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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와토리분코 오카자키씨가 안내한 첫번째 헌책방으로 골목에 있는 작은 점포다. 그림책과 오래 된 만화책을 주로 다룬다.
▲ 니와토리분코 오카자키씨가 안내한 첫번째 헌책방으로 골목에 있는 작은 점포다. 그림책과 오래 된 만화책을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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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기분을 좋지 않게 만드는 인터넷 뉴스 기사를 봤다. "다 실패한 중고서점, 알라딘만 잘 나가는 이유"(쿠키뉴스, 2014년 6월 16일)가 그것이다. 기사 내용을 읽어 보니 누구라도 지금 헌책방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숙연함이 앞선다. 몇 해 전 대형 인터넷서점에서 중고서적 사업을 시작하면서, 더구나 전국 주요도시에 대형 오프라인 매장까지 문을 열면서부터 작은 헌책방들이 경쟁력을 잃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기사 제목대로 '실패'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그 반대를 '성공'이라 단정 짓지도 말자. 실패와 성공은 눈으로 보이는 규모나 경제력에 있지 않다고 믿는다. 적어도 책을 다루는 일을 하면서부터 더욱 그렇게 확신했다. 대형 체인점이나 동네 골목 작은 헌책방들이 누구 하나 속상한 일 없이 함께 저마다 위치에서 웃을 수는 없을까? 성공과 실패라는 이름표 따위는 떼어 놓고 말이다.

내가 서울의 한 동네 골목에서 헌책방을 운영한 지 이제 7년이 되었다. 책에 대한 연륜도 많지 않은 사람이 헌책방을 하겠다고 무작정 뛰어든 것을 후회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책으로부터 배운 것을 되돌아보면, 헌책방을 선택한 건 내가 지금까지 했던 어떤 결정보다 잘 한 일이다.

더욱이 몇 해 전부터 일본 헌책방에 진지한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책과 책이 있는 공간에 대해서 이전보다 더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물론 서점을 시작하기 전에도 일본 헌책방에 관심은 있었지만 그때는 관광 차원에서 보는 막연한 감상뿐이었다. 그러다 3년 전부터 해마다 몇 번씩 일본에 가서 본격적으로 헌책방을 둘러봤다.

그러나 둘러보는 것은 말 그대로 둘러보는 것 이상이 되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일본에 우리나라보다 헌책방이 더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자세히 알아볼수록 짐작했던 것보다 그 넓이와 깊이가 방대해서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던 중 우리책방에 가끔 들르는 일본인 손님인 오자키 다쓰지씨가 '오카자키 타케시(岡崎 武志)'라는 사람을 알려줬다.

6개월에 걸친 헌책방 전문 작가 인터뷰 작전의 전말

니시오기쿠보 마을 지도 헌책방과 카페, 마을 근방의 상인들이 합심하여 만든 지도. 마을 소개책자 첫장에는 직접 만든 헌책방 주제가도 실려있어 재미있다.
▲ 니시오기쿠보 마을 지도 헌책방과 카페, 마을 근방의 상인들이 합심하여 만든 지도. 마을 소개책자 첫장에는 직접 만든 헌책방 주제가도 실려있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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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엔 수천 개나 되는 헌책방이 있기 때문에 헌책방을 찾아 돌아다니면서 기행문을 쓰는 전문작가도 많다. 오카자키씨는 이런 작가들 중에 단연 으뜸으로, '진보쵸계 라이터'(진보쵸는 도쿄에 있는 역사가 오래 된 헌책방거리 이름이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다. 워낙 유명한 작가이기 때문에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에도 이름이 올라가 있다. 이런 분을 만나 인터뷰 해보면 일본 헌책방에 대해서 더 깊이 알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것이 오자키씨 제안이었다.

우선 오카자키씨에 대해 간단히 인터넷을 통해 조사해 보니 과연 듣던 대로 꽤 유명하고 펴낸 책도 많았다. 이런 분이 한국에서 온 초보 헌책방 일꾼을 만나줄까? 잃을 것도 없으니 한 번 해보기라도 하자, 라는 마음으로 2013년 가을 일본 고서축제에 다녀와서 곧장 오카자키씨에게 연락을 해보기로 다짐했다.

오카자키씨를 알려 준 오자키씨는 "되도록 정중한 마음을 전해야 한다면 이메일이 아니라 손으로 쓴 편지를 보내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편지는 오카자키씨 당사자에게 바로 보내지 말고 책을 펴낸 출판사에 먼저 보내 허락을 구하라고 했다. 까다로운 절차라고 여겼지만 수개월 전에 만날 약속을 잡는 게 예의라고 하니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니와토리분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니와토리분코의 내부. 여기서 필자는 아서 래컴이 삽화를 그린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책을 한 권 구입했다. 사진 왼쪽부터 통역을 맡은 제프리님, 필자, 오카자키씨.
▲ 니와토리분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니와토리분코의 내부. 여기서 필자는 아서 래컴이 삽화를 그린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책을 한 권 구입했다. 사진 왼쪽부터 통역을 맡은 제프리님, 필자, 오카자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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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동안 오자키씨와 함께 출판사에 보낼 편지 문구를 쓰고 다듬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른 봄에 출판사로 편지를 보냈는데 다행히 한 달 정도 되어서 오카자키씨로부터 답장이 도착했다. 곧장 만날 일정을 의논했고 십여 통 편지를 주고받은 끝에 지난 14일 토요일 오후 4시에 도쿄의 한 전철역 개찰구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거의 반 년에 걸쳐 이룬 첫 번째 성과다. 더불어 이제부터 경험하게 될 일본 헌책방의 깊은 곳을 향해 첫발을 내딛은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카자키씨를 만나기 전까지 '일본 헌책방'이라고 하면 당연히 '진보쵸(神保町)'와 '간다(神田)'만 떠올렸다. 오카자키씨는 편지 답장에서 "일본은 어디를 가더라도 헌책방이 있다"고 말했다. 진보쵸와 간다는 규모가 워낙 커서 사람들에게 잘 알려졌을 뿐이다. 그래서 이번 헌책방 인터뷰는 도쿄 중심에서 약간 서쪽으로 비켜있는 '니시오기쿠보(西荻窪)'로 정한 것이다. 고맙게도 인터뷰와 더불어서 그쪽 동네에 있는 헌책방 몇 군데를 직접 안내하겠다는 것이었다.

도쿄 변두리 전철역에서 오카자키씨를 만나다

세이린도쇼보 두 번째 목적지로 도착한 세이린도쇼보에서 책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오카자키씨. 이 헌책방은 1949년에 처음 영업을 시작했고 지금은 창업자의 손자가 할아버지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 세이린도쇼보 두 번째 목적지로 도착한 세이린도쇼보에서 책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오카자키씨. 이 헌책방은 1949년에 처음 영업을 시작했고 지금은 창업자의 손자가 할아버지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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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중심부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위치한 진보쵸·간다 헌책방거리는 100년을 훌쩍 넘긴 역사도 놀랍지만 200곳이 넘는 헌책방이 모여 있는, 말 그대로 '세계 제일의 책거리'로 통한다. 도심 한복판에 이런 헌책방거리가 있다는 것은 부러운 일이다(관련기사 : <헌책방 축제가 어찌 이리 신선할 수 있지?>). 한적한 골목길을 함께 걸으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일본은 어떻게 동네마다 이렇게 많은 헌책방이 잘 운영되고 있는지 우선 궁금했다. 오카자키씨는 담담하게, 일본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일본도 예전에 비하면 헌책방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대형 헌책방 체인점이 생기고 인터넷으로 헌책을 사고파는 것이 활성화되면서 동네의 중소규모 헌책방들은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제가 11년 전 처음으로 한국에 가서 헌책방을 둘러보았는데 예전에는 일본 헌책방도 비슷한 풍경이었습니다. 점포 안팎 할 것 없이 책을 가득 쌓아놓고 팔았습니다. 그렇게 해도 장사가 잘 됐습니다. 그러다 지금처럼 변화가 시작된 것은 15~20년 정도 전부터입니다. 당시 많은 헌책방이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일본도 지금의 우리나라처럼 헌책방의 위기가 있었다. 그 많던 헌책방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졌고 젊은 사람들은 더 이상 헌책방을 찾지 않았다. 영세한 헌책방들은 어쩌지도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는데, 다른 한쪽에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본은 대를 이어서 점포를 운영하는 일이 많습니다. 헌책방도 그렇습니다. 헌책방 운영에 위기가 찾아왔을 무렵, 그때까지 운영하던 주인이 아들이나 손자에게 일을 물려주게 되면서 헌책방에도 젊은 감각이 들어가게 됩니다. 변하는 시대에 맞춰서 적절히 옷을 갈아입은 것이지요."

저마다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운영하는 일본 헌책방

깔끔하게 정리 된 헌책방 내부 세이린도쇼반은 휠체어를 타고 들어 온 손님도 편하게 서가 사이를 오갈 수 있도록 책장과 책장 사이를 넓혔다.  책들은 일꾼이 한 권 한 권 얇은 유산지로 겉을 싸서 깨끗하게 진열한다.
▲ 깔끔하게 정리 된 헌책방 내부 세이린도쇼반은 휠체어를 타고 들어 온 손님도 편하게 서가 사이를 오갈 수 있도록 책장과 책장 사이를 넓혔다. 책들은 일꾼이 한 권 한 권 얇은 유산지로 겉을 싸서 깨끗하게 진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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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얘기를 들으며 처음으로 도착한 헌책방은 니시오기쿠보 역에서 멀지않은 '니와토리분코(にわとり文庫)'다. '니와토리'는 우리말로 '닭'을 뜻한다.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이 헌책방은 작은 규모로, 그림책과 오래된 만화책 등을 위주로 책장을 구성했다.

일본 헌책방은 대부분 이렇게 점포 특성을 명확히 살려서 운영하고 있다. 그러니까 어느 헌책방을 가든지 예전에 갔던 다른 헌책방과 비슷할 확률은 별로 없다. 책장은 깨끗하게 정리되어있고 책들도 모두 깔끔한 상태여서 놀랐다. 심지어 책들이 상하지 않도록 일일이 얇은 유산지에 싸서 진열하는 곳도 많다. 이 역시 15~20년 전부터 서서히 변화된 결과다.

"전에는 헌책방 손님들이 대부분 중년 이상의 남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에 맞춰서 영업을 했지요. 헌책방에 들어서면 벽에 에로틱한 여자 누드사진이 걸려 있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런 곳은 없습니다. 헌책방도 여성 손님이 많아졌기 때문에 좀 더 깨끗하고 편안한 분위기로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네 분위기에도 맞춰서 점포를 재구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니시오기쿠보는 바로 옆 동네인 '오기쿠보', 그리고 '키치죠지'로 이어지는 한적한 골목길이 인상적인 조용한 곳이다. 도쿄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중앙선 전철이 있다고는 하지만 주말엔 니시오기쿠보 역에 정차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전철역을 끼고 있는 곳이다. 그렇게 고즈넉한 동네이기 때문에 작고 아담한 카페나 잡화점, 서점들이 골목길 여기저기 많이 있다.

몇 해 전부터는 동네 상인들이 힘을 모아 장마철이 되기 전에 '차산뽀(茶さんぽ)' 행사를 개최한다. 차산뽀는 명칭 그대로 '차(茶)'와 함께 '산책(さんぽ)'을 즐기자는 뜻이다. 올해는 이 근방 점포 105개가 함께 했다. 니와토리분코도 차산뽀에 참여하여 만화책과 귀여운 목각인형을 전시하고 판매했다. 차산뽀 기간 동안 이 동네를 찾아 온 사람들은 저마다 특색을 갖고 운영하는 오래된 카페와 서점을 돌아다니며 느긋하게 골목길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동네 분위기에 어울리는 떠들썩하지 않은 초여름 축제인 것이다.

우리나라도 요즘은 동네마다 특색을 갖추려 노력하고, 관청에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일본도 관청과 협조가 잘 되는지, 이런 축제를 기획할 때 재정적인 지원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관청에서 재정적인 지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상인들이나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이런 일을 만들고 있습니다. 도쿄의 대규모 헌책축제도 보통은 자력으로 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여기로 오도록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상인들은 갖가지 아이디어를 내놓고 시행합니다. 그래야 장사도 하고 가게도 알릴 수 있으니까요."

관청의 지원 사업이라는 것을 평소에 마땅치 않게 생각해 온 나에게 이 대답은 신선한 자극이 됐다. 외부에서 돈을 받아 시행하는 일은 즉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영원히 지원을 하거나 받을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보면 자력으로 하는 것이 맞다. 한 마을에서 수십 년 동안 이어지는 꾸준한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콘텐츠의 힘을 키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제 아무리 화려한 사업을 기획하고 거기에 돈을 들이부어도 대를 이어 운영하는 마을 서점과 카페의 소소한 콘텐츠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

오랫동안 그림책을 전문으로 다룬 니와토리분코는 내가 좋아하는 루이스 캐럴의 책을 종류별로 모아 놓았다. 평소 캐럴의 책을 수집하고 있기 때문에 반가운 마음에 거기 있는 여러 권 중에서 1980년대에 펴낸 아서 래컴(Auther Rackham)의 채색 삽화가 들어간 책을 한 권 구입하고 다른 헌책방으로 발길을 옮겼다.

패전 후 헌책방조합을 다시 세운 사람들

세이린도쇼보 입구 이곳 헌책방도 규모는 크지 않다. 손님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계속 오고가는 편이다. 헌책방 앞에 한권에 100엔(우리 돈으로 약 1000원)짜리 균일가 서가가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들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 세이린도쇼보 입구 이곳 헌책방도 규모는 크지 않다. 손님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계속 오고가는 편이다. 헌책방 앞에 한권에 100엔(우리 돈으로 약 1000원)짜리 균일가 서가가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들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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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들른 곳은 '세이린도쇼보(盛林堂書房)'다. 이곳은 미스터리물과 근현대문학, 음악, 영화에 관한 책을 주로 다룬다. 1949년에 옆 동네에서 창업했고 2년 뒤 이곳으로 자리를 옮긴 후로 지금까지 운영해 오고 있다. 60년을 넘게 이 자리에서 서점을 운영한 것이다. 지금 30대 초반 나이의 젊은 사장은 창업자의 손자다. 특이한 것은 서가 한쪽에 '산(山)'에 관한 책들을 따로 분류해서 정리해뒀다. 오카자키씨가 친절하게 그 이유를 설명한다.

"옛날부터 도쿄에서 다치가와(立川)쪽으로 이어지는 중앙선 전철 주변에 헌책방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다치가와쪽 끝에는 산이 있어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중앙선을 타고 산행을 많이 했지요. 그래서 이 헌책방에는 산에 관한 책을 따로 정리해 놓고 있는 것입니다. 산행을 다녀 온 사람들이 여기 들러서 산에 관한 책을 구입하거든요."

니시오기쿠보 근처만 하더라도 이런저런 특색을 가진 헌책방이 여럿 있다. 이제 두 곳을 둘러봤을 뿐인데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헌책방들을, 도시 중심도 아닌 변두리에서 저마다의 개성을 갖고 운영할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오카자키씨는 일본사람들이 옛부터 책을 대하는 인식이 남달랐던 게 이유가 아니겠냐고 설명한다.

일본은 1945년 전쟁에서 패한 후 당장 필요한 것을 중심으로 국가 재건을 시작했다. 도로나 건물 같은 사회 기반시설은 당연히 여기에 포함되겠지만, 1947년에 헌책방조합을 다시 정비한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전쟁 후 흩어지거나 없어질 위기에 처한 책들을 헌책방이 수집하고 조합이 나서서 관리한다. 전쟁을 겪으면서도 진보쵸 등 헌책방거리가 전과 다름없이 유지된 것도 사람들이 책을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휠체어도 통과할 수 있는 헌책방 통로

오토와칸 입구 오토와칸 앞에도 100엔짜리 균일가 책장이 있어서 지나가는 손님을 붙잡는다. 이 헌책방은 주로 가벼운 읽을거리를 위주로 판매한다. 그러니까 역사나 철학책 등은 취급하지 않는다. 미스터리물이 주종목이고 그 외에 근현대문학과 음악, 영화에 관한 책이 있다.
▲ 오토와칸 입구 오토와칸 앞에도 100엔짜리 균일가 책장이 있어서 지나가는 손님을 붙잡는다. 이 헌책방은 주로 가벼운 읽을거리를 위주로 판매한다. 그러니까 역사나 철학책 등은 취급하지 않는다. 미스터리물이 주종목이고 그 외에 근현대문학과 음악, 영화에 관한 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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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들른 '오토와칸(音羽館)'은 앞선 두 곳보다 조금 더 컸다. 기분 좋은 카페 같이 은은한 매장 분위기에 스피커에선 편안한 보사노바 재즈 음악이 흐른다. 오카자키씨가 이곳을 오늘 마지막 순서로 안내한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이 헌책방이 앞서 말했듯이 15~20년 전 즈음부터 시작된 헌책방 변화의 첫 번째 주자 격이기 때문이다. 오카자키씨는 책장과 책장 사이 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보면 아시겠지만 예전에 헌책방이라고 하면 책장과 책장 사이 통로가 이렇게 넓지 않았습니다. 몸 하나 간신히 비스듬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책만 빽빽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많은 헌책방들이 이렇게 편안하게 서가를 만듭니다. 이건 특히 휠체어를 타고 온 손님도 책장 사이를 오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의도입니다. 장애우를 포함한 교통약자까지도 쉽게 헌책방에 올수 있다고 하면 누구라도 헌책방에 올 수 있는 것입니다."

덧붙여서 헌책방 디자인도 요즘엔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지금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고객층은 30~60대 여성이다. 그러니 헌책방도 그에 맞춰 디자인을 할 필요가 있다. 아기자기하고 편안한, 귀여운 분위기, 여자들도 문을 열고 들어오기 편한 매장 디자인 덕분에 지금은 헌책방에도 여성 고객이 많이 늘었다.

책을 무던히도 좋아하는 일부 사람들만 고객으로 삼는 마니아적인 매장 분위기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 그런 매장도 찾아보면 많다. 하지만 여자들이 부담 없이 문을 열고 들어 올 수 있는 헌책방이라면 남녀노소 누구라도 손님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산책을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 문화도 여기에 한몫 거든다. 혼자서, 혹은 친구와 함께 동네 산책을 하다 헌책방에 들러서 책을 사고 그 책을 들고 또 천천히 걷다가 오래 된 카페에 들러 책을 보며 차를 마신다. 동네 주민은 물론, 동네를 일부러 찾아 온 사람들에게도 이런 일상은 그리 어색하지 않다.

헌책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옥상'이다

헌책방조합 인증 스티커 오토와칸 문 입구에는 이곳이 헌책방조합의 가맹점이라는 것을 뜻하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일본 헌책방조합은 패전 후 1947년에 새로 정비되었고 1996년부터는 인터넷 서비스도 하고있다. 현재 조합 가맹 점포는 2500개에 이른다.
▲ 헌책방조합 인증 스티커 오토와칸 문 입구에는 이곳이 헌책방조합의 가맹점이라는 것을 뜻하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일본 헌책방조합은 패전 후 1947년에 새로 정비되었고 1996년부터는 인터넷 서비스도 하고있다. 현재 조합 가맹 점포는 2500개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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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자키씨는 그렇기 때문에 헌책방 운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옥상'이라고 말한다. 옥상이라니? 건물 꼭대기에 있는 그 옥상 말인가? 아니다. 옥상(おくさん)은 우리말로 '아내'를 뜻한다.

"보통 가족 단위로 운영하는 헌책방 디자인은 주로 '옥상(おくさん)'이 맡습니다. 여기 헌책방도 들어오는 입구에 있는 귀여운 캐릭터를 사장의 부인이 직접 그린 것입니다. 처음 들렀던 니와토리분코도 같습니다. 여자의 감성으로 헌책방을 디자인하기 때문에 여자 손님이 왔을 때 더욱 좋아합니다."

여성 손님은 아주 중요하다. 헌책방에 혼자 오기도 하지만 친구와 여럿이 들러 책을 사는 일이 많고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자라고 하더라도 애인이 데려와서 책을 구입하는 일도 적지 않기 때문에 헌책방은 특히 여성 손님이 좋아할 만한 무언가를 계속 고민한다. 오카자키씨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에서 헌책방을 운영할 때도 매장 분위기를 여성 취향에 맞추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조언한다.

저녁 무렵까지 돌아다니느라 피곤해진 두 다리를 쉬게 해주기 위해서 근처 다방에 들어갔다. 오카자키씨는 '物豆奇'이라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갔는데, 여기도 창업한 지 30년이 넘은 오래 된 다방이라고 한다. 30년이 넘었다고 하여 내부가 누추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전혀 아니다. 옛것을 그대로 이용한 빈티지한 인테리어에 차 마시는 손님 나이대도 다양하다. 우리는 그들 틈에 끼여서 한 자리 차지하고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주제는 자연스럽게 책과 헌책방에 대한 것으로 이어졌다.

"헌책방이 사라질수록 그 나라 역사의 두께가 얇아진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도 수십 년 전 헌책방의 전성기가 있었다. 일본은 두말 할 것도 없이 헌책방의 역사와 전통이 깊은 나라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가 닥쳐오니 사람들이 헌책방에 잘 오지 않게 되었다. '북오프(Book-Off)'같은 대형 중고서적 체인점이 나타났고 젊은 세대는 당연히 깨끗하고 쾌적한 매장으로 많이 몰렸다. 이에 헌책방협회는 1996년부터 인터넷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운영하면서 맞서고 있다.

오토와칸 내부 다른 헌책방과 마찬가지로 깔끔하게 정리된 내부공간이 기분을 좋게 만든다. 일본은 여성을 겨냥한 마케팅이 활발하기 때문에 헌책방도 여자손님이 부담없이 들어올 수 있도록 깔끔하고 예쁘게 디자인한 곳이 많다.
▲ 오토와칸 내부 다른 헌책방과 마찬가지로 깔끔하게 정리된 내부공간이 기분을 좋게 만든다. 일본은 여성을 겨냥한 마케팅이 활발하기 때문에 헌책방도 여자손님이 부담없이 들어올 수 있도록 깔끔하고 예쁘게 디자인한 곳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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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 준 고마운 분들과 함께 왼쪽부터, 일본말 통역을 도와준 제프리님, 30년 이상 오랜 발행역사를 자랑하는 '월간 헌책잡지' 디자이너(우연히 이날 오토와칸에서 만났다), 오카자키 타케시씨, 필자.
▲ 도움 준 고마운 분들과 함께 왼쪽부터, 일본말 통역을 도와준 제프리님, 30년 이상 오랜 발행역사를 자랑하는 '월간 헌책잡지' 디자이너(우연히 이날 오토와칸에서 만났다), 오카자키 타케시씨,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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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에는 현재 2500곳 이상 가맹점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대형 체인점을 뛰어넘는 헌책과 헌책방 데이터베이스를 자랑한다. 여기엔 헌책방뿐만 아니라 지자체와 대학도서관, 기업의 자료실까지 회원으로 등록되어 커다란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 협회에는 이런 홍보문구가 눈길을 끈다. "お客さまがお探しの商品はきっとどこかの古本屋の棚に隠れているはずです." 이것을 해석하면 "당신이 찾고 있는 책은 반드시 어느 한 서점의 진열대에 있을 것입니다"라는 뜻이다. 일본사람이 '책'을 뜻하는 한자로 근본, 혹은 뿌리를 의미하는 '本'을 쓰는 것을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일본은 오래 전부터 책(本)을 중요시하고 꼭 보관해야 한다는 인식이 깊습니다. 책은 곧 한 시대의 역사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 헌책방의 역사가 오래 된 것도 비슷하게 해석 할 수 있습니다. 헌책방은 책을 사고팔아서 장사를 하는 일을 하지만 한편으론 과거의 책을 꾸준히 보관해야 한다는 의무도 있습니다. 일본도 한국처럼 헌책방이 조금씩 없어지는 추세이긴 하지만 어떻게든 그 전통은 이어질 겁니다. 신간을 파는 서점만 있고 헌책방이 없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것은 곧 그 나라 역사의 두께가 얇아진다는 뜻입니다."

일본 헌책방에 관심을 가지고 고작 몇 년 동안 소소하게 둘러 본 것을 가지고 우리나라 헌책방의 미래를 말하기는 부족하다. 하지만 이번에 오카자키 타케시씨를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은 분명히 의미 있는 첫걸음이다. 앞으로 서울에서 헌책방을 운영하는 것과 동시에 틈틈이 시간을 내어 일본 헌책방에 찾아가 인터뷰하고 그것을 관심 있는 사람들과 나누어 볼 계획이다. 문화와 역사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옆 나라인 일본도 동네 헌책방의 위기가 있었고 지금 그것을 슬기롭게 대처해나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입장에서도 곁눈질하며 배울 것이 있을 것이다.

끝으로, 이번 오카자키씨 인터뷰는 여러 사람들이 도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서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는 한편 주말이면 먼 길 마다않고 서울에 올라와서 많이 도와준 오자키 다쓰지 선생님, 손 편지 쓰는 것을 도와 준 손외영 님, 일본에서 어눌한 나를 대신해 통역을 도와 준 제프리 님, 그리고 일본에 가있는 동안 서울의 이상한나라의헌책방을 지켜준 호리호리한 시로군에게 감사한다.

오카자키씨의 사인을 받은 책 우리말로 번역되지는 않았지만 필자가 좋아하는 책 '변덕스러운 헌책방기행'에 저자인 오카자키 타케시씨가 사인을 해주었다. 사인 할 때는 이름과 함께 상대방 얼굴을 그려준다. 오카자키 씨는 자신의 책이나 다른 매체에 원고를 쓸 때 직접 그런 일러스트를 쓴다.
▲ 오카자키씨의 사인을 받은 책 우리말로 번역되지는 않았지만 필자가 좋아하는 책 '변덕스러운 헌책방기행'에 저자인 오카자키 타케시씨가 사인을 해주었다. 사인 할 때는 이름과 함께 상대방 얼굴을 그려준다. 오카자키 씨는 자신의 책이나 다른 매체에 원고를 쓸 때 직접 그런 일러스트를 쓴다.
ⓒ 윤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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