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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음을 참지 못한 학생들이 책상에 기대 잠시 잠을 자는 한 고등학교 교실 풍경.
 졸음을 참지 못한 학생들이 책상에 기대 잠시 잠을 자는 한 고등학교 교실 풍경.
ⓒ 정은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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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을 앞둔 요즘, 학교는 '개점휴업' 상태다. 시험 준비하느라 다들 벼락치기 공부를 해서인지, 아니면 마른 장마에 때 이른 무더위 때문인지, 대부분 아이들이 마치 병든 닭처럼 축 늘어져 있다. 1학기 성적이 합산돼 수행평가도 끝난 마당이니 대놓고 엎드려 잔다고 해도 딱히 제어할 수단조차 변변치 않다.

2학기 때 시험 범위라고 채근하며 진도를 나가보지만, 긴장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수업 시작 채 10분도 안 되어 책상에 엎드려 자는 아이들이 태반이다. 다가가 깨우고 나무랄라치면, 되레 지금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라며 대뜸 '휴식권'을 보장해 달라고 토끼눈을 치뜬다. 애초 되지도 않을 아이들과의 '기싸움'이었는지도 모른다.

실랑이 끝에 교과서는 2학기를 기약하며 덮었다. 대신 학기 중에는 진도 나가기에 급급해 엄두가 나지 않던 모둠별 토론수업을 의욕적으로 시도했지만 그것도 이내 실패했다. 동기부여가 안 되는 낯선 주제라서, 또 참여를 독려할 '당근'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다. 그냥 아이들은 이구동성 '귀찮다'고만 했다. 그냥 자습 시간을 주면 안 되겠느냐고 애걸하면서.

기말고사 끝난 교실 풍경

결국 수업 내용과 관련된 다큐멘터리 영상물을 찾아 보여주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물론, 아무리 메시지가 좋아도 웬만큼 선정적이지 않으면, 무겁게 내려앉는 아이들의 눈꺼풀을 들어올리기란 쉽지 않다. 늘 그렇듯, 영상물이 교육적일수록 아이들의 잠드는 시간은 빨라진다. 사실 '합의'란, 교사는 '보는' 것으로, 아이들은 '자도 되는' 것으로 서로 이해한 것일 뿐이다.

따지고 보면, 학기 말 수업을 그렇듯 훼방 놓는 아이들의 행동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들 말마따나 온전한 방학이란 중학교 졸업과 함께 이미 끝났다. 대학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순간부터, 방학이라는 말은 그저 학사일정표에나 등장하는 용어일 뿐이다. 방학을 기대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순진한 아이는 단 한 명도 없다.

학교마다 방학식은 하지만, 그건 방학 중 보충수업이 없는 교사와 극소수 아이들에 해당할 뿐 별다른 의미는 없다. 굳이 학기 중과 다르다면, 수업 시간표가 수능 교과목 중심으로 편성된다는 것과, 통상 밤 10시까지 행해지던 야간자율학습이 오후 6시경으로 당겨진다는 점이다. 하긴 몇몇 아이들은 '어두워지기 전에 하교하는 게 어디냐'며 행복에 겨워하는 모습이다.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를 만큼 이미 '관행'으로 굳어져 버린 방학 중 보충수업. 학기와 방학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 보니, 아이들은 기말고사 직후부터 방학식이 있는 얼추 열흘간을 '유일한 휴식 시간'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학교마다 새 학년이 시작되기도 전에 학기 중 시간표와 방학 중 시간표를 함께 작성하는 지경이니 더 말해서 무엇 할까.

교사는 학부모들이 바라기 때문이라 하고, 학부모들은 자녀가 집에서 뒹구는 꼴을 못 보겠다고 한다. 물론, 학교에서 자필로 쓴 희망 신청서를 받긴 하지만, 그걸 아이들의 자발적인 의사라고 보는 이는 거의 없다. 학교에서든, 가정에서든 아이들은 '미성숙한' 피교육자일 뿐이다. 교육부도, 교육청도 '강제성'만 없다면 방학 중 보충수업을 용인할 뿐더러 당연시 여긴다.

각자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 듯 두루뭉술 답하지만, 방학 중에도 수업이 진행되어야 하는 나름의 이유 한두 개쯤은 다 갖고 있었다. 며칠 전 기회가 닿아 몇몇 동료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학생들에게 각각 같은 질문을 던져봤다. 방학 중 보충수업이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답변은 각각 이랬다.

학부모 : "우리나라에서 방학 때 노는 고등학생은 단 한 명도 없을 걸요. 어차피 학교에서 수업이 없다면, 부모 입장에서 학원에 기댈 수밖에 없어요. 대개 고등학생들의 방학 중 일정은 '주중엔 학교, 주말엔 학원'으로 짜이는데, 만약 학교가 해주지 않으면 방학은 오롯이 학원의 몫이 될 게 뻔해요."

학생 : "방학 때 놀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그런데, 막상 찾아보면 놀 친구가 없어요. 친구들을 보면 다들 학원에다 독서실까지, 학기 중 일과와 별반 다르지 않게 지내더라고요. 놀아도 같이 놀아야지, 혼자라고 생각하면 노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일 뿐이에요. 방학 중 보충수업에 '울며 겨자 먹기'로 신청할 수밖에 없는 이유죠."

"학교에 기댈 수밖에 없어요"

한 마디로 불안하다는 거다. 그때 만난 적잖은 학부모들은 "이럴 바에야 차라리 방학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심지어 몇몇 아이들조차 수긍했다. '꼴찌도 보습 학원엔 다닌다'는 우스갯소리처럼, 방학 중 보충수업 역시 공부를 잘 하든 못하든 간에, 대부분의 고등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불가피한 선택인 셈이다.

'불안에 떠는' 학생과 학부모들이야 그렇다 치자. 적이 황당했던 건 몇몇 동료 교사들의 반응이었다. 하도 오래된 '관행'으로 굳어진 탓일까, 처음부터 그런 생각은 아니었을 테지만, 그들에게 방학 중 보충수업은 학기 중과 별반 다를 게 없는 '필수적인 교육과정'인 양 인식되고 있었다.

동료 교사 : "아이들에게 수능을 준비 시키자면 학기 중 정규수업 가지고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교과서의 진도 나가기도 빠듯한데, 수능과 연계된다니 EBS 교재도 빼놓을 순 없잖아요. 게다가 수능 문제에 적응력을 키우자면 다양한 유형의 문제집 한두 권 정도는 기본이니, 이걸 다 대강이라도 훑어보려면, 현실적으로 방학 아니고서는 어림도 없죠."

선배 교사인 그에게 이렇게 반문했다.

"그렇다면, 학기 중 정규수업만으로도 충분할 만큼 수능 문제의 수준을 낮춰야 하지 않을까요? 교과서에 시험 문제를 맞추는 게 옳지, 시험 문제에 교과서를 맞출 순 없는 노릇이잖아요."

그랬더니, 대뜸 조롱 섞인 답변이 되돌아왔다.

"그건 교육부에 가서 알아봐야지, 우리 같은 일개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

기말고사가 끝난 수업시간 그냥 자게 해달라는 아이를 나무라면서, 또, 방학 중 보충수업에 대한 아이와 학부모, 그리고 동료 교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깨달은 게 있다. 이른바 '교육의 3주체'라는 그들 모두 '무기력'하다는 거다. 하나같이 입버릇처럼 '어쩔 도리가 없지 않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불안'도 '무기력'의 또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주지하다시피, 진정한 의미의 방학이란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진로를 탐색해 보고, 학기 중에는 쉽지 않은 봉사활동 등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는 시간이다. 가정, 지역사회와 괴리된 채, 학교가 아이들의 교육을 일임할 수는 없다. 어쩌면 방학 중 보충수업이 아이들을 더욱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방학이 다음 학기를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 되어야 하는 교사들조차도.


태그:#여름방학, #보충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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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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