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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정부가 제4차 투자활성화 대책을 내놓으면서 의료법인의 영리자회사 설립허용과 원격의료 등을 추진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박근혜 정부 들어 가장 주된 보건의료 이슈는 단연 진주의료원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 바로 다음 날인 2013년 2월 26일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서부경남권의 공공의료를 담당하고 있던 진주의료원에 대해 장기간 누적된 적자를 이유로 폐업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진주의료원 폐업을 둘러싼 논쟁은 공공의료의 역할에 대한 화두를 던졌고, 결국 도지사 말 한 마디에 사라질 만큼 취약하기 짝이 없는 공공병원의 민낯을 드러냈다.

지방 의료원 하나를 강제로 폐업시켜 버린 후과는 너무나 컸다. 특히나 '공공기관 정상화' 명목으로 진행되는 구조조정 압력은 국가와 지자체의 지원을 늘려 지방의료원이 본연의 공공적 역할을 충실히 담보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오히려 안 그래도 재정적으로 부실한 지방의료원을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로 내몰아버렸다.

진주의료원의 비극과 맞닿은 속초의료원의 직장폐쇄

7월 30일 보건의료노조 속초의료원지부의 기자회견
 7월 30일 보건의료노조 속초의료원지부의 기자회견
ⓒ 보건의료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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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방의료원이 경영위기를 핑계로 6년째 노동자의 임금을 동결했다. 의료원 측은 '과도한 인건비'를 문제 삼았다. 그러자 노조는 근무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노조가 요청한 도지사 면담은 이뤄지지 않았고, 공권력이 투입되었다. 그리고 사측은 기다렸다는 듯이 '직장폐쇄'에 들어갔다. 그리고 노조의 파업을 핑계로 입원환자들을 내쫓았다.

이는 지난해 폐쇄 되기 직전 진주의료원 상황을 재연한 게 아니다. 지난 30일자로 직장폐쇄를 단행한 강원도 속초의료원 이야기다. 속초의료원의 직장폐쇄 조치는 사실상 홍준표 도지사가 폐업시켜버린 진주의료원의 비극과 맞닿아 있다.

작년 2월 강원도는 2013년 의료원 경영개선대책을 발표했다. 의료수익을 의사 연봉액의 6~7배까지 늘리는 목표를 잡고, 성과에 따라 연봉을 감액하거나 심지어 의료원장을 해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속초의료원은 2012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지역거점 공공병원 운영평가에서 진주의료원과 함께 최하등급을 받은 터였다.

또한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강원도의 용역을 의뢰받아 진행하고 올해 4월 제출한 '강원도 지방의료원 발전방안 연구' 최종보고서에는 강원도 내 의료원에 대한 민간매각, 요양병원 전환, 이전 재배치 등의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일련의 대책(?)들은 지방의료원이 수익사업에 몰두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근거가 되었다. 속초의료원만 하더라도 경영개선대책 발표 이후 의료수입 증대, 부대사업 확대, 건강검진 사업 확대에 열을 올렸다. 본관 증축 리모델링을 하여 관절전문센터를 설치하고, 고성능 장비를 들이고, 장례식장을 확장했다.

작년 11월 강원도의 발표에 따르면 속초의료원은 전년대비 환자 수는 28,8%, 의료수익은 34.4% 증가했다. 시설과 장비가 늘어나는 와중에도 인력충원은 이뤄지지 않아 노동강도는 세졌지만, 임금은 그대로였다. 하위직인 8~9급 간호사나 의료기사의 기본급은 법정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했다. 체불임금은 13억 원에 달했다.

노사합의 파기 철회(노사는 2011년 임금인상을 약속했다), 최저임금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수준 개선, 체불임금 해결, 신축 이후 환자 증가와 병상 증가에 따른 인력 충원,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노조(전국보건의료노조 속초의료원지부)가 요구한 것은 지방의료원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것이다.

그나마도 노조는 파업을 철회하고 집중교섭과 면담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고 했지만 강원도 당국은 공권력의 폭력으로, 의료원 측은 직장폐쇄로 화답했다. 노조는 7월 22일 오전부터 경고성 시한부 파업에 들어갔지만 31일 업무에 복귀할 것이란 점을 사전에 의료원 측에 미리 알리고 적극적으로 교섭에 임해줄 것을 요청한 상태였다.

하지만 의료원 측은 30일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그에 앞서 25일에는 최문순 도지사 면담을 요구하며 강원도청을 찾은 노조 간부들을 도청 측이 경찰을 동원해 막았다. 항의하던 조합원 2명이 경찰과 마찰 끝에 다쳐 병원에 실려갔다.

공공병원의 존재 가치, 너무도 잘 아는 사실인데...

7월 29일 보건의료노조 속초의료원지부의 파업 출정식
 7월 29일 보건의료노조 속초의료원지부의 파업 출정식
ⓒ 보건의료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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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병원이 가진 사회적 역할이 민간병원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다. 분만실이나 응급의료센터처럼 수익이 나지 않는 진료과목을 설치하고,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나 신종인플루엔자와 같은 재난응급의료에 대한 대비를 갖추는 등 각종 보건사업을 시행하며, 표준진료를 제공하는 등 지역사회 보건의료에 기여하는 데 있어서 불가피하게 '착한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는 국가와 지자체가 책임지고 부담해야 하고, 오히려 지방의료원에 더 많은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진주의료원 폐업 국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던 정서였다.

속초의료원 홈페이지에서 원장이 밝히고 있는 것처럼 속초의료원은 '속초, 고성, 양양 등 영북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보살펴 왔으며, 지금도 이 지역의 유일한 종합병원'이다. 그런데도 직장폐쇄를 강행하고 120여명의 환자를 강제로 퇴원시킨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가 어렵다. 지방의료원에게 중요한 것이 지역주민의 건강권을 보장하고 표준진료를 제공하는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 해서든 적자를 내지 않는 것인가?

누군가 중요한 역사는 두 번, 즉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소극(笑劇)으로 반복된다고 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가 보여주듯 생명과 안전보다 이윤을 중요시하는 역사가, 지역주민의 건강을 위협하고 병원노동자의 삶을 짓밟으며 반복되는 역사가 소극일 수는 없다. 사람들은 진주의료원에 이어 속초의료원에 다시 한 번 공공병원의 존재 가치를 되묻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부장입니다.



태그:#속초의료원, #공공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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