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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노사관계를 다룬 박태주 박사의 새책
 현대차 노사관계를 다룬 박태주 박사의 새책
ⓒ 매일노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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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박태주 박사를 고용노동연수원 교수로만 소개하면 곤란하다. 박태주 박사는 노사관계 분야의 내로라하는 학자일 뿐 아니라(그는 현재 산업노동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훌륭한 활동가, 중재자(그는 현대차 주간연속 2교대제 자문위원회 대표를 맡았다)이기도 하다.

그가 자신의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은 최초의 저서 <현대자동차에는 한국 노사관계가 있다>(매일노동뉴스 펴냄)는 단순한 학술 서적이 아니다. 물론 숱하게 많은 국내외 학자의 이론이나 연구 성과들이 녹아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성격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지난 10년간 저자가 한국 사회의 '유형 설정자'인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 노사와 씨름하면서 주간연속 2교대제를 도입한 실천의 기록이다. 현대차 노사가 어떻게 뿌리 깊은 불신을 넘어 불황기가 아닌 호황기에 노동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렇다고 그의 관심이 주간연속 2교대제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현대차 노사관계의 제반 이슈들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낸다.

이 책은 서술 방식에서도 학술 저서의 성격을 넘어섰다. 자칫 건조해지기 쉬운 학문적 서술 방식에 집착하지 않고 고미숙씨의 인문학적 성찰을 활용하는가 하면, 루쉰의 금언과 공광규의 시, 심지어 손자병법과 예수의 가르침까지 인용한다. 저자 자신의 문학적 소양을 드러내는 듯 조돈문 '저주', 최병승 '유형' 등 화려한 문학적 수사들도 등장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편의 대하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저자의 '대중적 글쓰기'가 일정하게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거세지는 자동차시장 경쟁 

저자는 이 책에서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에 국한하지 않고 현대차 노사관계의 본질적 성격을 심층적으로 진단한다. 뿐만 아니라 노사관계의 '새로운 숨결'을 찾아 현대차 노사가 함께 번영할 수 있는 대안인 '글로벌 허브'(global hub) 전략까지 제시하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현대차 노조는 기업별 차원에서 임금인상과 고용안정 등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은 회사의 생산물량 확보를 위한 장시간 노동으로 이룩했다.

비정규직 확대와 협력업체에 대한 비용 절감을 묵인하는 노사 '담합'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현대차 노조는 산별교섭의 유명무실화,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소극적 지원을 통해 더욱 보수화되고 있다.

저자는 현대차의 생산범위가 세계화될수록 노조의 기득권은 취약해진다고 진단한다. 노동자의 고임금이 생산성 향상과 숙련으로 뒷받침되지 않은 탓이다. 결국 세계화로 인해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국내 공장의 고임금과 고용안정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러한 현실에 절망하지 않고 현대차 노사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대안으로 '글로벌 허브 전략'을 내놓았다. 국내 공장이 현대차 모공장(mother factory) 위상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고용안정과 경쟁력 제고'를 위한 한국판 기업 협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대차 노사는 어떤 선택을 할까.
 현대차 노사는 어떤 선택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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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협정은 현대차가 양적 성장 위주의 세계화 전략에서 국내 모공장에 기반을 둔 질적 성장을 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노조의 만성적 고용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윈윈 전략의 필요성은 증대된다.

글로벌 허브 전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사 모두 양보해야 한다. 회사는 고용안정을 보장하고, 노조는 생산성을 증대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전환은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기 위해서는 정규직의 내부적 유연성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2016년으로 예정된 완전한 8시간 교대제로의 전환이 현대차 노사가 보다 높은 신뢰관계로 발전해 갈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봤다. 기업 차원의 신뢰 형성 바탕 위에서 산별 노사관계로의 전환을 점진적으로 실현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갈림길에 놓인 현대차, 해법은 '글로벌 허브' 전략

그런데 저자가 제시하는 현대차 노사관계의 대안은 과연 실현 가능할까? 저자는 "노사 모두 '이대로는 안 된다'는 변화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차가 기존 성장방식으로 거둔 유례없는 성공을 감안했을 때 회사 측이 바뀔 가능성은 높지 않다. 따라서 현대차의 미래에는 두 가지 선택이 놓여 있다.

첫째, 지금과 같은 성공적인 세계화 전략의 '경로 의존성'에 입각해 노조 회피 전략을 지속하는 것이다. 현대차는 세계화 전략의 최대 수혜자다. 각 대륙에 건설된 현지 공장들은 최대 가동률을 자랑한다. 현지에서 생산된 완성차는 최고 수준의 생산성과 품질로 현지시장에서 선두 주자로 올라선 상태다.

현대차로서는 국내 공장의 낮은 생산성과 잦은 파업이 골치 아프긴 하지만 그럴수록 해외생산 비율을 높여 갈 것으로 예상된다. 노조가 건재한 국내 공장에 대한 우회적 회피전략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린필드에 건설한 해외 공장들이 성공적으로 가동되는 상황에서, 국내 노조와의 타협은 불필요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현대차 노조가 '저항적 실리주의'를 유지한다는 전제하에 현대차는 이러한 전략을 고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같은 세계화 전략이 지속되면 현대차와 국민경제 간 괴리는 확대될 수밖에 없다.

둘째, 현대차가 글로벌 허브 전략을 받아들이고, 노조를 포용하는 윈윈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다. 최근 중소형차와 신흥 시장을 중심으로 한 현대차의 성장전략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선진 완성차업체들이 중저가 제품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데다, 국내 시장에서도 수입차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다.

현대차가 장기적으로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노조를 포용하면서 작업자의 숙련에 입각한 고부가가치 제품과 하이브리드카 비중을 높여 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국내 공장을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는 글로벌 허브로 만들고 다른 해외 공장과의 분업관계를 조정하는 새로운 차원의 세계화 전략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노조와의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게 전제가 돼야 한다. 그러나 첫 번째 전략으로 성장을 계속하는 현대차가 위기에 직면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와 같은 전략을 선택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크지 않다.

현대차 노사, 과연 무엇을 선택할까

현대차 노조는 회사의 어떤 전략을 선호할까. 현대차 노조는 현재의 상황을 위기로 보지 않는 듯하다. 2000년대 초 해외 생산이 증가할 때 불안감을 느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국내 공장 생산물량이 줄어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해외 생산에 점차 무감각해지고 있다. 임금은 해마다 오르고, 노조 집행부는 경쟁적으로 보다 많은 '실리'를 약속한다. 요컨대 현대차 노조는 회사의 첫 번째 전략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것처럼 보인다.

조형제 울산대 교수(사회과학부)
 조형제 울산대 교수(사회과학부)
ⓒ 조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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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노동운동의 지속가능한 미래, 조합원들의 안정적 일자리를 진정으로 고민한다면 노조가 선택해야 할 전략은 자명하다.

더욱이 노동운동의 연대와 국민경제의 미래를 생각하면 다시 이야기할 필요조차 없다.

현대차 노조는 더 늦기 전에 비정규직과 하청업체 노동자까지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글로벌 허브 전략을 회사가 선택하도록 유도해 가야 한다. "현대차 노사는 모두 실패했다"는 저자의 절규가 현 시점의 노사 당사자에게만 아프게 들리지 않는 게 현실이다.

현대차 노사관계의 발전적 전환은 과연 이뤄질 것인가. 아니면 현대차의 위기가 현실화된 후 저자의 주장을 예언자의 기록으로 남기고 말 것이가.

필자는 자동차산업의 위기가 현실화하기 전에 현대차 노사가 글로벌 허브 전략으로 전환하기를 고대한다. 그리하여 박태주 박사가 제안한 것처럼 '글로벌 허브'로서의 현대차 국내 공장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노조의 '연대'를 실현하는 세계적 차원의 모범사례로 자리 잡기를 희망한다.

덧붙이는 글 | 조형제 기자는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입니다.



태그:#현대차, #자동차산업, #현대차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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