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개봉하는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로부터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편의점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아르바이트생과 점주, 손님들을 고루 등장시켜 20대 청년들의 현실과 한국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을 그렸다. 영화를 연출한 김경묵 감독은 17일 언론시사 자리에서 "영등위의 판단이 조금 아쉽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영등위가 말한 사유는 비속어, 욕설, 모방 위험 등이다. 하지만 영화 속 청소년들은 현실과 가깝게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판정은 지금 현실의 청소년들을 미개인 취급하는 처사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판단하시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러하다. 우리 관객들은 충분히 판단할 능력이 있다. 어떠한 노출도, 과도한 폭력도, 조폭들의 과한 '쌍욕'도 없으며 20대 청춘들이 주인공인 작품이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것은 의외가 아닐 수 없다. 헌데, 영등위는 여전히, 아니 앞으로도 '관객들의 판단'을 믿지 못하는 것 같다.

청소년을 '미개인' 취급하는 영등위...영화 포스터도 과보호?

 영화 <님포매니악 볼륨1>의 포스터.

영화 <님포매니악 볼륨1>의 포스터. ⓒ 무비꼴라쥬


특히나 청소년 보호라는 명목아래 창작자들의 표현의 자유는 무시되기 일쑤다. 대표적인 예가 영화 포스터다. 키스도, 담배도 안 된다. 피도 안 된다. '섹스'란 카피는 금기다. 노출이 조금 과하면 '포샵질'을 해야 한다.

영등위가 '유해성 있음'이라 판단한 포스터들은 수정이 불가피하거나 심한 경우 교체를 해야 한다. 특히나 영화 포스터를 포함한 광고선전물은 "전체관람가"를 적용해야 한다는 근거로 훨씬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영화 포스터가 극장이나 길거리에 공개되는 만큼, 등급에 따른 분류 없이 '청소년 유해성 여부'만을 유일한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이른바 '전체관람가'만 존재하기에, 영화 포스터에 성인용등급과 같은 세분화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무의미하거나 요원해 보인다. 이와 관련된 법적 근거를 상급 기관에서 만들 이유도, 만들 의지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전체관람가' 기준 적용하는 영화 포스터, 기준은 명확한가

 논란이 됐던 영화 <폼페이>의 수정 전후 포스터.

논란이 됐던 영화 <폼페이>의 수정 전후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올해 들어 영등위의 포스터 등급분류는 들쭉날쭉한 기준으로 논란을 키웠다. 청소년 유해 판정을 받은 포스터와 수정된 포스터를 두고 "틀린 그림 찾기를 시키느냐"는 관객들의 비아냥도 적지 않았다. 두 주인공이 화산 앞에서 키스를 하고 있는 장면에 '유해성 있음'을 판단한 영화 <폼페이> 포스터가 대표적이다.

19일 개봉을 앞둔 <님포매니악 볼륨1> 포스터도 영등위의 세심한 가위질을 다시금 주목(?)받게 만드는 주역이다. 이 포스터는 주연 배우 9명이 성적 황홀감을 느끼는 얼굴들로 구성됐다. 영등위는 "나의 모든 구멍을 채워줘"란 영화 속 대사를 인용한 카피와 배우들 표정의 부적절함을 이유로 들어 '유해성 있음' 판정을 내렸다.

이후 홍보사 측은 고심 끝에 배우들의 표정을 뿌옇게 만드는, 이른바 '블러' 처리라는 복안을 제시해 등급 분류를 통과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 영화인들과 관객들이 세계적인 거장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이 한국 포스터를 접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지 않은가.

문제는 유해성의 기준이 모호하다는데 있다. 분류 업무를 담당하는 위원들의 주관이 개입할 여지도 크다. 가슴골이 얼마나 나오면 선정적인지, 피의 농도는 얼만큼 진해야 하는지, 담배는 무조건 없애야 하는지의 기준이 모호할 가능성이 크단 얘기다.

영등위 측 "저런 포스터 왜 허용하느냐는 민원도 많다" 

 영등위 박선이 위원장의 인사말.

영등위 박선이 위원장의 인사말. ⓒ 영등위


잡음이 불거지는 '포스터 반려' 논란에 대해 영등위의 입장은 어떨까. 정책홍보부의 한 관계자는 <오마이스타>에 "꼭 올해만 잦은 것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이 관계자는 "해마다 상영되는 영화 편수나 내용이 다 다르고, 포스터도 다르다"며 "어떤 추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예년에 비해 상영 편수가 몇 배 이상 늘다보니 최근에 도드라져 보이는 것 뿐, 논란은 예전에도 존재해왔다"라고 설명했다.

또 이 관계자는 "영등위가 공공기관으로서 설립 목적을 지키다 보니 법적인 의무감을 지켜가며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자 한다"며 "실제 등급 분류에 참여하는 위원들도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기준을 적용하려고 노력한다"고 부연했다.

현재 영등위 위원장과 9명의 위원회 위원들은 3년을 임기로 한다. 영등위 측은 위원장과 위원회 위원들 개개인의 보수성이나 정치적 성향과 세부적인 등급 분류 업무는 크게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이 관계자는 "한편으로 왜 저런 (과한 수위의) 포스터를 내걸게 해주느냐는 민원도 적지 않다"면서 "양측 입장을 모두 고려하면서 법적 테두리 안에 업무를 조율해야 하는 어려움도 고려해 달라"고 전했다.

끊임없이 퇴보하는 '표현의 자유', 영등위가 일조한다 

 최근 영등위가 개최한 '영화 소 언어표현 개선 토론회' 모습.

최근 영등위가 개최한 '영화 소 언어표현 개선 토론회' 모습. ⓒ 영상물등급위원회


최근 영등위는 '영화 속 언어표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토론회에서는 청소년들의 일상화된 욕설 사용과 영화 속 욕설표현 실태가 논의됐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과 교수, 영화평론가, 교육․학부모 단체 임원 등이 발제자로 참석한 이 토론회에 현장 영화인들을 위한 자리는 없었다.

영등위 측은 현장 영화인들의 참석을 위해 영화단체들과 접촉을 가졌으나 냉담한 반응만 돌아왔다고 한다. 영등위는 제 할 일을 다하고 있다 주장하겠지만, 앞서 언급한 논란이 이어지는 이상 영화인들의 영등위를 향한 반발을 잠식시키긴 어려워 보인다. 

위원들의 면면이나 기존의 논란을 상기한다면, 영등위가 등급분류기준에 있어 '표현의 자유'보다 '청소년 보호'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이 역력해 보인다. 그 기준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오래다. 정부가 나서서 '제2의 새마을운동'이나 '임시반상회'를 독려하는 사회 분위기와도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남발, 끝나지 않은 제한상영가 논란, 여기에 빈번한 영화 포스터 '청소년 유해성' 분류까지. 이명박 정부 초기 취임한 4기 지명혁 위원장과 5기 현 박선이 위원장 시대 역시 영등위와 관련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렇게 국내외에서 한없이 후퇴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한국의 '표현의 자유', 그 위축의 길에 영등위 역시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 중평이다.

"청소년을 미개인 취급"하는 등급 분류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변화가 '다시' 필요할 때다. 20세기로 회귀한 것 같은 영등위의 활약(?)을 멈추고 제 위치로 되돌아가게 만드려면 말이다. 자기검열을 작동시켜야 하는 창작자들의 노고를 위해, 미개인 취급받는 우리 청소년들의 상상력을 위해서도 그렇고. 언제까지 영화인들이 포스터에 '뽀샵질'을 하고, 청소년들이 '틀린그림찾기'에 나서야 하는가.

영상물등급위원회 님포매니악 폼페이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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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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