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묵 감독의 영화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포스터.

김경묵 감독의 영화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포스터. ⓒ KT&G 상상마당


김경묵 감독은 이미 영등위와 인연이 깊다. 물론 악연이다. 베니스국제영화제를 비롯해 로테르담, 런던 등 해외 유수영화제에 진출했던 <줄탁동시>가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것이 2012년 2월이다. 15초 가량의 성기노출 장면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후 감독과 배급사는 화면을 뿌옇게 만드는 '블러' 처리, 재심의,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거쳐 영화를 관객에 선보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언론시사가 취소되고 한국독립영화협회 등 영화인들의 반발이 이어지면서 논란이 됐다. 비슷한 이유로한국보다 외국에서 먼저 개봉하는 사례는 2014년 남기웅 감독의 <미조>로 이어지고 있다.

그 김경묵 감독의 신작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26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미 세계영화제에서 '도발적 시네아스트'로 명성이 자자한 젊은 감독의 신작은 지금, 현재 한국땅을 살아가는 20대 청춘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예비 20대인 중고등학생들은 '청불' 등급인 이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할 수 없다.

 영등위의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등급 분류 기준.

영등위의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등급 분류 기준. ⓒ 영등위


"주제, 내용, 영상 표현에 있어 사회 통념상 용인되는 수준이지만 대사 부분에 있어 거친 욕설과 비속어 등의 사용이 반복적이며 지속적으로 묘사되고 있고 모방위험에 있어서도 청소년에게 유해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청소년이 관람하지 못하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청소년관람불가 영화"

영등위의 등급 분류 내용이다. 정말 그럴까. 한 24시간 편의점을 배경으로 아르바이트생들과 점주, 그리고 손님들의 이야기를 그린 이 시츄에이션 드라마가 청소년들에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할 정도의 유해한 영화일까. 영등위의 등급 분류 기준에 맞춰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를 살펴봤다. 아, 아주아주 건전한 이 영화의 포스터는 무사통과됐으니 걱정 붙들어 매시길.

주제(유해성 등) - 영등위 분류 '다소 높음' VS '무난한 걸'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는 결국 동시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초상화요 인간군상극이다. 하루동안 편의점을 들락날락하는 (진상들을 포함한)손님들과 아르바이트생, 생활고에 시달리는 점주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린다. 그리고 이들은 (거만한 본사와 법원 직원을 빼고) 어딘가 다들 조금씩은 피로하고 각이 서 있는 걸로 보인다. 어디 '다이나믹 코리아'에서 살아가기가 만만하던가.

별의 별 희한하고 때로는 불쾌하기까지 한 손님들은 그대로 '갑을' 관계와 서비스직, 비정규직 문제를 포함한 우리의 현실이요, 알바생들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을 편의점의 현실이기도 하다. 여기에 후반부 점주의 비극까지 겹쳐지면서 각 에피소드마다 장르를 달리하던 영화는 현실 반영의 텍스트로 점프를 한다. 영등위가 불편한 지점은 과연 어느 부분이었을까. 혹시, 점주의 이름이 '전두환'이어서?

선정성 - 영등위 분류 '다소 높음' VS '도대체 어디가?'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의 한 장면.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의 한 장면. ⓒ KT&G 상상마당



선정성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감정이나 욕정을 자극하여 일으키는 성질"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도대체 어느 장면이? 주인공 중 배우지망생인 기철(공명 분)과 그 기철보다 먼저 일한 하나(유영 분)가 각기 남자와 여자를 좋아하는 캐릭터로 그려지긴 한다. 회상 장면을 통해 아주 간결하고 풋풋한 키스신도 삽입돼 있다. 그러나 도저히 '욕정'을 일으킬만한 장면이라 보기 어렵다.

그 부분 외에 선정성을 논할 장면은 단 하나도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영등위는 혹시 동성애라면 무조건 '욕정'과 연관 짓는 걸까. 아니면, 동성애자의 (풋풋한)키스는 대놓고 선정적이라는 걸까. 그도 아니면 동성애를 언급하는 것 자체를 청소년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유해한 표현이라 생각하는 걸까. 진심으로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폭력성 - 영등위 분류 '다소 높음' VS '리얼리?'

가끔 영등위의 등급 분류 결과를 보면, 굉장히 예술적이고 창의적이 아닌가 생각들 때가 있다. 마치 이 폭력성처럼. 폭력의 기준은 물리적 폭력, 성적 폭력, 언어적 폭력 등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이것이 우리가 끝이다>가 가리키는 폭력을 꼽자면 한국사회의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폭력이나 몇몇 대사의 욕설, 자본의 폭력, 사법적 폭력 정도일 것이다. 심지어 편의점에 3인조 강도가 드는 장면도 CCTV 분할화면으로 처리하며 직접적인 폭력성은 비켜갔다. 

그 중 탈북자 아르바이트생에게 한 남자가 가하는 언어 폭력과 성희롱은 오히려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정도다. 유해성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도대체 영등위 위원들은 영화에서 무얼 보는 걸까. 혹시 잠시 등장하는 여고생들의 비속어나 은어 사용이 걱정돼서? 그게 아니라면, 영화의 사회비판적인 요소를 청소년들로부터 차단하려는 뜻이라면 그 노력이 가상하다 할 수 있겠다.

공포 - 영등위 분류 '보통' VS 영등위의 고도의 해석?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의 한 장면.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의 한 장면. ⓒ KT&G 상상마당


이 영화에서 공포스럽게 찍힌 장면은 후반부 편의점 문이 잠기자 사람들이 몰려 들어 기다릴 때다. 마치 좀비영화처럼 찍었다. 여기에 점주의 비극을 그릴때 지극히 현실적이고 냉정한 느낌이 드는 정도다. 그러니까 왜 '낮음'이 아닌 건가. 영등위만의 반어법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겠다. 김경묵 감독이 한국사회에서 편의점 알바생과 점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공포를 리얼하게 그렸다는 공로를 인정한 것으로 말이다. 

약물 - 영등위 분류 '다소 높음' VS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술도 금지할까?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의 한 장면.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의 한 장면. ⓒ KT&G 상상마당


'음주.흡연 등의 장면이 반복적.지속적으로 표현된 것', 약물 관련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분류 기준이다. 이 기준을 놓고 갑론을박할 수 있는 내용은 중년의 편의점 직원이 깡소주를 들이키는 장면 뿐이다. 편의점 점주에게 타박을 받은 그가 들이키는 소주 말이다(여타 장면에서 짤막하게 등장하는 흡연 장면은 논외로 치자). 이 직원은 차후에 노숙자로 전락한다. 편의점 직원이 결국 노숙자로 전락한다는 전개가 '청소년 유해성'에 포함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대사(저속성 등) - 영등위 분류 '높음' VS '보통' 혹은 '다소 높음'

영등위 위원들은 모두 '바른말 고운말' 사용자들인가 아니면 아나운서 출신들인가.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대표적인 분류가 이 대사 부분이다. 편의점에서 일어나는 일상을 그린 영화에서 진상 손님의 묘사는 어쩌면 필수 불가결이라 봐야 할 것 같다. 그들을 응대하면서 나오는 욕설이나 표현 역시 리얼한 묘사의 일환으로 보인다. '존X'를 입에 물고 사는 청소년들이 보면 콧웃음을 칠 수위랄까. 영등위의 '청소년 보호'의 일념에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모방위험 - 영등위 분류 '높음' VS 영화는 영화일 뿐!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의 한 장면.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의 한 장면. ⓒ KT&G상상마당


"모방위험에 있어서도 청소년에게 유해한 내용을 포함"하는 장면은 아무래도 앞서 언급한 편의점 강도 장면인 듯 싶다. 헌데, 오히려 은행강도 모의와 과정을 친절하게 묘사한 <육혈포 강도단>이나 <뱅크잡> 같은 영화는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영등위의 노파심은 청소년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행여 편의점을 털 생각이 있는 청소년들이 이 영화를 학습자료로 삼기나 할까. 공짜로, 손쉽게 볼 수 있는 각종 뉴스, 시사프로그램 속 화면이 널렸는데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동성간의 풋풋한 키스 장면을 청소년들이 모방하리라 여긴 것은 아닐 거라 믿고 싶다.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영등위 공명 유영 줄탁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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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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