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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동아시아는 전통적인 한미, 한일 동맹관계가 북중러 삼각관계와 대립하는 차원을 뛰어넘어 미국과 중국이 G2로 쟁패하는 가운데 일본과 북한이 접근하고 있는 양상입니다. 여기에 한국은 중국과 경제협력관계를 심화시키고 있는 복잡하기만 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에 코리아연구원에서는 <오마이뉴스>와 공동으로 격동하는 동아시아 상황을 진단하고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히기 위해서 6번에 걸쳐서 기획특집을 진행합니다. 독자여러분들의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최근의 북일관계는 우리에게 낯설다. 무엇보다 그 전개가 너무 빠르다. 일본에게 "마음대로 북한하고 이야기 하지 마"라고 말할 틈도 없이, 아베 신조 수상의 방북가능성이 거론되었다. 시기적으로 7월 3일 베이징에서 북한이 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설치를 발표한 이후의 일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아베의 방북은 이미 당연한 수순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좀 더 앞선 5월 28일 스톡홀롬에서 북일 간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일찌감치 형성되어 왔다. 한국에서 뒤늦게 아베의 방북 가능성이 특필된 것은, 이 합의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집중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스톡홀롬 합의 당시, 일본 외무성은 "납치문제 해결의 단초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했다. 그런데 실제 합의문의 내용을 보면, 해결의 대상을 ①납치희생자 재발견 및 귀국은 물론 ②북송자 가족 고향방문 및 귀국 ③해방직후 북한잔류 일본인 참배 및 유골반환 문제로 확장하고 있고, 이들 문제의 '포괄적 해결'을 약속하고 있다.

일본에게 반드시 유리한 합의라고 볼 수 없다. 북한이 납치문제 외 복수의 카드를 추가시킴으로써 문제 해결의 단계를 설정하고, 이를 통해 교섭상의 자율성과 시간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합의 내용을 뒤집어 보면, '납치문제는 이미 해결되었다'는 북한의 기존 입장이 이 시점에서 사실상 철회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말하는 납치문제 해결의 단초는 이 지점에 숨어 있다. 합의에 임하면서 북한은 납치희생자의 추가적 공표와 이들의 귀국을 준비해 놓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 점이 회담 이전 접촉 과정에서 일본 측에 전달되었을 것이 손쉽게 읽혀지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그 가능성을 인식하지 않고 움직였다고 보기 어렵다. 답은 이때 이미 나온 거다.

빠르게 변하고 있는 북일관계, 눈치 없는 한국 

박근혜 대통령,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5일 오후(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 미대사관저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 밝은 표정 한미일 정상 박근혜 대통령,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5일 오후(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 미대사관저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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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롬 합의 배경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통된 해석이 제출되었다. 북한 측의 의도에 대해서는 일본의 대북제재 해제를 통한 경제난 탈피와 한미일 공조 약화가 주되게 거론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아베 내각의 국내 지지율 상승이 주된 요인이라는 지적이었다. 여기에는 금번의 북일회담도 일회성이라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최근의 베이징 회담 직후에는, 한중 정상회담을 의식해 북한은 중국을, 일본은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접근했다는 해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북일관계는 결국 종속변수라는 분석이다.

이러한 습관적 평가는 2002년 평양선언 이후 제12차를 마지막으로, 북일 국교정상화 본 회담이 장기간 표류되어 왔던 것과 관련이 있다. 북일관계가 동결 상태에서 갑자기 급진전된 것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사실 납치문제와 제재해제라는 합의 패키지는 2008년 8월 북일 실무자급 회의에서 이미 합의된 사항이었다. 당시 후쿠다 수상의 퇴임과 더불어 백지화되었지만, 2011년 민주당 정권 시절 재추진의 시도가 있었다. 이 또한 동일본 대지진 이후 추진력을 상실했었다. 6년 만에 다시 스톡홀롬 합의로 부활한 셈이다.

그간 북일간 본 회담의 의제는 '북일국교장상화를 위한 작업부회(Working group)'에서 논의되어 왔다. 작업부회의 설치와 운영은 6자회담의 합의사항이다. 이는 북일 국교정상화 문제가 '북핵 문제'라는 틀 속에 위치해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회의구조는 이미 기능정지 상태에 있다.

반면, 북일 양국은 납치문제를 의제로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비롯한 다양한 수준의 공식 회담, 즉 정부간 회담, 실무자급 회담, 하이레벨회담, 포괄병행회담 등을 전개해 왔다. 스톡홀롬 합의 패키지를 부활시키면서는 평양선언 당시의 비공식 접촉루트도 부활시키고 있다. 그리고 베이징 회담 이후에는 양국 간에 핫라인까지 설치하기에 이른다.

물론 납치문제는 북일관계는 물론 6자회담을 교란시켜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현 시점에서 보면, 납치문제가 있기에 북일 양국은 자신들만의 의제로 만날 이유가 항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납치문제 이상의 것들이 논의되고 있다. 결국 과거엔 6자회담 등 국제적인 틀 속에서 북일 관계가 움직였지만 지금은 양국 간의 쌍무적인 이유에서 북일 관계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한국정부는 이러한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북한의 의도] 스톡홀롬 합의의 이면

북한이 의도하는 것은 일본의 제재 해제가 아니다. 북중교역이 결정적인 파탄에 이르지 않는 한, 굳이 현 시점에서 재재 해제로 현금을 얻기 위해 북한이 일본에 접근할 이유는 없다. 일본에 대한 북한의 경제의존도는 당초부터 교섭에 영향을 미칠 만한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번 회담을 제13차 국교 정상화를 위한 본회담으로 끌고 가려 한다. 돈 문제에 한정해서 말하면, 북중, 남북교역을 능가하는 대규모 북일 '경제협력'도 이 단계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이다.

일본에 대한 북한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이해하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부상하는 이면상의 거래가 보인다. 만경봉호 입항재개와 조총련 본부 매각문제가 그것이다. 만경봉호는 유일한 인적 물적 교류 및 교역의 합법적 루트이자 조총련에 대한 직접지도를 가능하게 하는 소통로이다. 이것이 막히면서 김정은 체제가 등장한 후에도, 조총련 의장은 평양에 입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북한의 대일접근은 모두 비공식화 되고 있고, 북한의 이러한 비공식적 접근은 일본에서 공작 활동으로 비쳐진다. 물론 북한의 입장에서는 대일 통일전선 사업이다.

조총련은 대일 통일전선 사업의 거점이기도 하지만, (준) 대일공관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해 왔다. 북일관계가 정상화에 접근할수록 후자의 역할이 확대된다. 그렇다면 일본에서의 현실은 어떠한가. 얼마 전까지 도쿄의 조총련 본부건물이 건설업체에 경매처분되어 있었다. 본부건물이 허물어지고 맨션이 지어질 운명이었다. 이 상황을 되돌리지 않는 한 북일관계는 일회성이 될 수밖에 없다.

조총련 본부건물의 매각결정 중지판결이 내려진 것은 베이징 회담 직전이다. 북한이 선뜻 '만족할 만한' 납치문제 조사위원회의 설치를 일본 측에 제시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물론 일본정부는 '법치'를 강조하며 총련 본부 매각문제에 대한 관여를 부정하고 있다. 만경봉호의 출항은 앞서 언급한 북송자 가족 문제 등의 '포괄적 해결' 속에 이루어질 것이다. 과거 재일동포 북송사업으로 북한으로 이동한 일본인 배우자 등 일본인 국적자는 7000명 가까이 된다. 이들의 방일을 허용하게 되면 도항 문제가 생긴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경봉호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일본의 의도] 납치문제, 재정의의 가능성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5월 15일 오후 도쿄의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집단 자위권 행사 용인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5월 15일 오후 도쿄의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집단 자위권 행사 용인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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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일본의 의도는 의심할 바 없이 납치희생자의 귀환이다. 베이징에서 북일 간 회담이 시작된 7월 1일, 일본에서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한 내각 결정이 세트를 이루었다. 그리고 3일 합의의 결과는 아베 수상의 입을 통해서 매우 극적으로 연출했다. 여기에는 분명 국내정치가 작동하고 있다. 아베노믹스에 대한 회의론이 비등해지고 있고, 무엇보다 개헌을 둘러싼 정치적 추진력이 약화되고 있다. 돌파가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여기서 납치문제는 아베 또는 그의 내각에게 유력한 정치적 자산이 된다.

그렇다면 아베는 납치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작정인가? 납치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공식입장은 모든 피해자 귀국, 진상 규명, 납치 실행범의 일본 인도이다. 하지만 납치문제와 관련해 북한 측이 주장해 온 '8명 사망, 4명 미입국'이 김정일의 유훈이 아닌 것처럼, "모든 납치피해자의 귀국"이라는 문구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정부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납치피해자들이 수백명에 달한다. 납치실행범을 찾아서 일본으로 보낸다는 말은 더더욱 리얼리티가 없다.

결국 현실적인 '납치문제 해결'의 재정의가 필요하며, 이는 일본 국내의 정치 과정에 의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납치문제 해결의 공식적인 수위를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아베 개인의 리더십이 결정적 의미를 가진다. 아베가 이 문제에 가장 강경한 입장이었기에, 역설적으로 그의 리더십은 정당성을 발휘하고 있다. 이에 더해 납치문제 해결를 둘러싼 국내여론의 압박 또한 과거에 비해 현저히 약화된 상태이다. 납치 문제의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가족회가 분열됐고, 이들을 지원하는 구출회도 분리됐기 때문이다.

'납치문제 해결→북일 국교정상화 본회담'이라는 흔한 도식은 더 이상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물론 북한이 어떤 성과를 내놓아도 일본 여론은 절대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 여론을 납득시키기 위한 조사는 조사결과가 아니라 조사과정에서의 투명성이다. 조사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대표단이 추가적으로 현장에서 직접 검증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을 하려면 결국 재13차 북일 정상화 본회담이 재개되어야 한다. 북한은 이 점을 보고 있다. 아베가 거기까지 갈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한국, 미국에 편승할 건가 북일에 직접 관여할 것인가

북일관계,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최근의 전개과정을 되돌아 보자. 연초에 적십자 회담이 있었고, 이지마 특사의 방북이 뒤를 이었다. 5월에 국장급 회담이 이뤄졌고 정부 간 회담을 거쳐 7월에 납치 피해자 조사가 개시됐다. 다가올 8월에 미얀마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북일 외교장관 회담으로 격상될지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9월이면 납치 피해자 조사결과가 나온다. 이것이 아베의 방북으로 이어진다면, 2002년 평양선언 당시와 완전한 데자뷔를 이룬다.

특히 9월 임시국회를 전후로 미일 가이드라인을 개정해야 한다. 소비세를 10%로 올리는 문제도 결정해야 한다. 뒤이어 오키나와 선거도 있다. 내년으로 넘겨서는 안 될 문제들이다. 내년에는 통상국회와 지방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모두 아베 정권의 지지율을 떨어뜨릴 요인들이다.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내각 결정하면서 이미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국면 전환용 카드가 반드시 필요하다. 일본은 9월에 집착할 것이고, 북한도 일본의 이러한 사정을 무시하기 어렵다.

일본 아베 총리의 방북과 대북 제재 해제에 대한 미국의 우려 전달을 보도하는 일본 NHK뉴스 갈무리.
 일본 아베 총리의 방북과 대북 제재 해제에 대한 미국의 우려 전달을 보도하는 일본 NHK뉴스 갈무리.
ⓒ 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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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새로운 변수가 더해졌다. 지난 7월 16일 캐리 국무장관이 전화통화를 통해 기시다 외무상에게 아베 총리가 방북하기 전에 "사전에 충분히 논의" 할 것을 주문했다. 미국이 간섭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아베가 방북을 추진했다는 점이 미국의 입을 통해 공공연해 진 셈이다. 이로써 전격적인 방북과 납치 피해자의 구출이라는 극적인 퍼포먼스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아베가 대북 접근을 본격화 하면서 미국과 긴밀한 논의를 생략했다는 점도 드러났다. 그만큼 쌍무적인 관계로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던 것이다.

아베가 방북을 접어둘 수는 있지만, 미국의 간섭이 있다고 해서 납치문제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의 메시지는 납치문제 이상의 것, 즉 북핵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허락받고 이야기하라는 것이다. 곧이어 한국 국장급회담 재개 등 한미일 공조가 가동했다. 뒤늦은 한미일 공조의 가동, 이 자체가 금번 북일관계의 특징이다. 한일관계가 그러한 것처럼, 북일관계도 구조변동 속에 있다는 방증이다. 이러한 변화를 방관하면서, 대립 속에 다가올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이하고, 북일 국교정상화 본회담의 진전을 지켜만 볼 것인가.

늦었지만 한국에게도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여러 선택지가 있을 수 있다.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며 미국의 입장에 편승할 수 있고, 미국을 부추겨서 아베의 방북과 북일회담을 유산시키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둘 다 쉬운 선택이다. 쉬운 선택을 할 경우, 결과적으로 납치희생자의 귀국을 기다리던 일본 여론의 강력한 비난을 받을 거다. 역사문제에 더해, 한일관계에 큰 상처로 남을 수도 있다. 북일관계에서 민족공조를 공공연히 주장했던 북한의 거친 욕설도 듣게 될 것이다. 통일 준비 이전에, 남북관계의 후퇴를 감수해야 한다.

박정진 교수
 박정진 교수
'아베의 야망'에 대한 경계가 과대평가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북핵문제에 있어 주도권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포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갑자기 할 일이 너무 많다. 납치문제 해결을 향한 북한과 일본 '양국'의 노력을 지지하는 동시에, 북핵문제에 대해 '전략적 인내'를 고수하고 있는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일본과 많이 대화해야 한다. 남북관계의 진전도 동시에 추진해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민족화해 2014년 7-8월호에 기고한 '남북, 한일, 북일관계 통합적으로 고려한 전략적 접근 필요'라는 원고에 기초해서 수정 보완한 것으로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립니다. 이번 기획특집에는 북일관계(박정진 교수, 일본쓰다주쿠대), 미국의 동북아 전략(이정철 교수, 숭실대), 중국의 한반도정책(주장환 교수, 한신대), 러시아의 극동정책(윤성학 교수, 고려대), 김정은 체제의 대외정책과 대남정책(장용훈 기자, 연합뉴스), 한국과 MD(김준형 교수, 한동대) 등이 참여할 예정입니다.



태그:#북일관계, #아베 외교, #스톡홀롬 선언, #조총련, #납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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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연구원은 통일외교안보, 경제통상, 사회통합 분야의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네트워크형 싱크탱크입니다. 아름다운 동행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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