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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미에르 빌딩 앞에서 빅이슈를 파는 김평일 빅판 아저씨.
 르미에르 빌딩 앞에서 빅이슈를 파는 김평일 빅판 아저씨.
ⓒ 송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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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다단계 회사 아니야?"

1학점을 준다는 말에 일단 신청하고 본 <빅이슈> '빅돔' 활동. 지하철역 주변에서 빨간 조끼와 모자를 쓴 노숙인 아저씨 옆에서 잡지를 팔면 된다고 해서 신청했다. 친구는 그 아저씨들 다단계 회사 사람인 줄 알았다고 했다.

친구의 이런 오해는 그럴 듯하다. 아저씨 중 누구는 손가락이 없거나 얼굴에 깊은 흉터 자국이 있었다. 가슬가슬한 피부의 아저씨들은 선뜻 다가가기 쉽지 않았다. 지하철역 근처에서 <빅이슈> 잡지를 파는 이 분들은 소위 '빅판(빅이슈 판매원)'들이다. 내가 맡은 역할은 '빅돔(빅이슈 판매 도우미)'다. 나는 지난 3월부터 지금까지 빅돔 활동을 하고 있다.

<빅이슈 코리아>는 노숙인의 자활을 돕는 잡지로, 2010년 '거리의 천사들'이라는 비영리 단체가 만든 사회적기업이다. 잡지 가격은 5000원. 여기서 2500원은 잡지의 원가로 나머지 금액은 노숙인들의 임대주택 마련에 쓰인다.

이 잡지는 다양한 분야 사람들의 재능기부로 만들진다. 무한도전 구성원들부터 이효리, 장윤주, 엠마 왓슨 등 화려한 스타들이 재능기부로 표지모델과 메인 인터뷰를 장식했다. <말과 활>의 편집장 홍세화, 영화 평론가 최광희, 영화감독 웨스 앤더슨의 인터뷰가 실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다른 잡지에서 볼 수 없는 빅판 아저씨들의 인생 사연과 '메이크오버' 기사가 있다. 주목 받지 않았던 노숙인들이 사회에 적응해가는 모습과 그들이 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때문에 독자들이 노숙인에 대한 이해를 넓힘과 동시에 자신의 구매행위에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의 눈빛과 무관심에 밀려오는 막막함

지난 3월 광화문 사거리 르메이에르 건물 앞에서 김평일 빅판 아저씨와 처음 만났을 때, 으레 사람들이 하는 인사말을 건넸다.

"아저씨, 점심 맛있게 드셨어요?"
"점심? 난 점심 같은 거 안 먹어. 꽤 됐어. 거리에서 살 때부터 그랬으니깐.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거든."

어색함을 풀기 위해 건넨 말이 서먹함만 더했다. 무뚝뚝한 아저씨의 반응에 민망했던 나는 거리의 시민들 때문에 또 민망했다. 양쪽으로 신호등이 바뀔 때마다 몰려드는 넥타이, 하이힐 부대의 초점없는 눈빛을 보면 광화문 네거리에서 벽에다 대고 말하는 기분이었다.

'웬 아저씨랑 뭘 저리 하나' '저 잡상인들은 무엇을 파나'라는 눈빛. 사람들의 이상한 눈빛뿐만 아니라 행인들의 무관심이 나를 더 무안하게 만들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어폰을 꽂고 있어 아저씨와 내가 광고하는 말을 듣지도 못하고, 스마트폰을 보느라 여념이 없다. 그래도 그들을 향해 외쳐야 한다.

"희망을 파는 잡지. 노숙인의 자립을 위한 잡지 <빅이슈>입니다."
"당신이 읽는 순간, 세상이 바뀝니다."
"재능기부자들이 만들어준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잡지 <빅이슈>입니다."

5시간 내내 아저씨와 나는 겨우 5권을 팔았다. 아저씨의 순이익은 5시간 동안 1만2500원인 셈. 평범한 대학생인 내가 처음 이 자리에 섰을 때도 다리가 후들거렸는데, 1년 동안 이 자리에서 묵묵하게 자리를 지키는 아저씨가 대단해 보였다.

"학생과 대화하면 나도 보통 사람이 된 거 같아"

김평일 빅판 아저씨의 메이크오버 기사.
 김평일 빅판 아저씨의 메이크오버 기사.
ⓒ 송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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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돔을 시작했을 때 착각한 것이 있다.

"아저씨, 제가 오면 잡지가 좀 잘 팔려요?"
"뭐, 딱히."

빅판 아저씨의 말을 들었을 때 자존심이 꽤 상했다. 잡지를 산 사람들이 "근데 아가씨는 여기서 뭐해?"라고 물어보면, '딱히 잡지를 팔지도 못하고...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하는 일이란 아저씨와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게 다였다. 학점을 날로 먹는 죄책감이 들어 다른 빅돔 친구들한테 물어봤더니 자기네들도 수다 떨러 간다고 했다.

러시 아워가 아니면 잡지가 거의 팔리지 않는다. 손님이 없는 어색한 시간을 우리는 대화로 채워나갔다. 나는 학교 이야기를, 아저씨는 임대주택에 들어가기 위한 과정 등 서로의 일상을 공유했다. 하루는 친구들과 미팅 나간 이야기를 해드렸다.

"학생 이야기 듣고 있으면 나도 보통 사람이 된 거 같어. 빅판 동료들이랑 이야기 하는 거랑 생기가 달라."

또, 가끔은 시위 행렬과 선거유세를 보며 정치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난 박원순 찍을 거야. 저번에 빅판들이랑 면담한 적이 있는데, 거리에다가 우리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기로 했거든. 나도 <빅이슈> 하면서 시민이 된 거 같아. 학생도 꼭 투표해."
"오늘 또 세월호 시위가 있나 봐. 경찰들이 길을 막아서서 장사가 안 되잖아. 에이 참. 근데 학생은 시청역에서 조문했어?"

아저씨는 오랜 거리 생활로 '동료 빅판' 말고는 친구가 없었다. 아저씨는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일상적인 대화를 하다 보면 거리를 걷는 사람들과 빅판을 하는 자신이나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빅돔이 가서 하는 일은 단순히 책 몇 권을 더 파는 게 아니다. 오랜 시간 노숙을 했고 많은 실패를 겪은 빅판 아저씨들을 격려해 주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사회에 소속감이 들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입 빅판 아저씨들에게 더 빅돔이 필요하다. 이미 이곳에 오기 전 여러 일을 시도했다가 실패를 겪은 분들이기 때문에 책이 많이 팔리지 않아도 쉽게 낙담한다.

"학생, 언제 다시 올 거야?"

항상 무심한 듯 내가 봉사를 마치고 가든 말든 별 궁금함이 없던 아저씨가 얼마 전 물어오셨다.

"아저씨, 나 찾는구나! 다음주 목요일에 올게요."

학점 이수를 위해 24시간 동안 봉사활동을 시작한 상당수의 대학생 빅돔들은 학기가 끝나도 계속 빅돔활동을 한다. 빅돔을 한 친구들끼리 모이면, 나와는 조금 다른 시간을 보낸 아저씨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을 응원한다. 한 친구는 지난해 겨울 도왔던 빅판이 올해 초여름 임대주택에 들어갔다며 자기일 마냥 기뻐했다. 24시간의 봉사활동 내내 쌓인 정이 그리워 빅돔들은 또 거리로 나간다.

'나는 성실한 노숙인입니다'... 빅판 아저씨를 기억해주세요

김평일 빅판 아저씨와 찍은 사진.
 김평일 빅판 아저씨와 찍은 사진.
ⓒ 송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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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일찍 <빅이슈>를 알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루에 세 권 판 적도 있는데 괜찮아. 매일 같이 나와서 일할 수 있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데. 회사 코디네이터들도 나를 선생님이라 불러주며 잘 챙겨주고. 무엇보다 날 찾아주는 독자들한테 제일 고맙지."

을지로 입구역에서 거리 생활을 하던 김평일 빅판 아저씨는 '거리의 천사들'이 배식을 할 때 <빅이슈> 코디네이터들이 나누어준 전단을 받고 용기를 내 도전했다. 아저씨는 <빅이슈> 일을 하기 전 일자리를 주겠다는 이들을 믿고 따라갔다 새우잡이 배에서 노동을 착취당하고, 한쪽 다리에 장애를 얻었다. 여기에, 오랜 거리 생활로 여러 병에 걸린 아저씨가 일할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빅이슈>는 서서 팔면 되니깐 중간에 다리에 마비가 오면 잠시 앉으면 되고. 이거 아니면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받아주는 곳도 없어."

아저씨는 빅판이 되고 나서부터 꿈이 생겼다. 주민등록증 도용문제가 해결돼 하루 빨리 임대주택에 들어가는 것이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젊은 시절 명동에서 구두닦이 했던 기술을 살려 구두 수선방을 운영하는 것이다.

오직 <빅이슈>를 팔기 위해 아저씨가 여기에 서는 건 아니다. 거리에서 만난 독자들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한 번은 빅돔하다가 배고프다며 징징거리는 나를 보더니 가방에서 과자와 햄버거를 꺼내 주르룩 펼쳐 보이셨다.

"이게 다 독자들이 힘내라며 주고 간 것들이야."

빅돔 활동 초반에는 설마 했는데 나도 독자들로부터 요깃거리들을 선물 받았다. 더위에 찌든 아저씨와 나에게 열심히 하라며 비타민 음료를 건네고 간 은행원 언니부터 저녁 시간에도 장사하느라 배고프지 않냐며 도넛을 주고 간 직장인 언니. 굳이 잡지를 사지 않더라도 안부 인사하며 지나가는 요구르트 아줌마까지. 매번 그 자리에 있는 아저씨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 때문에 아저씨는 그 자리에 계신다.

외국인 유동인구가 많은 광화문에서는 기념품으로 <빅이슈>를 사가는 해외 관광객도 많다. 영화 <원스> 속 여주인공이 빅판이었던 만큼 외국에는 <빅이슈>가 잘 알려져 있어 하루에 한 권씩은 외국인에게 판다. 한국에서 의미있는 소비를 하고 싶었다는 캐나다 아줌마. 스페인에서도 <빅이슈>를 모은다는 외국인 관광객. 그리고 김평일 빅판 아저씨에게는 두 명의 일본인 단골 직장인도 있다. <빅이슈>를 사지 않더라도 우리를 보며 "Oh Big Issue. Cheer up!(빅이슈, 힘내세요!)"이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가는 외국인들도 있다.

가끔 거스름돈을 받지 않으려는 독자들도 있고, 외국인의 경우 책을 안 가져가고 돈만 내고 가겠다는 황당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저씨는 꼭 거스름돈을 드리고, 잡지를 독자 손에 들려 보내신다. 아저씨는 구걸이나 기부 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아저씨들이 만근(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함)을 채우기 위해 종일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끼니를 거르며 잡지를 판매하신다.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세심하게 다가가기 위해 얼굴과 일하는 건물을 기억하려고 하신다. 빅돔 친구들과 봉사활동을 담당했던 교수님이 모이면 빅판 아저씨들이 열심히 산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이런 빅판 아저씨들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으면 한다.


태그:#빅이슈, #빅돔, #광화문빅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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