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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광화문의 등잔 밑

 선생님들은 참교육 계단의 아이처럼 웃고 있었다. 이영주 전교조 수석부위원장(오른쪽)과 진영효 참교육실장.
 선생님들은 참교육 계단의 아이처럼 웃고 있었다. 이영주 전교조 수석부위원장(오른쪽)과 진영효 참교육실장.
ⓒ 오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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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하고도 하필이면 13일의 금요일 '주역(周易)' 공부를 함께 하는 한 아주머니와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 갔다. 아주머니의 남편은 선생님이었다. 광화문 북측 광장은 경쾌한 음악소리와 앳된 고등학생들의 목소리로 밝아 보였다. 남북경협기업비상대책위원회 등 12개 시민사회단체들은 6·15 남북공동선언 14주년을 기념하는 '응답하라 6·15' 콘서트를 열고 있었다.

내가 갔을 때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당선자와 고등학생들이 무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주 만나주세요"라고 교육감 당선자에게 부탁하는 여학생의 목소리가 분명하면서도 애교가 있어서 기분이 좋아졌다.

역사박물관 위에 유난히 보름달이 낮게 떠 있었는데 나는 조명을 켜둔 줄 알았다. 그러고 보니 어제가 보름이었다. 단식투쟁장은 조촐했다. 조그만 텐트도 없고 바닥에는 돗자리 하나에 침낭 몇 개가 뒹굴었다. 철야 단식을 5일째 하고 있는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의 얼굴은 건강해 보였지만 한낮의 햇볕에 그을린 자국 때문인지 그림자처럼 보였다.

지지방문을 받을 때마다 반가운 듯 애써 웃음을 짓는 것 같아서 안쓰러웠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진보 교육감의 대거 당선으로 교육의 새로운 바람이 불지 않을까 하고 사람들의 가슴이 부풀어 있지만, 전교조는 지금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노동부를 상대로 제기한 '법외노조' 통보 취소 소송에 대한 1심 판결이 6월 19일로 예정돼 있다. 비록 1심의 판결이긴 하지만 패소하는 순간 법적 지위를 상실한다. 법적 지위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교사가 해직되었던가. 그 역사를 조금이나마 알고 있기 때문에 단식투쟁장에 앉아 있는 내내 불안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선생님들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전교조보다 먼저 알게 된 '참교육'의 추억

나는 '전교조'라는 말보다는 '참교육'이라는 말을 먼저 알았다. 내가 다녔던 제주대학교의 공과대학에서 점심을 먹으러 학생회관 식당에 가려면 사범대학을 통과해야 하는데 '참교육 계단'을 밟아야 한다. 거기가 참교육 계단이라는 사실은 사범대 다니는 선배로부터 들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밟고 지나갔는지 빨갛고 파랗게 칠해진 페인트가 많이 벗겨졌지만 계단 한가운데서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는 그대로였다. 그 웃음이 좋았다. 계단을 지나갈 때마다 웃게 돼서 나는 그 곳을 자주 찾았다. 벗겨진 페인트처럼 조합원들은 나이가 들어 보였으나 웃고 있는 아이의 표정만큼은 살아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재판 이야기를 꺼냈다. 이영주 수석부위원장은 담담하게 답변했다.

"재판을 앞두고 한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전교조가 언제 법외노조가 아닌 적이 있느냐고. 이번 재판을 계기로 많은 선생님들이 전교조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어요."

입이 부끄러웠다. 재판 결과에 따라서 전교조 전임자들은 전부 학교로 돌아가야 하고 선생님들의 무더기 해직 사태가 우려되고 사무실의 무거운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언론이 하도 겁을 주는 바람에 우문을 하고 말았는데 새삼 현답이 돌아오니 부끄러울 밖에.

그러고 보니 전교조 선생님들은 뭔가 달랐다. 4년 동안 언론시민운동을 하면서 몇 번 마주치진 않았지만 그 기억만은 강하게 남아 있다. 조계사에서 '사랑의 김장 담그기'(진실을 알리는 시민 주최) 행사를 할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외 접촉을 내가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교조 연대국장을 맡고 있던 선생님께 연락해 후원을 요청했다. 말미가 얼마 없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전교조의 재정 집행 절차가 까다로워 시간이 걸릴 수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며 양해를 구하셨다.

부탁하는 것은 난데 선생님이 오히려 미안해 하셔서 참으로 송구스러웠다. 선생님과 통화를 하고 나서 하루나 이틀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좋은 취지의 행사이므로 속전속결로 의결을 마쳐서 후원금을 집행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한푼이라도 아쉬운 시민활동이라 후원금이 고마웠지만 더 기억나는 것은 선생님의 목소리였다.

전통만큼이나 복잡한 의사절차를 가지고 있는 조직에서 신속하게 결론을 내리려고 애쓴 과정과 좋은 일을 해냈다는 자긍심이 전화기를 타고 귀로 전달됐다. 아이 둘을 키우는 평범한 가장이 되었어도 몸을 일으켜 '살벌한'(?) 단식투쟁장으로 갔던 것은 그 날의 기억과 느낌이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사람의 마음속에 울림을 줄 정도의 진심이라면 그 조직력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생각의 반대편에서 전교조와 맞서는 입장에서는 이것이 얼마나 공포스러울까?

지방선거 이후에 정부의 개각 폭이 언론을 통해서 조금씩 알려지고 있지만 정부는 '전교조'에 대해서만큼은 알레르기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교육부총리 인사를 보면 전교조와 진보교육감의 네트워크를 가만 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는 김명수(66) 전 한국교원대 교수의 극우 성향도 문제지만 그의 권한이 교육부총리급을 월등히 능가하는 '슈퍼 교육 부총리'라는 점이다. 5월 27일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한숨부터 나온다.

"이번에 교육·사회·문화를 총괄하는 부총리를 두어서 정책결정 효율성과 책임성을 높이고자 한다"

"총리는 법질서와 공직사회 개혁, 사회안전, 비정상의 정상화 국정 아젠다를 전담해서 소신을 갖고 국정을 운영하도록 하고 경제부총리는 경제 분야를, 교육·사회·문화 부총리는 그 외의 분야를 책임지는 체제를 갖추고자 한다"
- 박근혜 대통령 5월27일 국무회의 발언

전교조에게 거는 위태로운 희망

 막차가 끊길 시간이 임박하자 돌아갈 선생님들과 철야할 선생님들이 모여서 조촐한 의식을 치르고 있다.
 막차가 끊길 시간이 임박하자 돌아갈 선생님들과 철야할 선생님들이 모여서 조촐한 의식을 치르고 있다.
ⓒ 오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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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교육 정책이 어디로 가는지를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예측하다가 나는 무서운 상상을 해버리고 말았다. "박근혜에게 국가란 '아버지', 정치는 아버지께 올리는 '제사'"라는 김어준의 말대로라면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이 선생님을 다뤄왔던 모습을 상상하고 있지 않을까? 유신 정권 시절 교사였던 70대 할아버지를 우연히 만나 그 시절 있었던 이야기를 들었던 게 떠올랐다.

"유신 때는 말이야. 유신 홍보를 위해서 마을 반상회에 나가가지고 유신이 나쁜 게 아니다 좋은 거다. 이거 PR하는 것도 우리가 했어. 동네마다 배당이 돼 있었는데 시대 상황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했어."
- 유신 시절 교사였던 70대 할아버지

단식투쟁장에 가기에 앞서 이런저런 우려를 많이 했지만 오히려 내가 위로를 많이 받았던 밤이었다. 선생님들은 정확하게 자신의 길로 가고 있었다. 사회 정의가 무너지면 모든 가치가 전도되고 언어가 죽어간다.

불의가 정의로 둔갑하고 정의는 불의로 매도된다. '민주화'라는 말이 조롱의 대상이 된 것처럼 민주주의, 자유, 교육, 인권, 평화 같은 소중한 가치를 머금은 말들이 급격히 시들기 시작한다.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피'만이 말의 부패를 멈추거나 느려지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피를 봐야 한다. 선생님들이 흘리는 맑은 피가 광화문에 뿌려졌다. 그들은 지쳐가고 있었다. 다만 뜻 있는 분들이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 때 이영주 수석부위원장으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어쩌면 젊고 새로운 피들이 전교조라는 지친 몸에 수혈돼 뜻을 이어갈 수 있겠다는 희망을 걸 수도 있지 않을까? 비록 위태로운 희망이지만.

"전교조가 없어지는 것을 반대하는 젊은 교사들이 요즘 가입을 하고 있는 게 눈에 띄네요."
- 이영주 전교조 수석부위원장


태그:#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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