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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산인해를 이루는 파나마와 코스타리카의 국경은 기다리는데만 반나절이 지나간다.
▲ 파나마의 국경 - 인산인해를 이루는 파나마와 코스타리카의 국경은 기다리는데만 반나절이 지나간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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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파나마와 코스타리카 사이의 국경을 이보다 잘 표현해 주는 단어는 없다. 도대체 어디에서 쏟아져 나왔는지, 아침 10시에 버스를 타고 도착한 국경에는 이미 몰려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자기 버스에 탄 손님을 찾는 운전기사와 자기 버스를 찾는 사람들, 부모를 찾는 아이와 출입구를 찾는 여행객들로 뒤엉킨 데다가 한쪽에서는 누가 먼저 도착했냐를 두고 계속 실랑이가 벌어진다.

파나마의 출국 도장을 받는 데에만 두 시간이 지나고 엄격한 짐 검사와 코스타리카 입국을 마치고 나니 시간은 이미 오후 2시. 국경 하나 건너는 데 4시간이 걸렸다. 과연 산호세에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을 때, 도로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 정글과 바나나가 반복되는 풍경이야 말로 중앙아메리카의 상징이다.
▲ 도로변의 풍경들 - 정글과 바나나가 반복되는 풍경이야 말로 중앙아메리카의 상징이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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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복 2차선의 도로를 따라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끝없는 정글이 이어진다. 질리지 않는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결국 해가 져 버렸다. 다시 한 번 숙소 위치와 거리 이름을 확인하려 준비해둔 인쇄물을 접었다 폈다를 반복하고 있으니 옆자리의 청년이 말을 걸어왔다.

숙소는 분명히 터미널에서 걸어도 10분이면 도착할 거리건만 짧은 영어로 "위험하다"를 반복하는 그. 덩달아 앞뒤의 사람들까지, 자기는 산호세에 사는데도 팬티에 복대를 했단다. 강도들이 얼마나 많길래 호들갑인지 알 수 없었지만, 택시를 몸소 잡아 목적지까지 확인해주는 친절을 뿌리칠 수 없어 겨우 5분 거리를 택시를 타버렸다.

 - 굳게 닫힌 철문에 자그만 스피커와 간판만 있는것이 인상적이다.
▲ 숙소의 입구 - 굳게 닫힌 철문에 자그만 스피커와 간판만 있는것이 인상적이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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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PANGEA' 라고 써진 간이팻말 말고는 아무 것도 없이 건물을 통째로 둘러 싼 거대한 철문을 마주했을 때의 아찔한 기분이란. 과연 나는 멀쩡하게 산호세를 빠져나갈 수 있을까?

걱정할 거 없어– 푸라 비다

"푸라 비다(Pura Vida)."

결계처럼 둘러쳐진 철문을 통과하고 정원을 지나 다시 입구를 지나 도착한 카운터의 직원이 처음으로 건넨 말이다. 스페인어로 '걱정할 거 없어' 정도의 의미라고 하는데 아마도 아프리카의 '하쿠나 마타타'처럼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표현으로 보였다.

한쪽으로 '푸라 비다'를 외치면서도 그는 계속해서 터미널과 숙소 사이의 길은 위험함을 인지 시켰다. 난 밤에 절대 혼자 나가지 않겠다라는 서약 아닌 서약을 하고서야 방으로 갈 수 있었다.

화려한 시설을 자랑하던 코스타리카에서의 숙소.
 화려한 시설을 자랑하던 코스타리카에서의 숙소.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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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세상의 위험함에 대한 반증인지, 그렇지 않으면 이들의 긍정적인 사고의 산물인지 모르겠으나 호스텔의 시설은 지나치게 좋았다. 1층 야외에는 수영장이 있고 옥상에는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과 밤이면 DJ가 요란한 음악을 틀어대는 바까지. 밖을 나가지 않아도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숙소를 뒤로 하고 거리로 나가보니 산호세는 비교적 한적한 유럽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 수도인 산호세는 한적한 유럽과도 같은 모습이다.
▲ 산호세의 거리 풍경 - 수도인 산호세는 한적한 유럽과도 같은 모습이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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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가 없는 것이 증거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중미의 낙원'이라고도 불리는 코스타리카는 실상은 중미에서 치안이 가장 양호한 나라라고 한다. 북미에서는 은퇴 후 살고 싶은 곳으로도 손꼽힌다.

인사를 '푸라 비다'로 나누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 세계의 중심에서는 소외된, 탄자니아나 코스타리카 같은 곳의 사람들은 가진 것과 상관없이 그만큼 삶의 여유를 즐기는 현명함을 지녔다. 반면 지나치게 현대화된 사회인 한국이 '빨리빨리'로 대변되는 것은 상대적으로 슬픈 일이다.

평일 낮임을 감안해도 수도 치고는 비교적 한산한 거리에는 파나마 시티와는 달리 높은 건물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골목마다 모습을 드러내는 공원과 크고 작은 박물관, 선명한 바둑판 모양의 길과 거리의 백인들이 그야말로 한적한 유럽에 와있는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산호세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중앙광장에서는 비둘기 떼가 노닐고 한쪽에서는 무희들이 춤을 추고 있다. 간밤에 버스와 호스텔에서 느꼈던 위압감은 온데간데 없고 거리의 경찰들은 그저 하품을 하며 걸음을 옮긴다.

 - 전통시장만큼 여행자의 오감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곳은 흔치 않다.
▲ 산호세 중앙시장 - 전통시장만큼 여행자의 오감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곳은 흔치 않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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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광장과 산호세 공원을 지나자 양손 가득 짐을 짊어진 사람들이 많아졌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나라의 도시라면 어디에나 있는 중앙시장(Mercado Centro)을 다녀온 사람들이었다. 

시끌벅적한 사람 냄새로 넘쳐나는 전통시장이야 말로 여행자의 호기심을 채우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낡고 오래된 아치형 건물 안을 가득 메운 온갖 물건들은 별다를 것 없는 풍경이었지만 나는 어디선가 풍겨오는 향긋한 냄새에 이끌리기 시작했다.

 - 원두가 콩처럼 둥근 코스타리카산 피베리(Peaberry) 는 뛰어난 맛과 향 덕에 비싼 가격에 팔린다.
▲ 코스타리카의 명물, 커피 - 원두가 콩처럼 둥근 코스타리카산 피베리(Peaberry) 는 뛰어난 맛과 향 덕에 비싼 가격에 팔린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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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한국처럼 거리에 카페들이 보이지도 않았는데 도대체 어디서 이 수많은 커피들이 소비되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 만큼, 시장의 한쪽에는 온통 커피와 원두를 가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커피를 별로 즐기지 않아 이집 저집 그저 곁눈질을 하고 있던 차에 덜 붐비는 가게의 주인장이 나를 보더니 대뜸 손을 펴보란다.

"이게 피베리라네 친구. 내가 장담하는데 전세계 어디서도 이거보다 맛있는 커피는 못 구해."

코스타리카의 사람들은 마치 유럽에라도 온 듯, 식후에 습관적으로 커피를 마신다. 국토 전체에 걸쳐 우림과 화산이 발달한 비옥한 토양과 고산지형은 커피가 자랄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인 것이다. 주위를 둘러봐도 커피를 갈러 온 사람들은 세련된 여행객이 아닌 그저 동네주민들이었는데 꼭 나 같은 여행객의 손 위에는 어김없이 '피베리'라는 원두가 올려져 있었다.

'피베리(Peaberry)'란 커피 생두 모양이 완두콩 모양인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가 보통 접하는 생두는 한 면은 둥글고 다른 면은 평평한데, 피베리 생두는 완전히 둥글다. 커피 수확 시 피베리의 수확률은 10%가  채 안 되고 그 맛과 향이 탁월하다고 한다. 어느덧 주인은 피베리를 갈아 만든 커피 가루까지 꺼내보였다.

곱게 갈린 원두를 대체 어떻게 먹을지는 나중의 문제고 나는 주인의 정성이 담긴 커피 한 봉투를 사버렸다. 추출을 할 수 없으니 지금 한 잔만 내려달라고 그에게 부탁했다. 유럽을 떠난 후로 3개월 만에 맛보는 커피를 쪼르륵 따르는 소리가 정겹다.

커피를 코 끝으로 가져가 한 모금을 머금었다. 혀를 굴려 맛을 찾아내는 일은 나에게는 무리다. 만일 누군가가 나에게 '코스타리카 커피 어때?'라고 물어본다면 그 맛을 내가 먹은 케냐와 에콰도르산 커피와 비교할 능력이 없다. 그렇지만 산호세에 가서 커피를 맛보지 않는다면 당신은 바보다. 맛을 모른다고 해서 어찌 혀끝에 처음으로 닿던 그 순간을 잊겠는가.

어쩌면 이 곳의 사람들은 이 순간에 중독되어 '푸라 비다'를 외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 향긋한 바람냄새에 복잡한 것들은 실어 보내고 말이다.

간략 여행 정보
코스타리카의 수도인 산호세까지 미국 LA나 멕시코시티에서 TACA 항공을 이용해 갈 수 있다. 중앙 아메리카의 다른 도시들은 무더운 아열대인데 비해 산호세는 상대적으로 고산지대라 덜 습하고 덜 더운 편이다. 뿐만 아니라 나의 우려와는 달리 코스타리카는 중미에서도 치안이 양호한 나라로 손 꼽힌다. 어디선가의 조사에 의하면 '국민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나라' 1위에 뽑힌 경력도 있으니 그 사실에는 거짓이 없다. 사람들은 여유롭고 '푸라 비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산호세는 무엇이든 과하지 않은 유럽의 소도시 같은 느낌이 든다. 시장과 교회, 박물관들을 둘러보며 이들의 여유로움을 한 수 배우는 것이야 말로 산호세를 즐기는 방법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코스타리카산 커피는 마트를 비롯해 어디서든 구매할 수 있지만 커피를 가는 기계가 있는 곳에서 그 광경을 보는 것도 재미다. 

좀 더 자세한 산호세 여행기는 아래 링크를 참고하자.
http://saladinx.blog.me/30154552506



태그:#코스타리카커피, #산호세, #피베리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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