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대하드라마 <정도전>에서 정도전 역의 배우 조재현이 1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KBS 대하드라마 <정도전>에서 정도전 역의 배우 조재현이 1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미나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조금은 수척해진 얼굴로 나타난 배우 조재현은 대번에 팔부터 내보였다.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왔다고 했다. "간호사가 뽀로로 스티커를 붙여 주더라"고 말하는 얼굴엔 이내 미소가 피어올랐다. 8개월간의 여정 끝에 KBS 1TV 대하드라마 <정도전>을 완주해 냈다는 자부심이 만들어 낸 미소였다.

"연극에서처럼 한 역할을 오래 하면 (끝나고) 몸살을 앓아요. 드라마는 안 그랬는데, 이번엔 좀 특이하네요. 아마 긴장을 많이 해서 그런 것 같아요. 매주 긴장했거든요. 대사에 대한 압박도 있었지만 정도전이라는 인물 자체가 한계로 달려가는 인물이다 보니…. 마지막 촬영을 끝내고 집에서 <정도전> 49회를 보는데 기분이 이상했어요. 그리고 자고 났더니 몸살이 났어요. 뇌가 뜨거워졌다가 갑자기 식으면 몸에 이상이 올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2시간 가까이 이어진 인터뷰에서 조재현은 그저 '정도전'이었다. 질문 하나하나에 정도전과 얽힌 역사적 사실들이 거침없이 튀어 나왔다. 8개월간 정도전으로 살면서 그에 대한 해석도 확고히 내리고 있었다. 조재현은 "정도전은 '대업'이라는 게 머리에 박힌 놈이었다"라며 "시대를 앞선 정도전이라는 사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시놉시스 정독하니 정신 맑아져...'무조건 해야겠다' 싶었다"

- <정도전> 연출을 맡았던 강병택 PD와 인연이 있었다고.
"강병택 PD가 조연출 시절에 처음 알게 됐다. 그런데 <정도전> 주인공 역할을 두고 캐스팅 디렉터를 통해 내 매니저에게 연락을 했다고 하더라. 대개 캐스팅 디렉터를 통하는 건 좀 작은 역할에만 그렇고, 주인공은 PD가 직접 배우에게 전화를 하는데…. (웃음) 그래서 강 PD를 만났다. '왜 그랬냐'고 물어봤더니 '하도 바빠 보여 그랬다'고 하더라. 그리고 시놉시스를 받았다."

- 시놉시스를 읽으니 어떻던가.
"시놉시스가 책 두께였다. 책 읽는 걸 정말 싫어하는데…. (웃음) 그래서 하루는 집에 자정쯤 들어가서 '오늘은 1/3만 보면 대성공이다'라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너무 재밌는 거다. 결국 새벽 4~5시까지 정독하면서 다 읽었다. 다 보고 나니 잠이 안 오고, 되레 정신이 맑아지더라. 맥주를 한 캔 까서 마시면서 '이건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날 다시 강병택 PD를 만나 '나 말고 누구에게 줬냐'고 물어봤더니 '없다'고 하더라. 그게 거짓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형이 첫 번째다'라기에 '그래? 그럼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주지 말라'고 했다. '출연료만 웬만큼 맞춰주면 하겠다'고 했지. 대하드라마는 대부분 (보통 출연료의) 반절, 후하게 줘도 2/3다. 그래도 하고 싶었다."


 KBS대하드라마 <정도전>에서 정도전 역의 배우 조재현이 1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나는 정도전이 언제 죽어도 괜찮다는 마음가짐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기왕이면 자기가 바랐던 대업에 마지막으로 몸을 던지고 죽고 싶은, 그런 사람이었을 거다." ⓒ 이정민


- 시놉시스의 어떤 부분이 그렇게 와 닿았던 건가.
"나는 사실 사극을 안 좋아한다. 그런데 정도전이라는 인물 중심으로 읽히더라. '어쩜 이 시대에 이런 사람이 있나, 그런데 어째서 나뿐만 아니라 모든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이렇게 안 알려졌을까'라는 답답함이 일었고, 이걸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 왜 우리에겐 잘 전해지지 않았을까? 정말 앞서간 사람이지 않았나."

- 드라마를 하며 자연스럽게 역사 공부도 많이 했을 것 같다.
"도올 김용옥 선생님이 정도전에 대해 이야기한 동영상을 찾아봤는데 (정도전에 대해) 정확히 짚어 주신 것 같다. 정도전이 아이러니하다. 조선을 만들었지만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다. 반면 정몽주는 잘 알려져 있다. 이방원이 새롭게 조선을 시작하면서 정몽주와 같은 충신이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제 2의 정도전'과 같은 사람은 (이방원의 조선에는) 필요치 않다는 뜻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완전히 몹쓸 놈을 만들어 버린 게 아니었을까.

오죽했으면 정도전은 시체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가 없지 않나. 실록엔 우면산에 버렸다는데 확실치 않고, 지금은 가묘만 있다. 실록엔 정도전이 죽을 때 살이 뒤룩뒤룩 쪄서 장독대 뒤에 숨기도 했다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을 거라 확신한다. 이방원에게 방심해 기습당했지만, 나는 정도전이 언제 죽어도 괜찮다는 마음가짐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기왕이면 자기가 바랐던 대업에 마지막으로 몸을 던지고 죽고 싶은, 그런 사람이었을 거다."

- 정도전처럼 현실적인 감각이 있는 사람이 왜 이방원을 버려서 그런 일을 당한 걸까.
"실제로 정도전이 술자리에서 '내가 왕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는 사료가 있다. 정도전은 재상 정치를 의도했고, 그걸 수용한 게 이성계였다. 그런데 이방원은 그걸 용납하지 못한 인간이었고. 기습을 당한 날에 (정도전이) 쓴 시를 보면 그가 그때 죽을 거라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열심히 살았는데, 이 한잔 술에 모든 것이 허사가 됐구나'라는 게 직설적이지 않나. 갑자기 죽게 되니 '잠깐만!' 하고 시를 썼을 거다. 수정도 못하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을 거고. 그런 사람이 정말 살이 뒤룩뒤룩 쪄서 도망가고 그랬을까?

정도전이 죽은 뒤에도 이방원은 정도전의 큰아들은 살려 뒀다. 이방원은 자신의 부인 빼고는 외가 쪽 사위까지 다 죽인 사람이다. 그런 이방원이 정도전의 큰아들은 남겨뒀다는 건 의미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를 이어준다는 건, 최소한 그 사람을 좋아했다는 거다. 존경했다는 거지. 자신과 정치적 색깔과 노선이 맞지 않아 죽이긴 했지만 경멸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라 해석했다."

"정도전 분량 적었지만, 작가의 배려 느껴졌다"

 KBS대하드라마 <정도전>에서 정도전 역의 배우 조재현이 1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축구로 따지면 그들이 골은 넣었지만, 전체 게임을 운영한 건 정도전이었다. 그래서 (아쉬움은) 다 풀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정도전이) 골을 넣게 해 준 것, 그것도 작가에게 감사하다." ⓒ 이정민


- <정도전> 촬영 중 열렸던 기자간담회에서 대하드라마에 출연한다는 것에 대한 사명감을 이야기했다. 다 이룬 것 같나.
"그때 '아직까진 무늬만 정도전'이라는 얘길 했던 걸로 기억한다. (웃음) 사실 난 작가나 감독에게 전화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전체를 꾸려가기 바쁜 사람들에게 나 하나의 캐릭터를 갖고 얘기하는 건 자제하려는 편이다. 그래서 그냥 기다렸다. 그러다가 간담회에 가서 그런 얘길 한 거지. (웃음) 그 뒤 강병택 PD는 '후반전을 두고 보자'고 하더라.

솔직히 말해 그때까진 (<정도전>이) 대하드라마 <이인임>, <이성계> 같지 않았나. (웃음) 한 5~6부작짜리 <최영> 같기도 했고, 7~8부작짜리 <정몽주>이기도 했고. 여하튼 (강병택 PD의 말에) 계속 기다렸는데 40회가 돼도 내 기회가 안 오는 거다. 그때부턴 화병이 나기 시작했다. 뒤늦게 용기를 내어 (정현민) 작가에게 문자를 보냈다. 42회쯤이었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상(조재현은 지난 5월 <정도전>으로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기자 주)도 받았겠다…."

- 뭐라고 보낸 건가. (웃음)
"장문의 문자였다. '이번 드라마를 통해 나 개인보다 <정도전>이라는 드라마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게 됐는데, 그런 드라마에 배우로 출연한 게 감사하다. 이성계는 인간적으로 잘 그렸다. 정몽주는 재탄생시켰고, 이인임은 새로 만들었다. 최영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입체적이었다. 그런데 정도전은?'이라고 보냈다."

- 정현민 작가에게 답장이 어떻게 왔는지도 궁금하다.
"정말 좋은 친구다. 내 장문의 문자에 답장은 좀 짧게 보냈지만. (웃음) 사실 정도전의 분량이 적긴 했지만 작가가 배려해 주는 게 느껴졌다. 항상 (이야기가) 정도전의 시점으로 쓰이지 않았나. 돌이켜 보면 20부작짜리 드라마 주인공도 있었고 5부작짜리 주인공도 있었지만, 끝까지 <정도전>은 그들의 시점으로 가진 않았다. 축구로 따지면 그들이 골은 넣었지만, 전체 게임을 운영한 건 정도전이었다. 그래서 (아쉬움은) 다 풀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정도전이) 골을 넣게 해 준 것, 그것도 작가에게 감사하다."

 KBS대하드라마 <정도전>에서 정도전 역의 배우 조재현이 1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시청자 입장에선 '좋은 사람'인 정도전은 계속 헛발질하는 걸로 보이고, 이인임은 나쁘지만 멋있어 보였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전이 시속 130km짜리 공을 던져 이인임을 부각시킨 덕분이다. 작가가 잘 쓴 거다." ⓒ 이정민


- 작가 입장에서도 정사에 전면적으로 기록되지 않은 <정도전>은 좀 힘들었을 수도 있다.
"(고개를 끄덕이며) 돌이켜 보면 참 힘들었다. 처음엔 언론에서 '정통 사극의 부활'이라며 많이 도와줬다. 그러다 보니 사극 마니아들이 열광해 주고, 그러면서 드라마가 더 정도를 가게 된 것 같다. 양지(강예솔 분) 이후로 어긋나지 않았잖나. 사실 양지 때문에 사극 마니아들에겐 뭇매를 맞았다. '왜 턱도 없는 멜로냐' '도성은 난리가 났는데 웬 연애질이냐'…. 그렇게 양지 이후로 정사에 어긋나지 않게 최대한 노력하다 보니 정도전이 방점을 찍은 일이 없었던 거다. 다 최영, 이성계, 정몽주가 찍었지. (웃음) 그러니 글 쓰는 사람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됐다."

- 그래도 주인공 입장에선 아쉬웠을 법하다. 초반 이인임(박영규 분)이 주목을 받고, 그 후에도 이성계(유동근 분), 정몽주(임호 분) 등의 활약에 정도전이 밀린 느낌도 있었지 않나.
"투수로 치면 이인임이 던지는 공은 시속 160km짜리다. 보는 사람들은 그가 좋은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를 떠나 시원함을 느꼈을 거다. 그런데 정도전이 던지는 건 아주 지저분한 시속 130km짜리 공이었던 거지. 저쪽에선 메이저리거가 직구를 던지고 있는데, 여기선 고교 야구 선수가 직구를 던지는 것 같아 보였을 거다. 시청자 입장에선 '좋은 사람'인 정도전은 계속 헛발질하는 걸로 보이고, 이인임은 나쁘지만 멋있어 보였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전이 시속 130km짜리 공을 던져 이인임을 부각시킨 덕분이다. 작가가 잘 쓴 거다."

====KBS 대하사극 <정도전>의 조재현 인터뷰====

①-"분량 적었지만, '정도전'을 운영한 사람은 나였다"
②-"정도전이 부활했다면? '꿈을 품으라'지 않았을까"
③-"내가 뭘 보고 '수구꼴통', MB-김문수 '따까리'인가"

정도전 조재현 정현민 강병택 이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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