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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도 가려서 해야 한다.'

이것은 대학생활과 함께 시작된 다양한 아르바이트 경험으로 생긴 나만의 알바 신조다.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돈을 한 번 떼였기 때문이다. 두 달 일한 임금을 한 번에 몰아서주겠다는 업주의 통보로 임금을 받기까지 밥 한 번 사먹을 수 없었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성인으로서 책임감을 다하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린 이후 이때 처음으로 차비를 받았다. 부모님께 돈을 받았을 때의 그 창피함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날 이후 결심했다. '돈 떼일 곳은 가지 않겠노라'고. 그래서 최소한의 법은 지킬 것같은 대기업 산하의 아르바이트 현장만 찾았다. 그렇게 해서 일하게 된 곳이 바로 맥도날드이다.

지문인식기 찍고 출퇴근한 맥도날드, 감탄도 잠시...

매장 안 크루 휴게실에 붙어 있는 표어
▲ 우리가 맥도날드입니다 매장 안 크루 휴게실에 붙어 있는 표어
ⓒ 알바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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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법 준수를 예상했던 맥도날드는 오히려 법을 너무나 정확하게 지키려 해서 문제였다. 바로 '지문인식기' 때문이었다. 맥도날드는 아르바이트(아래 크루)들이 출근하게 되면 지문인식기를 통해 '출근했음'을 '기록'한다. 이미 한번 돈을 떼였던 경험 때문인지, 나는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가 일한 만큼 제대로 받겠구나. 출근과 퇴근시간이 이렇게 정확하게 기록되다니!'

허나 일하면서 이런 생각은 너무도 순진한 것이었음을 바로 알게 되었다. 고되기로 유명한 곳이 바로 패스트푸드 아르바이트다. 그래서 맥도날드에서는 이런 말도 나돈단다.

'아르바이트 처음 온 사람을 주의 깊게 관찰하라, 휴식시간에 밥 먹는다고 하곤 도망간다.'

생각보다 고된 노동에 '같은 시급이면 이런 일 안 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고된 노동에, 일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높은 강도의 노동을 강요하면서도 맥도날드, 롯데리아, 버거킹 등 대부분의 패스트푸드 기업은 5210원(2014년 기준)의 최저임금을 지급하고 있다.

나는 햄버거를 만드는 그릴(주방)에서 일하는 크루이다. 요즘같이 찌는 더위에 시원한 매장과 달리 그릴은 에어컨도 설치되어 있지 않아 찜통이다. 게다가 고기 굽는 기계에서 나오는 열기는 오히려 온도를 높인다. 그래서일까. 요즘 들어 그릴에서 일하는 크루는 정말 적다. 3명이서 해야 할 일을 2명 혹은 1명이서 한다(그릴에서 일하는 크루 숫자는 매장마다 다를 수도 있다).

이쯤 되면 햄버거가 늦게 나가는 것보다 마음 아픈 일이 생긴다. 당장 그릴에서 누군가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되면 남아서 일하는 크루의 노동 강도는 두말 할 것 없이 높아진다. 이 뻔히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 선뜻 휴식시간을 갖기가 어렵다. 휴식시간을 보내러 간다고 지문인식기에 찍고는 다시 그릴로 향한다. 쉬지 않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일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돕다가 잠깐 짬이 난 사이, 재빠르게 휴식에서 복귀했다는 지문을 찍는다. 한참 일하고 있는데 매니저가 내게 다가왔다. 그가 대뜸 하는 말은 이러했다.

"복귀, 너무 일찍 찍지 마. 1분이라도 덜 쉬었다고 찍으면 네가 그만큼 초과근무했다고 해도 임금이 책정될 수는 없으니까."

분 단위 임금 책정이 낳은 대기업의 '꼼수'

그 이유를 물으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맥도날드는 분 단위로 잘라서 임금이 책정된다. 때문에 몇 분이라도 일을 더 하면 단 몇 원이라도 임금이 더 들어가게 되어 있다. 4시간 일한 노동자에게는 법적으로 30분의 휴게시간이 주어지는데, 법적으로 정해진 '30분'이 아닌 '29분'을 쉰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있다는 것은 '법을 어기게 되는 셈'이라는 거다.

그러므로 법을 어기지 않기 위해 29분을 30분으로 고친다. 기계를 '리셋'하는 것이다. 매니저 말에 따르면, 웃기게도 몇 분을 더 초과해서 일했다고 해도 그 시간은 기록되지 않는다. '리셋'했기 때문이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힘들 것을 걱정해서 정작 1분도 쉬지 못했는데 말이다.

전세계 32개국에서 2014년 5월 15일 패스트푸드 노동자의 날 국제행동이 열렸다. 한국에서는 5월 15일 오전 11시 맥도날드 서울 신촌점과 부산 경성대점 앞에서 국제행동이 펼쳐졌다.
▲ 맥도날드 앞에서 열린 페스트푸드 노동자들의 집회 전세계 32개국에서 2014년 5월 15일 패스트푸드 노동자의 날 국제행동이 열렸다. 한국에서는 5월 15일 오전 11시 맥도날드 서울 신촌점과 부산 경성대점 앞에서 국제행동이 펼쳐졌다.
ⓒ 알바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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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5일, 맥도날드에서 일하는 세계 노동자들이 함께 파업을 했다. 한국에서는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IUF 한국가맹조직), 알바노조, 청년유니온이 맥도날드 서울 신촌점과 맥도날드 부산 경성대점 앞에서 '모든 패스트푸드 노동자의 생활임금과 당연한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및 퍼포먼스와 선전전을 진행했다.

이날, 이들은 너무나 법을 정확하게 지키는 맥도날드를 고발했다. 그러나 맥도날드는 묵묵부답이다. "본사의 지침이 아니라, 각 지점마다 업주에 따라 방침이 다른 것"이라는 말만 전해왔다(관련기사 : 세계 1위' 맥도날드의 '꺾기'를 아시나요).

법을 (형식적으로) 지키는 것 이상으로 '(본래 취지에 맞게) 제대로 지키는 것' 역시 중요하다. 작업장 마다의 특수성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에게 가하는 대기업의 '휴게시간 꼼수'는 본사의 '법대로' 원칙 때문에 생긴 문화가 아닌가. 그렇게 힘들게 휴게 시간까지 줄여가며 최저임금으로 일하는데 '일한 만큼이라도 제대로' 받고 싶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알바노조 조합원입니다.



태그:#알바, #아르바이트, #알바노조, #맥도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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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알바노동자들의 권리 확보를 위해 2013년 7월 25일 설립신고를 내고 8월 6일 공식 출범했다.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인 시급 10,000원으로 인상, 근로기준법의 수준을 높이고 인권이 살아 숨 쉬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알바인권선언 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http://www.alb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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