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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우 씨(계룡시청 근무,6급)
 조성우 씨(계룡시청 근무,6급)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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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 마디 한 단어를 머릿속으로 되새김한 후 내뱉았다. 신중함과 불안감이 교차했다. 조성우(54·계룡시청 공무원·6급)씨.

80년 공직을 시작한 후 천직이라고 생각했던 공무원 생활에 균열이 생긴 건 2년 전(2012년) 이맘때였다. 출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서다 기다리고 있던 경찰청 보안과 직원들과 마주쳤다. 난생처음 압수수색을 당했다. 집안 구석구석은 물론 자동차, 근무하던 계룡시청 사무실과 보름 전 근무지였던 충남도청 사무실까지.

인터넷 언론사에서 퍼온 북한의 군사력 및 미국 관련 기사와 칼럼을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옮겨 실은 게 문제가 됐다. 경찰과 검찰은 이적표현물이 다수 포함돼 있다며 그에게 국가보안법위반(찬양 고무) 혐의를 적용했다. (관련기사: 33년차 시청 공무원은 왜 면사무소로 좌천됐나 , "블로그에 '펌글' 게재했다고 보안법 위반?")

"검경이 왜 제멋대로 '이적표현물' 딱지 붙이나"

이후 경찰조사와 검찰조사, 지리한 법정 공방... 지난 24일 대전고등법원은 그에게 1심에 이어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그는 "공직생활을 그만두고 싶다"고 되뇌였다. 말단공무원으로 수십 년간 일해 온 자신을 공안당국이 '적을 이롭게 한 위험인물'로 지목한 데 대한 충격과 회의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조씨는 "공안당국이 이적표현물이라고 지목한 대부분의 글이 아직도 해당 국내 인터넷 언론사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실려 있다"며 "왜 다수가 보는 언론사에 실려 있을 때는 문제가 없는 글이 몇 사람 찾지 않는 개인 블로그에 옮겨 놓는 순간 이적표현물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기자가 확인한 결과 검경이 '이적표현물'이라고 지목한 조씨의 블로그에 실린 글 중 대부분(70건)이 해당 인터넷신문에 그대로 게재돼 있었다. 경찰과 검찰이 자의적 판단으로 '이적표현물' 딱지를 마구 붙였다는 반증인 셈이다.    

조씨는 "특히 검찰이 충남도공무원 노조에 가입희망서를 보낸 메일까지 이적단체 활동의 근거로 제시했고 압수수색 후 블로그 글을 삭제하자 '증거 인멸'로 몰아붙였다"고 황당해 했다.

그는 "대선을 앞두고 당시 이명박 정권의 실정 등을 비판한 칼럼과 기사를 블로그에 게재, 괘씸죄를 적용, 국가보안법으로 엮어 손을 보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권력과 힘이 정의로 포장된 사회의 모습에 자괴감을 느낀다"며 "형이 확정되면 미련없이 명예 퇴직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2심 무죄 판결이 있은 다음 날인 지난 25일 그가 일하는 두마면사무소에서 나눈 주요 인터뷰 요지다.      

"무죄판결 당연... '이적표현물' 인정 아쉽다"

조씨에 대한 1심 판결문. 충남도청 공무원 노조에 가입신청을 한 것은 인정되나, 공무원노조를 이적단체라고 볼 만한 근거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조씨에 대한 1심 판결문. 충남도청 공무원 노조에 가입신청을 한 것은 인정되나, 공무원노조를 이적단체라고 볼 만한 근거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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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심에 이어 지난 24일 2심에서 각각 무죄를 받았다. 소감은? 
"공안당국이 언론사에 공개된 기사나 칼럼을 개인 블로그에 옮겨 놓은 것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수집, 반포혐의를 적용했다. 이에 대해 법원이 무죄판결한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적표현물이 아님에도 경찰과 검찰의 자의적 주장을 받아들여   '이적표현물'로 규정한 것은 매우 아쉽다" (법원은 조씨가 게재한 글이 '이적표현물'에 해당하지만 '이적 목적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 기자 주)"

- 경찰과 검찰은 끝까지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해 왔다. 기소까지 될 줄 알았나?
"압수수색을 당할 때도 무엇을 잘못했다는 것인지 전혀 몰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경찰이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압수수색을 당한 후 변호사를 선임했다. 변호사도 '기소할 사안이 아니다'고 장담했다.

그런데 피의자 신분으로 바뀌면서 담당수사관이 이미 기소는 확정됐고 '대검과도 충분한 사전협의를 했다'면서 '반성문을 쓰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도록 선처 의견을 내겠다'고 회유했다. 기소를 전제로 수사를 한 것이다. 반성문을 거부하면서 '기소를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변호사도 경찰조사 자료가 검찰로 송치되기 한 달 전부터 '기소를 막기 어렵다'며 스스로 사임했다. 다행히 다시 선임한 1심 변호사의 노력으로 무죄를 이끌어냈다."

- 요구하는 대로 '반성문'을 쓰지 않은 이유는?
"어처구니도 없었지만 스스로 한 점 부끄러움이 없었다.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을 뿐 북한을 이롭게 하려는 생각을 한 적은 추호도 없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때 수사기관 요구대로 반성문을 썼더라면 오히려 혐의를 모두 인정한 것으로 둔갑됐을 가능성이 크다." 

"압수수색 이후 블로그 글 삭제하자 '증거인멸' 혐의 적용 "

- 처음부터 검찰의 공소 내용이 '황당하다'고 말해왔다. 어떤 점이 납득하기 어려웠나?
"전부 다다. 우선 인터넷 언론에 공개 게재돼 있는 기사와 칼럼을 개인블로그에 옮겼다고 이적표현물 수집, 반포혐의를 적용한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다수가 보는 언론사에 실려 있을 때는 문제가 없던 글이 왜 몇 사람 찾지 않는 내 블로그로 옮기면 이적표현물이 되느냐 말이다.

호기심에서 북한 조선중앙통신에서 제작한 동영상을 우리나라 사이트에서 메일로 링크를 걸었지만 재생하지 않고 삭제한 적이 있다. 그런데 보지 않고 삭제한 것까지 공소사실 증거물로 채택했다. 동영상에 메일로 링크한 것이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한 일'인가. 뿐만이 아니다."

- 공소내용 중 또 어떤 점이 황당했나?
"압수수색 당한 후 개인 블로그 글을 문제 삼는 경찰 수사관에게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물었다. 그 경찰이 '알아서 하라'고 했고, 압수수색을 통해 경찰이 이미 증거물로 확보한 뒤라 삭제했다. 그런데 나중에 공소장을 확인해보니 이게 '증거 인멸'이 됐다.

충남도청 문화산업과에 근무할 때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감염돼 관련부서에서 수리한 적이 있다. 경찰은 이를 임의로 사무실 컴퓨터를 포맷, 증거를 인멸했다고 덮어 씌웠다. 계룡시에 근무하면서 충남도공무원 노조 가입희망서를 메일로 보낸 바 있는데 이것까지도 이적단체에 가입하려 한 불순한 의도를 가진 근거로 몰아붙였다."

- 이 일로 직장 내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왜 없었겠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라 다들 피해가 미칠까봐 경계하며 가까이 하지 않으려 했다. 억울하다고 어필했지만 수사기관이 압수수색에 기소까지 한 상황이라 내 말을 믿으려하지 않았다. 그나마 <오마이뉴스>에서 자세히 보도해 많은 도움이 됐다."

- 경찰과 검찰이 왜 이렇게 무리한 수사를 했다고 생각하나?
"블로그에는 북한 관련 기사 글 외에 4대강 사업, 미국산 수입 쇠고기 문제, 한미FTA, 용산참사, 민간인 사찰, BBK 관련 등 이명박 정권의 실정 등을 분석한 칼럼과 기사가 많이 들어 있었다. 말단 공무원이지만 정권을 비판하는 글을 블로그에 게재한 일에 괘씸죄를 적용, 국가보안법으로 엮어 손을 보려 한 것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실제 미국산 수입 쇠고기, 한미FTA 등 문제를 비판하는 메일이 검찰 수사자료에 포함되어 있다. 내 블로그에 게재한 전체 3573건 중 이적표현물로 지목된 글은 84건에 불과하다."

"MB 실정 비판 글 게재에 괘씸죄 적용 손 보려한 것"

지난 2012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조성우씨의 공소장
 지난 2012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조성우씨의 공소장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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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어려웠던 점은?
"역시 공직 내 분위기였다. 직장 상사는 나에게 '그렇게 북한이 좋으면 북한 가서 살라'고 호통을 쳤다. 또 다른 상급자는 '그 사람들에게 돈(공작금) 받았냐'고 물었다. 서운하고 섭섭했다. 게다가 이 일로 충남도에서 계룡시로 온 지 두 달 만에 면사무소로 좌천성 인사 조치됐다. 승진에 연연하지 않아 개의치 않았지만 많이 외로웠다."

- 앞으로 계획은?
"만약 검찰이 상소를 포기해 이대로 무죄가 확정된다면 올 가을쯤 미련없이 명예퇴직해서 새로운 삶을 살려고 한다. 그렇다고 무슨 일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것은 없다.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재판까지 받았다. 어떤 생각이 들었나?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국가보안법이 국가안전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만 가려내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국가관이 투철하다고 자부해왔다. 지난 2011년에도 충남도지사와 제32보병사단장으로부터 안보관이 투철하다고 표창도 받았다. 하지만 고생하며 느껴보니 국가보안법이 아니라 정권보안법이란 생각이 든다."

- 끝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권력과 힘이 정의로 포장된 사회의 모습에 자괴감을 느낀다. 국가보안법으로 개인과 가정을 희생시킨 일이 결국 정의실현을 위한 일로 둔갑되었다. 앞으로 공권력이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정의롭게 사용되기를 간절하게 희망한다."


태그:#국가보안법, #계룡시청, #조성우, #이적표현물,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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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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