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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게이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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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에게 중요한 전화가 올까봐 화장실을 갈 때도, 양치질 할 때도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던 사람이 있다. 묵묵히 성실하게 일하면 누군가 알아줄 거라는 믿음으로 맡은 임무에 충실했던 사람이었다.

바로 전 국무총리실 장진수 주무관의 이야기이다. 그렇게 평범하고, 평화로웠던 그의 일상에 핵폭탄급 재앙이 불어 닥친다. 불법 사찰 증거인멸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편법과 거짓으로 얼룩졌던 MB정부의 불법 사찰을 기억하는가? MB정부는 KB 한마음 대표 김종익씨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동영상을 올린 것을 계기로, 그를 사찰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회사를 불법으로 수색하고, 결국 대표직에서 물러나게 했다.

2012년 KBS는 MB정부의 사찰 문건 2619건을 입수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 보도만 보더라도 사찰이 얼마나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어쩌다 이런 엄청난 사건에 발을 디디게 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는 이용당한 것이다. 부하 직원을 소모품 정도로 여기는 윗선은 자신들의 추악한 치부를 덮기 위해 그를 이용했다. 책에는 불법 사찰에 관여한 몇몇의 핵심 인물이 등장한다.

그중 하나가 진경락 과장이다. 진경락 과장은 장진수 주무관에게 자료를 복구할 수 없도록 완벽히 날려버리라고 지시한다. 또 최종석 행정관도 컴퓨터를 강물에 버리든지 망치로 부수든지 해서 어떻게든 자료를 없앨 것을 지시한다. 이 모든 일이 업무처리라고 믿었던 장진수 주무관은 하드디스크를 망가뜨리는 '디가우징'을 통해 자료를 파기한다.

책을 읽는 내내 몇 가지 의문이 당신 머릿속을 떠다닐지도 모른다. '어떻게 의심 한 번 하지 않고 일을 처리할 수 있었을까? 정말 증거인멸이 불법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상사가 시킨다고 어떤 일이든 다 하나?'하고 말이다.

'나는 몰랐다'라는 그의 말이 변명처럼 들린 것도 사실이다. 모든 정황이 이상한데 애써 외면하며 자기 합리화를 했던 거라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다 자신이 실질적 책임자로 대두되고 나서야 정신이 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꿈에서조차 생각하지 못할 만큼 엄청난 일이었던 거다. 우리가 흔히 영화 드라마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라며 자신에게 일어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 가혹한 상황이 진짜 현실이 된 것이다.

그는 슬슬 '증거인멸'의 심각성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한다. 윗선이 '민간인 사찰'을 덮기 위해 '증거 인멸'이라는 시나리오를 설계한 것을 눈치챈 것이다. 그는 예상치 못한 일에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고, 걷잡을 수 없게 빠져나가는 그의 혼을 붙잡지 못했다. 그의 정신이 너덜너덜해질 때쯤 영리한 윗선은 협상을 시작한다. '의리를 지키면(입을 다물면)' 뒤를 봐주겠다(돈은 걱정하지 마라)고 말이다.

의리 vs 신념, 당신이 장진수였다면?

책은 불법 사찰에 대한 내용이 아니다. 불법 사찰 증거 인멸에 휘말린 한 공무원의 이야기이다. 놀랍게도 민간인 불법 사찰에 대한 처벌은 없었다. 팩트는 증거인멸이 아니라 청와대의 개입 아래 정부가 불법 사찰을 했다는 것이다. 엘리트 집단인 검찰이 이런 단순한 팩트를 파악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수사할 마음이 있긴 한 것인지 증거인멸의 시간을 충분히 제공한 후인 5일째에 수사를 시작한다. 국무총리실 압수수색의 결과물이 상자 하나와 디스크 세 개였다는 사실은 검찰의 수사 의지를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확실히 청와대의 손이 법원까지 미치고 있는 상황 속에 그는 누구도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의심처럼 정말 변호사들은 그를 위해 변호했을까, 윗사람을 위해 했을까?

민정수석과 검찰이 이야기됐다는 말을 믿었지만 돌아온 건 압수수색과 증거 인멸을 한 파렴치라는 비난이었다. 아니라고 부인하면, 모른다고 잡아떼면 괜찮다는 변호사 말을 믿었건만 돌아온 건 구속영장이었다. 난생 처음 겪는 상황 속에서 생각은 뒤틀리고, 불안은 공포가 되어 그의 온몸을 감쌌을 것이다.

물론 가장으로서 책임감 때문에 '뒤를 봐준다는 말'에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아내와 아이에게 떳떳한 아빠가 되기 위해 용기 있는 고백을 선택했다. 조금 늦어서 안타까웠지만, 늦더라도 옳은 길로 와준 게 어디인가.

그는 영웅이 아니다.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간이었고 돌봐야 할 아내와 아이가 있는 가장이었고 그냥 직장인이었다. 억울하게 증거 인멸의 범인으로 몰린 후에도 그는 가정을 위해 더러운 그들과 손을 맞잡으려 했고, 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비난하기보다 돌고 돌아서라도 옳은 선택을 해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당신의 영혼을 되찾은 걸 축하한다고 말하고 싶다.

책 뒷부분에 시사평론가 김종배씨가 쓴 추천의 글에서 그는 돈을 뿌리치지 못한 행동을 공개하기를 두려워했다고 했다. 자신이 옳다고 말해주고, 응원해준 국민이 돌아설까봐 말이다.

이 부분에서는 오히려 그의 인간적 면모가 느껴졌다. 그 상황, 우리가 '장진수였다면?'이라고 생각해본다면 결코 그를 쉽게 비판할 수 없다. 장진수의 영혼 찾기 대여정. 구정물에서 완연한 영혼을 건져 올릴 수 있었던 것을 축하한다.

"나는 결코 MB정부의 사악한 불법 사찰과 증거 인멸의 범죄자들과 공범이 아니다." - 장진수 -


블루게이트 - 불법 사찰 증거인멸에 휘말린 장진수의 최후 고백

장진수 지음, 오마이북(2014)


태그:#블루게이트,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주무관, #불법 사찰 증거인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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