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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여행객이 1000만 명을 돌파했다는 홍보 문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제주도에 점점 더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요즘은 성수기·비수기를 따로 구분하기 힘들 만큼 제주 관광의 열기가 식을 줄 모른다. 특히 여름철의 제주 바다는 7~8월 내내 시장통처럼 북적거린다.

남국(?)의 섬 제주의 강렬한 태양과 코발트색 물빛, 그 환상의 바다에 풍덩 몸을 담그는 화려한 여름 휴가…, 여행용 케리어에 새로 장만한 수영복을 집어넣으며 그런 걸 떠올리면 가슴이 설레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은 약간 다를 수 있다.

우선 제주 날씨는 변화무쌍해 운이 매우 좋아야만 그런 환상적인 날씨 속에서 몰놀이를 즐길 수 있다. 기대와는 달리 먹구름 가득한 하늘 아래에서 사진이 우중충하게 나옴을 투덜거리거나, 튜브를 허리에 끼고 거친 비바람이 잦아들기만 기다려야 하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3~4일을 줄창 해수욕만 할 수도 없다. 사실은 하루종일 하기도 힘들다. 나머지 시간에는? 더우니까 돌아다니기 힘들고 냉방 잘 된 테마공원에서 쇼도 보고 맛난 음식 먹고…. 그렇게 3~4일을 보낸다.

사람에 휩쓸려 다니는 제주여행? 안타깝네요

그런 패턴의 제주 여행은 사실 안타까움이 좀 있다. 제주의 자연이나 문화나 생태가 얼마나 보석 같은지, 원시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 전혀 경험해보지 못하고 그냥 사람들에 휩쓸려 다니다가 떠나버리는 여행에 대해 삼자적 시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사실 여름철의 제주도는 물놀이 말고는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다. 갈 수 있는 곳도 거의 정해져 있다. 올레길부터 시작된 걷기 여행자들에겐 더욱 그렇다. 섭씨 30도가 넘는 여름날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의 걷기여행은 순례 혹은 고행이라고 할 수 있지 가벼운 트레킹이 되기 어렵다.

그래서 여행의 목적이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 조용히 걸으며 자신을 되돌아 본다'거나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편안한 휴식의 시간을 갖는 것'인 사람들은 여름철의 제주여행을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마음 편히 3~4일 여행 갈 수 있을 때라고는 고작 정해진 여름휴가 기간뿐인 도시인들에게는 여행할 수 있는 계절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겠다.

우리나라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여름의 제주도는 덥다. 해안마을은 섭씨 35도를 넘나드는 날이 많다. 그렇지만 비슷한 기온, 같은 더위라도 서울의 더위와는 살짝 느낌이 다르다. 시원한 바람이 자주 불어와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는 폭염을 잠시 거둬 가기도 하고, 에어컨에 배출되는 뜨뜻한 열기도 없어 불쾌한 느낌이 덜하다.

또한 해발고도가 높은 중산간 지역(해발 200~600m 구간)은 해안가보다 기온이 3~4도 가량 낮아 더위가 덜한 편이다.

한라산둘레길 트레킹을 아시나요?

장시간의 물놀이나 사람에 치이는게 싫은 당신, 조용한 '힐링'을 원하는 당신에게 추천할 수 있는 여름철 제주여행법이 없지는 않다. 제주라는 섬에 관심을 갖고 차분히 들여다보면 다양하고 좋은 여행테마들을 많이 찾아낼 수 있다.

그중 하나로 '한라산둘레길 트레킹'을 들 수 있다. 여름에 제주를 걷고 싶으면 무조건 숲길로 가야 한다. 그중에서도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울창한 숲길이 가장 좋다. 제주도엔 그런 숲길이 많은데, 깊고도 웅장한 그래서 한여름의 맑은 날이라도 음산함마저 느껴지는 숲으로는 한라산둘레길이 단연 압권이라고 할 수 있다.

한라산 둘레길은 한라산의 허리께(해발 600~800m)를 빙둘러 조성되고 있는 국유림 지대의 환상숲길을 말한다.

기존에 있던 '사려니숲길'을 포함해 현재 4개의 코스가 완성되어 있는데 각각 '돌오름길(거린사슴오름 ~ 돌오름 5.6km)' '동백길(무오법정사 ~ 돈네코탐방로 13.5km)' '수악길(돈네코탐방로 ~ 사려니오름 16.7km)'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코스는 현재까지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데, 내 생각으로는 한라산 중간을 동그랗게 완성되기까지 대략 8개 코스가 생길 것으로 예상한다.

 한라산둘레길 조성도와 수악길 안내도
 한라산둘레길 조성도와 수악길 안내도
ⓒ 한라산둘레길안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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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는 중문 윗쪽의 서귀포자연휴양림 부근에서부터 산록남로를 타고 동쪽방향에 있는 돈네코 탐방로, 사려니오름까지의 일대에 조성되어 있다. 그중 가장 최근에 조성된 수악길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수악길'은 돈내코 탐방로에서 사려니오름 입구 사이 16.7km의 구간으로 물오름(수악), 보리오름, 이승이오름 등이 분포하고 있다. 수악길 중간에 있는 신례천은 한라산 '사라오름' 남동쪽에서 발원해 '보리오름' 서쪽에서 합류하고 5.16 도로의 수악교와 수악계곡을 거쳐 남원읍 신례리로 흐른다. 수악계곡은 5.16도로 건너편 선들계곡과 함께 팔색조의 도래지로 알려졌다.

제주 숲길에 숨은 몇가지 '맛'

제주도의 숲길 트레킹에는 몇 가지 '맛'이 있다. 가장 좋은 맛은 '원시림을 걷는 맛'이다. 제주의 숲은 현실 세계와 이질감이 들 정도로 온갖 기화이초가 만발해있다. 남북의 식물계가 만나는 지점이라 다양한 식물생태가 펼쳐져 있고, 화산섬 특유의 원시덩굴이 엉켜있어(곶자왈이라고 부른다) 문명세계를 한참 벗어난 느낌이 든다.

또 다른 점은 지나칠 정도로 '고즈넉하고 조용하다'는 것이다. 아직은 사람이 많이 찾지 않아 '사람'을 거의 마주치지 않는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새소리와 내 발걸음 소리가 전부다.

'걷는 맛'도 좋다. 화산송이가 깔린 길이나 나뭇잎이 쌓인 길의 사그락거림이나 부드러움은 감칠 맛나는 촉감이 있고 발의 피로도 줄여준다. 그리고 거의 경사가 별로 없어 트레킹이 힘들지 않다.

'수악길'은 원래 코스길이도 상당한데다가(16.7km) 차가 다니는 도로까지 걸어 오는 걸 계산하면 20km가 넘는 거리다. 또한 중간에 있는 오름들은 돌아 나오려면 또 그만큼 거리가 추가된다.

그래서 나는 지난 7월 중순, 이틀에 걸쳐 수악길을 걷기로 했다. 수악길 중간을 가로지르는 5.16도로변 수악계곡 입구 주차장이 절반씩 걷기에 좋은 출발점이 된다. 사려니오름까지의 후반부가 오름을 세개나 포함하고 있어 시간이 훨씬 더 걸린다는 것을 참고하시라.

'진공상태'가 된 머릿속

 수악길 중간에서 사려니오름 방향으로 초입에서 만나는 숲
 수악길 중간에서 사려니오름 방향으로 초입에서 만나는 숲
ⓒ 임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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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오름부터 사려니오름까지의 후반부 코스를 트레킹한 날은 비교적 맑은 날이었다. 뙤약볕이 뒷통수를 말랑말랑하게 삶아대는 느낌도 숲에 들어선 순간 사라졌다. 숲이 울창하여 힛빛이 들어올 틈이 없다. 울창한 원시 숲과 용암이 식어내린 마른 계곡 지루할 틈없이 가끔 나타나는 봉긋한 오름들….

중간에 나무 등걸에 앉아 도시락을 까먹으며 터벅터벅 걷다보면 보이는 건 오직 녹색 세상이다. 잡념이나 번뇌는 어느새 사라지고 머리 속은 진공상태가 된 듯하다.

 이승이오름에서 바라본 전경
 이승이오름에서 바라본 전경
ⓒ 임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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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로 옆으로 삼나무가 창날처럼 뻗어있는 사려니오름까지 올라갔다오니 수악길 절반인데도 5시간이 넘었다.

 사려니오름 가는 길
 사려니오름 가는 길
ⓒ 임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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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려니오름 정상
 사려니오름 정상
ⓒ 임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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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날은 돈내코로 향하는 전반부 코스를 트레킹했다. 역시 제주도 아니랄까봐 날씨가 변해 온숲에 안개가 자욱했다. 밝은 날에 비해 숲이 음기에 점령당해 있어 마녀의 숲처럼 몽환적인 분위기였다.

이럴 때 보면 제주도 한라산은 여자의 산인 것 같기도 하다. 남자 신이 아니고 설문대할망이라는 여신이 제주도를 만들었다는 전설이 그럴 듯하게 떠오른다.

 돈네코로 가는 수악길 전반부 안개숲
 돈네코로 가는 수악길 전반부 안개숲
ⓒ 임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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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부는 딱히 오름도 없어 오로지 안개숲의 연속이다. 돈내코에 가까워지자 계곡도 나타나고 안개도 짙어졌다 잦아들었다는 반복한다. 똑같은 숲인데도 구간마다 밝기가 다르다.
오름이 없는 전반부 코스는 3시간가량 걸린다.

 안개에 쌓인 숲
 안개에 쌓인 숲
ⓒ 임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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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내코탐방로 가는 숲에서 만난 계곡
 돈내코탐방로 가는 숲에서 만난 계곡
ⓒ 임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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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가지 팁을 더 소개하자면, 한라산 둘레길은 각 코스가 입구와 출구가 다른 곳에 있다. 거리도 대략 5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다. 그래서 차를 2대 가져가면 편리하다(한 대는 출구 쪽에 세워두면 된다). 한 대로 가거나 버스를 타고 가면 교통편이 다소 불편해 택시를 부르는 게 낫다.

그리고 걷는 길은 환상인데 편의시설은 전무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각 구간 내에 화장실이 하나도 없다. 입구에서 화장실에 반드시 들러야 한다. 매점 같은 건 말할 필요도 없이 '없다'. 그래서 물과 도시락도 꼭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

역설적으로는 편의시설이 없는 편이 낫다는 생각도 든다. 원시림에 매점이 있다면 좀 이상하지 않을까. 하지만, 화장실이 없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

인간들에 치이는 게 싫은 당신. 숲으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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