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올여름 한국 영화 기대작 중 한 편인 윤종빈 감독의 <군도: 민란의 시대>(아래 군도)가 개봉했다. <군도>는 김한빈 감독의 <명량: 회오리바다>, 이석훈 감독의 <해적: 바다로 간 해적>과 함께 이른바 여름 시즌 '한국 영화 빅3'로 꼽히며 기대를 모았다.

기대작답게 <군도>는 개봉 첫날 약 55만 관객을 동원하며 개봉일 관객 동원 신기록을 세웠다. 개봉 첫 주에 벌써 누적 관객 수 300만 명을 돌파하며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군도>의 순조로운 출발로 '빅3'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도 더욱 커지고 있다.

왜 19세기는 '민란의 시대'였을까?

 군도는 탐관오리를 증징하고 농민들에게 쌀을 나눠준다.

<군도>의 의적떼는 탐관오리를 증징하고 농민들에게 쌀을 나눠준다. ⓒ 쇼박스


<군도>의 시대적 배경은 1862년, 철종 13년이다. 이 해에만 '진주민란'을 시작으로 전국 70여 곳곳에서 민란이 발생했다. 이를 통틀어 '임술민란'이라고 한다. 1862년 진주에서 시작된 '민란의 시대'는 1894년 '갑오농민전쟁'으로 이어졌다.

민란의 직접적 배경은 '세도정치'라고 할 수 있다. 세도정치는 왕의 위임을 받은 특정 가문이 권력을 장악하고 국정을 농단한 조선시대의 비정상적인 정치행태를 말한다. 세도정치는 순조 때부터 본격화되어 철종 말기까지 60여 년간 지속되었다.

정조는 죽기 전 측근 김조순에게 어린 순조를 보필하도록 부탁했다. 1802년 자신의 딸을 왕비로 앉히고 왕의 장인으로 실권을 장악한 김조순은 정부 요직에 안동 김씨 일족을 등용하여 국가를 좌지우지하였다. 헌종 때는 십여 년간 풍양 조씨가 권력을 장악했지만 철종의 즉위 이후 다시 안동 김씨가 득세했다.

세도정치로 특정 가문에 권력이 집중되면서 세도가들은 직위를 이용해 자신의 토지를 '면세전'이나 '은결'로 둔갑시켜 부를 축적했다. 은결은 정부의 토지대장에서 누락된 토지를 말하는데, 면세전과 은결의 확대로 국가 수입이 급격히 감소했다. 1807년 정부의 토지대장에 등록된 토지는 총 145만여 결이었지만 세금을 거둘 수 있는 토지는 84만 결에 불과했다. 면세전은 61만 결이나 됐다.

면세 혹은 탈세토지의 확대로 세수 부담은 고스란히 농민들에게 돌아갔다. 재정난에 허덕이던 정부는 먼저 거두어야 할 세금의 액수를 정한 후 지방 정부에 할당하는 방식으로 세금 징수 방식을 바꿨다.

이러한 세금 징수 방식을 '비총제'라고 했다. 농민들의 부담 능력이나 지역의 실태를 파악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세금 총액이 정해지고 세금 징수 권한이 지방 관리들에게 전적으로 위임되면서 '비총제'는 탐관오리들의 부정부패와 맞물려 가혹한 농민 수탈로 이어졌다.

<군도>에서 나주 목사 송영길(주진모 분)은 '환곡'(기근이나 춘궁기에 관청에서 곡식을 빌려주고 수확기에 돌려받는 일종의 구휼 제도)에 모래를 섞어 농민들에게 지급했다. 환곡에 겨, 쭉정이, 모래를 섞어 지급했다가 이를 백미로 돌려받는 수탈방식을 '분석', '백석'이라고 했다.

조윤(강동원 분)은 환곡제도를 교묘하게 이용해 송영길과 공모하여 농민들에게 쌀을 빌려주고 계약서를 조작해 농민들의 토지를 강탈하려고 한다. 이에 격분한 농민들이 도치(하정우 분)와 합세해 민란을 일으킨다.

이외에도 경작하지 않는 땅이나 묵은 땅에도 세금을 물리는 '진결', 실제 있지도 않은 땅에 세금을 물린 '백지' 등 수백 가지의 기상천외한 수법이 동원됐다. 조선판 병역비리도 심각했다. 이른바 '백골징포'라고 해서 죽은 사람의 군포(군적에 올라있는 장정은 병역을 면제받는 대신 베를 1필씩 납부했다)를 그 자손에게 물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외에도 도망자의 군포를 이웃에 물리는 '인징', 친척에게 물리는 '족징', 심지어 '황구 첨정'이라고 해서 갓난아이들을 군적에 올리고 군포를 받아내기도 했다. 이 같은 '삼정(전정, 군정, 환정 등의 세금정책)의 문란'으로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도처에서 민란이 횡행했다. 결국 세도정치에 외세개입까지 더해지면서 조선의 망국으로 이어졌다.

'민란의 시대'를 유쾌한 활극으로 보여주다

 윤종빈 감독은 세르지오 레오네 풍의 스파게티서부극을 차용해 <군도>를 통쾌한 활극으로 만들었다.

윤종빈 감독은 세르지오 레오네 풍의 스파게티서부극을 차용해 <군도>를 통쾌한 활극으로 만들었다. ⓒ 쇼박스


<군도>는 이러한 역사적 격변기를 흥미진진한 활극으로 재현했다. 서부극을 기반으로 장르영화의 작법과 관습을 차용해 다소 무거워질 수 있는 소재를 대중적인 오락영화로 만들었다.

윤종빈 감독은 세르지오 레오네 풍의 스파게티 서부극(영화의 절정에서 도치가 기관총을 난사하는 장면은 샘 페킨파의 <와일드 번치>나 세르지오 코르부치의 <장고>를 의식적으로 연상시킨다)을 기반으로 중국무협, 강탈영화 등 활극장르영화의 작법과 관습을 혁명적 서사극과 절묘하게 버무려 또 다른 매력의 사극을 빚어냈다.

<군도>는 일부 극적 구성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영화적 매력을 보여주는 풍성한 작품이다. 특별히 두드러지는 부분은 없지만 이야기, 인물, 볼거리 등 상업영화의 기본요소들이 모자라지 않는다. <군도>는 전반적으로 일정한 완성도를 보여주는 잘 만들어진 상업영화다. 서부극을 직접적으로 차용한 배경음악이 다소 이질감을 주지만 몰입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군도>는 강동원의 영화다

<군도>는 강동원의 영화다 ⓒ 쇼박스


특히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인다. 모든 출연진들이, 단역과 아역까지도, 평균 이상의 연기력을 보여준다. 하정우가 변함없는 안정감으로 중심을 잡고 이경영(맹추 역), 이성민(대호 역), 조진웅(이태기 역), 마동석(천보 역), 윤지혜(마향 역) 등 비중 있는 조연들은 각자의 매력으로 존재감을 지속시킨다. (이 점은 <명량>에서 류승룡의 활용법과 대비된다)

그 중에서도 강동원은 단연 돋보인다. 좀 과하게 말하면 <군도>는 강동원의 영화다. 이 점은 <군도>의 장점이자 또한 약점이기도 하다.

강동원이 돋보이는 것은 단지 빼어난 외모 때문은 아니다. 강동원은 한국 영화에 유일무이한 '아름다운 악당'을, 질투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황홀하게 창조해 냈다. 강동원의 매혹적인 복귀를 감상하는 것만으로 관객들은 상당히 만족스러운 체험이 될 것이다.

더욱 진지한(혹은 엄숙한) 관객들에게 '민란'이라는 혁명적 소재를 오락영화로 만든 윤종빈의 접근 방식이 다소 불편할 수도 있다. 아마도 가볍고 경박하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유쾌한 접근방식이 오히려 민란의 본질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민란은 유혈이 낭자한 폭력적 정치행위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인간의 역사적 행위 중에 가장 유쾌하고 통쾌한 활극이기 때문이다.

'민란'이라는 다소 무거운 소재를 유쾌한 활극으로 풀어낸 윤종빈 감독의 시도는 일단 성공적이다. 개봉 첫 주에 벌써 관객동원 300만 명을 동원하며 적어도 혁명적 서사극을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상업적 동력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군도>는 아직 궁궐 속에 갇혀 있는 한국의 사극영화를 저잣거리로 끌어낸 의미 있는 시도로 보인다.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지만 <군도>가 기록적인 흥행세를 이어가는 또 하나의 이유는 150여 년 전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영화임에도 요즘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경향도 있지만 반대로 현실 인식을 하기도 한다. 때문에 상업영화는 그것이 비록 시대극일지라도 현실을 투영할 때 대중의 폭넓은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조선을 망국으로 이끈 19세기의 세도정치는 지금 한국 정치의 양상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는 세도정치를 연상시키는 '측근정치', '정실정치'로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세도정치'라고 할 만큼 극소수의 비선 가신 그룹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른바 '7인회', '만만회' 등 소수의 측근들이 고위공직자 인선과 주요정책 결정에 개입하며 국정을 농단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은 막후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자질도, 능력도 없는 인물들을 정부 요직에 등용해 국정 공백을 초래했다. 이런 정실정치, 밀실인사는 연이은 인사 참사로 이어지면서 초유의 정치 희극을 연출했다. 

지금 국민들은 19세기 민초들과는 다르다. 당시 백성들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이들이 많았지만, 지금 국민들은 스마트폰과 SNS로 무장한 '집단 지성'들이다. 정보화시대에 20세기 방식의 언론통제와 공안통치로는 정권을 지속할 수 없다.

조윤이 계약서를 조작하여 농민들을 속이고 토지를 빼앗으려다 결국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처럼, 서투른 공작정치로 국민을 계속 농락하다가는 다시 '민란의 시대'가 올 수도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silchun615 에 중복 게재됩니다.
군도 윤종빈 강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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