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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입니까?"

이 질문을 턱하고 받아들면 입이 오물오물 금방 답이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의 여행학교 학생들은 이 어려운 물음에도 부지런히 대답한다. 대체 이 책의 주인공들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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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친절한 여행학교

학교라는 곳은 참 친절하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거나 공부하는 데에 걸림돌이 되는 것들은 모두 학교가 짊어지기 마련이다. 아이들이 수학여행이라도 가는 날이면 아이들이 안전하게 갈 수 있게 버스도 빌리고 미리미리 여행 계획도 뚝딱 만들어서 친절하게 아이들에게 선물한다. 아이들이 해야 하는 거라곤 그저 보호자 동의를 받아서 신청서를 제출하면 그만이다. 학교는 그렇게 항상 친절해왔다.

이 책에 담긴 여행에도 '학교'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여행학교. 얼마나 친절한지 학교라는 이름이 붙었다. 미리 준비하여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일정과 교통편, 숙박시설 등이 정해져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이 여행학교가 13명의 아이들에게 선물한 여행 계획에는 어딘지 빈 공간이 많다.

아니, 빈 공간뿐이다. 여행학교에서 준비한 계획은 한 가지.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의 이동계획이다. 도착한 도시의 어느 곳에서 잠을 자는지 어떤 밥을 먹는지 무엇을 구경하는 지는 설명이 없다. 게다가 이 여행학교의 공간적 배경은 우리나라도 아닌 그 이름도 낯선 '라오스'인데 말이다.

이렇게나 불친절한 학교가 또 있을까?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맞지 않는 라오스에 아이들은 그냥 툭하고 던져졌다. 여행학교 학생들은 해야 할 것도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없다. 비어 있는 부분은 학생들이 직접 만들어서 채워 나가야만 한다. 아이들은 과연 이토록 불친절한 여행학교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숨겨두었던 저마다의 날개를 펼치는 아이들

열세 명의 학생들
 열세 명의 학생들
ⓒ 양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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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에서 새롭고도 큰 도전을 하게 될 두 명의 스무 살과 열 한 명의 십대를 포함한 열세 명의 아이들은 세 개의 작은 모둠으로 나누어진다.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라곤 약간 모자란 듯 서투른 영어실력과 라오스에 관한 책 몇 권 그리고 일기장뿐이다. 그렇게 세 개의 작은 모둠이 모둠에서 쓸 돈과 함께 받아든 미션의 내용은 이렇다.

"지금부터는 모둠끼리 알아서 환전하고, 밥 사먹고, 각자 취향에 맞게 사원이든 미술관이든 시장이든 볼거리를 찾아다니는 거다? 알겠지?"

미션을 받아든 아이들은 그렇게 처음 스스로 길을 떠난다. 그 길에서 그들은 저마다의 날개를 펼치며 새롭고도 놀라운 이야기를 만든다. 그동안 하지 말아야할 것과 해야 할 것에 매여서 자신이 가진 날개를 잊고 살았던 아이들에게 선물한 빈 공간 투성이의 여행은 커다란 의미였다. 스스로 빈 공간을 채우면서 만들어낸 27일간의 이야기에는 자그마한 삶이 담겨있다. 행복도 웃음도 기다림도 걱정도 슬픔도 아픔도 모두 녹아 있다. 이 책 곳곳에 담긴 아이들의 일기장을 잠시 들여다보자.

[하영이의 일기]

산 위에 있는 사원에 갔는데 공사 중이라 법당 안에는 들어가 보지 못했지만 강아지를 만났다. 라오스 사람들이나 개나 고양이나 아기가 다들 순하고 다른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다. 메콩 강 반대편의 태국 땅을 보면서 든 생각인데, 이런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 생길 수 없을 것 같다. 욕심이 많은 것도, 타인을 경계하는 것도, 타인에게 불친절한 것도 결국 두려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메콩 강을 뒤에 두고 스쿠터를 타며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두려움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면 또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내가 보는 여기 사람들은 우리보다, 나보다 두려움이 훨씬 적다. 사원에서 만났던 강아지. 그 강아지도 곧잘 앉아서 눈도 맞추고 손바닥도 핥아주고 하는 게 정말 예뻤다. 사람은 자연을 닮고 사람과 사는 동물은 사람을 닮겠지.

[나운이의 일기]

오늘 기차를 타기 전에 한국 여행사에서 엄마와 통화를 했다.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었다. 통화하면서도 튀어나오는 '엄마의 자연스러운 잔소리.' 평소에는 엄청 싫었는데 오늘은 마냥 좋았다. 또 통화하고 싶다. 아빠에게는 다음에 전화할 기회가 있으면 해야겠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다.

[윤미의 일기]

이번 계획이 성공적이라는 것에 뿌듯했다. 코끼리를 탄 후 한국 식당 빅 트리 카페에 가서 한국 음식을 먹고 있는데, 남은 돈으로 모레 저녁까지 써야 된다는 걸 알았다. 내일은 석류 세 알로 세 끼를 먹겠다는 다짐을 하며 희경이와 엄청 웃었다.

생테우를 잠시 멈추고
 생테우를 잠시 멈추고
ⓒ 양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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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날개에 대한 이야기

2011년의 나는 이 여행학교의 학생이었다. 당시에 스무 살이었던 대학생 두 명 중의 하나가 '나'다. 여행학교의 학생으로 나는 두려움이 많았다.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들 그리고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환경. 처음으로 경험하는 일이었기에 모든 것이 두려웠다.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내가 왜 이 고생과 불편함을 감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처음 이 여행학교에 따라가겠다고 했던 나의 선택을 끝없이 후회했던 적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여행학교에서 보통의 삶에서는 받을 수 없는 선물을 받았다. 이 여행을 통해 나에게도 길을 떠나 날 수 있는 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변에서 나에게 쏟아지는 기대와 사회라는 이름으로 나를 조이는 좁고 답답한 환경 속에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꿈이었다. 한 달 남짓 되는 시간 동안 나는 기대와 환경을 벗어나 정말 자유롭게 날아올랐다. 지금의 나는 다시 옛날의 나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과 방향을 그저 따라가고 있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에게도 꿈을 가진 날개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 책은 나의 날개에 대한 이야기이며 당신의 숨겨진 날개에 대한 이야기이다.

[2011.01.29. 나의 마지막 일기]

시간이 많이 지났다. 나 역시 성숙해지고, 무르익는 김치처럼 맛이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껏 해외여행을 세 번이나 했지만 여행사에서 마련해준 숙소, 음식, 관광 루트를 쫓아다니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번 여행, 내 네 번째 여행은 하얀 종이 위에 내 마음대로 색을 칠하고 그림을 그리며 여행했다. 정말 후진 숙소에서 잠도 자보고, 다른 나라의 음식을 경험해보겠다고 팍치(고수)도 잔뜩 넣었다가 구역질도 해보고, 길을 잘못 들어서 1분 거리를 한 시간이나 헤매기도 하고. 편하게 패키지 여행을 했다면 겪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다. 언젠가 이 일기장을 보면서 이날을 추억하면 내 얼굴에 미소가 번질 것 같다. 내가 살아가면서 반달을 수백 번 보겠지만 오늘 반달은 너무도 아름답다. 내 생애 최고로.

인천으로 돌아온 날을 기념하며
 인천으로 돌아온 날을 기념하며
ⓒ 양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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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입니까?"

이 책에 담긴 한 달 남짓의 여행학교에서 저마다의 날개를 펼쳐 보이는 아이들을 보며 먼지가 쌓여있을지 모를 자신의 날개를 꺼내어보는 것은 어떨까.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 열세 명 어린 배낭여행자들의 라오스 여행기

김향미 지음, 예담(2013)


태그:#라오스, #예담, #여행학교, #양학용, #김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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