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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원추리. 지리산 자락 구례 서시천변에 활짝 피어 있다.
 노란 원추리. 지리산 자락 구례 서시천변에 활짝 피어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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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를 생각하면 지리산이 먼저 떠오른다. 산행으로 건강을 챙기고 숲과 계곡에서 더위도 피할 수 있어서다. 화사한 원추리 꽃도 빼놓을 수 없다. 지리산 노고단은 대표적인 원추리 군락지이다. 노고단 구름 바다를 배경으로 한 원추리 꽃물결은 황홀경 그 자체다.

그 풍광을 만나기엔 아직 조금 이르다. 산간과 평지의 기온 차이 탓이다. 대신 서시천(西施川)으로 간다. 지난 10일이다. 서시천은 산수유 마을에서 시작해 60리를 흘러 섬진강의 품에 안긴다. 진나라 시황제의 명으로 불로초를 구하러 온 서시장군이 건넜다는 내다. 물길이 월나라의 미인 서시처럼 아름다워서 '서시천'이 됐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서시천 방죽의 벚나무 길을 따라 원추리 꽃이 활짝 피어 있다. 꽃도 왕원추리에서 애기원추리, 노랑원추리 등 여러 가지다. 토종에서 외래종까지 다 있다. 꽃을 쫓는 나비와 풀벌레들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뚝방길도 단아하다. 지난 봄날 화사하게 꽃을 피웠던 벚나무가 만들어낸 그늘이 햇볕을 가려준다.

노란 원추리꽃이 피어난 구례 서시천 둔치. 벚나무 아래로 원추리 꽃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노란 원추리꽃이 피어난 구례 서시천 둔치. 벚나무 아래로 원추리 꽃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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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을 형상화한 벽화. 치즈랜드 입구 도로변에 그려져 있다.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을 형상화한 벽화. 치즈랜드 입구 도로변에 그려져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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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을 따라 서시천을 거슬러 산수유 마을 쪽으로 간다. 지리산 둘레길과 겹치는 구간이다. 남도 이순신길 백의종군로의 2구간과 1구간이기도 하다. 1597년 2월 모반 혐의로 의금부에 붙잡혔다가 풀려난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했던 길이다.

그해 4월 1일 한성에서 초계(경남 합천)에 있던 도원수 권율의 진영으로 가던 그 길이다. 이순신 장군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던 8월 3일까지 이 일대에서 머물렀다. 여기서 원균의 전선 12척을 수습해 싸움을 준비한다. 이후 12척의 전선으로 133척의 왜선을 무찌른 명량대첩의 대승으로 이어진다.

원추리 꽃은 한꺼번에 피었다가 지는 꽃이 아니다. 아침에 피었다가 밤에 시든다. 한 그루에서도 여러 송이의 꽃이 피고지고를 되풀이한다. 꽃이 오래 피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무수한 노란 꽃봉오리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란 리본이 스친다.

서시천 둔치에 줄지어 피어난 노란 원추리. 천변 풍경을 화사하게 밝혀주고 있다.
 서시천 둔치에 줄지어 피어난 노란 원추리. 천변 풍경을 화사하게 밝혀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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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밀 체험교육관. 우리밀의 소중함을 알리면서 팥국수, 만두 빚기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밀 체험교육관. 우리밀의 소중함을 알리면서 팥국수, 만두 빚기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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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랜드로 가는 구름다리. 구만저수지를 건너는 다리다.
 치즈랜드로 가는 구름다리. 구만저수지를 건너는 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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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치에서 보이는 주변 경치도 아름답다. 오른편으로는 지리산 왕시루봉에서 노고단, 만복대로 이어지는 능선이 넉넉하게 펼쳐져 있다. 산 위의 뭉게구름도 여유롭다. 산자락에 들어앉은 마을과 들녘 풍경도 살갑다. 왼쪽으로 흐르는 서시천에서는 황새가 우아한 품새로 물속을 응시하고 있다. 먹잇감을 찾는 것 같다. 물가에서 다슬기를 잡는 마을주민도 심심찮게 만난다.

뚝방길은 광의면소재지를 거쳐 우리밀 가공공장과 체험관, 수상레저타운으로 이어진다. 우리밀 가공공장은 농민들이 만들었다. 1980년대 중반 수매가 중단되면서 사라질 위기에 놓인 우리밀을 살리려는 몸부림이었다. 이 일대에서 키운 우리밀을 사들여 밀가루나 국수, 라면 등으로 가공해 오고 있다.

지금껏 우리밀의 명맥을 이어 온 알토란 같은 곳이다. 체험관은 여기서 가공한 우리밀가루로 팥국수와 찐빵을 만들어보는 체험공간이다. 밀가루를 반죽하고 직접 채를 썰어 끓여내는 팥국수가 별미다. 옛맛이 살아있는 찐빵도 맛있다. 여행객들이 하룻밤 묵을 수 있는 펜션과 교육장을 갖추고 있다.

구만저수지에서 즐기는 오리보트. 백의종군로에서 만나는 수상 체험공간이다.
 구만저수지에서 즐기는 오리보트. 백의종군로에서 만나는 수상 체험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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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추리 꽃은 운흥정 부근에도 많이 피어있다. 팽나무와도 어우러져 멋스럽다.
 원추리 꽃은 운흥정 부근에도 많이 피어있다. 팽나무와도 어우러져 멋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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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척의 치즈랜드도 별나다. 젖소를 풀밭에 놓아기르는 체험목장이다. 치즈와 요구르트 만들기도 체험할 수 있다. 구만저수지를 가로질러 목장과 이어주는 구름다리도 멋스럽다.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을 형상화한 도로변 그림도 눈길을 끈다.

수상레저타운에서는 수상스키나 오리보트를 타며 쉬어갈 수 있다. 바나나보트, 모터보트 등 갖가지 수상 레저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저수지 끄트머리에서 피어난 연꽃 무더기도 발길 붙잡는다. 꽃송이도 탐스럽다.

구만저수지에서 서시천을 거슬러가서 만나는 운흥정(雲興亭)도 운치 있다. 1920년대 중반 지역의 선비들이 돈을 모아 세운 정자다. 건립 내력이 상량문에 적혀있다. 주변 바위벽에는 당시 방문객들의 시가 새겨져 있다. 정자 아래로 흐르는 물길이 이 바위벽을 휘감고 돈다. 오래된 팽나무도 정자와 어우러져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운흥정에서 본 서시천 풍경. 산수유마을에서 발원한 물이 섬진강으로 흘러간다.
 운흥정에서 본 서시천 풍경. 산수유마을에서 발원한 물이 섬진강으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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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척마을에서 만난 능소화. 고혹적인 생김새처럼 품격도 다른 여름꽃이다.
 계척마을에서 만난 능소화. 고혹적인 생김새처럼 품격도 다른 여름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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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여기서 온천지구 입구를 지나 산동면소재지와 계척마을로 이어진다. 산수유나무가 줄지어 가로수로 서 있다. 간간이 보이는 배롱나무는 진분홍색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꽃을 피운 누드베키아와 도라지, 코스모스도 길을 밝혀준다.

산동면은 산수유로 이름 난 고장이다. 산수유농업의 국가중요농업유산 지정을 반기는 펼침막이 여기저기 걸려 있다. 소재지 풍경이 정겹다. 식당과 상회, 버스정류장도 소박하다. 어릴 적 고향마을처럼 친숙하게 다가선다. 싸목싸목 돌아보며 바쁜 일상의 한자락을 살포시 내려놓기에 그만이다. 지리산을 닮은 사람들의 순박한 인정은 덤이다.

산간과 들녘 사이로 흐르는 서시천. 산수유마을에서 산동면소재지를 거쳐 운흥정 앞으로 흐르고 있다.
 산간과 들녘 사이로 흐르는 서시천. 산수유마을에서 산동면소재지를 거쳐 운흥정 앞으로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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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로 안내도. '산수유 시목지'인 계척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로 안내도. '산수유 시목지'인 계척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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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척마을은 산수유나무가 처음 심어진 마을이다. 개망초 흐드러진 길을 따라가니 1000년 전에 심었다는 그 나무가 보인다. 만리장성을 본뜬 성이 들어선 것도 산수유 씨앗을 가져와 심은 중국의 산동처녀를 기념해서다. 여기가 남도 이순신길 백의종군로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 피난 온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마을이 됐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내의 모양이 계수나무 같고 주민들이 베를 짜서 자로 쟀다고 '계척(桂尺)'이다.

마을 밭이랑에서 옥수수가 토실토실 살을 찌우고 있다. 고추도 주렁주렁 탐스럽다. 꽃을 피운 들깨와 도라지, 토란, 콩, 고구마도 예쁘다. 밭고랑까지 뻗은 고구마순을 정리하는 마을주민의 허리는 여전히 펴질 줄을 모른다.

계척마을 주민이 고구마 순을 정리하고 있다. 계척마을은 산수유 시목지이면서 남도 이순신길 백의종군로의 출발지점이다.
 계척마을 주민이 고구마 순을 정리하고 있다. 계척마을은 산수유 시목지이면서 남도 이순신길 백의종군로의 출발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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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원추리꽃, #계척마을, #백의종군로, #남도 이순신길, #서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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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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