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는 세계적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자극적인 이슈다. 어느 나라든지 공공부문이 기업으로 넘어가는 일은 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기에 그럴 것이다. 그러나 민영화 이슈가 상대적으로 사람들의 큰 관심을 끌지는 못하는 것이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인 듯하다.

한국에서도 지난 연말부터 몇개월 동안 'KTX 철도 민영화'가 화두로 떠오르긴 했지만, 철도노조의 파업이 어떤 불편을 끼치는지에만 촛점을 맞춘 언론의 보도에 비해 정작 민영화의 폐해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당시 보수언론은 '귀족노조'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파업의 정당성을 흐려놓았고, 경영진이 아닌 노조가 기업의 부채를 야기한 방만경영의 주범인 것처럼 묘사했다. 이렇듯 언론에서 양측의 주장을 다른 무게로 다루며 여론을 몰아가자, 사태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은 '시끄러운' 파업이 가라앉으면 다른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했다.

당장 나에게 큰 불편함이 없다면 큰 관심이 없다는 반응이었다. 파업에 참여했던 당사자들은 여전히 징계를 받거나 소송을 당하고 있지만, 대중에게 '철도 민영화 이슈'는 지금도 쉽게 잊히고 있는 것이다.

그런 세태를 감안할 때, 우리 사회에는 '민영화가 어때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민영화'라는 단어 자체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와닿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수도 있겠다. 물론 민영화라는 것이 한마디로 쉽게 설명하기에 쉽지 않은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에 민영화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도록 보여주는 영화가 개봉한 바 있다. 바로 지난 3일 막을 올린 다큐영화 <블랙딜>이 그것이다.

세계 각국의 민영화, 그 참상을 둘러보다

 영화 <블랙딜>의 한 장면. 민영화가 이루어진 아르헨티나의 노후된 철도는 오직 기업의 '이윤추구'만을 위해 달린다. 그 이윤추구에는 이용자의 편의는 포함되어 있지 않으므로, 청결이나 안전과 같은 필수적인 요건은 배제된 상태다.

영화 <블랙딜>의 한 장면. 민영화가 이루어진 아르헨티나의 노후된 철도는 오직 기업의 '이윤추구'만을 위해 달린다. 그 이윤추구에는 이용자의 편의는 포함되어 있지 않으므로, 청결이나 안전과 같은 필수적인 요건은 배제된 상태다. ⓒ 인디플러그


영화 <블랙딜>은 세계 각국을 방문하여 현지의 민영화 실태를 영상으로 담았다. 독일, 프랑스, 영국과 같은 유럽에서부터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까지. 그리고 한국과 가까운 일본의 민영화가 그곳에서 살아가는 국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세세하게 보여준다.

그 사례 중 하나로,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온세역에서는 역내로 진입한 열차가 시속 5km로 느릿느릿하게 달린다. 그 속도가 지나치게 느려서 보고 있으면 답답할 정도이고, 실제로 이용객들도 이에 불편을 호소한다. 그렇다면 과연 열차가 이곳에서만 이렇게 느리게 역으로 진입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바로 이 역에서 열차 진입 도중 큰 사고가 발생한 것이 두 차례나 되기 때문이다. '효율'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안전장치가 미비한 상태로 운행되던 노후된 열차가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역으로 돌진하여 충돌했던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1990년대부터 철도를 민영화했고,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해당 기업은 열차 보수에 제대로 투자를 하지 않았다. 이런 아르헨티나의 현실은 2012년에 51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당하는 끔찍한 참사를 낳고 말았다. 그럼에도 정부의 대처는 '역에서 시속 5km 이하로 주행할 것'을 명령하는 일에 불과했고, 부실경영으로 사고를 유발한 기업에 대한 처벌 조항은 어디에도 없었다.

칠레의 경우는 더욱 가관이다. 과거 칠레에서는 군부세력이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후, 독재를 이어나가며 국가의 다양한 공공재를 민영화했다. 심지어는 사람들의 노후를 책임질 국민연금까지도 가입자 대부분을 민영보험회사에 넘겼는데, 경쟁체제 아래 고객유치에 혈안이 된 기업들은 회사 자금의 60%나 되는 비용을 광고비와 홍보사업비로 소진했다.

그 결과로 정작 연금을 지급할 예산은 턱없이 줄어들어서 노년층은 연금을 받더라도 가난에 허덕인다. 반면 독재정권에 충성한 군인들은 정부의 연금 혜택을 받아 부유하고 윤택한 삶을 살아간다. 인터뷰에 응한 칠레 시민은 독재정권에서 국민의 동의없이 이루어진 민영화가 빈부격차를 크게 벌려놓았다고 탄식한다.

<블랙딜>은 그 외에도 일본과 영국, 프랑스 등 총 7개국을 둘러보며 철도-물-교육 등의 분야에 민영화가 가져온 참상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그 문제들은 열차가 예정된 시각에 도착하지 않는다거나 쓰레기로 가득한 지저분함 같은 부분적인 불편함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보다 나아가서 식수로 쓰이는 수도비 폭증과 대학등록금 등 경제적인 분야에도 영향을 미치고,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을의 기차역을 폐쇄하는 것처럼 현실적으로 크게 와닿는 사안들이다. 게다가 안전에 투자하지 않는 회사의 소홀함으로 수십 명이 사망하는 대형사고에서 볼 수 있듯이, 민영화가 가져오는 폐해는 단어의 생소함과는 달리 우리의 삶과 직결되는 것이다.

민영화의 이면, 그림자에 숨은 '검은 거래'

 영화 <블랙딜>의 한 장면. 지난 수십년간 아르헨티나에서 대통령과 환경부장관의 주도하에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던 공공부문 민영화. 영화는 그 과정이 기업의 로비와 정치권의 비리에 의한 부패로 가득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블랙딜>의 한 장면. 지난 수십년간 아르헨티나에서 대통령과 환경부장관의 주도하에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던 공공부문 민영화. 영화는 그 과정이 기업의 로비와 정치권의 비리에 의한 부패로 가득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 인디플러그


아르헨티나는 지난 수십 년간 철도를 비롯하여 수도 등 다양한 공공재를 민영화했다. 그리고 영화 <블랙딜>은 광범위한 민영화의 배경으로 정치권력의 부패와 기업의 적극적인 로비를 핵심적인 이유로 꼽는다. 은행 전산시스템과 항공 부문 등 폭넓은 분야의 운영을 민간회사에 위탁하면서 정부인사들이 부정한 돈을 받고 소수 대기업에만 특혜를 주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 민영화를 추진했던 메넴 전 대통령과 드로미 전 장관은 이후에 업체 선정 과정에서 뇌물을 수수했다는 혐의를 받았으며, 이 중 사실로 드러난 것이 상당히 많다고 관계자들은 증언한다.

온세역 사고로 아들 루카스를 잃은 어머니 마리아 루한 레이는 "민영 기차 회사의 운영진인 형제가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서 보석과 자동차 구매에 썼다고 관세청 공무원들이 증언했다"며 고발한다. 대형 참사 전후로 해당 기업이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았지만 정작 열차와 선로의 안전장치는 민영화 이전과 다름없이 60년이나 노후된 상태였고, 운영자금은 엉뚱한 곳에 쓰면서 낭비했다는 충격적인 폭로이다.

거기다 민영화되었던 아르헨티나의 수도 사업은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비용만 급격히 상승해서 결국 다시 국영화되었다고도 전한다. 오히려 재국영화된 이후에 더 빠른 시간에 많은 가정에 수도를 공급했다고도 덧붙인다. 민간기업이 10년간 200만 가구에 수도관을 확장했지만, 지역기관인 부에노스아이레스 수도부가 운영권을 인수한 뒤 7년 만에 350만 가구에 수도관을 설치하여 공급 중이라는 것. 결국 '민영화'가 '더 나은 효율'을 가져온다는 믿음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님을 보여주는 셈이다. 

프랑스 물기업 '수에즈'의 CEO출신 간부는 한술 더 떠서 뇌물을 주고받는 행위가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현실에는 뇌물을 제공하는 자와 받아 챙기는 이가 있는데, 그건 항상 존재했던 것으로 우린 그렇게 수천년 동안 살아온 겁니다"라며 뻔뻔하게 말한다. 실제로도 그는 민영화 입찰 관련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아 경영직에서 물러난 전력이 있는 인물이다.

<블랙딜>은 이와 같이 민영화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충격적인 소재이지만 되도록 담담한 어조로 나레이션을 읊고 차분하게 영상을 띄우는 방식으로 각국의 현실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그 덕분에 드러나는 공공재 민영화의 어두운 그림자에는 영화의 제목처럼 '검은 거래'가 자리잡고 있다. 정치권의 부패와 기업의 비윤리적인 행태가 교묘하게 만나는 지점, 불쾌하고 더러운 냄새가 풍기는 '블랙딜' 말이다.

여러분의 공공재는 안녕들 하십니까?

 영화 <블랙딜>의 포스터.

영화 <블랙딜>의 포스터. ⓒ 인디플러그

1980년대에 국가의 재정적자를 이유로 시작된 영국의 대대적인 민영화 정책, 그리고 뒤를 이은 미국의 규제완화. 이후에 계속된 남미의 민영화 실험은 전 세계의 민영화 바람을 이끌다시피 했다. 각종 공공재는 민영화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졌고, 규제는 악으로 규정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민영화의 기세가 최근 한국으로 넘어왔다. 물론 IMF를 거치면서 통신회사 KT가 민영화되었고 이전 정부에서도 이루어지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사람들이 피부에 와닿는 민영화 추세는 MB정부 이후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 시점에 영화 <블랙딜>은 민영화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여섯개의 국가를 탐방하고 그 결과물을 우리 앞에 선사한다. 영국의 철도, 칠레의 연금과 교육, 아르헨티나의 발전과 철도, 일본의 철도, 프랑스의 물과 독일의 전력까지.

"민영화가 이뤄진다면 우리가 얻는 것은 사회불평등 뿐입니다"라고 외치던 칠레의 대학생 크리스토퍼의 목소리가 영화가 끝난 뒤에도 계속 귓가에 맴돈다. 교육비용의 급등으로 대학교를 다니기만 해도 빚더미를 떠안아야 하는 그의 처지는 한국의 많은 대학생들과 닮아있다. 크리스토퍼 뿐만 아니라 민영화로 인해 변해버린 칠레 국민들의 삶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졌다. 이렇게 보자면 민영화로 빈부격차 심화 등의 고통을 겪은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어제는 곧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오늘이자 내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일본에서도 철도 민영화 이후 큰 열차사고가 있었는데, 해당 민간철도회사의 사훈은 "돈 버는 것이 제일"이었다고 한다. 생명을 비롯한 다른 가치를 제쳐두고 '이윤'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사기업에 국민 생활의 필수적인 요소인 공공재를 모두 맡겨도 괜찮을까. 정부와 기업의 끈적한 유착을, 그 불편한 이면을 그저 '그런 일은 없으리라' 눈감고 기도하며 모른체 하면 모두가 편해질까. 민영화나 기업 자체를 악으로 묘사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고 할지라도, 최소한 이러한 물음만큼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해보아야 마땅하지 않나 싶다.

그런 점에서 영화 <블랙딜>은 시대의 흐름에 맞는 이야기를 화두로 삼은 셈이다. '부채감축을 위한 공기업 매각'과 '규제 완화'를 정부가 최우선 과제인양 내세우는 한국도 이쯤에서 민영화된, 혹은 민영화 될지 모르는 공공부문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민영화 자체보다 정부와 기업의 행태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과 망각이 더 심각한 상황을 가져오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 장면을 떠올려 보자면 말이다. 그리하여, 이 한마디의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이다.

"여러분의 공공재는, 안녕들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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