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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박 중에는 '슬픈 운명'을 타고난 수박들이 있다. 씨 없는 수박이다.
 수박 중에는 '슬픈 운명'을 타고난 수박들이 있다. 씨 없는 수박이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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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툇, 툇, 툇."

수십 년 전 수박을 먹어본 사람들이라면 너나없이 수박씨에 얽힌 추억이 한두 가지쯤은 있을 것이다. 수박씨를 입속에서 발라내 총 쏘듯 입술 사이로 뱉어내며 장난치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또 시골에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집 주변에서 심지도 않았던 수박이 나는 광경을 목도했을 수도 있다. 변을 통해 나온 수박 씨나 입으로 뱉어낸 수박씨가 마당이나 밭 한구석에서 싹을 틔우고 자라는 일이 흔했던 탓이다.

수박씨 놀이는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서구 국가에서도 드물지 않다. 수박씨 뱉기 대회도 심심치 않게 열린다. 수박씨로 과녁 맞히기, 수박씨 멀리 뱉기 등 종목도 다양하다.

'슬픈 운명' 타고난 수박

수박은 원래 씨가 많기로 유명한 식물이다. 한 통에 보통 300~500개의 씨앗이 있다. 살구나 자두, 사과, 배, 귤 등에 비해 월등하게 많다. 게다가 수박은 과육 전반에 걸쳐 씨가 고루 퍼져 있다. 씨를 씹거나 삼키기를 원치 않는다면 매번 적어도 수십 개의 수박씨를 입 밖으로 골라내지 않을 수 없다.

수박은 여름 과일의 대명사다.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날 수박을 한 입 베어물면 여느 과일에서는 여간해서 느끼기 어려운 행복이 밀려올 수도 있다.

수박이 여름철에 사랑을 받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요즘 수박 가운데는 씨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것들이 많다. 사람들에게는 먹는 즐거움을 선사하지만, 사실 씨 없는 수박은 생물학적으로는 '슬픈 운명'을 타고난 존재다.

씨 없는 수박은 씨가 없기 때문에 말 그대로 제대로 된 씨를 맺지 못한다. 제아무리 영양이 뛰어나고 맛이 있다고 한들 자손을 남길 수 없다는 이야기다. 후손 남기기는 생명체의 으뜸가는 욕구다. 수박 같은 식물들의 번식본능도 동물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팔리는 수박 가운데 씨 없는 수박의 비율이 정확하게 집계된 적은 없다. 미국의 경우, 전체 수박 판매량의 70% 안팎이 대를 잇지 못하는 씨 없는 수박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씨 없는 수박 만드는 '수법'

수박의 씨를 없애는 방법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다시 말해, 겉으로는 똑같이 씨가 없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출신'은 제각각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과거부터 흔히 씨 없는 수박 만드는 '수법' 중 하나로 '염색체 숫자 조정'이 쓰였다. 원래 수박은 22개의 염색체를 갖고 있다. 정상적인 이런 수박은 '2배체'로 불린다.

그런데 정상 수박을 콜히친(colchicine)이라는 물질로 처리하면 44개의 염색체를 가진, 이른바 '4배체' 수박이 만들어진다. 4배체 수박과 2배체의 정상 수박을 교배시키면 염색체 숫자가 '부모'의 딱 중간인 33개로 변한다. 이렇게 탄생한 수박은 '3배체'인데, 이는 불임 수박이다.

그런가 하면, 정상적인 수박의 암꽃 밑 자방을 생장조정제로 자극해 씨 없는 수박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자방은 훗날 수박으로 자라는 부분인데, 여기에 식물 호르몬을 발라주면 꽃가루(정충)가 없는데도 무럭무럭 크게 된다. 꽃가루가 들어가지 않았으니, 이런 수박 역시 씨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이른바 속칭 '공갈 임신' 기법을 통해 씨 없는 수박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수박 꽃가루에 약한 엑스선을 쬐어서 꽃가루의 수정능력을 없애는 것이다. 이런 꽃가루가 수박의 암술과 만나면, 겉으로는 수정이 이뤄지는 듯하지만 후손을 남길 수 없는 씨 없는 수박이 만들어진다. 엑스 선에 노출된 꽃가루는 사람으로 치면 수정 능력이 없는 정충(精蟲)과 비슷하게 변한다.

씨 없는 수박은 유전자변형 농산물일까

 씨 없는 수박
 씨 없는 수박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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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없는 수박은 수박 특유의 '성생활'에 인간이 간섭한 결과이기도 하다. 자연주의자들 가운데는 이런 이유를 들어 씨 없는 수박의 확산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크게 보면 씨 없는 수박 또한 일종의 유전자변형(GM) 농산물이라는 시각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몇몇 육종학자들은 "현재 시판 중인 씨 없는 수박들은 특정유전자를 집어넣거나 빼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유전자변형 농산물들과는 다르다"라고 주장한다.

씨 없는 수박의 인체 유해성에 대한 학계의 보고는 아직까지는 없다. 그래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씨 없는 수박의 탄생 과정을 알고 먹는 것과 모르고 먹는 것은 조금 차이가 있지 않을까.

* 도움말: 이우문 농업연구사(국립원예특작과학원)

덧붙이는 글 | 위클리공감(korea.kr/gonggam)에도 실렸습니다. 위클리공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하는 정책주간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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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이 코앞. 그러나 정신 연령은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승차 유랑인으로서 시한부 일상 탈출.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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