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반딧불이> 에서 사토시를 연기하는 이도엽

▲ <가을 반딧불이> 에서 사토시를 연기하는 이도엽 ⓒ 박정환


<가을 반딧불이>는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사는 가운데서 치유를 이야기하는 연극이다. 배우 이도엽이 연기하는 사토시는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같이 살게 해달라고 무릎을 꿇고 사정하는 남자다.

사토시는 겉으로는 강해보이지만 속 마음은 정 많은 인물이다. 특히 이도엽이 연기하는 그는 할 말은 다 하면서도 허당기가 있어 동네 바보 형처럼 느껴진다고나 할까. 영화 <관상>에서 김종서(백윤식 분)의 아들 김승규를 연기하기도 한 이도엽은 느티나무에 흩날리는 나뭇잎을 보더라도 배우에게 어떤 감수성을 전달할까 생각해본다는 감상적인 배우이기도 하다.  

- 매 공연할 때마다 물에 빠진다. 지금이 겨울이 아닌 게 다행이다.
"지금 공연이 세 번째 시즌이다. 첫 시즌은 지난 여름, 두 번째 시즌을 올해 2월에 했다. 매 시즌마다 극장이 달라서 물길의 깊이와 폭이 매번 달라진다. 비록 물에 빠지지만, 빠질 때마다 관객이 즐거워한다는 점에 만족하고 있다. 이번에는 물길이 얕아서 흥이 나지는 않지만 관객은 즐거워한다.

하지만 지난 시즌인 겨울에 공연할 때 관객의 반응은 지금처럼 웃고 즐거워하지 않았다. '워'하고 걱정을 많이 해주셨다. 양말과 속옷은 매 공연할 때마다 물에 빠질 것에 대비해서 두 벌 이상 챙긴다. 첫 공연할 때에는 물길의 깊이가 지금 공연하는 극장보다 깊었다. 물에 빠질 때 호흡이 곤란할 때도 있었다."

"발버둥치는 사토시 연기, 건강 잃고 연기 얻었단 소리도"

- 이도엽씨가 연기하는 사토시는 처음 보는 이들에게 함께 살게 해달라고 조른다.
"처음에는 사토시가 아닌 분페이를 연기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다가 사토시로 캐릭터가 넘어오게 되었다. 낯선 사람들에게 불쑥 같이 살게 해달라고 하는 사토시를 처음에는 부드럽게 연기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샤프심이 생각났다. 샤프심은 날카롭지만 잘 부러진다. 샤프심을 사토시 캐릭터에 적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시즌에는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토시를 연기했다. 실직하고, 아내와 헤어지고 갈 곳이 없는 남자를 연기하기 위해 캐릭터에 집중하다 보니 살짝 공황장애까지 다다랐다. 당시 작품하랴, 수업하랴 일이 너무 많았다. 연극을 많이 했지만 공황장애까지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때 사진을 보면 지금과는 모습이 완전히 다르다. 누군가가 '이도엽은 시즌 2때 건강을 잃고 연기를 얻었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였다. 관객은 매 시즌할 때마다 사토시를 같은 배우가 연기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지금은 지난 시즌과는 살짝 다르게 샤프심과 같은 저돌적인 연기를 한다."

<가을 반딧불이> 에서 사토시를 연기하는 이도엽

▲ <가을 반딧불이> 에서 사토시를 연기하는 이도엽 ⓒ 박정환


- 지난 시즌 공연할 때 마음앓이를 했다면 이번에 공연 섭외가 들어왔을 때 조심스럽지 않았는가.
"극 중 삽입된 '미세스 로빈슨'이라는 음악을 듣는 순간 지난 시즌 당시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살짝 트라우마가 연상되었다. 어떡할까 고민하다가 공연을 했는데 그날 공연 반응이 좋았다. 공연이 좋다는 평가는 배우가 하지 않는다. 관객과 연출가가 평가한다. 매 장이 끝날 때마다 박수 소리가 그치지 않는 걸 보고 반응이 좋다는 걸 알았다. 트라우마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히니 당시 기억들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가을 반딧불이>에서 사토시를 대본으로만 보면 (또 다른 사토시 역의 배우) 배성우가 딱 맞다. 배성우의 캐릭터가 저랑 겹치지 않아서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살짝 있었다. 배성우가 천상 사토시라 처음에는 저도 모르게 배성우가 연기하는 사토시를 따라하게 되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저만의 사토시를 고민했다.

배성우가 연기하는 사토시가 재기할 의사가 없는 남자, 회사를 말아먹었을 남자라면, 제가 연기하는 사토시는 재기할 뜻이 있으면서, 정말로 회사가 부도나서 그만두게 된 남자라는 평이 나왔다."

- 영화 <관상> 찍을 때가 <가을 반딧불이> 시즌 1~2 사이였나.
"시즌 1과 2 사이에 영화를 찍었다. 극 중 백윤식 선배님이 연기한 김종서 장군에게 충성을 다하는 아들을 연기했다. 백윤식, 송강호 같은 거물 선배님들과 함께 작업하다 보니 주눅이 살짝 들기도 했다. 송강호 선배님은 동물 같은 연기를 할 줄 안다. 평상시에는 촬영장에 놀러온 분처럼 있다가도 촬영에 들어가기만 하면 송 선배님의 온 몸은 연기에 맞게 세팅된다. 연기에 타고난 배우만 가능한 경지다.

<변호인> 시사회를 본 후 송강호 선배님에게 '선배님의 연기를 보면 제가 연기를 그만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씀드릴 정도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송강호 선배님은 '배우마다 캐릭터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다. <관상> 할 때는 캐릭터에 접근하는 방식이 어려웠을 수도 있다. 배우로서 접근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라'는 조언을 주셨다.

배우는 아집이 아닌 캐릭터에 대한 고집이 있어야 한다. 자신이 만든 캐릭터를 연출가와 꾸준히 상의하면서 자신이 만들어놓은 캐릭터를 밀고 나갈 줄 아는 고집이 있어야 한다. (<관상>에 함께 출연했던) 조정석씨에게는 그런 고집이 보였다. 무소처럼 자신만의 캐릭터를 이루기 위해 밀고 나가는 힘이 보였다."

이도엽 가을 반딧불이 백윤식 송강호 배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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