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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①] 이웃에 사는 A씨. 대학 다니는 큰 딸과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을 둔 평범한 아줌마다. 부부가 보세 옷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데, 설이나 추석을 제외하고는 단 하루도 쉬지 않는 분이다. 며칠 전 별 생각 없이 '휴가 다녀오셨냐'고 물었다가 면박을 당하기도 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당신의 사전엔 휴가라는 단어는 없다고 무질러버렸기 때문이다.

일전에도 등록금 걱정에 잠이 안 온다며, 둘째마저 대학에 들어가면 답이 안 나온다고 한숨을 내쉬곤 했다. 그는 온통 돈 걱정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무능한 부모 만나 아이들이 고생이라며 자책했다. 요즘 들어선 장사가 전혀 안 돼 하루에 손님이 단 한 명일 때도 있단다. 피서철을 앞두고 수영복 한 장 못 팔 정도로 경기가 안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추모 분위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몇 달 더 이런 분위기라면 가게 문을 닫을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가게 근처에서 이따금 촛불집회가 열려 타격이 만만치 않다고 했다. 그때마다 천만인 서명운동을 한다고 길거리를 가로막다시피 해, 한번은 안 되겠다 싶어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고백했다.

MBC의 단원고 특례입학 관련 보도 화면(7월 15일)
 MBC의 단원고 특례입학 관련 보도 화면(7월 15일)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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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②] 매일 저녁 헬스클럽에서 만나는 B씨. 50대 중반인데도 뱃살 하나 없는 탄탄한 몸매를 뽐내고 있다. 역기를 마치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면 위축되기 일쑤다. 그는 근력운동을 마치면 한 시간 넘게 러닝머신 위를 걸으며 정면에 달린 TV를 보는데, 그때 그와 나란히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최근 두어 달간 우리의 대화 주제는 오로지 '유병언'이었다. 세월호가 우리 사회에 수많은 질문과 과제를 던졌지만, 그의 관심사는 유병언 하나였던 거다. 그가 검거되기만 하면 세월호 문제는 모두 마무리된다고 말하며, 회사에 휴가를 내고 유병언을 잡아 돈 좀 벌어볼까 고민 중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 이야기했다.

그는 마치 정치평론 하듯, '주범'을 두고 '공범'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워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주범'인 유병언 검거에 총력을 쏟고 있는 정부를 격려하지는 못할망정 '공범'이라며 돌팔매질 해대는 건 '종북좌빨'이나 하는 짓이라며 훈계했다. 대통령에게 책임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주범' 유병언의 죄가 가려질까 그게 두렵다고 누차 강조했다. 경찰이 유병언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으니, 적어도 그에게 세월호는 마무리된 셈이다.

세월호 참사 100일, 내 주변 사람들이 변한 이유

[장면③] 맞벌이 아들 부부의 연년생 손자 둘을 돌보는 할머니 C씨. 이른 아침 출근할 때 아파트 승강기 안에서 늘 부스스한 얼굴에 잠옷 차림으로 마주치는 분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들일 테지만, 서너 살배기 아이 둘을 건네받는 할머니의 표정에는 힘겨움이 묻어난다. 하지만 형편이 어려운 아들 부부의 사정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얼마 전 아파트 주차장에서, 손자들을 데리고 나오신 그분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 퇴근하고 아이를 데리러 올 아들 부부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다가가 '이렇게 귀여운 아이를 먼저 저 세상에 떠나보낸 부모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하고 무심히 말을 건넸다. 어느 누가 안 그럴까마는, 아이들의 '예쁜 짓'만 보면 세월호를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대뜸 할머니는 이렇게 대꾸하셨다.

"그래도 세월호 아이들은 부모들에게 효도하고 갔잖아. 부모들 돈 걱정 안 하고 살 게 해줬으니 말이야."

유가족들이 청와대를 찾아가고, 단식을 하고, 수백 킬로미터 순례를 떠나고, 특별법을 제정해달라고 요구하는 것 모두가 배상금을 두둑하게 챙기려는 의도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유가족들이 지금껏 배상금에 대해 구체적으로 거론한 적이 없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렇게 순진해서 어디다 쓰냐'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유가족들이 남들 좋으라고 몇 날 며칠 단식을 한다고? 배상금을 빼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야."

세월호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둔 23일 오전 '세월호 참사 100일, 특별법 제정 촉구 대행진'에 나선 유가족들이 안산 합동분향소를 출발해 1박 2일 도보행진을 하고 있다.
▲ '수사권 없는 특별법 안되요' 세월호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둔 23일 오전 '세월호 참사 100일, 특별법 제정 촉구 대행진'에 나선 유가족들이 안산 합동분향소를 출발해 1박 2일 도보행진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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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④]
방학 중 밀린 공문 처리를 위해 출근했더니, 고3 아이들 몇이 점심시간에 세월호 특별법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검사가 장래희망이라는 '범생이' D는 또래들의 희생이 누구보다 가슴 아프다면서도, 단원고 재학생들의 특례입학 혜택에 대해서는 유난히 발끈했다.

한마디로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다른 보상 다 놔두고, 하필이면 왜 또래 아이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느냐는 볼멘소리다. 이게 선례가 되면 고등학생들이 사고를 당할 때마다 같은 요구가 쏟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단원고에 세월호가 대박을 안겨준 셈이라며, '희생된 친구 팔아 대학에 가려 한다'는 극언까지 마구 쏟아냈다. 또 그렇게 대학에 가봐야 제대로 학교생활 하기가 어려울 거라는 진단도 내놨다.

지역균형선발전형으로 입학한 친구를 '지균충'이라 조롱하고, 편입한 친구더러 '편입충'이라 놀리며, 심지어 정시로 합격한 아이가 수시로 들어온 아이조차 얕잡아보는 현실에서 세월호 특례로 합격한 아이를 그냥 둘 리 있겠느냐는 거다.

앞으로 그들에게 우리 안전을 맡길 수 있을까

그는 단원고 아이들에게 격려의 편지를 보내고, 학교에 직접 분향소를 만들었으며,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썼던 아이다. 그런데도 대학입시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완강했다. 그렇듯 고3에게 대학입시란 수백 명 또래들의 억울한 죽음조차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어버릴 수 있는 '괴물' 같은 존재가 됐다. 유가족들 어느 누구도 특례 입학을 요구한 적 없다는 사실을 아무리 강조해도, 그들의 성난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고3 학생 D를 제외하고, 이웃 사는 아줌마 A와 헬스클럽의 몸짱 아저씨 B, 손자들 돌보는 할머니 C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오로지 TV를 통해 세상을 읽는다는 점, 특히 종합편성채널의 열혈 시청자라는 점이다. 그들은 말끝마다 'TV도 안 봤느냐'고 반문했다. TV는 그들 생각의 유일한 근거였다. 이런 안타까운 장면들이 고작 100일 만에 벌어졌다는 사실은 나에게 적잖은 충격을 줬다.

사실 정부와 여당 등이 지난 100일 동안 보여준 행태에 비하면, 보수 언론들이 그동안 내보낸 왜곡 보도를 떠올리면 이런 발언을 하는 '시민'들만 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세월이 약'이라고 여긴 탓일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이 넘도록 정부와 여당의 '뻗대기'는 계속되고 있다. 수만 명이 촛불을 들고, 수백 만 명이 서명을 하며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해 달라고 외쳐도, '전례가 없다'는 낯부끄러운 이유를 들어 나 몰라라 하고 있다. 가혹한 시간은 그렇게 흐르고, 세월호 유가족들의 가슴은 숯이 돼가고 있다.

그들의 깊은 상처를 치유해야 할 정치는 집 나간 지 이미 오래다. 온갖 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연이은 인사 참사와 무책임은 이젠 조롱할 '깜'도 안 된다. 현 정부의 도덕적 파탄은 철저한 무능으로 귀결되는 모양새다. 세월호 침몰 과정을 목도했을 땐 '과연 우리에게 국가가 있는가'를 물었지만, 이제는 '국가란 대체 무엇이며, 과연 우리에게 진정 국가가 필요한가'를 심각하게 자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미 40여일 전에 죽었다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잡겠다며 대통령이 앞장서고 민관군이 총출동한 육해공 검거 작전은 희대의 코미디로 막을 내렸다. 수사의 ABC도 갖추지 못한 채 '따로국밥'이 돼 헛물만 켠 검찰과 경찰의 모습에서 과연 그들에게 국민의 안전을 맡길 수 있는지 본질적인 의문을 갖게 됐다.

보수언론, 무능한 정부의 가장 확실한 '우군'

5월 23일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 화면 갈무리
 5월 23일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 화면 갈무리
ⓒ 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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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여당은 전문가가 아닌 민간인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줄 수 없다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몽니를 부리고 있지만, 그들은  이런 참담한 꼴을 보고도, 무능하기 이를 데 없는 검찰과 경찰을 과연 '전문가'라고 여기는지 되묻고 싶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국민들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다. 온갖 헛발질에도 지난 6·4 지방선거 때도 여당은 '지지 않았고', 이번 7·30 재보선 선거 역시 '선전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종편과 보수언론들이 만든 프레임에 갇혀 세월호 참사를 왜곡해서 바라보는 일부 '시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그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정부의 우군이 되어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유가족들이 배상금과 특례입학에 대해 전혀 요구한 바 없다는 사실조차 부정했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한 사회 건설이라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의 취지를 그들은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다.

유가족들의 눈물은 감추는 대신 대통령의 눈물을 클로즈업하고, 지금껏 '유병언'만 보여주었으며, 배상금과 특례 입학 규정을 마치 유가족들의 요구인 양 주야장천 떠들어댄 보수언론이야말로 무능한 정부의 가장 확실한 '우군'이다.

오로지 그들을 통해 세상을 보는 이들이 정부를 두둔하는 건 당연할 수도 있다. 유가족들의 목숨을 내건 단식 농성도, 수백만 명이 참여한 특별법 제정 서명운동도 보도하지 않고 뭉갠 한 공영방송이 단원고 학생들의 특례입학 규정만 부각시키는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는 우리 언론이 '공기'가 아닌 '흉기'가 돼버렸음을 증명한다. '이것이 국가인가'를 묻기 전에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인지도 모른다. 이게 과연 언론인가, 이게 과연 국민들이 믿고 따라야 하는 정부인가. 


태그:#세월호 참사, #보수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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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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