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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 311호 법정. 재판 10여 분 전쯤 방청석 맨 뒷자리에 앉은 김아무개(58) 서초구청 팀장은 함께 온 지인과 두 눈을 감고 기도했다. 경찰서도 가본 적이 없다던 그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김 팀장은 이날 열린 채아무개군 개인정보 유출사건 첫 공판(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심규홍)의 증인이었다.

그는 지난해 6월 11일 조이제(54) 전 서초구청 행정지원국장의 요청으로 채군의 가족관계등록부를 조회, 그 내용을 알려줬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로 지목당한 소년에 관한 정보였다. 조 전 국장은 이 내용을 그날 오후 2시 48분 48초에 서초구 담당 송아무개(42) 국정원 정보관에게, 오후 4시 51분 조오영(55) 전 청와대 행정관에게 각각 전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세 사람은 모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으로 기소됐다.

"채군 이름·주민번호·본적 쓰인 메모지 받았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아들 의혹과 관련해서 초등학생 채모군의 개인정보 유출 관련 혐의를 받고 있는 조오영 청와대 행정관(왼쪽)과 조이제 서초구청 행정지원국장이 지난해 12월 17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하고 있다.
▲ 조오영 청와대 행정관, 조이제 서초구 국장 영장실질심사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아들 의혹과 관련해서 초등학생 채모군의 개인정보 유출 관련 혐의를 받고 있는 조오영 청와대 행정관(왼쪽)과 조이제 서초구청 행정지원국장이 지난해 12월 17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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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감으로 수차례 물을 들이켜고, 손수건으로 땀을 닦기도 했지만 김 팀장은 줄곧 이렇게 말했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그날 채아무개군 가족관계등록부 조회로 통화한 사람은 조이제 국장뿐이다."

그의 진술과 통화내역 등을 토대로 '그날'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2013년 6월 11일 오후 2시 46분 5초, 김 팀장은 조 전 국장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조 전 국장이 직접 찾아와 채군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본적이 쓰인 메모지를 건넨 직후였다.

김 팀장은 "조 전 국장이 '아까 그거 확인했냐'고 묻기에 가족관계등록부 웹사이트에 접속했다, 1분 정도 걸렸다"라고 말했다. 조 전 국장이 메모지만 넘기고 무슨 일인지 얘기하지 않아 기다리던 중이었다고 했다. 그는 135초 동안 통화를 하며 채군의 개인정보를 세 차례 조회했다. 2시 47분 22초에 최초로 시도할 때 채군의 출생연도를 잘못 기입해 8초 뒤 다시 조회했고, 2시 47분 50초에는 채군의 본적까지 확인했다.

조 전 국장은 김 팀장에게 '채군 출생신고는 누가 언제 했냐'고 질문했다. 그는 가족관계등록부 웹사이트 화면을 보면서 '2002년 10월 O일에 어머니가 했다'고 답했다. 그러자 조 전 국장은 '왜 아버지가 안 했냐'고 했다. 김 전 팀장이 '아버지가 없다'고 말하자 조 전 국장은 그 이유를 물었다. 화면으로 관련정보를 확인한 김 전 팀장은 대답했다.

"혼인 외의 자(子)니까요."

일관된 진술에도 풀리지 않는 '전화번호' 수수께끼

그런데 진술과 딱 들어맞지 않는 대목이 있었다. 이 시각 김 팀장에게 걸려온 전화번호는 조 전 국장의 사무실 유선번호가 아니었다. 서초구청장 비서실과 접견대기실에서 쓰는 02-2155-XX34였다. 검찰은 통화내역 등을 토대로 조 전 국장이 지난해 6월 11일 이 번호로 김 팀장에게 채군 정보조회를 지시, 그 내용을 확인한 다음 국정원 송아무개 정보관과 통화했다고 주장한다.

조 전 국장 변호인은 이 점을 지적하며 김 팀장에게 '당시 다른 사람과 통화하지 않았냐'고 따져 물었다. 1월 초 '이 번호는 박아무개 서초구청장 수행비서가 쓰는 번호다, 통화내용은 무엇인가'란 검찰 수사관 질문에 김 팀장이 '박씨 할머니 사망신고 상담전화였다'라고 답했다는 수사보고서도 제시했다. 변호인은 김 팀장이 조 전 국장에게 불리한 진술을 짜 맞추고 있는 것 같다고 의심하는 모습이었다.

김 전 팀장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거듭 "분명 조 전 국장이랑 통화해서 이러이러한 대화를 나눴다"라고 말했다. 채군의 개인정보가 적힌 메모지를 받은 기억도 확실하다고 했다. 또 박씨와 통화했다는 진술은 '만약 그 번호가 박씨 번호라면 이런 일로 통화했을 것'이란 뜻이었다고 해명했다.

검찰 역시 그가 참고인으로 조사받은 내용 등을 제시하며 "김 팀장은 '02-2155-XX34로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 번호가 박씨 전화라는 얘기를 듣고서 추측해서 말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조 전 국장 스스로도 김 팀장에게 메모지를 주면서 채군 정보 조회를 부탁한 사실을 부인하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임아무개 감사관은 그날 왜 국정원 정보관과 통화했나

조 전 국장이 이 번호로 전화를 걸었느냐 여부 말고도 복잡한 문제는 더 있다. 이날 조 전 국장의 변호인이 제시한 수사기록 가운데는 임아무개 서초구청 감사관이 2013년 6월 11일 오후 2시~4시에 세 차례에 걸쳐 송 정보관과 통화한 내역이 있었다.

당초 임 감사관은 지난해 9월 6일 치 <조선일보>가 채동욱 전 총장 혼외아들의혹을 첫 보도한 다음날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식 요청에 따라 채군 가족관계등록부를 조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서울강남교육지원청과 조이제 전 국장에게 각각 채군 개인정보 확인을 부탁한 이 사건의 피고인 송 정보관이 임 감사관과 정보유출 당일 연락한 이유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재판부는 우선 22일 임 감사관과 박아무개 비서 등 서초구청 관계자들을 증인으로 불러 당시 상황에 관한 진술을 들어보기로 했다. 채군 개인정보 유출사건 2차 공판은 오는 22일 오후 2시에 열린다.


태그:#채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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