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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아, 오늘도 재밌게 놀다와."
"네, 다녀오겠습니다."

서동이를 차에서 내려주고 신호등을 잘 건너는지 지켜봤다. 빨간불이 초록불로 바뀌자 아이들이 건너가기 시작한다. 나는 멀리서도 아들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왜냐고? 바닥에 딱 붙어다니다시피 하는 애가 바로 내 아들이기 때문이다.

뱀탕부터 염소탕, 자라탕까지 먹는 아들

무거운 가방 메고 걸어가는 우리 아들을 뒤에서 보노라면 '닌자 거북이'가 떠오른다. 가방에 뭐가 들었는지 내가 들어봐도 무겁다.
 무거운 가방 메고 걸어가는 우리 아들을 뒤에서 보노라면 '닌자 거북이'가 떠오른다. 가방에 뭐가 들었는지 내가 들어봐도 무겁다.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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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이지만 키는 또래보다 머리 하나만큼 작다. 게다가 자기 몸집만한 가방을 메고 가는 모습을 뒤에서 보고있자면, 문득 일본 애니메이션 <닌자 거북이>가 떠오른다. 가방에 뒤통수가 반쯤 가려지고 엉덩이도 잘 보이지 않으니, 등에 칼집만 하나 메어 주면 딱 '닌자 거북이'다.

우리 아이들은 못난 아빠의 열성 DNA를 물려받았는지 유독 키가 작다. 첫째 아들은 키가 반에서 두 번째다(110cm, 20kg). 요즘은 살이 올라 좀 봐줄 만하지만, 예전엔 키도 작고 몸도 말라 주위에서 "어디 아픈 거 아니냐?"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둘째 아이도 키가 작은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또래 중에 평균은 된다. 그런데 몸무게가 문제다. 영유아검진차 몸무게를 측정할 때마다 애엄마는 의사선생님에게서 쓴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몸무게가 전국 하위 1퍼센트다. 지금 여섯 살인데 키 100cm에 몸무게가 겨우 14킬로그램 간신히 넘는다. 인스턴트 음식이고 뭐고 가리지 말고 먹여라, 지금 몸에 좋은 거, 안 좋은 거 가릴 처지가 아니다."

참 스트레스다. 한두 번 듣는 것도 아니고. 병원뿐만이 아니다. 어쩌다 친척들이라도 만날라 치면 처음 듣는 말이 그거다.

"애들 몸무게가 얼마나 나가느냐?"
"키는 얼마나 되느냐?"
"어디 아픈 데는 없느냐?"

부모인 우리라고 가만 있었겠나. 쇠고기를 비롯한 각종 육류와 몸에 좋다는 채소, 우유, 키 커지는 약까지 처방받아 먹였다. 뱀탕부터 보신탕, 염소탕, 로열젤리, 홍삼 등 주위에서 권유받은 민간요법만도 두 손으로 꼽아야 할 정도다. 그래도 진전이 없었다. 한 번은 동네 시장에서 자라탕을 할부로 긁었다. 상점 주인 말에 혹해서.

"자라탕 한번 먹여 보세요. 제 키가 160센티미터가 안 되는데 제 아들은 이거 먹고 지금 키가 180센티미터입니다."

매일 저녁 "먹기 싫다"는 아이 옆에 커다란 회초리를 준비시켜 놓고 강제로 먹였다. 그렇게 먹이기를 열흘 정도 하고 포기했다. 아직 어린 아이인데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을 강제로 먹으려니 고역이었을 거다.

물론 우리 부부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도 약국에서 권해 준 약을 먹이고 있다. 아이들 입맛에 맞게 조절해서 그런지 자라탕과 달리 잘 먹기는 한다. 그러나 효과는 어디 갔는지 도통 모르겠다.

애엄마와 나는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다. 육류도 좋아하여 때가 되면 한 번씩 고기 집에 들러 제대로 먹고 나온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고기를 왜 이렇게 싫어하는지. 무슨 사약을 받는 것도 아니고. 아내는 젓가락을 회초리 삼아 들고 회유와 협박(?)을 번갈아 한다.

"열 번만 먹자" 혹은 "이거 다 먹으면 장난감 사줄게" 이렇게 어르고 달래서 고기 몇 점 먹이는 게 전부다. 그리고 집에 오면 배고프다고 흰 밥에 짭짤한 김이나 된장국을 달란다. 그렇게 해서 먹는 양이라도 많으면 좋으련만 이놈들이 다이어트 하는 것도 아니고 밥 몇 술 뜨고 만다. 이러니 키가 크지도, 몸무게가 늘지도 않는 것은 당연지사.

키 작다고 놀림 당한 아들, 마음이 아픕니다

큰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지만 키는 또래보다 머리 하나만큼 작다.
 큰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지만 키는 또래보다 머리 하나만큼 작다.
ⓒ free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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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퇴근 후 집에 들어갔는데 애엄마가 얘기를 했다.

"오늘 서동이가 친구랑 싸웠대."
"왜?"
"친구가 서동이 보고 키가 작다고 놀렸나봐. 그래서 때렸대."

나는 아들내미에게 물어봤다.

"서동아, 친구랑 싸웠어?"
"예."
"왜 싸웠어?"
"친구가 내 키가 작다고 막 놀려요."

서동이 얼굴에 그늘이 지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나는 서동이를 꼬옥 안아줬다.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어느덧 아이는 커서 키가 작은 것에 상처받는 나이가 되버렸다. 나도 어릴 적부터 유난히 작은 키 때문에 자신감을 많이 잃고 내성적이 되었는데….

매스컴에서도 언제부터인가 '롱다리! 숏다리!'가 유행하더니만 한때는 키 작은 사람은 '루저'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외모로 그 사람의 내면까지 평가받는 사회 분위기에 나도 절망했던 적이 있다. 자존감에 상처를 입은 나머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어려웠다. 다시금 서동이를 꼬옥 안은 채 이렇게 기도했다.

'서동아, 키는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단다. 그것으로 인해 네가 세상을 두려워하지도, 증오하지도 않기를 바란다.'

요즘엔 아이들의 성장판을 자극시켜 주기 위해 태권도장도 보내고, 사범님에게 부탁해서 줄넘기 연습도 시킨다. 학교에서는 축구반에 가입시켰다. 다행히 두 아이 모두 운동을 좋아해서 태권도장 갔다가 집에 오면, 태극 3장이니, 4장이니 한답시고 발차기랑 손목 막기를 하느라 열심이다.

정상의 반대말은 '비정상'이 아니라 '독특함'이라는 말이 있다. 남들과 다름이 '틀림'으로 인식되어 비정상으로 불리는 분위기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 첫째 서동이 그리고 둘째 효동이도 '키가 작고 약해 보인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을까봐 마음이 아프다. 부디 아이들은 내가 지나온 전철을 밟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태그:#키작은 아이, #몸무게 적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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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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