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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교육감 시대'가 열렸다. 6·4 지방선거에서 17개 시도 중 13곳에서 진보 교육감이 탄생했다. 선거 결과를 두고,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혁신학교'로 상징되는 교육 개혁을 요구하는 '앵그리맘'의 표심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혁신학교를 처음 도입한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 혁신학교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밝힌 수도권 진보 교육감 당선자, 교육평론가, 혁신학교 교장, 혁신학교 졸업생 등에 대한 연쇄 인터뷰를 통해 진보 교육감들이 추진할 교육 개혁의 미래에 대해 전망하고자 한다. [편집자말]
한때 연봉 수십 억의 '대치동 스타강사'로 불렸던 이범(46) 교육평론가와 만나 혁신교육의 미래와 과제에 관해 들었다. 그는 "혁신학교는 교직원과 학생이 참여해 만들어가는 학교"라며 "무엇보다 구성원들의 자발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때 연봉 수십 억의 '대치동 스타강사'로 불렸던 이범(46) 교육평론가와 만나 혁신교육의 미래와 과제에 관해 들었다. 그는 "혁신학교는 교직원과 학생이 참여해 만들어가는 학교"라며 "무엇보다 구성원들의 자발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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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무늬만 혁신학교'인 곳도 종종 있는데, 정말 잘 되는 혁신학교는 가보면 뭔가 다릅니다. 교장과 교사들이 회의를 할 때 정말 '계급장 떼고' 하거든요. 다른 학교들은 말 한 마디 하는데 십년 이상이 걸린다고 하는데 잘되는 혁신학교는 아닙니다. 혁신학교의 미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때 잘 나가는 '스타강사'로 불렸던 교육평론가 이범(46)씨는 차분히 말을 이어나갔다. 그는 온·오프라인 교육매체 메가스터디 창립멤버로 한 때 한해 18억 원을 벌기도 했으나, 이내 사교육에 환멸을 느끼고 2003년 돌연 은퇴했다. 이후 EBS강사·서울시교육청 정책보좌관 등을 거쳐 현재는 이재정 경기교육감직 인수위원회 인수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는 정책보좌관 시절 전국에 있는 혁신학교 50여 곳을 직접 방문해 살펴봤다. 이씨는 18일 오후 경기 의왕시 덕장중학교 인근 카페에서 <오마이뉴스>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혁신학교 활성화에 무엇보다 구성원들의 '자발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혁신학교는 교직원과 학생이 참여해 만들어가는 학교"라며 "교장 주도하에 진행되는 '무늬만 혁신학교'는 기존의 시범·연구학교와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혁신학교 학생들이 타학교 학생에 비해 학업성취도가 떨어진다는 얘기에 대해 "원래 학력수준이 낮았던 지역에 있던 혁신학교를 다수 일반학교와 바로 비교하는 건 잘못"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최근 혁신학교들을 보면 거의 예외 없이 성적이 올라가고 있다"며 "교사들이 아이에게 신경을 더 많이 쓰는데 어떻게 학력이 떨어지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인수위원회에서 현재 경기교육을 바꿔나갈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는 "혁신학교의 내실화와 일반학교들의 혁신을 동시에 꾀해야 한다"며 "교사의 담당학년·과목의 조기배정, 아이들의 선택권을 넓힌 진로형 선택과목 도입 등을 구체적 플랜과 함께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이날 인터뷰에 앞서 덕장중학교에서 학부모 110여 명을 상대로 변화하는 진로·대입 트렌드에 대해 두 시간가량 강연했다. 다음은 이범 교육평론가의 강연과 인터뷰를 묶어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스펙 지고 역량 뜨는 시대... "잘 되는 혁신학교, '계급장' 떼고 회의하더라"

- 강연에서 학벌주의가 완화될 뿐 아니라 스펙('Specification' 줄임말, 취업·입시에 필요한 학점·토익 등 평가요소)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 했다.
"스펙을 중시하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민간기업도 그렇지만 공기업에서는 아예 구직자의 스펙을 가린 채 뽑기도 하고, 고졸자 전형·지방대 졸업자 채용도 늘어나는 추세다. 일례로 삼성그룹의 경우, 2007년 지방대 출신 비율이 28% 정도였는데 지난 2012년 하반기에는 35%까지 늘어났다.

지금껏 강력한 정부 주도로 성장했고 대학서열화가 고착화되면서 우리나라 학벌주의가 세계 최고로 심해졌지만, 최근에는 한국사회 교육시스템이 바뀌고 있다. 1·2등만을 따르는 추격성장의 시대가 끝나고, 한편 입학사정관제가 정착되면서 수능점수로 대학을 가는 아이들이 전체의 35%에 불과한 상황이다. 게다가 '혁신교육'이라는 새로운 교육방식과 학교 모델도 나타났다."

- 그동안 혁신학교들을 많이 방문했다고 들었다. 평론가로서 본 혁신학교는 어땠나.
"이어지는 얘긴데, 결국 중요한 건 개인 적성과 역량(독해력·협업능력 등)이다. 그런데 역량을 키우는 토론과 탐구, 체험·독서 수업을 가장 많이 하는 곳이 바로 혁신학교다. 경기도 성남시 판교신도시의 보평초등학교 같은 경우 혁신학교로 유명해지다보니, 아예 강남 엄마들이 판교로 이사를 오기도 한다. 왜일까? 혁신학교를 아이들이 훨씬 좋아한다는 것과 그렇게 해도 대학입시에 불리하지 않다는 판단이 있는 거다.

제가 서울시교육청 정책보좌관이던 시절 경기, 전북 등 전국의 혁신학교 40~50군데를 방문해봤다. 가보니 잘 되는 혁신학교는 확실히 다르더라. 일단 일반학교는 상하관계가 확실해 회의에서 한 마디 하는 것도 힘든데, 괜찮은 혁신학교는 교장과 교사 등 학교구성원들이 '계급장 떼고' 회의를 하는 거다.

저는 여기에 혁신학교의 미래가 있다고 본다. 물론 '무늬만 혁신학교'로, 구성원들의 참여가 아니라 교장이 주도하는 혁신학교도 있다. 이건 예절·과학 등 목적과 주제가 뚜렷이 주어지는 기존의 시범·연구학교와 다를 바가 없다. 혁신학교는 기본적으로 교직원과 학생 등이 참여하고 의사 결정해 직접 만들어가는 학교다. 교사와 학생들의 '자발성'이 매우 중요하다." 

- 구체적으로 학부모 입장에서 혁신학교가 좋은 점은 뭘까.
"저는 평론가지만 아이 넷의 아빠이기도 하다.(웃음) 아이를 기르는 아버지로서 경기 광주, 양평 등 몇 군데 혁신학교의 주변 부동산 시세를 알아보는 등 이사 갈 생각까지 했었다. 개인 사정으로 인해 결국 가지는 못했지만, 그런 마음으로 수많은 혁신학교들을 다녀봤다.

일반학교와 달리 혁신학교에서는 우리 아이에 대한 피드백이 바로 온다. '선생님들이 내 아이에게 신경을 많이 쓰는구나', 학부모들은 그게 체감되는 거다. 실제로 운동장에 텃밭을 가꾸는 등 체험 학습도 훨씬 많이 한다. 뭔가를 키워서 먹어본 경험이 없는 애들에게 그럴 기회를 주는 건 큰 소득이다. 아이들이 (그냥 배우는 것과) 직접 경험을 해보는 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남한산초등학교의 경우, 초기에는 학생 수가 줄어들고 폐교위기에 처했었으나, 이후 지역 변화 차원에서 지역 주민·교사가 함께 하면서 혁신학교로 태어났다."(남한산초는 운동장 조회나 경쟁 중심의 각종 대회를 없애고, 매년 근처 남한산성을 방문하는 '숲속학교'를 운영하는 등 새로운 공교육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 기자말)

- 혁신학교 학생들이 평균적으로 학업성취도가 낮다는 소문 탓에 우려하는 부모들도 있다.
"이건 평가하는 비교 잣대부터 잘못됐다고 본다. 혁신학교는 일반학교들에 비해 학교 수도 적지만, 주로 원래 학력수준이 낮았던 지역에 많다. 덧붙여 최근 혁신학교들을 보면 예외 없이 성적이 올라가는 경향을 보인다.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더 신경을 많이 쓰는데 어떻게 학력이 떨어지겠나. 혁신학교로 유명한 경기도 고양시 덕양중학교 같은 경우도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근래 확 줄어들었다.

강연을 하면서 현장에서 학부모들을 만나보면 반응은 양면적이다. 한번은 혁신학교에 아이를 보낸 학부모님들이 강연 후 제게 찾아와 찬탄을 늘어놓을 정도로 학교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걸 봤다. 반면 혁신학교에만 관심과 지원이 집중되는 게 싫다고 노골적으로 얘기하는 부모님들도 계신다. 나중에 더 설명하겠지만, 경기교육청이 혁신학교와 함께 일반학교의 혁신을 고려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혁신교육의 과제는? 기존 혁신학교 내실화·일반학교 혁신 함께 가는 것"

학부모들을 상대로 강연 중인 이범 교육평론가의 모습. 그는 진보교육감 시대, 혁신학교 확대화에 대해 "일반학교들의 혁신과 기존 혁신학교의 내실화를 어떻게 투 트랙(two-track)으로 가져갈 수 있을지 철저히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을 상대로 강연 중인 이범 교육평론가의 모습. 그는 진보교육감 시대, 혁신학교 확대화에 대해 "일반학교들의 혁신과 기존 혁신학교의 내실화를 어떻게 투 트랙(two-track)으로 가져갈 수 있을지 철저히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 덕장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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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신학교에 필요한 기본 조건들은 뭐가 있을까.
"평균적인 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혁신학교를 시도할 때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멘토처럼 도움을 주는 사람과 다른 하나는 여기에 필요한 시간인데, 더 중요한 게 시간이다. 그런데 현 상황은 어떤가. 거쳐야 할 행정 절차들로 인해 교사들이 다음해 가르치게 될 과목이나 학년을 새 학기 시작 1주일 전에야 알 수 있다. 그럼 교사가 뭘 어떻게 가르칠지 준비할 시간이 있을까? 이건 교사의 전문성을 저하시키는 이유가 된다.

또 다른 문제는 교사들이 학기 중에 공문서 처리 등 불필요한 업무로 인해 바쁘다는 거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이 낸 통계를 보면 학교가 받는 공문이 1년에 6000건이나 된다고 하더라. (행정실무사가 있지만) 상당히 큰 부담을 교사들이 지고 있는 거다. 결국 세월호와 비슷하다. 세월호도 당시 서류상으로는 안전하게 작동 중이었지 않나. 교육계에서는 작은 세월호가 매일 침몰하고 있다. 이런 비효율적인 방식을 고쳐야 한다."

- 현재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무엇을 준비하고 있나.
"혁신학교의 내실화와 함께 일반학교의 혁신을 동시에 확대하는 방향이다. 범주가 큰 일반학교의 경우 다양한 예가 있는데, 교사의 담당 학년·과목을 겨울방학 초에 배정하는 것과 더불어 진로형 선택과목 도입 등이 있다. 이건 학생이 직접 과목을 골라들을 수 있는 '수강 신청'과 함께, 외국어·IT·예체능 등 필요에 따라 골라 과목을 듣는 방식을 말한다.

이런 변화는 공무원들에게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첫째로 교사 담당학년·과목 조기배정 문제의 경우, 지금까지 해온 행정적 절차를 뒤집는 일이라 매우 어려운 일에 속한다. 또 하나 '진로형 선택과목' 등 수강신청의 경우도 그렇다. 먼저 이를 위한 전산 시스템이 필요한데, 교육 관료들에게는 그간 수요자(학생) 맞춤 공급을 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 13명의 진보교육감 시대가 열리면서 혁신학교가 확대될 예정이다. 이들에게 있어 혁신교육의 과제는 무엇일까.
"말했듯이, 일반학교들의 혁신과 기존 혁신학교의 내실화를 어떻게 철저히 투 트랙(two track)으로 함께 갈거냐는 거다. 둘 다 변화가 필요한데, 추후 이 두 방향이 어떻게 수렴될지는 모르지만 현재 필요한 부분은 이것이라고 본다. 또 이를 위해서는 교육청의 조직 혁신과 행정 혁신이 필요하기도 하다. 투 트랙 전략을 잘 이해하는 건 진보교육감들의 공통 과제일 거다.

여기에는 교육 수장들의 리더십이 필요한데, 이재정 당선인에게는 탁월한 의지가 있다. '4년 내에 가능하냐'고 묻겠지만 (전면 도입이 아니라) 일부 지역에서 먼저 시범 도입을 하고, 또 앞으로의 대략적인 플랜이 서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본다."  

- 김명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보수적 발언들로 인해 논란이 크다. 그가 교육수장이 되면, 진보교육감과의 갈등이 예상된다.
"박근혜 정부의 교육정책 기조를 보면, 초등학교 일제고사 폐지, 자유학기제 도입 등 이명박 정부와 비교해 나아진 면이 있다. 하지만 보수성향이 강한 분을 교육 수장에 앉혀놓은 것은 우려되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장관 마음대로 시대 흐름에 역행할 수 없을 것이다. 시도교육감에게 혁신학교 지정 권한이 있다. 교육부 장관이 이를 막으려면 학교 지정권을 교육감에게서 박탈해야 한다. 가능할까?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태그:#혁신학교 확대, #이범 교육평론가, #혁신교육, #진보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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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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