀의 논문 주제로 펼쳐졌고,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 그녀의 삶에 더욱 긴밀한 키워드로 자리 잡는다.

랑콤 사의 장미를 구하라

박사준비과정 논문을 마무리하고, 박사과정을 시작할 무렵, 첫 아이를 갖게 된 엠마누엘. 강도 높은 학업과 임신·출산을 병행할 수 없어 그녀는 학업을 잠시 중단한다. 대신 노동 강도가 높지 않은 일자리를 찾았고, 마침 친구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흥미로운 일거리를 제안했다. 로레알, 랑콤, 네슬레, 갈리마르출판사까지, 각 분야의 굵직한 기업들의 상품 홍보 문구·이미지에 대해 컨설팅을 해주는 회사였다.

이를테면 신상 화장품을 출시하기 전, 포장지에 어떻게 그 화장품을 소개해야 고객들이 그 상품을 집어들게 할 지 가상의 고객을 불러 미리 테스트해 본다. 상품 용기와 홍보를 위한 어휘 하나하나에 대한 전략을 제시하는 회사였다.

그녀가 처음 맡은 작업은 세계적인 화장품회사인 랑콤 사의 장미에 대한 보고서를 내는 것이었다. 랑콤 사는 그들이 수십 년 동안 사용해온 상징 '장미'에 대해 고민하던 중이었다. "이 장미를 너무 오래 쓴 것 아닐까" "이미지 쇄신을 위해 장미를 버려야 할 시점이 온 것 아닐까" "장미를 고수한다 해도 모양을 좀 모던하게 바꿔야 하는 것 아닐까"… 옷장 앞에 선 사춘기 소녀처럼, 자사의 트레이드마크인 장미를 놓고 고민하던 랑콤 사에 설득력 있는 해답을 제시해주는 것이 그녀가 맡은 첫 임무였다.

한 달 동안 그녀는 세상의 모든 장미를 로고로 하는 기업과 단체들을 찾아내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장미가 상징해온 의미와 알레고리들을 추적했다. 그것이 소비자들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분석하여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녀의 결론은 물론 '그 장미를 계속 유지하라'였다. 재택근무이기도 했거니와 제법 흥미진진한 작업인데다가 이 단순한 결론을 위해 회사가 지불한 대가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엠마누엘의 보고서에 만족한 회사의 대표이자 친구가 그녀에게 정식입사를 권했고, 엠마누엘은 이 낯선 세계에 발을 담근다.

난민에게 알 수 없는 매력을 느끼던 한 인문학도의 전혀 다른 세계로의 외도. 초반에는 제법 괜찮은 경험이었다. 일 자체도 충분히 재미를 느끼며 할 수 있었고, 자료조사와 보고서 쓰기에 익숙한 그녀로서는 별다른 노력이 필요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두둑한 보상은 자잘한 불만들을 덮고도 남았다.

그러나 입사 초반 한 달여의 여유를 갖고 인문학, 철학, 심리학의 영역을 넘나들며 다각도에서 소비자의 마음을 자극하는 언어의 조탁 실험을 할 수 있었다면 같은 일을 위해 주어지는 시간은 점점 단축되기 시작했다. 2주, 1주로 빨라지더니, 급기야는 사나흘 만에 답을 달라는 조급한 시달림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세기를 건너서면서 프랑은 유로화로 바뀌고, 대통령 또한 시라크에서 사르코지로 한 단계 더 우경화했다. 이 무렵 프랑스 사회는 급격히 의미를 내려놓고 과정의 즐거움을 축소하는 대신, 그 자리를 긴장과 압박, 단기적 효율로 채워갔다.

급기야 프랑스에 경제위기란 단어가 페스트처럼 상륙했고, 모든 사람이 그 위기라는 병에 감염된 듯 골골대기 시작했다. 위기의 실체를 본 사람은 없으나, 공기처럼 떠다니는 그 신종 어휘의 협박이 세상을 작동시키는 추가적 모터가 되었다는 사실만은 명확했다. 결국 대기업의 배를 불리는 데 기여한 덕에 흡족한 금전적 보상을 받게 된 것 이외에 이 일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게 됐다. 더 이상 그녀가 하는 일에서 어떤 즐거움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졌을 때, 그녀는 성급히 회사 문을 나선다.

대척점을 향해 전력질주하다

그 후로 약 18개월, 살기에 부족하지 않은 실업수당을 받으며 여유롭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아직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복지 시스템을 누리며 달콤한 시간을 누리던 엠마누엘은 자신에게 이러한 휴식을 제공해준 사회를 위해 유익한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래서 찾았던 것이 이민자·난민들을 돕는 시민단체 시마드(Cimade)였다. 약 1년간 자원봉사를 하면서 그녀는 자신이 목말라하던 모든 것을 되찾은 듯했다.

그곳에서 엠마누엘은 불안한 영혼들과 만났고, 그것은 그녀에게 불덩이처럼 후끈한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왜냐고 묻는다면 여전히 할 수 있는 대답은 없다. 그것은 그녀에서 알 수 없는 본능이 작동하는 영역이다. 그녀가 대학 시절부터 편집위원으로 활동해온 계간지 바까름(Vacarme)에서 쌓인 영향일 수도 있다. 파리고등사범(ENS) 학생들을 중심으로 90년대에 창간된 이 잡지는 정치와 예술, 학자와 운동가 사이에 다리를 놓고자 하는 진보적 계간지다. 엠마누엘은 초기부터 편집위원이자 고정 필자로 참여해왔다.

그녀의 오랜 열정이 직업으로 연결되는 순간은 예기치 않은 길목에서 찾아왔다. 시마드에서의 자원봉사 활동이 끝나갈 무렵, 실업 급여를 수급하는 동안 의무적으로 가져야 하는 고용안정센터 상담원과의 상담. 일자리에 대한 이러저러한 논의를 진행하던 중, 상담원이 "외국인들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쳐보면 어떻겠냐. 당신은 문학도 오래 공부했고,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니"라고 한마디 던졌던 것이 시작이었다. 멀리서 바라보며 감히 상상하는 데 족하던 그 세상에 두 발을 딛고 서는 도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길로 일자리를 알아보았다. 마침 파리 19구에 있는 청소년 문화공간 상카트르(Le centquatre)에서 외국인 청소년들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쳐줄 자원봉사 교사를 모집 중이었고, 엠마누엘은 바로 채용되었다.

파리 중심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인 19구에 새로 생겨난 이 공간은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모든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이다. 이 청소년들이 어느 날 맘 잡고 사회의 한 귀퉁이에 마음 붙여보려고 할 때 길잡이가 되어주려고 상시대기 중이다. 현대미술을 전시하는가 하면 서점, 카페테리아, 공연장 등이 갖춰져 있고 요가, 힙합 강습 등 다채로운 무료 강좌들도 운영한다. 거기에는 프랑스 청소년들도 있지만 이민자의 자녀들과 난민 자격을 얻기 위해 프랑스로 건너온 이들, 불법체류 중인 이들이 모두 뒤섞여 있다.

 청소년 문화공간 상카트르 내부. 엠마누엘이 무료로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곳이다.
 청소년 문화공간 상카트르 내부. 엠마누엘이 무료로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곳이다.
ⓒ 목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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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누엘은 자원봉사로 이들을 만나 프랑스어를 가르친다. 본격적으로 이들에게 '말'이라는 도구를 건네는 일이 그녀의 새 삶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이 길을 가기 위해 그녀는 곧 국제교육자센터를 통해 프랑스어 교사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소양에 대한 연수를 받았다. 이 일이 직업이 되기 위해서는 분명 그것으로 생활도 가능해야 한다.

그녀가 건너뛰어야 할 첫 번째 장애물이었다. 무료 프랑스어 교사가 되고자 하는 그녀가 찾을 수 있던 첫 번째 유급직장은 파리 근교의 한 공장이었다. 공장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채용하고 있었고, 이들이 적당한 수준의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것은 일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공장주는 이들에게 프랑스어를 배우도록 했고, 정부는 그 비용을 지원했다. 무료로 청소년들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일과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프랑스어 강의를 하는 두 가지 활동을 병행했다. 수입은 줄어들었고, 여기서 저기로 이동하면서 강의를 해야 했기 때문에 늘 시간에 쫓겨 허둥대야 했다. 그사이 엄마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아이는 둘로 늘어났다.

콜론의 탄생, 또 다른 역경의 시작

과연 이 일을 내가 지속할 수 있을까.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을 때, 시민단체지원센터의 한 직원이 그녀에게 그럴듯한 조언을 던졌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일하기보다 직접 단체를 설립해서 하고 싶은 일을 지속해보지 않겠냐. 운영은 지원금으로 해결할 수 있다."

자유와 독립을 한꺼번에 얻는 방법이 거기 있었다. 2011년, 시민단체 콜론은 이렇게 탄생한다.

그러나 시민단체를 만들고, 그 단체가 본래의 설립취지대로 사회의 공동선을 위해 기능을 하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순진무구한 것이었는지. 이곳저곳으로부터 채용되어야 하는 고단함이 이제는 이곳저곳으로부터 지원금을 얻어내야 하는 고단함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더구나 지자체나 정부가 복지예산을 나날이 긴축해가는 상황에서 신생 시민단체를 위해 큰 관용을 베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설립 첫해에는 간신히 파리 시로부터 연 2천 유로를 지원받았지만, 필요한 교재들을 사고 나니 한 사람의 한 달 월급 정도만 손에 남았다. 이때 생애 처음으로 생활보조금 수급자가 되기도 했다. 열정을 직업으로 치환시키는 데 치러야 할 비용은 너무도 컸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마음에 균열이 오기도 했다. 고단하고 캄캄한 나날들이었다. 바로 그 무렵 두 개의 문이 덜커덕 그녀 앞에 열렸다.

인종차별반대재단에서 그녀에게 거의 아무런 서류심사도 조건도 없이 덜컥 5천 유로를 지원해주었고(거의 조금밖에 돕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하면서), 홀로 프랑스에서 생활하는 미성년 외국인들을 돕는 지방자치단체의 기관에서 그녀에게 파트너십을 청해온 것이다. 미성년인 외국인이 혼자서 프랑스에서 살아갈 경우, 그들은 프랑스의 고아들이 받는 혜택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다.

세 명이 아파트에서 같이 생활하면서 한 달에 두세 번 그들을 돌봐주는 교육자를 만나 진로와 환경 등에 대한 논의를 나눌 수 있고, 학비와 생활비를 포함한 모든 경비가 18살까지 제공된다. 학업을 지속할 경우에는 21세까지 그들의 자립을 위한 경비가 제공된다. 그들은 프랑스 생활 첫 1년 동안 빠른 시간 안에 프랑스어를 배우고, 이듬해부터는 프랑스의 일반 고등학교에서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수업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빨리 프랑스어를 습득할 수 있는 도움이 필요했다.

이제 콜론은 70퍼센트가 지자체와의 계약사업을 통한 수입, 30퍼센트가 시의 지원금으로 돌아가는 재정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그녀는 여전히 생활보조금을 받지만, 지금은 협회에 와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다른 교사들에게 일정한 급여를 지급할 수도 있다. 고소득 컨설던트의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비로소 사회운동가로서의 일터를 구축하기까지 꼬박 5년이 걸린 셈이다. 이제 그녀는 좀더 풍성한 프로그램을 짜고 일의 범위를 확대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자극이 너무도 강렬해 지칠 겨를이 없다"

목수정(이하 목) : 당신은 모든 수업을 무료로 진행한다. 내 경험상 완전히 무료인 수업에는 잘 빠지는 경향이 있던데, 학생들이 충실히 수업에 참여하는가?

엠마누엘(이하 엠마) : 대부분의 강사들이 비슷한 경험을 하는데, 1월에는 항상 사람들이 많다. 그건 스포츠 강사건 프랑스어 강사건 마찬가지일 테다. 그리고 4~5월쯤 되면 사람들이 줄어든다. 우리는 아무런 설명도 연락도 없이 세 번 이상 무단결석하면 다시는 수업을 못 듣게 하는 규칙을 갖고 있다. 그런데 가끔씩 드문드문 오는 사람은 없다. 한두 번 빠지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영원히 안 나온다. 그리고 어떤 해든 열정을 가지고 처음부터 끝까지 완주하는 중심 그룹이 있다. 지금까지는 완전히 무료였지만, 내년부터는 협회가입비 조건으로 15유로 정도를 받을 계획이다. 수업을 시작하는 순간 자신의 선택에 약간의 상징적인 책임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목 : 지금에 이르기까지 순탄하지만은 않은 과정이었다. 그리고 당신이 늘 만나야 하는 사람들은 한도 끝도 없이 무한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언제까지 그들을 도와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인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 현실이 당신을 지치게 하지는 않았는가?

엠마 : 그들이 나에게 주는 자극이 너무도 강렬하여, 그들로 인해 내가 지치게 될 겨를은 없었던 것 같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하면서 만났던 학생들과 지금까지도 친구로 지내고 있다. 모두 열심히 자기 길을 개척했고, 자기 자리에서 눈부신 성장을 하면서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는 사이다(엠마누엘이 인터넷에서 지난해 가졌던 학생들과의 시(詩) 아틀리에 장면을 보여주었다). 수업을 진행하다보면 이들이 각자가 내면이 얼마나 고결한 존재인지, 우리는 이들에 대해서 얼마나 무지한지를 깨닫게 된다.

최근 몇 년간 아프카니스탄, 방글라데시에서 많은 청년들이 프랑스로 난민 신청을 하러 건너왔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그들은 식당 주방보조로 흔히 일하는 유색인들일 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들은 수많은 시들을 줄줄 암송하고, 그들의 내면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아름답고 성숙한 문화가 내재되어 있다.

한번은 그들에게 모국어로 우리가 함께 배운 글을 옮겨보도록 했다. 그랬더니 프랑스어로 더듬거리며 말할 때와 달리 그들의 태도와 눈빛에서 다른 것들이 흘러나왔다. 심지어 신체의 움직임마저 달라지는 것을 보았다. 이제 막 새로 접한 외국어로 표현할 때 우리는 뉘앙스를 충분히 실어서 말할 수 없다. 언어가 협소해지면 사람의 정신도, 더불어 몸도 움츠러든다. 그걸 보면서, 각자의 모국어를 말하고 서로 듣고 쓰고 보게 하는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지난 학기에 프랑스어로 된 오디세이의 에피소드 한 대목을 각자의 모국어로 번역하게 하여 그것을 낭독하게 했다. 그리고 각자 캘리그라피로 옮겨 적는 공동작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상카트르의 젊은 비디오아티스트 그룹이 동참하여 학생들의 작업을 영상물로 만들었다. 아틀리에의 제목은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 변신(métamorphose)>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난민으로 살아가는 몇몇 사람들의 상태에 대한 질문을 그들의 언어라고 하는 구체적 도구를 가지고 던져보는 작업이었다.

각자의 모국어에서 갑작스럽게 다른 언어로 옮겨가야만 하는 이들은 과거의 익숙하던 정체성을 던지고 완전히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 미끄러져 들어가야 한다. 각자의 모국어로 <오디세이>의 이방인에 관한 에피소드를 번역하여 낭독하게 한다. 그럼으로써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하나의 문학작품 속에서 만나게 한다. 동시에, 프랑스 땅에서 흔히 들을 수 없는 낯선 언어들을 듣고, 시각적으로 보면서, 이들이 겪어야 했던 이질적 문화 교차의 경험을 프랑스 사람들에게도 느끼게 하기 위해 이 작업을 진행했다(관련 영상).

 외국인 청년들과 함께 진행한 시 아틀리에 프로젝트를 비디오아트로 제작했다.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 변신(metamorphose)>.
 외국인 청년들과 함께 진행한 시 아틀리에 프로젝트를 비디오아트로 제작했다.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 변신(metamorphose)>.
ⓒ 목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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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 재미있다. 나도 파리에 처음 왔을 때, 내 모국어를 말할 줄 안다는 사실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 되고, 내가 구사할 수 있는 프랑스어의 범위 내에서만 사고하게 되는 충격적 체험을 한 기억이 있다. 한순간 정신연령이 10분의 1로 축소되는 듯한 답답함을 경험했다.

그 억울함을 얼른 극복하고 싶어서 하루 종일 모든 방법을 통해서 프랑스어 습득에 매진했다. 그때 동원한 방법 중 하나가 밤마다 시를 번역하는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프랑스어가 서툴던 그 시절에 시가 덥석 내게 다가왔다. 밤마다 프랑스어를 한국어로, 한국어를 프랑스어로 옮겼다. 이 세계와 저 세계가 또렷이 양손에서 만져질 때 비로소 두 개의 언어가 구체적으로 내 것이 되어가는 듯했다.

엠마 :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 이 친구들이 나와 프랑스어를 배우고 프랑스어로만 그들끼리 소통하다가, 어느 순간 각자의 언어로 그것을 번역하고 각자의 글자를 아름다운 캘리그라피로 소개하는 경험을 하면서, 채워지지 않았던 반쪽을 찾는 것 같다. 그들의 몸짓과 눈빛이 달라지며 서로가 서로의 문화에 대해 관심을 드러냈다. '변신'를 위해서는 양쪽의 세계가 모두 필요한 것 같다.

목 : 힘들었던 시절, 과거의 직장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유혹을 느낀 적은 없었나?

엠마 : 있었다. 경제적으로 답이 없다고 느꼈을 때, 아르바이트라도 해볼까 하고 재택근무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느냐 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답이 없었다. 다시 묻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방법을 찾았다. 사실 대기업들을 위해 일하던 시절에 나는 점점 위축되고, 내 의지로 개입할 수 없는 삶을 산다는 느낌에 사로잡혀갔다.

그곳에 있는 동안, 사회는 점점 더 무겁고 공격적으로 느껴졌고, 그럴수록 나는 더 무력해졌다. 급기야 견딜 수 없을 만큼 나를 둘러싼 환경에 의해 침식당한다고 느꼈을 때 그곳을 나왔다. 이후로는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운동의 영역에서 일하길 원했다. 나를 불안과 두려움에 빠뜨렸던 그 모든 것들, 개인주의와 불평등, 불의로부터 완전한 대척점에 서서 그것들에 대항하면서 살고 싶었다.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온전한 나를 회복할 수 있었다.

목 : 당신은 좌파인가?

엠마 : 그렇다. 나는 여전히 내가 좌파라고 느낀다. 문제는 프랑스에 더 이상 좌파라는 이상을 충분히 실현하는 만족스런 정당이 없다는 사실이다. 내 모든 좌파 성향의 친구들은 프랑스 사회당의 현재 모습에 실망하고 그 당을 부끄러워한다. 심지어는 그 당이 이제는 역사 속에서 소멸하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해서 극좌 정당에 가까워질 만큼 적극적으로 정당정치에 관심을 갖고 있진 않다.

목 : 그렇다면 당신에게 좌파란 무엇인가.

엠마 : 좌파는 소수자를 비롯하여 우리 모두가 함께 가지고 누려야 하는 권리에 대해 결코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다. 또한 정의롭게 작동하는 시스템과, 시장에 복종하지 않는 하나의 평화로운 유럽을 열망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지금 쉽게 반동주의자가 될 수 있는 시절을 살고 있다.

이런 시절에 좌파란, 지금까지 싸워 획득한 근본적인 권리를 양보하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사회적 권리, 보다 정의로운 사회는 그동안의 투쟁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열매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역시 좌파의 몫이다.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저항과 희망을 위한 분투에 세심하게 반응하며,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 또한 좌파에게 부여된 사명이다.

자본을 벗어나 비로소 만난 좌파적 삶

난민이 되어, 혹은 난민이 되길 희망하며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을 오디세이의 대서사 속으로 끌어들여 그들의 인격과 영혼을 고양시키는 엠마누엘. 그녀의 이야기를 듣노라니 갑자기 '천치'가 되어버린 듯한, 유배지에서의 낯선 시간을 극복하기 위해 간절히 시에 매달렸던 15년 전 기억이 밀려왔다. 시는 추락하는 자들을 부축하는 가장 신속하고 고결한 도구였던 것.

엠마누엘에 따르면, 좌파는 추락을 거부하는 사람이다. 좌파는 자신들이 수호해야 할 권리가 무엇인지 철저히 아는 사람들이다. 그 권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기억하고, 그것을 지킬 수 있는 무기를 단단히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의 존엄을 송두리째 부숴버리려고 달려드는 세력이 나타날 때 최전방에 선다. 그런 좌파들이 세상의 다수였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좌파로 불리는 것이다. 그들이 다수가 되는 순간 우파로 불리고 말 것이다.

몸이 움츠러들 만큼 심장이 오그라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시급한 치료는 존엄을 되찾게 해주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엠마누엘이 찾아낸 가장 효과적인 약은 시였다. 그것은 물론 음악일 수도 무용일 수도, 또 다른 무엇일 수도 있다. 단지 그 모든 것이 각자의 내면에 깃들어 있던 고결한 자아를 일깨워주기만 하면 된다. 존엄을 상실한 인간처럼 추하고 무서운 것은 없다. 노예가 되겠다고 권력자의 발밑으로 스스로 기어들어가는 이들은 자신은 물론 자식들까지 제물로 바치고도 여전히 머리를 땅에 처박으며 조아린다.

역설적이게도 엠마누엘에게 스스로가 지닌 좌파의 이성을 일깨워준 것은 바로 자본이었다. 자본가들이 돈을 미끼로 그녀의 손에 노예의 팔찌를 채우려 할 때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 멀리 달아났다. 그리고 본능처럼 저 먼 곳으로 달아나 자신을 가장 건강하게 복원시키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 힘은 문학과 철학, 인문학이 그녀에게 선사한 존엄 그리고 사유의 힘에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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