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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연령 30년 연장은 불법 구조 변경 허용과 같아

널리 알려진 것처럼 선박연령은 2008년과 2009년 5년씩 연장되면서 30년까지 허용되었다. 외국에서는 20~30년 넘는 배도 운항한다지만, 그런 배는 대부분 개발도상국에서 운영되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 검사기준이 까다로워 20년을 넘겨 운영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그림1>에서 나오 듯 지난 15년간 선박손실사고가 난 배의 평균연령은 25년 전후다. 20년을 넘기면 선박이 위험하다는 의미다.

「지난 15년간 선박 사고」(2013)
▲ <그림 1> 선박손실사고 평균연령 「지난 15년간 선박 사고」(2013)
ⓒ 영국 솔런트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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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연령이 늘어나면 노후선박을 수입해 운항하려는 선주들이 늘어난다. 이때 문제가 발생한다. 보통 노후선박을 도입하면 자신의 목적에 맞게 배를 고치는데, 이때 선주들은 대부분 안전성보다 수익성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조 변경할 때 심사과정은 배를 처음 건조할 때 심사과정에 비해 간단하기도 하다.

세월호 구조변경도 그랬다. 청해진 해운은 일본에서 수명이 다한 18년 된 배를 수입해서 개조했다. 배가 실을 수 있는 전체 용적톤수를 6586톤에서 6825톤으로 늘렸다. 승객이 956명이면 화물은 1070톤만 승선하겠다고 해, 한국선급의 선박검사기준을 통과했다. 그리고는 재화중량을 3790톤에서 3963톤으로 속여 신고하여 운행했다. 과적을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배를 구조변경 한 것이다.

선령증가로 인한 노후화도 문제지만, 선박연령 규제완화 문제는 '선령증가 → 중고선박거래 활성화 → 불법구조변경 용이'의 악순환을 만든다는 데 있다. 선박연령 규제완화가 불법 구조변경의 싹을 키운 것이다.

연안여객 운항관리업무의 민영화 및 정부보조금 삭감

1993년 서해 페리호 침몰로 292명이 사망한 이후 정부는 연안여객 운항관리자를 늘렸다. 하지만 당시 김영삼 정부는 이 업무를 해운조합으로 민영화시켰다.

이 운항관리업무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 경험이 부족한 운항관리사가 운항관리일을 한다는 점, 둘째 정부보조금이 줄면 운항관리자도 줄고 그러면 해운회사의 영향력이 더 커져 운항관리업무가 유명무실화된다는 점.

실제로 한국의 운항관리사는 2급 항해사 자격증과 3년 이상 경력만 있으면 된다. 참고로 일본은 선장 경력만 3년 이상이 되어야 운항관리사가 될 수 있다. 이는 운항관리의 부실을 가져올 수 있는데, 배를 타는 이들 중 배의 만재흘수선(배에 화물을 실을 수 있는 한계를 표시한 선)을 최종 점검하는 사람은 1급 항해사이고, 1급 항해사 경험이 있어야 배의 운항과 안전을 어느 정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운항관리사는 1급 항해사 경험이 없어도 된다. 즉 만재흘수선 점검에 대한 현장경험이 적어도 운항관리자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언론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세월호는 평형수를 빼고 그 공간에 화물까지 실었다고 한다. 운항관리자가 이를 사전에 알고 단속할 역량이 애초에 부족했다는 의미다.

「해수부, 세월호 운항관리 소홀 드러났다」
▲ <그림2> 여객선 안전책임자와 운항관리자 「해수부, 세월호 운항관리 소홀 드러났다」
ⓒ 『시사저널』1284호, (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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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항관리자를 유지할 수 있는 정부보조금 삭감은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그나마도 부족한 운항관리자마저 줄어들기 때문이다. 서해 페리호 참사가 잊히기 시작한 1996년부터 예산이 줄고, 급기야 2001년에는 한 푼도 지원되지 않았다(그림 2 참조). 2005~2010년까지는 무려 6년간 한 푼도 지급되지 않았다. 대신 정부는 해운조합에게 해운회사로부터 여객운임수수료에서 일부(3~4%)를 떼어 받을 수 있게 하였는데, 그 사이 운항관리자는 크게 줄어들었고, 반대로 새로 들어온 운항관리자에 대한 해운회사의 입김은 더욱 커졌다.

해운회사 이익단체인 해운조합에게 운항관리업무를 맡긴 것부터 문제였는데, 정부보조금마저 줄였으니 운항관리업무는 완전히 유명무실화 되었다. 과적·과승은 전혀 규제되지 않았다. 세월호는 그런 상태에서 인천항을 떠났다.

사업주에 대한 양벌 규제 완화

「세월호, 173톤 조작 미스터리」
▲ <그림 3> 선박안전법 개정법률안 「세월호, 173톤 조작 미스터리」
ⓒ 『추적 60분』, 1112회 (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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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29일, 연안여객의 사업주들이 고대하던 규제완화가 이뤄지는데, 바로 자신들에 대한 양벌규제가 완화된 것이다. 당시 국회는 규제개혁특별위원회를 열어, 양벌규정이 기업 활동을 방해하는 구실을 앞세워 「선박안전법」,「선박투자회사법」,「선박직원법」,「국제항해선박 및 항만시설의 보안에 관한 법률」,「선박소유자 등의 책임제한 절차에 관한 법률」,「선박평형수 관리법」을 '개정'한다.

"선박 소유자가 그 위반행위를 방지하기 위하여 해당 업무에 관하여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즉, 주의와 감독만 일정하게 했으면 사고를 일으킨 당사자에게만 책임을 물리고 최고경영자나 실소유주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조항을 삽입한 것이다. 사업주의 책임범위를 제한하는 법률을 무더기로 통과시킨 것이다.

'해상사고는 고의나 중과실이 아니면 책임한도를 제한한다'는 조항은 상법에도 있었다. 법원은 이를 근거로 '삼성중공업 서해 기름오염사고', 이른바 삼성·허베이 스피리트호 충돌사고에서 삼성중공업의 책임제한만을 인정했다(2010.1.24). 그렇게 해서 삼성중공업은, 자신의 과실로 인한 기름유출사고로 수명의 피해주민들이 자살하고, 5736억 정도로 추정되는 막대한 피해액이 발생했음에도, 그 1%인 56억 원 정도만 지급하면 되는 것으로 상황을 끝냈다.

상황이 이런데, 「선박안전법」에서 선박소유주의 양벌책임을 완화했으니 청해진해운과 실소유주 유병언은 이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2012년 10월 청해진 해운은 일본 '마루에 페리'사에서 116억 원에 중고 배를 사서, 30억 원을 들여 증축했다. 그렇게 해서 세월호는 2013년 1월부터 2014년 3월까지 과적으로만 30억 원을 챙겼다.

세월호는 천천히 침몰했다

서해 페리호가 침몰한 지 21년이 지난 지금도 해상운송, 특히 연안여객에 대한 규제는 사실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정부는 그나마 존재하던 최소규제 조차, '예산 부족, 기업 친화적 제도정비'를 들먹이며, 운항관리업무를 민영화하고, 안전에 대한 기업주의 책임을 완화시켰다. 세월호는 아주 천천히 침몰했던 것이다.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오전, 침몰하는 배 위에 함께 승선해 있던 단원고의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우리의 이웃과 시민들이, 비정규직 선원들이 한꺼번에 희생당했다. 규제는 정부가 완화하고, 돈은 기업주가 벌었다. 그리고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이었다.

지자체 선거가 끝난 직후 좋은 규제, 나쁜 규제를 구별하자며 기업친화적인 규제완화 고삐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들려오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풀어놓은 규제완화가 이 참극을 일으켰다는 점을 진정 모르는 것일까? 정부의 규제완화가 탐욕의 화신 유병언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이익에 눈이 먼 사업주들이 이런 비슷한 사태를 또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진심으로 모르는 것일까?

바꿔내야 한다. 그날 세월호에 승선하지 않고 살아남은 우리 생존자들이 바꿔내야 한다.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안전을 위한 규제를 강화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들을 마련하고… 이것은 살아남은 자의 의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 글쓴이는 사회진보연대 사무처장입니다.



태그:#세월호, #규제완화, #안전, #민영화, #양벌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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