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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개인비리와 불법 대선개입 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그 후임인 남재준 전 국정원장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에 책임을 지고 경질되었다. 차기 국정원장에게는 1차적으로 ‘국정원 개혁’이라는 중책이 맡겨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이병기(67) 주일대사를 국정원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이병기 후보자는 직업외교관 출신이지만, 안기부장 특보와 안기부 2차장,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 특보 경력이 있다. 그리고 바로 이 기간에 안기부 ‘북풍공작’과 한나라당의 ‘차떼기 자금 매수공작’에 가담한 전력이 있는 ‘정치공작 전과자’다. 북풍공작은 검찰 기소를 면했지만, 의원 매수공작은 유죄(벌금 1천만원) 판결을 받았다. 야권이 반발하는 이유다.

이에 이병기 후보자에 대한 면밀한 검증을 통해 대통령이 과연 국정원을 개혁할 의지가 있는지, 국정원에서 또 다시 공작정치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닌지를 짚어본다. 지상 검증은 ▲2002년 차떼기 공작과 이병기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정치특보 ▲1997년 북풍 공작과 이병기 안기부 2차장 ▲이병기 후보자와 국정원장론의 순서로 진행한다. [편집자말]
2003년 1월 10일 새벽 대검찰청에서 구속되던 김영일 전 한나라당 의원(왼쪽) / 2003년 12월 9일 서초동 대검청사에서 구속되던 서정우 변호사.
 2003년 1월 10일 새벽 대검찰청에서 구속되던 김영일 전 한나라당 의원(왼쪽) / 2003년 12월 9일 서초동 대검청사에서 구속되던 서정우 변호사.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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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 중수부(안대희 검사장)가 2002년 대선자금을 수사한 결과, 한나라당과 이회창 캠프가 기업으로부터 수금한 불법자금은 823억2000만 원이었다.

창구별로 분류하면 ▲ 김영일 한나라당 사무총장 겸 선대위 총괄본부장 700억 원(공모) ▲ 최돈웅 한나라당 재정위원장 580억 원(공모) ▲ 서정우 이회창 대선후보 법률특보 575억 원(공모) 등이었다. (각각이 공모한 금액 중 중복되는 금액이 많기 때문에 수금한 불법자금과 차이가 있다.)

한나라당 불법자금의 '공식 입구'는 최돈웅 재정위원장이었다. 이회창 후보의 경기고 동창이자 친구였다. 이회창 캠프의 '비선창구'는 이 후보의 직계인 서정우 법률특보 겸 '부국팀' 부회장이었다. 검찰 수사에서 부국팀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부국팀은 1200억 원 규모의 불법자금을 모금한 것으로 추산되었다. 불법자금의 '입-출구'는 김영일 사무총장 겸 선대본부장이었다. 이회창 후보의 서울대 법대 7년 후배였다.

1심 형량은 법조인인 서정우가 징역4년(추징금 18억 원)으로 가장 높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서 변호사는 최돈웅 의원의 요구에 응한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 불법자금 수수방식을 논의해 실행하는 등 한나라당의 가장 확실한 불법 정치자금 통로 구실을 했다"고 밝혔다. 1심에서 김영일은 3년6개월, 최돈웅은 3년 징역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김씨가 대선자금 모금과 집행을 총괄했다"고 밝혔다. 2심에서 김영일-서정우는 2년, 최돈웅은 1년으로 줄었다.

'차떼기' 3인방 김영일-서정우-최돈웅은 이회창과 특수관계

2004년 당시 대검 중수부가 발표한 '2002년 불법대선자금' 내역.
 2004년 당시 대검 중수부가 발표한 '2002년 불법대선자금' 내역.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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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일 사무총장이 중앙선관위에 제출한 제16대 대통령선거 비용의 수입과 지출 명세서에 따르면, 2002년 하반기(7~12월) 수입 총액은 578억 원(이월금 157억 원, 당비 28억 원, 후원회 기부금 159억 원, 차입금 37억 원, 보조금 197억 원), 지출 총액은 555억 원으로 잔금은 23억 원이었다. 물론 불법자금이 포함되지 않은 '가짜 장부'다. 한나라당 선대본부 발족 시점(2002.9.12)을 기준으로 사용한 공식 선거비, 정당 활동비는 449억 원. 불법자금을 포함하면 대선자금 사용액은 1200억 원을 훌쩍 넘는다.

회계 책임자인 김영일 사무총장은 대선자금의 실제 집행내역을 2003년 1월에 폐기토록 했다. 김영일은 검찰 조사에서 기억을 되살려 자신이 관리한 불법자금 사용 규모를 약 540억 원으로 진술했다. 한나라당은 특히 대선 한 달 전부터 회계처리가 불가능한 지출에 '검은 돈'을 집중 살포했다. 이 돈은 주로 저녁 늦은 시간인 10시~11시경 당 재정국에서 한 번에 4000~5000만 원씩 2번, 3000만 원씩 2번 분배되었다. 전국 227개 지구당 사무국장들이 그때마다 '검은 돈'을 받아갔다.

내역을 보면 ▲ 지구당 선대위 340억 원(선대위 활동비로 전국 227개 지구당에 4~5회에 걸쳐 평균 1억5000만 원씩 지급) ▲ 시도지부 선대위 50억 원(16개 시도지부 각 위원회와 직능단체 관리비) ▲ 별도관리대상 지구당 30억 원 ▲ 직능특위 20억 원(직능단과 종교단체 지원) ▲유세지원 20억 원 ▲ 여론조사 5~10억(여의도연구소 산하 여론조사단 외에 외부 용역조사) ▲ 당외곽 사조직 20억 원 ▲ 중앙선대위 50억 원(미디어대책위와 대변인실, 선대위원장 격려금) 등이었다.

2004년 1월 12일 저녁 6시 30분경 대검찰청에서 최돈웅 한나라당의원에 대한 구속이 집행됐다.(자료사진)
 2004년 1월 12일 저녁 6시 30분경 대검찰청에서 최돈웅 한나라당의원에 대한 구속이 집행됐다.(자료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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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별도관리대상 지구당 30억 원'은 대선을 앞두고 다른 당에서 한나라당에 입당한 이완구, 전용학, 한승수, 함석재 의원 등 14명에 대한 관리비였다. 의원 영입은 외부에서 보기에는 '당세 확장'이지만 내부적으로 기존 지구당위원장들과 지역구가 겹치는 갈등 요인이다. 한나라당은 1인당 2억원씩 '이적료'를 지급해 급한 불을 껐다.

'차떼기' 자금 '매수공작'의 이인제-김윤수-이병기 3인은 경복고 동문

당시 검찰은 '출구(사용처)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불법 대선자금에서 정치인 10명에게 각 5~10억 원씩 전달했다는 범죄정보를 입수했다. 이인제 의원을 '매수'하기 위해 전달한 5억 원도 그 중 하나다. 그 5억은 김영일 선대본부장이 자신이 관리했다고 진술한 불법자금 540억 원의 백분지 1도 안되는 '소액'이다. 물론 540억 원에는 포함되지 않은 돈이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돈이 매수공작 같은 '더티 잡'에 쓰였을지 짐작할 수 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병기 이회창 후보 특보는 김윤수 이인제 의원 특보를 만나 서울 역삼동 라마다르네상스 지하주차장에서 "(이인제에게) 이회창 후보 지원유세를 부탁하라"는 청탁과 함께 경비에 쓰라며 2억5000만 원씩 담긴 사과상자 2개를 건넸다. 이인제, 김윤수, 이병기 세 사람은 경복고 선후배 사이다.

이병기는 당시 "김영일 선대본부장으로부터 돈을 받아 전달했다"면서도 "당 선대본부장이 주는 돈이기 때문에 불법자금인지 여부는 알지 못하고 전액 전달했다"고 해명했다. 안기부 차장까지 지낸 그가 사과상자 현금이 불법자금인지 몰랐다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다. 한나라당이 특보단을 구성하면서 밝힌, 안기부 2차장 출신 이병기 정치특보의 역할도 민주당의 네거티브 공세에 대한 정보 수집-판단과 대응전략 수립이었다. 고상하게 말하면 '이이제이'(以夷制夷)고, 사실은 도둑에게 '방범'을 맡긴 것이다.

이에 앞서 이병기는 이인제가 민주당 경선에서 패배해 탈당 움직임을 보이자 1년 후배인 이인제를 직접 만나거나, 역시 후배인 김윤수를 통해 한나라당 복당과 이회창 지원을 권유했다. 이회창은 1997년 대선에서 이인제의 독자출마로 김대중에게 패배한 경험이 있다. 그런데 이인제가 복당을 거부하고 자민련에 입당하자, 김영일-이병기는 이회창 후보 지원연설을 부탁하며 5억 원을 건넨 것이다. 법원의 최종 판단은 김윤수의 '배달사고'로 결론이 나 이인제 의원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돈에는 '이름표'가 없다지만 액수로 보면 문제의 사과상자는 LG 재무관리팀의 금고방에서 나온 돈상자인 것으로 추정된다. 여의도 LG트윈빌딩에서 국회 앞 한나라당 당사까지는 승용차로 5분 거리(2㎞)에 불과했다. 불법자금인 탓에 트윈빌딩 29층 재무관리팀 금고방의 포장된 상자에 담겨 있던 돈이 2.5톤 탑차에 실려 경부선 하행선 '만남의 광장' 주차장을 찍고 '무면허 운전자'에 실려 먼 길을 돌아온 것이다.

이병기 후보자는 LG그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특수관계인'

검찰도 당초 이병기 특보를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서울중앙지법의 '약식명령문'과 '결정문'에 따르면, 검찰은 범죄수익은닉규제법으로 이병기를 기소했지만, 법원은 벌금 10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내린 뒤 그의 죄명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고쳤다.(관련 기사 : 이병기 국정원장 후보자, 처음에 '범죄수익은닉법' 기소)

이병기 특보는 2002년 11월 말 당시 이인제 의원을 직접 만나 입당 의사를 타진했다. 김윤수의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이병기는 김영일 선대본부장에게 "이인제가 민주당을 탈당할 경우 한나라당 지지를 부탁하면 충청권 표를 얻는 데 도움이 되겠다"고 제안했고, 이에 김영일이 이병기에게 "이인제를 지원해 한나라당을 돕도록 제안하면서 돈을 주자"고 했다. 그리고 12월 3일 이인제가 민주당을 탈당해 자민련에 입당하자 이병기는 김윤수에게 5억 원을 건네며 '매수공작'을 벌인 것이다.

이병기 국정원장 후보자가 6월 15일 오후 서울 강서구 공항로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이병기 국정원장 후보자가 6월 15일 오후 서울 강서구 공항로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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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기 국정원장후보자는 대선 이듬해인 2003년 7월 딸을 결혼시켰다. 사위인 구본욱 LIG보험 전략지원담당 상무는 고(故) 구자성 전 LG건설(현 GS건설) 사장의 아들이자, 구자원 LIG그룹 회장의 친조카다. 구 상무 부친은 LG그룹 창업주 고 구인회 회장의 차남인 구철회 회장의 차남이다. LIG보험은 1999년 LG그룹에서 계열분리 되었다가 2006년에 LG화재에서 상호가 변경되었다. LG 계열사들은 현재 구씨 가문의 3세 경영 체제다.

이병기 후보자는 2005년 5월부터 2013년 5월까지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현 여의도연구원) 고문을 지냈다. 국회에 보낸 인사청문요청안 첨부자료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정작 사돈 회사에서 고문료를 받았다. 소득세 납부내역을 보면, 2008년 7월부터 주일대사로 내정된 2013년 3월까지 LIG손해보험 법인영업지원팀에서 평균 5500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또 이 후보자의 아들은 2011년 3월부터 LG 계열사인 LG CNS에 근무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병기 후보자는 LG그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특수관계인'인 셈이다. 그는 한나라당이 사돈기업에서 '차떼기'한 불법대선자금을 이용해 의원 '매수공작'을 벌인 혐의로 유죄선고(벌금형 1천만원)를 받았다. 나중에는 사돈회사에서 수억 원의 고문료도 받았다. 이병기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국민에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줘야 할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국정원에 필요한 것이 정치공작인가, 아니면 정치적 중립인가?"


태그:#차떼기, #이병기, #서정우, #김영일, #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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