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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9급 공무원 시험 준비반 전단지
 어느 9급 공무원 시험 준비반 전단지
ⓒ 송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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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靑春)!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鼓動)을 들어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汽罐)과 같이 힘 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민태원의 수필 <청춘예찬>의 머리 부분이다. '청춘(靑春)'은 '한창 젊고 건강한 나이 혹은 그런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대략 20대 초중반, 그야말로 피가 끓어 혈기왕성한 나이대가 '청춘'이다. 그들을 향해 부러운 눈길을 보내면서 어른들은 가끔 이렇게 중얼거리거나 대놓고 말한다.

"참 조오은 때다…."

그런데…. 말이 좋아 '청춘'이지, 그거 다 호랑이 담배 먹고, 부르릉 삼륜차에 연탄 실어나르던 시절 얘기다. 60만이 넘는 이 땅의 청춘들은 지금 취업준비생이다. 그중 1/3인 20만 명은 9급 공무원의 꿈을 이루기 위해 두 평도 채 되지 않는 쪽방촌에서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눈알이 벌게지도록 시험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평균 80:1에 이르는 경쟁률을 뚫어야 뜻을 이룰 수 있는 '예비 9급'들에게서 그 옛날의 패기 넘치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높은 경쟁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걸 보면 눈동자가 반짝거려야 할 것 하는데 실상은 그 또한 '추리닝'처럼 후줄근하기 이를 데 없다.

무엇 때문에 저 푸른 청춘들이 그렇게들 9급 공무원에 매달리는가. 국민들의 손과 발이 되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자리라서? 대민봉사를 통해 뿌듯한 보람을 얻을 수 있어서? 에이, 좀 솔직해지자. '철밥통'의 매력 때문이라고….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처럼 번듯하게 명함을 내밀기는 좀 뭣해도 그건 무엇보다 정년이 확실하게 보장된 자리 아닌가.

경기불황이니 뭐니 해도 공무원 월급은 꼬박꼬박 입금된다, 퇴직하면 노후는 또 연금이 든든하게 받쳐줄 것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직장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라, 그거 아닌가? '칼출근'에 '칼퇴근'의 매력은 또 어디에 비할까.

대기업 들어간 친구들? 그래 봐야 때깔만 개살구인 거 다 안다. 대학 다닐 때 밤잠 안 자고 공부했던 걔네들, 주말도 없고 휴일에도 회사 나간다. 뼛골이 녹아나도록 야근해서 당장 월급 좀 더 받는 게 뭐 대수냐. 얼마 못 가서 잘릴까 봐 전전긍긍할 게 뻔한 걸….

하필 고작 9급이냐고? 7급도 있지 않느냐고? 기왕 공부할 바에는 '고시' 같은 쪽에 올인해 볼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21세기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시대라고? 혈기왕성한 나이니까 청년창업에 뛰어드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실패를 두려워 말라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원대한 꿈을 꿀 줄 알아야 진정한 청춘이라고?

말씀을 삼가라. 편한 길 놔두고 등신같이 가시밭길을 걸어가라는 말인가? 그거 다 배부르고 등 따신 소리라는 거 누가 모르는 줄 아나? 이런 때 투지 하나만 믿고 겁없이 덤벼들었다가는 몇 달 못 버티고 쪽박 차기 십상이라는 거 안 봐도 비디오다. 

어느 흘러간 노래의 가사처럼 한 번 가면 다시 못 올 소중한 내 청춘이다.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말라고 그랬다. 이루지도 못할 꿈을 붙들고 허구한 날 삽질이나 하고 앉았느니 차라리 적당히 즐기면서 청춘을 구가하련다.

아, 물론 잘 알고 있다. '공시생(공무원 준비생)'을 두고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니 뭐니 말들이 많다는 거 모르지 않는다. 그게 어찌 죄없는 청춘들 탓인가. 정치하는 사람들이 장기적 안목에서 사회 여건을 제대로 만들어 놓았더라면 이 땅의 청춘들이 지금처럼 9급에 매달리는 일도 없었을 것 아닌가. 

사정이 그러하니 응시생 80명 중 79명은 낙방의 고배를 틀림없이 마시게 되어 있는데도 서른이 다 돼가도록 (혹은 서른을 훌쩍 넘겨서까지) 9급 공무원 시험에 그 소중한 청춘을 쓸어담는 것이다(그나마 오롯이 '쓸어담는' 청춘들은 뜻을 이루기라도 한다).

'단기합격의 신화'니, '전국최강의 합격보장 슈퍼스타팀!!'이니 따위의 설탕물이 줄줄 흐르는 카피를 섞어서 푸르디푸른 청춘들의 소매를 잡아끌고 있는 9급 공무원 학원 전단지, 거기에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 후줄근한 '추리닝'의 그림자처럼 짙게 드리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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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입니다. 학생들에게 소설창작과 글쓰기지도법 등을 주로 가르치고 있지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점을 들여다보고 그와 관련된 칼럼을 지속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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