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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연합에서 주최하는 연설회를 듣고있는 어버이연합 회원들 머리 위로 어버이 연합의 현수막이 보인다
▲ 자유대한민국을 지킵시다 어버이연합에서 주최하는 연설회를 듣고있는 어버이연합 회원들 머리 위로 어버이 연합의 현수막이 보인다
ⓒ 이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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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어버이연합, 나라사랑실천운동 등 100여명의 보수단체 회원들이 지난 21일 오후 3시 30분께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유가족 단식농성장에 난입해 횡포를 부렸다. 이들은 유가족을 상대로 고성을 지르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서명을 받던 책상을 발로 차고 뒤엎었다. 광장에 대기하고 있던 경찰들이 "어르신들 이러지 마시고 얼른 집에 돌아가세요"라며 이들을 제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들 보수단체의 회원들은 유가족 단식 농성장에 난입하기 직전, KT 광화문지사 앞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머리에 '법과 원칙, 아! 대한민국'이라고 쓰인 빨간색 머리띠를 메고 집회를 시작했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국민들은 반헌법적인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강력히 반대한다'는 현수막을 들고서 "세월호 유가족 이용하는 선동세력은 하루 빨리 물러나라"고 주장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또 "의사자 지정요구 너무 심한 것 아닌가요" "선동세력에게 이용당하지 마세요" "구원파에겐 찍소리 못하는 세월호 유가족" 등이 적힌 팻말을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수단체 회원들의 거친 행동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단식농성을 시작한 지 4일째였던 지난 17일에도 어버이연합 회원 30여 명이 '세월호 가족 단식농성장'에 난입하려다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당시에도 이들은 "세월호 참사에 학부모들도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지난 18일 오전에는 '엄마부대봉사단'이라고 적힌 붉은색 조끼를 입은 여성 수십 명이 피켓을 들고 몰려와 막말과 고성을 쏟아냈다. 이들과 함께 온 탈북여성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도 세월호특별법의 내용이 부적절하다며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 앞에서 특별법 제정 반대 기자회견을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에게 보수단체 회원들이 막말과 거친행동을 하는 이유는 뭘까? 스스로 나선 것일까, 아니면 누구의 지시에 따르는 것일까? 이들의 일상을 따라가봤다.

이유도 모르고 집회 참석하는 노인들

어버이연합은 매일 '종묘광장공원 자뎅 커피숍 뒤 공터에서 집회를 하겠다'는 신고를 하고, 오후 1시부터 2시까지 연설회를 1년 이상 이어가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 농성장에 난입했던 21일에도 낮 기온이 30도에 육박했지만 종묘광장공원에는 많은 노인이 앉아 있었다.

어버이연합이 집회하는 장소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종묘공원 입구부터 <휘날리는 태극기> 등 각종 군가가 쩌렁쩌렁 울렸다. 연설회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부터, 어버이연합의 강연 차량 앞에는 50여명의 노인들이 의자를 펴고 앉아 있었다. 연신 부채질을 하는 한 노인에게 왜 강연회나 집회에 참여하는지 물었다.

85세의 홍아무개옹은 "우리는 원래 일요일을 제외하고 하루도 빼놓지 않고 종묘공원에 와서 강연회를 듣고 토론을 한다"며 "보통 한국의 정치 상황이나 안보문제, 북한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고 말했다. 홍옹은 "어버이연합 회원들은 거의 6.25 전쟁에 참전했던 사람들인데, 80살을 넘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다들 열심히 참여한다"고 했다.

홍옹도 '어버이연합 알바설'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는 "좌파들은 우리가 돈 받으며 어버이연합 활동한다더라 등 뭐라고 하는지 우리도 다 알고 있다"며 "회원들이 각자 아침마다 신문이랑 폐지 모아 팔고, 회비도 조금씩 내가면서 활동하는 것이지, 아무도 우리를 지원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78세의 김아무개옹은 "어버이연합에서 집회하고, 기자회견하고, 토론하는 게 내 취미생활"이라며 "매일 집회하러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운동 같은 거 안 해도 몸도 건강해지고 좋다"고 말했다.

김옹은 "어버이연합에서 활동하면서 새 친구를 많이 사귀었다"며 "젊어서는 먹고 사느라 바빠서 이런 활동을 못했지만 노인이 되어서 이제 할 것도 없고, 시간은 많이 남아서 열심히 활동한다"고 말했다.

옆에서 질문을 듣고 있던 권아무개옹은 갑자기 기자에게 "부모님께 잘하고 사느냐"고 물었다. 권옹은 "부모들이 다 자식 위해서 사느라 고생한 걸 요즘 젊은이들도 알고 효도해야 돼"라고 말했다. 이어 권옹은 "요즘 젊은 사람들은 40, 50대부터 노후대책을 준비하던데, 우리는 자식 하나만 보고 사느라 아무런 준비도 못하고 살았다"고 말했다.

"기초노령연금이 나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기초노령연금은 받는 조건이 까다로워 해당되는 사람만 받고 아닌 사람은 받지 못 한다"고 했다. 권옹은 참전명예수당으로 보훈처에서 월 15만 원이 나오지만 "담배도 피우고, 소주도 한 잔 해야하는데, 그걸로는 점심값도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오후 1시가 되자 어버이연합의 안보강연이 시작됐다. 안보강연에 나선 강사는 탈북난민인권연합 대표 김용화씨였다. 그는 국내 정치 상황을 북한 문제와 연결 짓는 강경한 발언들을 쏟아냈다. 김씨는 풍선에 초코파이를 달아 북한 쪽으로 날리는 행사에 참여했다고 한다.

"새정치민주연합 권은희는 대한민국을 사랑해서 출마한 것이 아니다. 차라리 북한에 가서 국회의원을 한다고 해라."

"한국에 남아 있는 종북 세력들을 풍선에라도 매달아 북한으로 보내야 한다. 이 놈들이 북한에서 개죽음을 당해봐야 한다. 이들의 시체를 밟고 가야 우리가 대한민국을 바로 세울 수 있다."

100여명의 어버이연합 회원들은 더운 날씨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강연회를 듣고있는 어버이연합 회원들 100여명의 어버이연합 회원들은 더운 날씨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이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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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 앉아있던 노인들은 박수를 치며 "옳소!" "빨갱이 새끼들 죽어라!"라며 맞장구를 쳤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세월호 사망자를 의사자로 지정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저도 오늘 교통사고를 당해 죽으면 의사자입니까?"라는 잘못된 발언에도 어버이연합 회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해했다.

"대부분 70~80대... 우린 열심히 한다"

50여분이 지나자, 어버이연합 관계자는 "애국시민 여러분, 오늘 광화문 KT 앞에서 2시(실제는 3시에 개최했음)에 집회를 하니, 끝나고 다른 데 가지 마시고 같이 가서 우리 애국 집회에 참여해주세요"라고 말했다.

안보강연이 끝난 뒤, 대다수의 노인들은 펼쳐놓은 의자를 정리하고 함께 집회장소로 이동했다. 한 노인이 광화문으로 가지 않고 공원 한 편에 자리를 펴고 앉으려 하자, 다른 노인이 "어이, 김 노인! 이따가 집에 가도 할 거 없는데 같이 집회나 가자"고 불렀다.

대다수의 노인들이 광화문으로 이동했지만 이들은 본인들이 지금 어떤 집회에 가고 있는지를 정확히 모르는 듯했다. 삼삼오오 모여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면서 노인들은 "근데 지금 우리 무슨 집회 하러 가는거여?" "몰라. 이번에 아시안게임에 북한 놈들 와서 가는 거 아니야? 그놈들 못 오게 때려 잡아야지" 등의 대화를 나눴다.

어버이연합의 한 회원이 기자에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젊은 사람들에게 어버이연합을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 어버이연합이 지난번에 광화문에서 김정은 사진 화형식을 해서 신문에도 많이 나오는 등 보도가 많이 됐다. 잘 모르면 <네이버>에 '대한민국 어버이연합' 검색보면 나온다. 회원 중에는 101살 할아버지도 있다. 거의 70~80대지만 우린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


하지만 기자가 "지금 어떤 집회에 가느냐"고 물었지만, 이 회원도 자신이 참여하는 집회 목적을 모르고 있었다. 이 노인은 오히려 "인천 아시안게임에 북한 사람들이 와서 그걸 막으러 간다"고 답했다. 오후 3시 KT 광화문지사 앞에서 열린 어버이연합의 집회는 '아시아 경기대회에 오는 북한 응원단을 반대하는 집회'가 아니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반대하는 집회'였다.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세월호 특별법 반대 집회를 하고있다.
▲ 세월호 특별법 반대 집회를 하는 어버이연합 회원들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세월호 특별법 반대 집회를 하고있다.
ⓒ 이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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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하철 5호선 종로3가역에서 한 정거장을 이동해 광화문역에서 내렸다. 노인들은 이용료가 무료라서 주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한다고 했다. 종로3가역에서 광화문역은 지하철로 한 정거장 거리였지만 다수가 고령의 노인들이다보니 계단을 오르내리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다리가 불편한 노인들은 벽면의 손잡이를 잡고 계단 한 칸씩 다리를 옮겼다. 비교적 젊은 회원들이 나서 다리가 불편한 회원들 돕기도 했다.

KT 광화문지사 앞에 도착한 어버이연합 회원들은 집회 시작을 기다리며 30여분 동안 광화문 곳곳에서 대기했다. 오후 3시가 되자 집회 주최자가 호루라기를 불며 어버이연합의 연설차량 앞으로 노인들을 불러 모았다.

"자, 어버이 여러분 모이셨습니까? 세월호 사망자 의사자 지정을 반대한다! 특례 입학을 반대한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반대한다!"

30여분 정도 집회를 하던 이들은 갑자기 길을 건너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단식 농성을 하고 있는 광화문광장으로 난입했다.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은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하는 유가족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거기까지 진출했겠느냐"며 "선동가들이 광장을 장악한 지금 상황이 잘못되었다고 느껴 과격한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

현장을 지켜본 시민 유동혁(35)씨는 "세월호 피해자에 대한 의사상자 지정이나, 특례입학 조항을 세월호 특별법에 포함하자는 주장은 유가족이 아니라 정치인들이 하고 있다"며 "어버이연합은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유가족들이 있는 광장까지 찾아와 소란을 피우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덧붙이는 글 | 이윤소 기자는 <오마이뉴스> 20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어버이연합, #세월호, #세월호특별법, #기초노령연금, #종묘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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