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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24일 자 <조선일보> A14면(사회면) 톱기사는 "의료민영화 수순" "전체 병·의원의 2%뿐"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조선일보>가 이렇게 제목을 뽑고, 보건복지부 공무원의 입을 빌어 웅변하고자 한 것은 최근 의료민영화 논란의 핵심 쟁점으로 부각된 '의료법인의 자회사 설립' 허용 사안이 범야권과 시민사회의 '의료민영화 수순'이라는 비판과 달리, 사실은 '전체 병·의원의 2%에 불과한 사안'으로 의료현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주장이다.

이 기사에서 복지부의 담당과장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국내 전체 병·의원 6만577개 가운데 의료법인이 운영하는 곳은 1203개로 약 2%이며, 나머지 98%는 지금도 별 제한 없이 부대사업을 할 수 있고 자법인 설립도 가능하기 때문에 형평성을 위해 의료법인에도 허용하는 것이다. 병원급만 따져도 전체 병원 3422개 가운데 의료법인이 운영하는 곳은 999개로 29%에 불과하다. 나머지 71%는 자법인 설립에 제한이 없어 서울대병원도 '헬스커넥트' 같은 자회사를 갖고 있다."

그런데 위의 주장은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교묘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의원급 의료기관은 의사(치과의사와 한의사 포함) 개인이 설립하는 동네 개인의원으로 의료법에 의해 개설이 인정되는 의료기관 유형이다.

이것은 의료법 상 의료행위를 하기 위한 의사 개인의 진료 공간으로 자본시장의 투자자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는 영리자법인 설립 허용 논란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러므로 앞서 복지부 과장이 언급한 병·의원 6만577개 중에서 의원 2만8000여 개, 치과의원 1만5000여 개, 한의원 1만3000여 개 등은 여기서 빼야 한다.

제헌절인 17일 오후 2시. 대전지역 3만여 세대 협동조합인들이 대전시청 북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의료민영화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조연 한살림대전생협 이사가 인도를 지나는 시민들을 향해 의료민영화 반대에 나설 것을 호소하고 있다. (자료사진)
 제헌절인 17일 오후 2시. 대전지역 3만여 세대 협동조합인들이 대전시청 북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의료민영화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조연 한살림대전생협 이사가 인도를 지나는 시민들을 향해 의료민영화 반대에 나설 것을 호소하고 있다. (자료사진)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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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실질적으로 논란이 되는 것은 '종합병원과 병원'이다. 2013년 9월 현재, 종합병원은 282개인데, 이중에서 의사 개인이 운영하는 곳은 69곳이다. 병원은 1438개인데, 이중 의사 개인이 운영하는 곳은 전체의 2/3에 해당하는 966곳이다. 그런데 의료법상 병원은 병상 30개 이상 100개 미만의 소규모 의료기관이다. 그러므로 이들 병원이 우리나라 의료체계에 미치는 영향은 비교적 작은 편이다.

문제는 1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들이다. 이들 종합병원들 중에서도 비교적 규모가 큰 의료기관들은 거의 대부분이 비영리법인 종합병원들이다. 최근 자회사와 관련해서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들 비영리법인 종합병원들이다.

영리법인 종합병원 전성시대 열릴 가능성 커

복지부의 터무니없는 통계 장난과 달리, 1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 282개 중에서 의사 개인이 운영하고 있는 곳은 69곳이며, 나머지는 국공립 또는 비영리법인 종합병원들이다.

이들 비영리법인 종합병원들이 영리자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되면 69곳의 개인 종합병원 중의 일부도 의료법인으로 전환할 할 수도 있고, 바야흐로 돈벌이에 혈안이 된 비영리법인 종합병원의 전성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크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터무니없는 통계 장난이나 일삼고 있는 보건복지부나 이를 이용하여 여론을 호도하려는 일부 언론이나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앞서 복지부 과장이 말한 대로, 현재 서울대병원은 '헬스커넥트' 같은 자회사를 갖고 있다. 이는 다른 주요 대학병원들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의료법인들과 달리 서울대병원 등 대다수의 대학병원들이 학교법인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학교법인은 별도의 법령에 의해 이미 영리자회사의 설립이 허용되어 있다. 그래서 서울대병원은 학교법인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대규모 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임에도 영리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의료법의 '비영리 정신'과 충돌한다.

그러므로 법률 개정을 통해 이런 우회로를 차단하는 게 옳다. 그리고 이 일은 논리적으로 보건복지부가 주도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의료법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이미 학교법인이 영리자회사 설립을 허용하고 있으므로 의료법인도 이를 허용해야 한다는 엉터리 논리를 주장하니 참으로 어이없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처사이다. 그런데 이게 다 박근혜 정권이 '줄·푸·세' 본능에 따라 밀어붙이는 보건의료분야의 규제완화 정책 때문이다. 그래서 더 큰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상이 기자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제주대 교수입니다.



태그:#의료민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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